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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는 것에 대한 약간의 체득

글/ 중국수련생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홍음 5’를 발표하신 후에 매 구절 매 글자가 모두 나의 마음을 일깨우는 것을 느꼈다. 특히 창세주, 신, 무신론, 진화론 이런 명사들이 나의 사상을 충격하고 뒤흔들었다. 일부 심득을 수련생과 교류하고자 한다.

‘홍음 5’는 나의 기억을 각성시키는 것 같았는데, 마음속에서 “나는 신이 하세한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울렸다. 이 사상염두는 뚜렷하고 명확했으며, 인생의 목적과 수련의 의의에 답을 얻었다. 인생의 세 가지 최종적인 문제는 바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인데, 이 문제의 답안이 간단명료하게 변했다.

이 체득을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하는 이유는 내가 신을 불신하던 데서 드디어 신을 믿기 시작하는 이런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신을 불신하다’는 수련에 매우 큰 장애를 조성한다. 매일 책을 보지만 오히려 법공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매일 연공하지만 오히려 체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심지어는 수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또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모르지만, 수련자 자신은 흔히 이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나는 이에 대해 깊은 체득이 있다.

대법을 접해 배움을 견지하기만 하면, 누구나 직접 신기한 체험과 경험을 한다. 하지만 신을 불신하는 관념과 물질 때문에 사람 마음은 개변되지 않는다.

차분하게 자세히 생각해 보자. 과거 신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뚜렷한 표현은 다음과 같은데, 법공부 때 사부님의 말씀이 구절마다 진리이고 정말 옮으며 정말 좋다고 여기지만, 책을 내려놓고 구체적인 실제 문제에 부딪히면 완전히 사람의 관념이 작용을 일으키며, 수련인의 사유개념은 없다.

이번의 박해를 대할 때도 법리를 통해 사악한 마가 사람을 통제한 것이라 인식하지만, 뼛속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그렇다면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믿고 안 믿고는 감각에 의한 것이 아니며, 해내야만 진정한 믿음의 여부를 보아낼 수 있다.

사부님께서 “대각자들이 보건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되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든지 그는, 겪는 고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며 빚을 다그쳐 갚는다고 여기는데, 그는 바로 이런 생각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고난에 대항하고 있는데, 이런 사유로 자신과 친척 친구들을 대하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을 불신하는 표현이 아닌가?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운 좋게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접했다. 하지만 나는 줄곧 법을 얻지 못하고 중간에 몇 년 수련을 포기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여전히 나를 보호해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지금 또다시 법을 얻어 수련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자신의 노정을 회고하고 자신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박해를 당하고 심지어 수련을 포기하게 되었을까? 무슨 이유가 나를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토록 사당을 무서워하게 하는 것일까? 현재의 인식으로는 거기에 중요한 원인이 있다. 바로 마음속으로 신이 진실한 존재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서, 불성이 여전히 사람 마음에 덮여서 나오지 못한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신론과 진화론을 선전하는 제도와 교육하에서 생활해왔으며, 모든 사유개념은 다 강제로 주입 당한 것이었고, 독립적으로 문제를 사고하는 개념이 없었다. 당초 ‘전법륜’을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믿음과 격동으로 “와, 정말 신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격동은 마치 신선한 피로 갈아 치우는 것과 같았다. 그때의 나는 신이 있음을 믿었고, 또한 신불을 동경했는데, 그것은 사실 사부님의 역량, 법의 위력 덕분이었고, 사람의 이 면은 이성이 아닌 감성에 더 많이 국한되어 있었다. 나의 진짜 사람 마음은 오히려 어떠한 변화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사람 마음은 단지 그런 외재적인 강대한 역량 때문에 얼어버려 잠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 것이었다. 인간의 근본적인 집착은 더욱 포기하지 않았기에 자연히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련은 아니다. 그럼 구세력이 안배한 이번의 사악한 박해에서 넘어지는 것도 곧 필연이다.

물론 가강된 박해에 대해 사부님께서 무량한 지혜로 이 일체를 바꾸셨고, 그것은 사부님의 자비이다. 그런데 그런 박해에서 내가 경험한 교훈과 손실은 얼마나 막심한가? 나 자신의 소위 수련이 진정으로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나는 왜 믿지 않는지, 어떻게 해야 믿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물론 사상업의 교란이 있고, 또한 자신이 진정으로 사고하는 과정도 있다. 나는 그 후로 마음을 써서 법공부하기 시작했고, 더는 예전처럼 그런 흐리멍덩한 상태로 읽지 않았으며, 고급생명이 되려는 목적을 가지고 배우기 시작했다. 사고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의혹을 놓치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법의 내포가 보이기 시작했다.

신을 믿지 않는 것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법공부다. 사부님께서 대법책에 신을 믿지 않는 것을 타파한 많은 사례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전에 나는 단지 학문지식으로 삼아 공부를 했지 법을 배우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중시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신이 진실한 존재라고 여기지 않으면 어떻게 고생을 겪고자 하고 집착을 제거하여 신으로 수련 성취하고자 하겠는가? 그리고 또 어떻게 수련의 동기가 생기겠는가? 신을 믿지 않으면 법공부 할 때 백지의 검은 글자를 법으로 여기고 배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사부님과 법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겠는가? 자신의 수련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을 지려거든 용기를 가지고 진실로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도 괜찮다. ‘나는 정말로 신을 믿는가?’ 만약 현재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했다면 그럼 그 불신을 타파하고 믿음으로 바꾸기 시작해 보라. 법공부 함에 따라 결과는 진정으로 믿고 뼛속까지 믿게 된다.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 문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개인의 현재 층차에서의 인식으로서 옳지 않은 곳은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8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9/3912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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