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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사심을 닦아내고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7~8년 전, 남편(수련생)이 납치됐다. 나도 악인이 붙잡으려던 사람이었기에 피해 있는 3일간 대량으로 법공부한 후 나는 파출소에 석방을 요구하러 갔다.

당시 소장과 경찰들은 내가 이름을 말하자 모두 매우 놀랐다. 그들은 내가 직접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서랍에서 준비한 나를 붙잡으려던 증거 서류를 꺼냈다. 나는 대법 진상과 우리 일가가 최근 몇 년간 감당한 박해 경과를 말하는 과정에서, 소장이 때론 큰 소리로 말하고 때론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선한 마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후에 그는 내게 물었다. “아주머니 집에 한번 가 봐도 될까요?” 나는 된다고 말했다. 사실 남편이 붙잡힌 후 경찰은 두세 번 우리 집 문에 들어오려 했지만 들어오지 못했다. 한번은 내가 진상 지폐를 만들고 있어 바닥에 모두 돈이었다. 두 경찰이 문을 두드렸을 때 나는 응답했지만,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한 무리 경찰이 저녁에 살그머니 복도 전기 스위치를 내리고 나를 유인했다. 그들은 내가 스위치를 올리려고 나올 때 뛰어 들어오려 했는데 나는 알아차렸다. 세 번째는 남편이 출근하는 중에 한 무리 경찰에게 납치된 후 3시간 후에 경찰이 남편의 한 무더기 열쇠를 갖고 하나하나씩 우리 집 문을 열어보았다. 나는 방안에 앉아 입장(立掌)하고 발정념을 했다. 집안의 많은 기계와 서적 등 대법과 관련된 ‘금빛 법기’를 나는 옮기지 않고 집에 두기로 했다.

이때 소장이 나에게 우리 집에 가도 되냐고 할 때 나는 태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동의하자 웃으면서 말했다. “다 옮긴 거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후에 두 경찰이 나를 따라 집에 간 후 한 바퀴 둘러보고 말했다. “우리는 뒤집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사존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그해 봄이 절반 지났을 때 비정상적으로 대설이 내렸다. 나는 한밤중에 발정념을 할 때 갑자기 자비로운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갇힌 남편 때문이 아니라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의 진상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였다. 한 달 정도 지나, 남편은 구치소에서 탈퇴시킨 일부 삼퇴 명단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4년 전 장쩌민을 고소할 때 남편은 재차 불법 수감됐다. 처음에 우리는 파출소에 와서 장쩌민 고소에 관한 일을 알아보려고 얘기를 나누자는 전화를 받았다. 파출소에 도착한 후 여러 명 경찰이 각각 우리의 인신 자유를 제한하고 불법적으로 5~6시간 취조했으며, 집을 수색하기 위해 열쇠를 달라고 했지만 우리는 협조하지 않았다. 그중 한 경찰이 표독스럽게 말했다. “열쇠를 주지 않아도 우리는 들어갈 수 있어.” 나는 그것은 민가에 불법 침입하는 거라고 말했다. 이후에 여러 명의 경찰이 우리 집을 수색하기 위해 나갔다. 그때 갑자기 비바람이 불고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장대비가 내렸다. 나는 조용히 정념을 한참 내보냈다. 속으로 집에 있는 ‘금빛 법기’를 모두 사부님께 맡긴다고 생각했다. 다음 평온하게 나를 지키러 온 인턴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남편은 또 구치소에 수감됐다. 집에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다. 거실의 책상 위에 한 무더기 ‘9평 공산당’, 책상 밑에 수련생들의 장쩌민 고소 편지를 부친 영수증도 아주 많았고, 책장 안에 책 등이 있었다. 창문을 열어놓아거실의 침대가 폭우에 절반 젖었을 뿐이었다.

이후 보름 동안 끊임없이 공검법에 가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내가 가장 나쁘다고 여긴 경찰 한 명이 남편 사건을 주관하고 있었다. 그가 집을 수색하러 가겠다고 한 날 우리가 협조하지 않았기에 그는 대법에 불경스러운 말을 해서 나는 그를 아주 싫어했다. 이후에 그가 남편에게 돈 200위안을 빌려줬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에게 갚아주러 갔다. 처음에 사무실에서 그를 찾지 못했는데 이후에 파출소 마당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고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마주 향해 가면서 말했다. “당신들이 좋은 사람을 잘못 붙잡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선생님 본인 돈을 우리에게 빌려주어 갚으러 왔습니다.” 그는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네, 돈 갚으러 왔습니까? 요 며칠 휴대폰을 켜놓고 있으세요. 보석하게 되면 아주머니에게 전화하겠습니다. 아주머니 집 물건을 건드리지 않았지요? 아주머니는 책도 만들고 돈도 만들던데? 아주머니는 돈을 다 이런 데 쓰는 거죠?” 돌이켜보니 그날 프린터에 한 무더기 잔돈이 있었고 컴퓨터 위에도 일부 책갈피가 있었다. 집안에 물건이 별로 없어 그는 우리 생활이 비교적 검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는 파출소를 떠나 넓은 둑에 가서 고통스럽게 울었다. 그렇다. 나는 그 사람을 악인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진상 자료를 만들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아주 심했는데, 사실 그 사람은 나를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잘하지 못했고 부족했던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야 아직 선한 마음이 남아있는 경찰을 구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경찰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다. 한 마디 기억나는 말이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아이 아버지가 빨리 집에 돌아오길 바랍니다. 하지만 무조건 석방해야 합니다. 신앙은 무죄고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은 국민의 합법적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나는 줄곧 핸드폰을 껐다. 그러다 30일 전후에 남편이 스스로 문을 두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존의 보호에 감사드렸다.

