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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줄곧 나의 심성 제고를 도와주다

글/ 중국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년 자신의 수련 노정을 돌아보니 온몸이 업력이고, 이기적이며, 머릿속에는 악당의 문화로 가득 찼던 내가 남을 위해 생각할 수 있고 ‘진선인(眞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는 대법 수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부님의 자비하신 점오와 보호 덕분이었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험한 파도의 소용돌이 속에서 물결 따라 속인으로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환골탈태의 변화 속에는 사부님의 노력과 정성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겠는가! 20년을 지나오면서 써야 할 것은 아주 많지만, 오늘은 대법이 아들과의 악연을 선해 해 주고, 아들과의 마찰 속에서 어떻게 내가 심성관을 넘기고 제고하게 해 줬는지만 써냈다. 만약 법에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나는 1998년 7월 대법수련을 시작했다. 수련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았으나 결장염, 위궤양, 메니에르 증후군(귀 어지럼증), 류머티즘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치료하지 않았어도 나았다. 내심으로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위대함을 감수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수(修)ㆍ련(煉)’ 두 글자에서 사람들이 그 연(煉)만을 중시하고 그 수(修)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1]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 법을 배우는 것을 나는 그다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모순에 부딪혀도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못하고 완전히 속인의 이치로 따졌기에 아들과의 긴장 관계를 불러왔고 게다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성격이 반항적이었는데 마치 태생적으로 나와 맞서려고 온 것 같았다. 내가 ‘동(東)’이라 말하면 그는 ‘서(西)’라 하고 내가 좋은 말을 해도 그는 나쁜 말로 들었다. 나와 조금만 오래 같이 있으면 그는 쉬지 않고 울고불고했으며 항상 내 심신을 편치 않게 휘저어 놓았는데 피곤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를 괴롭혔다. 방법이 없자 나는 그를 시골 할머니 댁이나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 며칠 머무르게 한 다음 다시 데려왔다. 그런 다음 다시 보내고 다시 데려오고를 반복했다. 학교에 가기 전 여러 해를 이렇게 지나왔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하루는 퇴근해 데리러 갔는데 나를 보자마자 즉시 땅에 뒹굴며 소리 내어 울어댔다. 아주머니들도 이상하게 생각하며 “방금까지 잘 놀던 애가 당신을 보자 왜 저렇지요?”라고들 했다. 한 이웃 노인이 말하기를 “당신 둘은 악연이군요. 당신은 아마 전생에 그에게 빚을 졌을 겁니다.”라고 했다. 무신론자인 나는 이런 것을 전혀 믿지 않았으며 듣고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교사이다. 내가 가르친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했으며 어떤 이는 중점대학에 가고 심지어 명문대학에 진학했다. 나는 자신의 노력으로 내 아들도 내가 설계해준 대로 반드시 잘 나갈 것이며 이상적인 인재가 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들은 지나치게 놀기 좋아하고, 움직이길 좋아하며, 철이 없었다. 수업, 숙제 등 각종 활동도 정상적으로 끝마치지 않았으며 선생님의 눈에는 언제나 ‘문제 학생’이었는데 당연히 나는 문제 학생의 학부모가 돼 자주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하곤 했다.

애초에 나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 때문에 아들이 인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게다가 주변 동료의 자녀들은 하나 같이 우수했는데 내심으로 비교하는 마음, 질투심, 자존심, 허영심, 체면, 강한 승부욕 등등의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 자신은 어려서부터 자라서까지 공부, 일 등등이 남 뒤에 쳐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아들의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 인내심을 길러주고, 가르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비아냥대고 훈계했다. 아들은 나를 향한 미움과 대립하는 정서가 갈수록 심해졌다. 아들의 마음속에는 내가 그를 위해 한 가지 좋은 일도 해 주지 않은 것 같았으며 전부가 잘못으로 보였다. 어른이 되고 장가들어 아이가 생기면 나는 아들이 좀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 ‘부모가 돼봐야 부모의 은혜를 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바라는 바와는 달리 아들은 나에게 더 크게 성질을 부리며 조금만 거슬리면 큰소리를 쳤으며 심지어 아이들을 훈계하듯 나를 가르쳤다. 그 자신의 결점과 부족,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것 전부를 다 나의 교육 탓으로 돌렸다. 항상 말하기를 “어머니의 나에 대한 교육은 빵점이에요. 자신을 교사라고 보지 마세요. 어머니는 어떻게 가르치고 교육하는지도 몰라요. 내가 아이(손녀를 말함)를 얼마나 잘 대하는지 보세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대한 적이 있으세요?”라고 했다.

