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션윈 홍보가 나의 수련을 도와주다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세요.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01년에 법을 얻었습니다. 저는 션윈 동영상을 본 후 공연장에 가서 션윈을 보려고 생각했고 션윈을 홍보하는 이 항목에 참가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션윈은 우리나라에서 공연하지 않아 저는 션윈을 홍보할 기회가 없었고, 언젠가 내가 참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5년 전 우리는 밴쿠버로 이사 갔습니다. 저는 즉시 남편(수련자)과 함께 션윈 홍보에 참여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다른 민족의 사람에게 션윈을 소개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생각을 협조인에게 말한 후, 그는 저에게 이란 커뮤니티가 매우 크며 할 수 있는 수련생이 없으니 이란 커뮤니티에서 션윈을 홍보하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만약 영어를 할 줄 아는 수련생과 션윈을 홍보하면 저는 자신의 영어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집착하는 마음을 찾은 후 저는 이란 커뮤니티에 션윈을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익을 위하는 자 육친마저 몰라보고”[1]

저는 처음에 션윈 전단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한 다음 이란 커뮤니티에 일부 배포했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은 자신의 언어로 션윈 자료를 읽으면 션윈을 더욱 익숙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한 것이 효과를 거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이 공연이 단지 중국인들에게 보여 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일부 사람은 그들 중국인의 언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션윈의 사명과 대법제자가 중국에서 박해받은 정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동정과 이해를 표시했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이란인이 션윈 전단을 받고 진상을 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션윈을 보았습니다.

3년 전 저와 남편은 토론토로 이사 왔습니다. 우리는 계속 션윈을 홍보했습니다. 여기에는 더욱 많은 이란인이 있습니다. 토론토에 온 첫해 날씨가 추워 저는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인터넷 소셜 미디어에 션윈을 홍보하고 싶었습니다. 안으로 찾아보자 저는 추운 것을 두려워하는 집착을 찾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줄곧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어 했고 이러한 관념은 저의 인생에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왔습니다. 많은 노년 수련생이 추운 날에 밖에서 션윈을 배포하는 것을 보고 저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이 마음을 버릴 때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생사의 고비이다.”[2]

“마음이 괴로움을 겪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게 층차를 제고하는 관건이다.”[3]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이란 곧 어려운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든지,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든지, 생사에 관계되든지를 막론하고, 당신이 여전히 수련의 이 한 갈래 길을 확고하게 걸어가면서 인류사회 중의 어떠한 일도 수련의 길에서 행보를 교란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4]

그 후부터 저는 추운 것을 느끼지 않았고 제가 두려워하는 일에 직면하면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했고 동시에 마음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좋은 생활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며 수련과 저의 서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션윈을 홍보하는 것 외에 저는 남편과 함께 토론토에서 션윈 포스터를 붙이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시간이 있으면 붙였습니다. 후에 협조인은 우리가 잘하지 못했으며 시간을 지연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나태함과 안일한 마음을 찾았고 사람을 구하는 긴박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이 한 일이 칭찬받고 지적받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저를 도와 이런 사람 마음을 닦게 해주었고 더욱 정진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과 행위를 고치고 동시에 수련에서 더욱 정진하면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이 집착심을 제거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대량으로 발정념을 해 바르지 않은 생각을 제거했고 동시에 법공부를 강화했습니다. 포스터를 붙이는 과정에서 저는 줄곧 발정념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기(功在師父) 때문에”[3]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5]

저는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제거하고 고생을 낙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후 저는 더는 추위가 주는 느낌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토론토 상점에서 포스터를 붙일 때 저는 포스터를 창문에 붙이는 것은 설득하기 어렵고 그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문장을 보내고 표 파는 곳에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또 상점에 포스터를 붙이는 것은 유행에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했기에 포스터를 붙이는 것이 쑥스러웠습니다. 저는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매우 높게 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때문에 션윈을 홍보하거나 기타 대법 프로젝트를 홍보할 때 비교적 주류의 고급스러운 방식을 더 추구합니다. 저는 더욱 깊이 안으로 찾았습니다. 저는 이 집착의 근원이 아주 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에게는 박사 학위도 있고 여러 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해 온 여러 해 동안 저는 자신의 성취를 자랑스러워하였고 동시에 자신을 남보다 높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자신을 실증하였고 법을 실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집착심과 이기적인 심리를 제거할 좋은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상점의 종업원이 예의 없이 거절하였을 때 저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의 선택을 받아주었으며 동시에 그들이 구원받을 기회를 잃은 데 대해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어느 곳을 잘하지 못했는지 생각하였고 상대방의 태도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관념으로 사람을 보면 사람을 구하는 것을 저애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한 방면으로 저는 사람들은 모두 법을 위해 왔으며 만약 일하는 마음이 더욱 바르면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정법이 필요로 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마땅히 잘해야 하는바, 이는 당연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또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 당신들은 모두 하나의 입자일 뿐, 나의 눈에는 누가 누구에 비해 나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모두 내가 동시에 건진 것이기 때문이다.”[6]

