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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을 견딜 수 있음은 경지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인으로서 적막을 견딜 수 있기는 아주 쉽지 않다. 나를 놓고 말하면 성격이 외향적이고 움직이기를 좋아하고 떠들썩함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아주 강했다. 속인 친구가 많아서 먹고 마시며 서로 오가는 것이 아주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수련한 후 비록 박해가 엄중했지만 수련생들과 여전히 자주 왕래하고 집에 놀러 다니고 자주 교류하는 것이 마치 아주 충실한 것 같았다. 이후에 발견했는데 이런‘충실함’은 아주 강한 사람 마음이었고 적막을 견디지 못하는 경박함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참기 어려운 적막은 사람의 가장 큰 위험이며 또한 수련 중 가장 큰 한 가지 난이다.”[1]

내가 법에서 자신을 바로 잡을 때 적막을 닦아 버리는 것이 가장 고달픈 과정임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10일에서 15일마다 나는 수련생 집에 한번 가야 했고, 가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마치 뭔가 모자라는 것 같았다. 가서 바로 차를 마시고 한담을 나누는데 수련생도 내가 오면 아주 흥분했다. 이후에 나는 점점 이상한 것을 느꼈다. 내가 매번 수련생 집에 가면 잠재의식 속에서 무슨 소식을 알고 싶었고 울타리 속 수련생들이 어떠한지? 사고가 난 이가 있는지? 사악이 또 무슨 행동이 있는지? 자신이 수련생 속에서 지위가 원래와 같은지? 누가 배후에 나의 무엇을 말했는지?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남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런 ‘소식’ 중에서 자신이 어떻게 수련하고 혹은 무엇을 마땅히 주의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느끼면 자아 만족의 상태 속에 빠지게 되었다.

구세력의 고험 표준은 바로 우리가 적막을 견딜 수 있는지를 본다. 적막을 견디지 못하면 위험하고 그것들은 사람마다 모두 한 세트의 기제를 설치했고 당신에게 빈번하게 수련생들과 오고 가게 하는데, 오늘은 이 사람이 당신을 찾고 내일은 저 사람이 당신을 찾으며, 이 사람이 식사 초대하고 저 사람이 식사 초대하며, 이 사람은 당신이 좋다고 말하고 그 사람은 당신이 좋지 않다고 말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일부 일속에 빠지게 한다. 현상의 배후는 함정이다. 만약 당신이 남의 집에 놀러 가는 습관을 늘 고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박해할 이유가 있게 된다. “이 사람은 적막을 견디지 못하는구나! 모여서 시끌벅적거리네?”

수련의 엄숙성은 아주 많이는 작은 일에서 반영된다. 몇 년 전 경찰은 여러 번 나를 찾아와 소란을 피웠지만 누락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한 경찰이 말했다. “당신은 당신들 사람과 자주 접촉하지 마세요.” 나는 생각했다. ‘당신이 결정하는가?’ 이후 깨달았는데 이는 사령이 말한 명백한 말이고 구세력은 그것의 배치가 있어 미끼에 걸려들게 하는데, 당신이 하루 종일 떠들썩함을 좋아하고 남의 집에 놀러 다니기 좋아하고 일이 있으나 없으나 수련생 그곳에 가서 반나절 수다 떠는 것이 수련인가? 그것은 정상인가? 수련인은 본질과 경지의 제고가 없다면 속인과 다를 것이 없다. 이성적으로 조금 명백해지니 조금 잘할 수 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이런 느낌이 생겼다. 수련생 집에 가지 않으면 괴롭고 마음이 번잡하고 마치 무엇에 혼을 뺏긴 것 같았다. 이후에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구세력의 기제가 나의 표현을 통제하는 것이었고 진짜 수련하는 그 진아(眞我)가 아니었다.