억울하고 분했다. 아들이 결혼하고 성도에서 일할 때부터 나는 집도 직업도 버리고 아버지도 집에 혼자 놔두고 아들에게 가서 아이를 돌보고, 밥을 짓고, 요리하고 집안일을 해 줬다. “어찌 됐든 나는 너의 어머니고 똥오줌 싸는 너를 이렇게까지 애써 키웠다. 공로도 노고도 없단 말이냐! 은혜를 갚을 필요는 없다 치더라도 노소도 존비도 서열도 너는 모르냐!” 화가 나 그와 다퉜다. 그러나 다툴수록 그는 더욱 거칠어지며 탁자를 들었다 놨다 하고 접시를 던지고 그릇을 내던졌다. 나는 불공평하다고 하늘을 원망하며 재수 없고 불행하여 이따위 자식을 낳았다고 한스러워하며 깊은 고통에 빠져들었다.

당시 나는 법을 얻은 지 몇 년이나 됐었다. 일체 모든 것은 자신이 법을 잘 배우지 않아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며 착실한 수련을 중시하지 않아서 조성된 것이었다. 법을 배웠어도 법을 얻지는 못하고 연공해도 공이 자라지 못했기에 2012년 ‘9평 공산당’이 발표돼 세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나는 납치돼 구치소에 70일간 갇히게 됐다. 나의 일을 수련생에게 말하자 수련생은 사심 없이 나를 도와주며 나와 함께 법 공부하고 법에서 교류하며 이런 일들이 자신의 수련 상의 일임을 알게 해 줬다. 나는 본질에서부터 자신을 개변하고 관념을 바꾸기로 했다.

법을 착실하게 배우자 나는 아들과의 관계에서 두 가지 문제를 발견했는데 사상에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을 분명히 해야 했다. 첫째, 우리 두 사람은 직접 원한의 인연이 있을 수 있으며 전생에 내가 빚진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수련생이 나를 일깨워줬다. “당신은 아들을 당신의 아들이라고만 보지 마세요. 그를 당신의 채주로 여기세요. 사실 그는 정말로 당신의 채주입니다. 당신은 기쁜 맘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데 당신이 애초에 남에게 빚을 질 때도 남을 이렇게 대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부님의 가르침과 수련생의 일깨움은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마음의 응어리를 풀게 해 줬다.

둘째, 나 자신에게 존재하는 당문화의 사유와 관념, 말하고 일하는 방식, 독단적인 태도와 권위를 부리는 전횡, 자아에 대한 집착, 남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악습은 그에게 매우 큰 상처가 됐다.

나는 이전 세기 50년대 말에 출생했다. 3년의 대기근이 있었고 ‘4청(정치, 조직, 경제, 사상정돈의 사회주의 교양 운동)’ ‘문화대혁명’과 ‘1989년 6·4 애국학생도살’ 등의 정치 운동 중에서 자랐다. 특히 중학교, 소학교 시절은 완전히 문화대혁명의 동란 중에서 보냈으며 주입받은 것은 모두 악당 문화와 투쟁철학이었다. 졸업 후에는 농촌에서 소위 말하는 ‘가난한 농민의 재교육’을 받았으며 주입한 것은 모두 이른바 계급투쟁 그런 것이었다. 당시 우리 향진은 전국 악당이 수립한 ‘정치 우선’의 전형이었는데 문화 수준이 높은 젊은이가 적었기 때문에 나도 마르크스·레닌과 모택동의 ‘선구자’ ‘적극 분자’를 배우는 데 지정됐다. 때문에 악당 문화가 나에게 끼친 영향이 깊었고 독해가 심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것은 나의 수련에 얼마나 심한 장애를 조성했는지 모른다.

