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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업에 참여해 법을 실증하고 반(反)박해한 과정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청년 대법제자로 2013년 상하이 연극대학 연기학과를 졸업하고 2017년 사부님의 보호 아래 해외로 나와 순조롭게 신세기 영화사에서 연기자를 맡고 있다.

신세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촬영과 제작에 참여했다. 이는 내가 맨 처음 진정하게 정법 진상 항목에 참여한 것으로, 처음에는 흥분되고 격동했으나 서서히 적응하고, 배우며, 모두 함께 협력해 하나하나 프로젝트를 잘 완성해 나갔다. 여기 온 지 2년 동안 나는 ‘소원’ ‘예술학교 시험’ ‘설날’[过年]’ 등에서 최근에 완성된 ‘귀로[歸途]’에 이르기까지 여섯 편의 영화에 참여했다. 나는 내가 임무에 충실하며 마음가짐도 충실하다고 생각했다. 매 편의 영화는 마치 나의 단계별 성장과 인식을 기록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내가 출연한 영화를 볼 때는 자신은 출연자라는 느낌이었고 배역과 동일시하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설날’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왜냐하면 촬영 기간에 어머니가 국내 감옥에서 박해를 받고 계셨기 때문이다. ‘설날’ 속에는 구치소에 갇힌 션위(沈玉)가 진상을 아는 한 경찰의 도움으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안부를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내가 맨 처음 구치소에 어머니를 면회 가서 옷가지를 드렸던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그다지 크지 않은 대기실에는 의자가 몇 줄 놓여 있었고 중간에는 작은 TV 하나가 있었는데 TV는 작은 면회실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오셔서 내가 가져온 옷가지를 갖고 가셨고 이후 감시카메라에 대고 손짓발짓을 하기 시작하셨다.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내게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기억은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록돼 ‘설날’에서 내가 연기했던 배우 션위로 전환돼 나는 그녀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마음속 말이었다.

중국에 있을 때 난관에 부딪혀 속으로 넘기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마다 어머니는 해외 천국악단 퍼레이드 영상을 내게 보여주셨다. 기세등등한 퍼레이드를 다 보고 나면 항상 눈물이 났으며 마음속에 정념이 불타올랐고 곤란을 마주하고 제거해버릴 역량과 용기를 갖게 해줬다. 하지만 지금 나는 해외에 와 있으며 자유국가에 와서 해외에서 법을 실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내 작은 힘과 제작팀 수련생들의 감당과 노력이 국내 수련생에게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신세기의 또 다른 한 편의 영화 ‘귀로’에서 나는 처음으로 대법제자의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처음 이 배역을 맡게 되자 나는 마침내 대법제자 역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아주 흥분했다. 하지만 진짜 촬영을 시작하자 이 배역이 생각처럼 연기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연기가 어떠하든 감독은 ‘표정이 좋지 않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계속 소리쳤고 날 일깨워줬다. 나는 대법제자의 선(善)과 타인에 대한 자비를 표현해내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해도 맞지 않은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연기해야 하지? 나는 어떤 행위와 표현이 선이고 자비인지 사색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 참 어렵구나! 대법제자를 연기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대체 어디가 어렵다는 것인가?

나는 어머니가 막 박해받을 때가 생각났다. 수련생이 내게 연락해 함께 파출소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가기 전에 수련생은 나와의 교류에서 우리가 비록 석방을 요구하러 가지만 우리의 목적은 진상을 알리려는 것이며 경찰에게 진상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내려놓고 그들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말은 쉽지만 수련에 입문한 지 오래지 않은 나로 말하면 정말 거대한 도전이었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한 정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어떻게 자신의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경찰 입장에서 그들을 위해 생각하고 그들이 구원받게 해야 하다니, 이것은 나로 말하면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별생각이 다 들었는데 자신과 가족, 억울함, 고통 등을 생각했다. 사상이 전혀 조용해지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지?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이전에 밍후이왕에서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봤던 것을 생각했다. 위험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타인을 구하는 선행을 하며, 경찰을 감동시켜 진상을 알게 했다. 나는 생각했다. 좋다. 그럼 나도 안위를 돌보지 않고 타인을 구하는 대법제자 역을 잘해보겠다. 목표를 위해 나는 각본을 쓰고 대사를 쓰기 시작했다. 다양한 버전의 다양한 장면을 구상해 경찰과 대화할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그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그렇게 답하며 최후에 가서는 반드시 경찰을 움직이도록 연기해야겠다. 이튿날 나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러나 현실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됐는데 파출소에 도착해 실제로 억지나 부리고 비합리적인 경찰을 직접 대하자 나는 붕괴돼 버렸다. 불의에 대한 분노, 억울함, 무력감이 뒤엉켜 나는 몹시 초조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부단히 자신을 타일렀다. ‘냉정해야 한다. 선을 표현해야 한다. 웃어야 한다. 그들을 움직여야 한다.’ 결과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내 행위와 표현은 서로 많이 어긋났으며 진상을 알리는 효과도 좋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1] 나는 이런 무사무아(無私無我), 완전한 위타(爲他)의 자비와 선은 수련인이 길고 간고한 수련 중에서 법에 대한 깨달음이며, 사상의 승화이고 경지의 체현임을 깨달았다.