이런 표현은 일종 강제로 가한 것이었다. 내가 수련생 집에 가지 않아서 ‘괴로운’ 느낌은 강제로 가한 것이었다. 가면 마음속으로‘기쁜’느낌 역시 강제로 가한 것이었는데, 만약 대법으로 가늠하지 않고 자신을 바로 잡지 않으면 이런 현상을 돌파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적막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경지이다. 나는 밍후이 수련생들에게 매우 탄복하는데, 묵묵히 20년 동안 그런 묵묵함은 파문이 없는 사수(死水) 같은데, 순결하고 깨끗하여 신이 다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생명이 이런 묵묵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 마땅히 무형무흔(無形無痕)한 것이고 외부인은 똑똑히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이는 늘 함께 떠들썩하니 모여 있는 상태와 크게 다른 것이다.

내 주변에 한 수련생이 있는데 모두 그의 정진에 탄복하며 그가 수련을 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몇 년간 미혹되었는데 최근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남의 집에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10일에서 15일에 수련생들 사이를 한 바퀴 돌아야 했는데, 매번 그가 오면 일부 수련생들의 구체적인 일을 말할 수 있었다. ‘유위(有爲)’는 바로 병이고 커지면 ‘위암’으로 되는데, 여전히 깨닫지 못하니 당신의 목숨을 가져갔다.

여기서 나는 생각했는데 최근 사이트 보도에 의하면 7월 초와 중순에 전국 여러 지역에서 수련생들이 단체로 납치되는 사건이 나타났는데 10여 명에서 20여 명, 30여 명… 모두 노 대법제자였다. 정법이 최후에 도달했는데 사악이 어찌하여 이렇게 큰 행동을 하는가? 사고가 난 지역의 일부 수련생들이 이렇게 말했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이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홍콩 200만 명 퍼레이드를 보면서 공산당과 대치했으니 마땅히 손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구세력이 꼬투리를 잡은 것이다. “홍콩 200만 명 퍼레이드는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이런 작은 일로 기뻐서 주체를 못 하고 서로 달려가서 알려주는데 이런 사람이 신이 될 수 있겠는가? 마땅히 손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일부 수련생은 농촌 수련생 집에 가서 농갓집 식사를 하고 갈 때 또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야채를 한가득 가져간다. 한 수련생은 나에게 이런 말을 여러 번 했다. “당신은 언제 우리를 식사에 초대하나요?” 비록 농담이지만 나는 자신한테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3일에서 5일이 멀다 하게 남의 집에 가서 자주 식사했다. 한 수련생이 나더러 식사하러 오라고 하면 나는 신나서 일찍 갔는데, 말로는 교류라고 하지만 무엇을 교류하는가? 열 가지 반찬을 상에 가득 차려놓고 먹고는 입 닦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수련인은 이렇게 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너무 편안하고 너무 안일하고 너무 한가롭지 않은가? 차를 마시고 좋은 요리를 먹으면서 바른 일은 아주 적게 말하는데 이는 수련인가? 구세력이 보다 못해 손을 뻗친다. 전국에서 나타난 수련생의 대량납치 상황은 이 방면의 원인이 아닌가?

99년 7.20이전에 현지 보도소는 교류를 자주 조직했고 그때는 누구의 집이든 혹은 다른 지역이든지를 막론하고 식사 시간이 되면 다수는 밥 하나에 반찬 하나였다. 식당에서도 국수 한 그릇 혹은 쌀밥 한 그릇이고 반찬은 한두 가지였다. 소장이 말했다. “당신들은 보지 못했는데 사부님께서 그 해에 법을 전하실 때 무엇을 드셨나요? 곁에 있는 제자들이 등에 짊어진 것은 라면 몇 박스였습니다. 우리는 허세 부리지 맙시다.” 수련인의 작은 일도 모두 미래에 남겨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수련생 사이에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체 연공,법 공부는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것이고 주요하게 사람의 한 가지 습관, 남의 집에 놀러 다니는 아주 좋지 못한 습관을 말하는 것이며 이를 제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이 일은 얼마나 엄숙한가! 이렇게 엄숙한데,많은 사람이 오히려 엄숙하게 대하지 못한다! 특히 일부 오래된 대법제자가 그렇다. 당신은 당신의 모든 생활 일체가 모두 수련 가운데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의 일언일행, 당신이 한 그 일체, 당신은 모두 수련 중에 있는데, 당신은 알고 있는가?”[2]

개인의 얕은 인식이고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의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북미 제1차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세계法輪大法의 날 설법’

 

원문발표: 2019년 8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5/3910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