나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법을 배우는 이외의 시간에 항상 ‘9평 공산당’ ‘해체 당문화’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등과 전통문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적잖은 도움이 됐다. 아들에 대한 원망도 점점 엷어졌으며 그의 이야기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 번은 며느리가 한중(漢中)의 대학 동창이 우리 지역에 출장 오자 동창과 그녀 가족을 우리의 다른 가옥에 묵게 하고, 데리고 다니며 관광한 다음 동창은 돌아갔다. 무의식중에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옥결(玉潔-며느리)의 동창은 아주 만족했겠지?” 그는 “물론입니다.”하고 말했다. 이어서 내가 물었다. “한중(漢中)은 산시성에 있지?” 그는 산시의 현급 도시라고 했다. 내가 말하기를 “옥결(玉潔)은 동창들에게 체면이 서겠다. 성도에서 살고, 성급의 직장에 다니고, 동창들도 부러워하겠지?”하고 막 말을 마치자 아들이 갑자기 소리쳤다. “어머니, 어머니가 수련한 것이 이런 것뿐입니까? 어머니 사부님이 이렇게 가르쳐요? 머릿속엔 온통 명리요, 지위요, 계급관념이군요. 어머니는 완전히 속인이에요. 속인, 속인! 묻겠는데요 이것이 진선인의 것입니까?”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곧바로 말했다. “이는 진선인의 것이 아니야! 진선인 속에는 이런 것들이 없고 내가 닦아 제거해야 할 것이란다.” 그는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마치고 나자 화가 치밀어 아들에게 말했다. “말 한마디 한 것 아니냐? 뭔 죄를 지은 것이냐? 네가 그렇게까지 야단법석일 것까지는 없지 않으냐?” 그가 말했다. “어머니는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군요. 요만한 작은 일에도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면서 밖에서는 얼마나 많은 위선적인 표현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반복해서 그가 한 말을 되뇌어봤다. 그의 말이 신랄하고 듣기 거북했지만, 일리가 있었으며 그가 한 말 같지가 않았다. 맞다. 나는 명리심이 아주 강하지. 허영, 위선, 거짓, 명을 구하는 마음이 확실히 아주 강하다. 그는 정말 급소를 찔렀다. 나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해주심을 의식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는 이 길에는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기 때문인데, 아마 서로 이야기하는 중에 당신을 건드리고 당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모순을 발생시키는 이런 요소는 바로 사부가 마련해준 것일 것이다. 아마 그가 말한 그 한 마디가 당신에게는 매우 자극적이고, 당신의 아픈 곳을 건드렸기에, 당신은 자극을 받았다고 느낀다. 아마 당신은 정말로 억울하겠지만, 그러나 그 한 마디 말은 꼭 그가 말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아마 내가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뭇사람 웃음) 그때 나는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려고 하는데, 그때 당신이 그를 들이받는다면 사실 당신은 나를 들이받고 있는 것과 같다.”[2]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나는 단번에 정신 차리고 자신의 오성이 매우 부족함을 느꼈다. 요 몇 년 사부님께서 줄곧 아들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해주시고 제고하게 해 주셨지만 나는 깨닫지 못하고 사람의 이치를 죽어라 붙들며 사람 마음을 한 무더기나 끌어왔기에 발걸음을 내딛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자책, 회한, 감격의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마음속으로 나는 나와 같은 무기력한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에 감사드렸다. 동시에 나에게 제고의 계기를 만들어준 아들에게도 감사했다. 이때부터 나는 명리심, 계급관념, 남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등의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려고 더욱 주의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련인으로서 당신이 당신의 업력을 없애버리지 않고 고생을 좀 겪지 않으며 편안하고도 편안하려고만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신이 여기에 앉아 ‘나는 오늘 삼계를 벗어나고 내일은 수련하여 성불(成佛)하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생각한다고 곧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실제 수련 중에서, 현실사회 속에서 엎어지고 부딪히면서 속인 중에서 집착하는 당신의 그 마음을 제거해야 하고 사람이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3]

깨닫는 것이 꼭 빨리 되는 것은 아니다. 아들과의 심성관을 넘을 때 나는 반복적으로 넘어졌는데 넘기기가 아주 어려웠다.

