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윈시(雲曦)
[밍후이왕]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지 20년이 되었다. 수련의 길에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요구를 깊이 새기며나의 언행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였다.
박해 중 시부모님이 내 편에 서다
나는 파룬궁을 6개월 수련한 후에 결혼 준비에 들어갔다. 나와 남편은 먼저 결혼 증서를 받았으나, 그 당시는 학기 말이라 학교에 일이 많았기에 결혼 휴가를 내지 않고 결혼 날짜를 여름방학으로 잡았다. 내가 결혼이라는 일생의 대사를 치르면서 학교 일에 지장을 주지 않았기에 학교에서는 나에게 700위안(한화 약 12만 원)을 주었다.
나의 친정은 도시에 있고 먹고살 만하며 부모님은 모두 지식인이다. 남편의 고향은 농촌이고 시부모님은 모두 성실하게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남편은 맏아들이라 그 지역의 풍속에 따라 결혼한다면 크게 해야 하므로 돈을 많이 써야 했다. 남편의 집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시부모님은 아들이 결혼하게 되어 기쁘면서도 결혼식 비용 때문에 걱정했다. 만약 결혼 피로연을 하려면 돈을 빌려야 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연공인(煉功人)에게는 모순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결혼 후에는 결국 둘이서 생활할 텐데, 억지로 다른 사람과 비기면서 허세를 부릴 필요 없이 돈이 없으면 결혼식을 간단하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위해 남자 집에서 빚을 진다면 시부모님이 그 빚을 언제 갚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부모님과 상의하여 결혼 피로연을 하지 않고 양가 친척이 함께 식사하면서 인사하기로 최종 결정지었다. 결혼에 필요한 2만여 위안(한화 약 342만 원)은 부모님과 나 그리고 남편이 공동으로 분담하기로 하고 시부모님에게는 돈을 내지 않도록 했다. 남자 친척들의 부조금은 시부모님이 받기로 했다. 결혼 후에 우리가 살 집이 없어 셋집을 얻기로 했다.
나는 이상의 결과를 시부모님에게 전달해드리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 일로 시부모님은 크게 감동하면서 좋은 며느리를 맞이했다고 기뻐했다.
나는 결혼 후에 시부모님에게 효도했다. 그래서 시부모님은 장 씨 집단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하던 몇 년간에도 묵묵히 내 편이었다.
지하실에서 대리 수업하다
2002년 상반기에 우리 학교의 한 선생님이 퇴직했다. 학교는 대리 교사를 찾지 못해 내게 수업 몇 교시를 더 주었다. 그 당시 내 업무량은 이미 포화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나는 또한 임신한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수련인이라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고 타인을 고려해야 하므로, 학교가 곤란에 처해 있으니 학교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 당시 교실이 부족하여 수업을 학교 지하실(방공시설)에 배치했다. 수업하려면 지하실의 환기 설비를 매일 일찍 가동해서 환기해야 하나, 환기 설비와 전기를 동시에 켜면 전력 소모량이 많아 학교의 전력 공급에 지장을 주고 안전 스위치가 쉽게 내려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지하실로 내려가서 수업할 때에야 환기 설비와 전기를 켜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꺼버렸기에 지하실의 공기는 매우 나빴다. 지하실 출구의 비상등도 전기를 켰을 때만 충전되기에 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지하실에서 수업할 때 두 번이나 갑자기 정전되어 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워져 손을 내밀어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무서워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나는 학생들을 계속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다행히 정전 시간이 길지 않았다.
젊은 선생님들은 내가 지하실에서 수업한다는 말을 듣고 놀라며 의아해했다. 그들은 전에 지하실에서 탁구를 하고 올라온 후에 몸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나쁜 환경에서 가르치지 못했을 것이다. 임신한 내가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몸이 견딜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내 몸은 정상이었고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하루도 휴가를 낸 적이 없었다.
파룬궁은 정법 수련으로, 사부님께서는 수련자들에게 끊임없이 도덕성을 높이고 수양에 힘쓰며,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더 좋은 사람이 되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셨으니 나도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나는 생활하고 일하는 중에서 모든 사람을 성심성의껏 대했고, 속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힘껏 도왔다. 그랬기에 학교에서 동료들과 잘 어울렸고 화목하게 지냈다.