나는 대학 시절에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연기에 대해 생각해 봤다. 먼저 그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에게 접근해야 하며, 그를 접촉하고 그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대법제자가 제작한 진상 영화, 그리고 대법제자라는 인물과 배역은 정말 속인 영화나 그 속의 어떤 배역과는 같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 배후의 정보와 깊은 내포가 모두 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기자로서 내가 이 배역을 잘하려면 반드시 그 사람에 도달해야 한다. 수련 중에서 나 자신을 부단히 제고하고 좋지 않은 사상, 좋지 않은 정서, 좋지 않은 마음과 속인 환경에서 양성된 습관과 행위를 바르게 되돌려야 한다. 진정으로 자신을 순정하고 이성적으로 만들어야만 대법제자다운 내면과 품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내 사상이 진정 이해되고 아울러 도달할 수 있을 때, 아마 내가 연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인데 내가 거기에서 하는 일언일행, 일거일동이 모두 선이고 자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기의 기교나 고도의 기능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며, 또 전문적인 팀이나 전문적인 연기자만이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련이며, 이것은 사상 경지의 승화이기 때문이다.

이후에 ‘귀로’가 극장에서 상영됐을 때 많은 관객이 연기자의 표현이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자신이 연기한 배역이 하나의 운반체로서 자신을 더욱 순정하게 닦아야만 신의 힘과 법의 역량이 비로소 영화에 투영되고 배역 자체에 투영돼 관객에게 전달된다고 느꼈다. 진정으로 관객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 영화, 그리고 배역이 전하는 대법의 힘인 것이다.

신세기 영화가 한 편 한 편 출품되자 외부와 국제영화제로부터, 또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에게 호평을 받았고 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관심도 불러일으키게 됐다. 어머니는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610’으로부터 여러 차례 면담을 강요받고 압력을 받았는데 중국공산당은 해외에서 내가 진상 영화를 촬영하는 것을 포기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출옥 후에도 어머니는 계속 감시를 받았으며 퇴직금도 압류되고 지금까지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계신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이런 연좌제식 박해는 내 약혼자에게까지 파급됐다.

올해 초, 국내에서 일하는 약혼자가 나를 보러 왔다. 그는 진상을 좀 아는 것뿐이며 수련을 시작하지 않았고 국내로 돌아가 계속 일하려고 준비했다. 그가 귀국한 다음 날, 토론토에서 새벽 1시께 제작팀 수련생이 모두 귀가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국내 약혼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는데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그에게 전화해 상담 날짜를 잡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거절하자 아직도 계속 전화를 한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박해받은 이후로 나는 중국공산당의 이른바 ‘상담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나는 자신의 주변 분위기가 긴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수련생이 내게 말하기를 반드시 약혼자가 그들을 만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되도록 빨리 국경을 벗어나야 하며, 그것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계획이 결정되자 수련생과 함께 나는 당장 중국을 떠나 토론토로 올 수 있는 항공권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동시에 약혼자와 되도록 연락을 유지하며 그의 안전을 담보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짧은 시간 동안 국가안전부는 이미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아냈으며 이튿날 그가 고향으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는 것도 알아내고는 그날 꼭 만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약혼자가 대충 얼버무리자 국가안전부는 즉시 그가 이전에 근무하던 직장을 찾아갔다. 사장 사무실에 도착해 허탕 친 것을 알고 전화로 그에게 캐물었다. “당신 어디에 있어요? 우리가 찾아왔어요.” 그는 “여긴 친구 집입니다. 물어봐야 주소를 알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전화 중에 그는 국가안전부가 휴대폰을 통해 그의 행방을 찾고 있음을 의식했다. 그의 주변 친구와 동료 모두가 그에게 잇달아 전화를 걸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국가안전부가 찾는다고 했다. 그는 국가안전부가 그날 반드시 그를 데려가려고 결심했다는 생각이 들자 몹시 두려웠다. 나는 문자메시지로 그에게 당일로 국경을 벗어나야 하며 항공권을 예매했으니 더는 망설이지 말라고 했다. 그는 동의하고 즉시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짐을 꾸렸다. 내가 항공권 정보를 그에게 알려준 후 그가 보내온 마지막 정보는 ‘집을 나섰다’는 소식이었고, 그 후 더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수련생들과 나는 장시간 발정념을 했다. 그러나 2~3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내 심경은 점점 무너졌다. 나는 그가 집을 나서다 국가안전부와 마주친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들이 그에게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가 이 같은 압력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등등이었다. 내가 해외로 나온 후 그는 대법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게 됐으나 그처럼 수련하지 않는 속인에 대해서도 사악은 놓아주지 않으며 심지어 그가 마음속에 갖고 있는 정의와 선념을 말살하려 시도했다. 내가 다시 한번 중국공산당의 사악함을 똑똑히 인식하자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었다. 과거에 그들은 우리 가족을 교란했으며 어머니를 박해했고, 지금은 결혼하지도 않은 약혼자까지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나는 도움을 받지 못해 무력했으며 원망과 증오 등등 좋지 않은 물질이 내리눌러 왔는데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온몸이 긴장되고 뼈마저도 아프게 짓눌렀다. 4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전화가 왔다. 그는 이미 공항에 도착했으며 중국공산당의 추적을 피하려고 휴대폰을 꺼뒀다고 했다. 내 마음은 조금 위안이 되는 듯했으나 날 짓누르는 물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심지어 이틀 밤낮을 괴로워 거의 자지도 못했다.