2016년 겨울 어느 날, 나는 씽크대 하수구가 막힌 것을 발견했다. 아들이 막힌 것을 확인하고는 내게 “어머니가 그랬지요. 아니면 누가 그랬겠어요? 어머니는 일을 대충대충 하시는데 그때그때 깔때기의 오물을 버리지 않아서 생긴 일이잖아요.”라고 했다. 그의 말은 억지였다. 며칠 전부터 하수구의 배수가 잘되지 않았었다. 나는 그와 다투지 않았다. 아들은 힘들여 수도관을 떼어내고 원인을 찾았으나 수리하지 못했고 더 화를 내며 내게 소리쳤다. “어머니는 이제껏 남의 일을 존중하는 법이 없지요.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놓고 설마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지요? 어머니가 하지 않았다고요?” 나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에게 소리치지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심성을 찾아보니 결코 그렇게 순수하지는 못했는데 그와 조금은 얽혀 있었기에 그를 번거롭게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튿날, 아들이 나를 보더니 첫 마디가 “어머니, 이 일을 어머니가 하신 것이 아니라고요?”라는 말이었다. 나는 오늘은 잘해서 사부님께 걱정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말했다. “그래, 내가 했다.” 그는 갔다. 소파에 앉자 눈물이 났지만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참았다. 자신이 잘하지 못한 것이 미웠고 사부님께 송구했다. 나는 발정념으로 말 못 하게 하고 참을 수 없어 하는 마음을 철저히 해체했다.

셋째 날, 아들은 어제 나의 심성에 의문이 있었던지 또 내게 물었다. “어머니, 정말이세요. 이 일을 어머니가 하신 것 맞죠?” 나는 “내가 했다.”하고 말했다. 나는 마음이 조용해졌음을 느꼈고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나는 주택단지 내 수도·난방 사업자를 불러 검사했는데 기술자는 수도관에는 무슨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럼 왜 막힌 거냐고 내가 물었다. 그는 수도관 벽에 기름이 많이 끼었기 때문이며 세정제를 붓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수도관 공구로 관을 후벼주면 된다고 했다. 나는 즉시 알았다. 아들이 요새 자주 매운탕류의 것을 먹고 남은 국물을 씽크대에 버려서 조성된 일이었다.

우리 둘이 한창 일하고 있는데 아들이 밖에서 돌아와 수도·난방 기술자가 온 것을 보고 하수구 안에 뭣이 막혀 있냐고 물었다. 기술자는 이 속이 온통 기름입니다. 아들은 멍해졌다. 하지만 곧장 반응을 보였는데 그 자신이 저지른 일임을 알았다. 나에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억울하게 했군요. 죄송합니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마음을 내려놓자 그도 변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언짢은 일에 부딪히고,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에 부딪히며, 개인 이익과 자아가 자극받았을 때, 당신이 안에서 찾아보고, 자신을 수련하며, 자신의 누락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갈등 속에서 당신이 정말 무고(無辜)하다 해도 ‘오, 알겠다. 내가 틀림없이 무언가 잘못했구나. 설사 정말로 잘못이 없다 해도, 아마 이전에 빚진 업을 갚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잘해서 갚아야 할 것을 갚겠다.’고 하면 된다. 끊임없이 이러한 문제에 부딪히고, 끊임없이 이러한 일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수련한다. 만약 수련인이 문제를 이렇게 보고, 바른 이치(正理)로 자신을 수련한다면, 당신들이 속인 중에서 부딪힌 언짢은 일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수련하고자 하고, 당신이 삼계를 벗어나고자 하며, 당신이 당신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려 하고, 당신이 당신 그 지역(一方) 세계의 중생을 구도하려 하며, 당신이 정말로 조사정법 하려 하면, 이것은 당신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고, 당신에게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에게 그런 좋지 못한 일에 부딪히게 하는 것은 바로 당신에게 길을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기뻐하지 않는가?”[4]

