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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막바지에 따라잡자

글/ 중국 광시 대법제자 즈수이(止水)

[밍후이왕] 정법 수련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오랜 시간을 수련한 노 수련생은 시련에 봉착하면 더는 속인의 이치로 가늠할 것이 아니라 응당 먼저 대법의 기준으로 가늠하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비교적 평온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지역 일부 수련생들은 반응이 비교적 치열한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당사자를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효과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제를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의 도움도 큰 작용이 없습니다. 나는 밍후이왕을 통해 다시 한번 나의 인식을 말하려 합니다.

이와 비슷한 정황에서 신 수련생이 이런 상태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노 수련생이 장기적으로 한 시련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끊임없이 대법으로 자신을 바로 잡는다면 결국 넘어갈 수 있는데, 현재 그 심성은 여전히 처음 시달림에 봉착했을 때의 상태입니다. 시간은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며, 또 다른 시달림에 봉착하게 되어 압력이 누적되면 당신은 심지어 수련자 같지 않게 이건 시험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 심성을 제고하지 못합니다. 일에 봉착하면 응당 안으로 찾고, 대법으로 자신을 가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므로 모순은 더욱 심화 됐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생활에서 봉착하는 일은 우연한 것이 없고, 모두 우리의 마음, 우리의 집착을 향해 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응당 인내하고, 내려놓고, 태연하게 대해야 하며, 한 발자국 물러서면 가없이 넓은 하늘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섭섭하고, 아무리 억울하고, 아무리 압력이 커도 대법을 믿고 사부님을 믿는다면 꼭 넘어갈 수 있습니다. 보통사람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굳이 다투지 말아야 하며, 자신은 ‘떳떳하고’ 다른 사람이 꼭 틀렸다고 생각하여 말로 몰아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경험으로 봐도 일반적으로 확실히 다른 사람이 당신을 모함하고 있으나 대법제자로서 대법의 기준으로 가늠해야지 보통사람의 기준으로 누가 옳고 그른가는 중요하지 않고, 수련자의 마음을 비울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가 틀리고 당신이 이겼다고 해도 마지막에 다른 사람은 변했는데 당신은 여전히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면 그 일이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물론 이런 일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삼퇴를 권하며, 연공과 법학습을 적극적으로 하기에 사람들은 그가 특별히 잘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에 봉착하면 밖으로 미는데 어느 때나 자신을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고 줄곧 자신의 집착을 덮어 감추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좀 큰 시련에 봉착하게 되면 넘어가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입원하고, 어떤 사람은 수술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전향했으며, 어떤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고비를 넘지 못합니다.

때로는 나는 수련은 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평상시에 모두 배우고 있으며, 보기에 아주 열심히 배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쳐야 그의 성적을 진정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평상시에 열심히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시험장은 세뇌반, 감옥이며, 병원에도 있으며,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앓거나’, ‘붙잡히거나’, ‘억울하거나’, ‘두렵거나’ 어차피 당신은 앞길이 없고 너무 어려우며,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당신이 대법에 대해 확고한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정황에서 당신이 믿는가? 믿지 않는가! 그 순간에 당신이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어떻게 대답하는가? 보통사람의 이치인가? 아니면 대법의 법리를 지침으로 삼는가? 그런 후 당신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봅니다. 해도 과정이 있을 수 있으며, 그 과정에 끊임없이 포기하라고 할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확실히 어렵습니다. 나 자신도 늘 기어서 넘어가는데 간신히 합격합니다.

한 수련생은 어느 수련생을 특무라고 질책하면서 그가 자기를 고발해 증인으로 채택돼 자기가 감옥살이를 했다면서 출옥한 후 다른 수련생의 설명도 듣지 않고 그 특무라는 수련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불만을 토로합니다. 한 수련생은 자기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다른 수련생들이 잘 돌봐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 사망했다고 원망하면서 수련까지 포기하고, 수련생을 고발까지 했습니다.

수련생과 수련생 사이의 모순에서 그가 당신을 배반했다거나, 당신을 억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식은 우리가 인정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선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어떤 수련생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것을 보는 다른 수련생은 모두 안타까워하며 당신을 도우려고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때 당신은 오히려 밖으로 밀어냅니다. 수련생들이 우회적으로 권유하거나 직접 문제를 제기하거나 다양한 방식을 다 사용해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면 다른 수련생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잘못했기에 자신이 시달림에 봉착했다고 생각하지 법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수련자로서 우리 자신이 담담하고 집착이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억지로 당신에게 시달림을 줄 수 있겠습니까? 또 이미 시달림에 봉착했다면 빨리 기회를 잡아 상응한 마음과 집착을 찾아내고 그것을 닦아내고 마음을 비운다면 시달림도 제거될 것입니다. 수련과정이 이렇지 않습니까? 시달림에 봉착하면 자신을 바꾸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고 질책합니다. 다른 사람이 정말 잘못했거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당신이 이런 시달림에 봉착했다 해도 그가 바뀌거나 바뀌지 않거나, 징계를 받거나 받지 않거나 사실 중요하지 않고 당신이 이로 인해 고비를 넘기는지 넘기지 못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한 수련자로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대법 중에서 천천히 자신을 바꾸어야만 자기를 제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한 가지 일 때문에 화가 나고 우울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거나 심지어 기뻐하거나 환희에 넘친다면 당신은 현재 시련에 봉착한 것입니다. 발정념은 다른 일입니다. 여기에서 이 면에 관해서는 토론하지 않겠습니다. 시달림이 올 때 피할 수 있습니까? 밀어낼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당신이 학교는 다니면서 시험은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사실 이것들을 요약하면 빨리 따라잡자고 수련생에게 경고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당신이 현재 마음이 움직이는 이 면에서 더는 보통사람과 혼동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바로 잡아 주세요.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19년 7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22/3902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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