수업 시간표를 짜면서 심성을 제고하다
2003년 초에 나는 정식으로 수업 시간표 짜는 일을 시작했다. 그 전에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는 장소가 좁고 반이 많으며, 많은 세세한 것들도 고려해야 하고 시간표를 짤 기간도 짧아서 수업 일정을 받고 시간표가 나오기까지 5, 6일 정도밖에 안 되며, 어떤 때는 이보다 더 짧아서 시간표를 짜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전에 한 선생님이 수업 일정을 받아 시간표를 반밖에 짜지 못하자 학교 측은 부득이 급히 사람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일을 맡고서야 그 번거로움과 어려움을 몸소 겪게 되었다.
맨 처음 시간표를 짤 때는 얽히고설킨 것이 너무 많아 정말 어려웠다. 비록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지만, 모든 선생님의 수업 시간을 컴퓨터에 입력한 후 매일 어떤 과목을 수업할 것인지는 완전히 수작업으로 조정해야 했다. 나는 며칠 동안 집안일을 할 수 없어 모두 어머니가 맡았다. 나는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식사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계속 시간표를 짰다. 장시간 컴퓨터를 보자 눈이 건조해지고 몸이 피로해졌다. 매일 이렇게 자정까지 바삐 보내고서야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내가 늦게 혼자 귀가하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은 교무처 주임이 집까지 바래다주려 하는 것을 사양했다. 처음 두 번은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교무처 주임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나는 그 선생님에게 누를 많이 끼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표를 짜는 프로그램이 하나뿐이라 한 대의 컴퓨터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나는 학교에 이야기해서 사무실 컴퓨터를 아예 집으로 옮겨와서 시간표를 짰다. 그 후에는 정보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교의 컴퓨터를 집으로 옮겨오지 않아도 집에서 시간표를 짤 수 있게 되었다.처음 학교에서 시간표를 짜기 시작해서 현재 집에서 짜 온 세월이 16년이 흘렀다.
시간표를 짜는 일은 임무가 중요하고, 정해진 긴박한 기간에 잘 짜야 하므로 잠자는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표를 짜기 위해 며칠 동안 잠을 아주 적게 자야 했으며, 심지어 마지막 이틀은 잠을 자지 않고서야 짤 수 있었다. 무엇이 나를 견뎌 내게 했을까? 나는 수련인이기에 마음속에 ‘진선인(眞善忍)’을 담고 있어 몸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는 강한 의지가 있으므로 견뎌 낼 수 있었다.
학교의 수업 장소 등 각종 요소의 제한을 받는 데다, 매년 교사들이 담당하는 수업의 상황이 달라 나는 합리성에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체육 시간 한 가지만 해도 수업하는 교사들의 여러 가지 요구를 고려해야 했다. 학년 부장, 담임선생님, 각 과목의 부장, 외부 선생님의 요구를 고려해야 했고, 체육 장소는 면적이 가장 많이 필요하므로 한 시간에 4개 학급을 초과하지 않아야 했으며, 같은 학년의 체육 시간은 될수록 같은 시간에 배치하지 않아야 했다. 매 학급의 체육 시간은 될수록 한 시간에 세 개 학급이 함께 수업하도록 배치해야 하며, 세 시간을 하루건너 한 시간씩 나누어 수업하게 해야 했다. 오전의 체육 시간은 될수록 1, 2교시를 피하도록 조정했다. 체육 시간 다음의 수업은 연속해서 같은 수업이 배치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선생님들의 체육 시간을 매일 균등하게 배치하되, 될수록 일주일에 비슷하게 배치하고, 반나절은 비워두어 일부 다른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해야 했다. 체육 시간표는 한 번에 정할 수 없어 장소의 제한을 받는 수업, 예를 들면 정보, 음악, 미술, 영어 말하기 시간 등을 고려하여 정해야 했다.
체육 시간표는 가장 짜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다. 기본적인 것이 정해진 후에야 한숨 돌린 후 다른 수업을 배치하고 마지막에 조금 조정한다. 하루 수업 시간을 세밀하게 조정하되, 문과 수업 시간과 이과 수업 시간을 합리적으로 짜야 하고, 반과 반 사이의 수업 횟수가 비슷해야 했다. 또한, 학생들의 수업 시간에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나이가 많거나 몸이 약한 선생님이 연속 세 시간을 수업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만약 오전에 4교시를 배치하면 오후에는 5교시를 배치하지 않도록 하여 선생님들이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어떤 때는 한 선생님의 수업을 조정하면 다른 선생님의 수업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선생님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세밀하게 조정했다.