그 후 최근 몇 해간 경찰들이 여러 번 소위 ‘임무’를 위해 우리와 만났다. 우리는 회피하지 않고 모두 직면했다. 또 두세 번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2~3년 전 어느 날 오후, 내가 일하고 있는데 경찰이 건 전화를 보고 나는 받지 않았지만 일하면서 속으로 저녁에 파출소에 다녀올 생각을 했다.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을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자료를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각자 속으로 정념을 내보냈다. 매번 그들을 만날 기회를 잘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온 가족이 파출소에 갔다. 2~3시간 얘기 나누고 저녁 10시가 됐을 때 아이가 머리를 비스듬히 하고 잠이 들어 우리는 떠나려 했다. 경찰은 무엇을 기다리기나 한 것 같았고 우리가 떠나길 원하지 않았다. 가기 전에 우리는 준비한 자료를 그에게 주었다. 그는 줄곧 우리는 파출소 문 밖까지 배웅했다. 다음날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아는 사람 두 사람을 각각 만났는데 모두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알려주었다. 남편에게 피해 있으라면서 전날 경찰차 몇 대와 많은 경찰이 우리 집 아래층에서 돌았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어제저녁에 우리는 파출소에 다녀왔다고 알려주고 시름 놓으라고 하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후 회고하면서 느꼈다. 어제저녁에 파출소에 소장과 지도원을 포함한 그렇게 많은 경찰이 모두 퇴근하지 않았다. 우리와 얘기를 나눈 경찰은 우리를 붙잡아둘 것인지 줄곧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이 오후에 우리 집과 직장 주변에 경찰을 배치해 납치하려 시도한 것을 몰랐다. 저녁에 우리가 경찰의 미래를 위해 그에게 자료를 줄 때 여기에 사심이 없었기에 이번 난을 해결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재차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렸다.

작년에 어느 한번 경찰에게 ‘공산주의 최종 목적’ 한 권을 주었더니 그는 아주 두려워하고 긴장했다. 남편은 평온하게 그에게 말했다. “이것은 제 개인이 당신에게 주는 겁니다.” 나는 한 마디 보충했다. “많은 고위 간부가 모두 이 책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나는 칭화대 학자의 동영상을 보고 감탄했고 울면서 다 보았다. 나는 다시 경찰을 만나면 그에게 이런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든 후 다음날 경찰이 전화해 상부에서 반드시 나를 만나길 지시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두려움이 뒤집어 나왔지만, 생각을 바꿔보니 나는 그들에게 진상 동영상을 보여주기로 하지 않았는가? 기회가 온 것이다. 다시 법 공부를 하니 두려움과 사심이 없었다. 태연하게 직면하고 매번 그들을 만날 기회를 잡았다. 이번에 그는 홀가분하게 내 선물을 받았다. 이번에 동행한 새로 바꾼 주민위원회 젊은이도 이 선물을 받았다.

아주 부끄럽다. 수년간 나는 이제야 겨우 체험했다. “구도된 중생 마음 점차 밝아지고 청성해진 경찰과 민중 보고도 막지 않네”[1]

문장에서 ‘금빛 법기’ 이야기를 두 번 언급했다. 10여 년 전에 들은 수련생의 신기한 이야기가 줄곧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번은 몇몇 수련생이 승합차 한 대를 몰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처음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간 노수련생이 붙잡혔다. 두려움 때문에 몇몇 동행한 수련생과 승합차에 대해 말했다. 마지막에 수련생들과 차가 같이 파출소로 끌려갔다. 노수련생은 아주 자책했고 다른 수련생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가 다른 수련생들의이름을 말했다고 했다. 수련생들은 다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사부님이 계십니다.” 수련생들은 서로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이때 어떤 수련생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집의 그렇게 많은 자료를 혹시 수색하기라도 하면, 아니다. 그것은 모두 금빛이 반짝반짝 나는 법기다. 누구도 움직이지 못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에서 내가 가장 젊으니 내가 주동해서 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지 말아야 하는데.’ 이렇게 막 걱정하고 있을 때 경찰이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서 당신이 가장 젊은데 당신이 주동자지요?” 그는 즉시 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가 생각을 바로잡자 경찰은 물어보지 않았던 것처럼 다른 말을 했다. 안에 있던 매 수련생은 모두 안으로 찾는 과정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장황하게 쓰지 않겠다. 밖에 있는 수련생들은 이 일을 듣고 모두 하던 일을 내려놓고 얼른 파출소에 갔고 해외 수련생의 전화도 파출소에 걸려왔다. 경찰들은 안절부절못하다가 마지막에 몇 시간 지난 후 610이 차, 자료를 싣고 수련생들을 집에 데려다줬다. 박해가 해체됐고 경찰들은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지 않았기에 그들도 구원될 기회가 생겼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3-선(善)이 보이네’

 

원문발표: 2019년 8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22/3917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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