정말로 이러했는데 아들이 이런 방법으로 나에게 수련의 길을 깔아준 것이 아닌가? 이건 좋은 일 아닌가? 수련인은 반드시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

2016년 11월 방학 기간에 나는 고향 집에 가 일주일 머무르며 속인들이 처세하는 각종 표현을 직접 보고 들었는데 정말로 “환각(幻)에 미혹됨”[5]이었다. 특히 몇몇 시누이가 서로 아옹다옹하며 서로 속이면서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며 서로를 해치고 배후에서 서로 공격하는데 갈등이 매우 많았다. 돌아와서 나는 이 일을 아들 며느리와 말했다. “이후로는 나는 가는 횟수를 줄여야겠다. 이 사람들이 너무 한가해서 날마다 마작을 하며 따면 좋아하고 잃으면 불평하는데 나는 또 그녀들을 대신해 일하고 밥을 해 주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녀들이 업을 빚게 하는 짓이다.”

당시 나는 한참 요리를 하고 있었다. 아들이 나의 이 말을 듣고 재미있는 듯이 내 뒤에 와서 말했다. “어머니, 고모님들은 어때요?” 요리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별로인 것 같아. 잘 지내시는 것 같지는 않더라.” 나는 그녀들이 어떻게 다투고 어떻게 서로 험담하는지를 말했다. 그가 말했다. “그 다음에는요?” 나는 이어서 “하나하나가 지극히 이기적이야.”하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러고 나서는요?”하고 물었다. 나는 그녀들이 어떻게 속물인지 등등을 말했다.

내 목소리는 환풍기 소리가 나듯 아주 크다. 나는 내 뒤에서 아들이 계속 나를 따라 하는 것을 눈치챘다. 내가 물을 받으면 그도 물을 받고 파를 썰면 그도 파를 썰며 한 발짝 움직이면 그도 움직이며 웃는 얼굴로 왼쪽으로 한 발짝 가서는 “그런 다음은요?” 오른쪽으로 한 발짝 가서는 “그런 다음은요?”하고 물었다. 나는 갑자기 그가 무슨 짓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속으로 이번에 잘못하면 그의 꾐에 빠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뒤돌아보자 그는 재빨리 등 뒤로 손을 숨기고 물러서서 밥상에 가서 앉았다. 내가 음식을 놓자 휴대전화를 상에 놓고 방송을 시작했다. 원래 그는 내가 방금 했던 모든 표현을 녹음했던 것이다. 말하는 표정, 말투, 목소리 톤까지 전부 녹음했다.

나는 보다가 자신도 놀랐다. 내가 뜻밖에도 원래 이런 얼굴이라니 너무 무서워 형용할 수도 없었다.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소리 지르는 것이었고 입안 가득 당문화였다. 녹음 녹화가 아니라면 나는 정말 자신은 이런 모습이 아니라며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말문이 막혔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표현이 속인 고모들보다 어떻게 더 나을 수 있겠어요?”

그랬다. 어디 더 나은 곳은 없었고 그야말로 속인이었다. 아들의 말이 맞았다. 나는 아들이 못 됐다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속인의 이치는 반대이다. 수련인은 이 반대되는 이치 중에서 법리를 바르게 깨닫고 정념정행 해야 한다. 수련인의 눈으로 아들을 보자면 아들은 내게 매우 잘하는 것이며 큰 책임을 지고 큰 작용을 해 주는 것이다.

하루는 침대에 앉아서 요 몇 년 동안 아들이 내 속을 썩인 일을 생각했는데 모두 나를 도와 심성을 제고시켜 준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자 눈물이 샘처럼 솟았다……. 나는 아들을 미워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내심으로 그가 나에게 수련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 위대하신 사부님과 대법이 나와 아들의 30여 년의 악연을 선해하여 주심에 더욱 감사드린다.

허스, 사존께 인사 올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맨해튼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휴스턴 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

 

원문발표: 2019년 7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31/3845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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