나는 또 자신을 되돌아봤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지? 나는 정이 날 교란하고 있으며 구세력이 내가 닦아버리지 못한 집착심을 이용해 내 빈틈을 파고든 것임을 깨달았다.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해외로 나와서부터 신세기 영화사에서 여러 편의 영화에 참여하고 또 주연을 맡았으며, 작품마다 모두 중국공산당 사악의 본질을 강력하게 폭로했고 계속 대대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이것이 사악을 두렵게 했는데 때문에 그것이 날 통제하고 내 집착을 이용하려 하며, 내가 속인 중에서 닦아버리지 못한 정을 이용해 촬영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로 그것들이 목적을 이루게 하지 않을 것이며 사악이 내가 닦아버리지 못한 집착을 이용해 날 박해하고 내 주변의 나와 관련 있고 인연 있는 중생을 박해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 법상을 손에 받쳐 들자 마음속 짓눌렸던 기분이 마침내 풀렸다. “사부님, 제자는 꿋꿋하게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하겠으며 무슨 일이 발생하든지 확고부동하게 사부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다음 날 밤에 나는 수련생 몇 사람과 그를 마중하러 토론토 공항에 나갔다. 그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우리를 본 순간 흥분해 말했다. “나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이번에 겪은 경험으로 그는 중국공산당의 사악함을 확실하게 알게 됐으며 아울러 파룬궁 박해의 엄중함도 알게 됐다. 그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도피 과정에서 곳곳마다 모두 신의 보호가 있음을 느꼈어요. 홍콩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는 감시를 피하려고 계속 장소를 바꿔가며 돌아다녔고 신용카드도 쓰지 않았지요. 아무런 도움이 없을 때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빌었습니다. 그 순간 홍콩 공항에 내걸린 중국공산당의 붉은 깃발이 갑자기 아래로 늘어졌고 다른 쪽의 홍콩 깃발은 바람에 요동쳤습니다. 제가 이 광경을 봤을 때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어요. 정말로 신께서 제 목소리를 듣고 계신다고 느꼈지요. 저에게 응답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계셨습니다.”라고 했다. 그가 도피하는 중에 이 같은 기적이 계속 나타나 그를 격려해주며 지나올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은 때가 없으며 우리를 보호해주시지 않은 때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 중국공산당의 내 약혼자 박해 시도는 실패했으며 그들을 매우 두렵게 만들었다. 나는 중국공산당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파룬궁 진상이 세계에 갈수록 널리 전파됨에 따라 그들의 실패도 갈수록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린다. 사부님의 인도하에 나는 여기로 올 수 있었다. 해외에 나와서도 나의 특기로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할 수 있게 해 준 신세기의 모든 수련생에게 감사드린다. 예전에 나는 연기를 자신의 일이고 직업이며 기능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다 수련이며 모두 이 한 층에서 법의 펼쳐보임이라고 깨달았다.

다시 한번 사부님께 허스(合十)하며 인사 올립니다! 저에 대한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수련 중에서의 내 작은 깨달음이다. 맞지 않는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청성’

 

원문발표: 2019년 7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수련체험>진상 알려 세인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23/3903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