“도가에서는 무(無)를 주장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가지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 연공인(煉功人)은 유심연공(有心煉功), 무심득공(無心得功)을 주장한다. 일종의 무위(無爲) 상태의 수련으로서,”[3]

저는 자신에게 나는 대법제자며 내가 속인 중에서 얻은 것은 단지 사람 중에서 생활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속인 중의 모든 직위는 부동한 계층에서 수련하기 위한 것이며 제가 이 계층에서 구해야 할 사람이기도 하며, 결코 저에게 명리를 추구하도록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발정념을 해 이 좋지 않은 관념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느낌이 달라졌으며 동시에 모든 사람을 더 평등하게 대할 수 있었고 구할 기회가 있는 사람마다 얼마나 소중한지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의 생각과 달리 많은 상점의 사장은 우리가 션윈 포스터를 붙이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교대로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포스터를 다 붙인 후 우리는 잘 안 된 부분을 소통하고 다음 상점에 포스트를 잘 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남편이 저에게 제기한 의견을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는 저의 생각이 남편보다 낫다고 믿었으며 이 제고할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인내력이 매우 낮으며 종종 남편이 의견을 다 말하기 전에 변명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대다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心性(씬씽) 마찰 중에서 업력을 전화하는데, 흔히 이 중에서 체현된다.”[3]

저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은 모두 업력을 전화(轉化)하기 위한 것이며 집착심을 찾으면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력 향상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7]

저는 남편을 선하게 대하지 않으며 그의 능력과 바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저는 제가 그의 의견을 들으면 이후 그에게 복종해야 하며 다른 일도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때 저는 자아를 보류하고 이 집착심을 제거하고 수련에서 제고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전에 줄곧 잘못된 생각으로 다른 사람이 저의 결정을 주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인식했습니다. 그 후 저는 이 생각을 고치고 매 하나의 모순은 한차례 수련을 제고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한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착함을 잊지 않고 원망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일할 때의 마음가짐은 반드시 바르고 머릿속은 사람을 구하는 데 집중해야 하며 일을 마친 후 법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곳을 대조해야 합니다. 그 후부터 갈수록 많은 상인이 우리가 션윈 포스터를 붙이는 데 동의했습니다. 저는 포스터를 붙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션윈이 무엇인지를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몇몇 사람들은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하지만 션윈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포스터를 붙일 때 저는 중국인 상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들에게 거절당할까 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고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저는 항상 반에서 일등을 하고 싶어했고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 이 집착심에 저는 줄곧 실패와 어려운 처지에 직면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제가 정념으로 마주하고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한 후 저는 더 잘 해냈고 상대방이 포스터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포스터를 붙이는 것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션윈에 대한 상인들의 시선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저는 양만 중시하고 질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되며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더욱 많은 사람에게 션윈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하루에 얼마나 많은 포스터를 붙일 수 있는지의 수보다 션윈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줄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효과가 더 좋았습니다.

처음에 일부 상점의 점원은 자신은 사장이 아니어서 포스터를 붙일 수 있는 권한이 없기에 포스터를 남기면 물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대로 했습니다. 후에 저는 션윈 포스터가 소중하기에 붙일 수 있는지 확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사장께 지금 전화로 동의하는지 물어봐달라고 했습니다. 또는 우리가 직접 사장과 통화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해서 우리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한 일본 상점 사장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포스터를 창문 가운데에 있는 제일 좋은 자리에 붙여주세요!” 저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많은 덕을 쌓은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많은 상점에서 우리를 거절하였지만, 그들은 전단을 받았습니다. 또 포스터와 전단을 거절한 일부는 대다수 중국인입니다. 한 중국인은 말했습니다. “이 공연을 홍보하는 것입니까?” 저는 그에게 “이 공연은 소중한 사명을 지닌 진정한 공연입니다.”라고 말하고 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산당에게 세뇌를 심하게 당했습니다. 저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가 구원받지 못한 것이 유감이었지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인을 포함해 또 다른 사람도 구도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점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점원이 물건을 파는 것을 확인합니다. 만약 그들이 바쁘면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장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한가할 때, 우리는 미소를 띠고 매우 우호적으로 션윈을 소개합니다. 한번은 소개를 채 하기 전에 점원이 공연을 보고 싶다며 빨리 포스터를 붙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그들이 붙이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저는 션윈의 신기한 점을 보았습니다. 한번은 우리는 가맹점에 붙이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음 날 우리가 붙이러 갔을 때 저는 남편에게 그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한번 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기뻐하며 즉시 우리에게 포스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정념과 션윈의 강력한 힘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 사실 바로 이러한데 여러분이 돌아가서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3]

현 단계의 교류로 한계가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이 부족한 곳을 지적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사람 되기’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생사의 고비(死關)에서 벗어저라‘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길(路)’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警言)’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2019년 캐나다 법회 교류원고)

 

원문발표: 2019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27/390572.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