나는 시간표를 짜면서 왜 그렇게 많은 것을 고려하고 왜 그렇게 많은 정력을 소모할까? 그것은 바로 파룬궁 수련은 선(善)을 수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님의 요구대로 했고, 학교의 전체적인 수업 효과를 고려하여 여러 가지 요구를 많이 생각했으며, 수업 시간을 합리적으로 배치하여 선생님들의 수업 효과가 비교적 좋아지도록 했다. 비록 내가 좀 번거롭고 고생스러웠지만, 선생님들의 신임과 호평을 받았고 일도 비교적 순조로웠다. 전에 어떤 선생님은 웃으면서 내게 “선생님의 인품이 좋기에 다른 선생님들이 모두 선생님을 지지해주는 거예요. 만약 다른 학교라면 개학하여 시간표를 나누어주면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까지 했을 거예요.”라고 했다.
수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모순이 생길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오해하고 당신을 억울하게 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부님께서는 “만약 수련인이 문제를 이렇게 보고, 바른 이치(正理)로 자신을 수련한다면, 당신들이 속인 중에서 부딪힌 언짢은 일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2]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선생님들의 요구와 비판을 대할 때 여러 가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전에는 체면을 중시했기에 다른 사람이 내게 요구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내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왜 좋지 않다고 할까?’라고 생각하면서 억울해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러한 요구와 비판에서 진심을 보았고 나에 대한 신임과 관심을 보았으며, 선생님들의 어려움을 보았다. 나는 흉금이 넓어지고 마음이 안정되었으며 부드러워졌다. 화내거나 미워하지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았으며, 일하는 능력도 향상되었다. 일도 더욱더 세밀하고 포괄적이며 합리적으로 했다.
한번은 한 수학 선생님이 전화로 매우 화내면서 “내 수업을 조정했나요? 나는 조정한 시간표를 보지 못했어요. 왜 공개 수업을 내 수학 수업으로 했나요? 다른 수업으로 할 수는 없었나요?”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닥친 일에 멍해졌지만, 화내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조급해져서 그렇게 말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에게 설명했다. 첫째, 내가 그녀에게 수정한 시간표를 가져갔을 때 그녀가 사무실에 없어 시간표를 책상 위에 눌러놓았다. 그 당시 사무실의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내가 그녀에게 수정한 시간표를 준 것을 알고 있었다. 둘째, 선생님들이 교내에서 공개수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본과 수업을 하는 것이다. 설명을 들은 그녀는 좀 평온해지며 그녀의 그날 수업 시간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이 모순에 부딪혔을 때는 무조건 자신에게서 찾으라고 요구하셨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 일에서 다른 사람을 고려한 것이 부족하고 게으른 마음과 공무를 대충 처리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그녀가 사무실에 없었을 때 내가 컴퓨터로 메시지를 발송하거나 임시 시간표를 보내주었다면 그녀가 마음의 준비를 했을 것이고, 그렇게 조급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상황에 따라 그녀의 곤란을 해결할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조급했기에 화를 냈고 학급의 수업 진도에 지장을 줄까 봐 걱정했다. 오후에 그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녀는 화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며 연신 사과했다.
그 후에 나는 유사한 상황이 재차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고, 수정표를 나누어 줄 때 선생님이 자리에 없으면 메시지를 보내 알려주거나 임시 시간표를 보내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마다 모두 한 몫의 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을 잘해야 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일할 때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심하게 하라고 늘 자신을 일깨운다.
파룬따파는 고덕대법으로, 수련자는 ‘진선인(眞善忍)’의 원칙에 따라 수련해야만 도덕성을 높이고 몸이 건강해질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3]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했기 때문에 원래의 나에 비해 마음이 더 넓어졌고,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더 성실하게 들었으며, 고생을 더 잘 참고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사부님께 머리 숙여 인사 올리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착실한 수련’
원문발표: 2019년 7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하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1/3894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