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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심을 말하다

글/ 미서명

[밍후이왕] 나는 수련 과정 중에 깨달았다. 의존심에는 몇 가지 뿌리가 있었다. 나태함에 대한 의존, 각종 정을 즐기는 감각에 대한 의존, 곤경 속에서 구원의 손길에 대한 의존, 또 수련인을 놓고 말하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의존이다.

사람은 의존하는 목표가 사라지면 일종 불안감이 생기는데, 이는 마침 정이 인체에 조성하는 일종의 상태다. 속인은 바로 각종 각양의 감각 속에서 살고 있는데, 다시 말해 정이 사람에게 조성하는 각종 각양의 감각은 마침 수련인이 똑바로 인식하고 내려놔야 할 것들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1]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또 알려주셨다. “대법제자는 이성적으로 정을 대해야 하지만,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당신들은 다만 그것을 이성적으로 대할 뿐이다. 오직 당신의 수련을 잘한 그 면만이 비로소 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2]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모두 정에서 출발하고 선택한다. 수련을 시작하는 것을 포함해 많은 사람은 정에서 출발해 선택한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이 많은 시기에 수련에서 정이 표현해낸 각종 형태를 천천히 인식했고 각종 집착을 닦아서 제거하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됐지만, 많은 사람은 아직 해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자신이 이 과정 중에서 대법에 대한 사부님에 대한 의존심을, 모순이 나타났을 때 대법으로 대조해 사부님께서 정념정행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생각해내는 것으로 여겼다. 표현에서는 마치 정념인 것 같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의존심이었으며 또한 정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었다. 표현된 상태는 생각해냈더라도 일단 모순이 여전히 존재하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단호해질 수 없었으며, 머릿속에서는 각종 좋지 못한 사상이 튀어나오기 시작하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대법을 의심하고 사부님을 의심하는 사상이었다. 이것이 집착임을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기에 이런 염두가 모두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으며 발정념을 해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래는 의존심이 만족을 얻지 못해 표현된 불안이었고, 사실 그 의존심이 불안한 것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여긴 것으로, 무의식중에 그것을 인정했고 보호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수련하면서 나는 갈수록 의식하게 됐는데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 역시 정을 내려놓는 과정이다. 각종 집착심을 내려놓음에 따라 정은 갈수록 옅어지고 이 과정이 바로 사람에서 신으로 걸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현재 난세 속에서 구세력은 사악한 정마(情魔)를 이용해 사람을 파멸시켰고 동시에 또 구우주의 타락한 상생상극의 이치로 이른바 대법제자를 시험하고 있다. 수련인으로서 정의 각종 표현을 절대 주의해야 하는데 어떤 때는 아주 미시적이어서 안으로 찾지 않으면 그것들의 존재를 발견하기 몹시 어렵다.

개인의 깨달음이고 만약 법에 입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원문발표: 2019년 7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23/3903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