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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기교 중의 ‘붓 터치’에 대한 나의 일부 깨달음

글/ 뤄원타오(羅文濤)

[밍후이왕] 5월에 다빈치 서거 500주년 개인 성보(城堡)를 참관했고 이후에 부게로가 그림 배운 과정을 보았다. 내가 이전에 그림 배운 과정을 대비해보니 갑자기 작디작은 붓 터치 문제가 그렇게 심오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이유로 1999년에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받아 한동안 기억력을 상실했다. 이후에 나의 그림 선생님이 나를 찾아와 나에게 다시 그림을 그리라고 할 때 나는 화필을 쥘 줄 몰랐다. 이후에 선생님은 나를 도와 그림 감각과 색깔에 대한 민감도를 되찾아주려고 나에게 ‘색채분할 주의’ 기법을 채용하게 했다. 팔레트에서 색깔을 섞지 않고 색을 바로 화지에 놓고 눈으로 어떤 색을 느끼면 그 색을 올리는 것이다. 이러면 하나씩 색깔이 형성되고 붓 터치도 뚜렷하게 보아낼 수 있는데 시간이 길어지면 고치기 어려운 습관이 형성된다. (여기에서 나의 선생님을 원망하는 뜻은 없습니다. 그런 극히 특수한 정황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할 방법을 부득이하게 썼습니다. 이 훈련 때문에 저는 색깔에 대한 예민한 관찰력을 되찾았습니다. 여기에서 저의 그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요 몇 해 줄곧 기법을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이전 학생 때의 미숙함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최근에야 기술이 제고되지 않은 것은 나의‘관념’이 나를 가로막은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접촉한 일부 현대파 화가들은 붓 터치의 폼과 개성을 아주 강조했다. 마치 붓 터치가 아주 중요한 일부분인 것처럼 표현했다. 한동안 나도 그들의 영향을 받았는데 최근 다시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爲誰而存在)’를 보고 장기간 접촉한 지식과 자기 관찰을 결합한 후 갑자기 깨달았다. 과분하게 자기 회화 붓 터치를 표현하는 것은 사실 자기 개성을 선양하는 일면을 표현하는 것이며 자기 후천 관념을 표현하는 부분이다. 과격한 붓 터치에서 이 사람의 성격이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신병이 발작해 자기 귀를 자른 고흐이다. 자기 개성을 심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접촉하면 그 혹은 그녀 성격이 아주 강경하고 상냥하지 않고 고집스러우며 뽐내는 등 선양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예술을 배우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정말 좋은가?

图1:梵高自画像(Vincent
고흐 자화상(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네덜란드

일부 대도시 화랑이 모인 거리를 거닐거나 현대파 그림 전시를 참관하면 이런 사람의 작품이 표현한 소재는 흔히 귀신세계, 개인의 문뜩 떠오른 생각, 심지어 색욕 추구를 암시하는 소재거나 전혀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느낌이 무엇이면 무엇이다. 그들의 그림은 보는 사람이 초조한 정서를 일으키게 만들고, 심지어 신체가 민감한 사람은 불편해하고 강렬하면 사람이 쓰러질 수 있다.

중국에서 1949년 이후 성장한 그 세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회화 교학은 이전 소련의 회화를 기초로 한 것이다. 당시 환경의 영향으로 레핀(Repin)과 전 소련 화가를 맹목적으로 숭배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화가는 러시아에 있다고 여겨 우리는 대량으로 모방했고 대량으로 러시아 화파의 화책을 소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출국한 후 십여 년 유럽 회화를 접촉하고 재인식했다. 특히 르네상스 그림을 견학하고 배우면서 시야가 넓어져 쉽게 누구누구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고 그림 표면에 이끌리지 않았다. 더 이성적으로 일부 현상과 내포를 분석했다. 거기에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미술에 관한 설법을 배우고 답을 찾기에 노력하여 최근 2년 레핀 그 시대는 정치를 위해 복무해야 했기에 중국공산당이 극히 전 소련 화법을 숭배한 것임을 알았다. 여기까지 쓰니 그 말이 생각난다. 중국공산당이 탄압한 것이면 모두 좋은 것이고 중국공산당이 숭배하는 것은 모두 그것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전 소련 화법이 중국에서 그림을 배운 매 학자의 사상에 깊이 뿌리박혔다. 그 후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서방 나라의 인상파, 야수주의, 현대파 영향을 받았다. 사람들은 또 벌떼처럼 개성 개방을 추구했다. 그래서 강렬한 붓 터치는 개성을 표현하는 아주 좋은 발산으로 되었다.

출국한 후에야 냉정하게 돌이켜보고 르네상스 원작을 견학할 기회가 생겼다. 이탈리아,프랑스의 다빈치, 라파엘로, 페르메이르(Jan Vermeer), 부게로(William-Adolphe Bouguereau) 등등 서방 나라의 가장 걸출한 대사의 작품이다.원작을 많이 보고 불법(佛法)을 깊이 이해한 후 최근 그림 그리는 한 동작인 붓 터치에서 한 화가의 수양을 볼 수 있고 그가 이성적인지 아닌지 그의 성격, 그가 그림 그리는 동기와 태도 등을 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하여 나도 고심하게 찾던 답을 찾았다. 나를 저애했던 것은 ‘후천적 관념’이었다. 붓을 들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일부러 붓 터치를 추구하는 동작을 자신도 싫을 정도로 반복했다. 작은 붓 터치에서도 인식해야 할 점이 있었다. 그것은 전체 그림 작품을 구성하는 매 한 걸음이다.

예전에 러시아 화파를 비판하는 아주 긴 문장 한 편을 보았다. 그런데 그가 쓴 문자는 극히 도발성이 있어 다 보면 머리가 아팠다. 그의 문자는 사람들의 사상업 부분을 야기했는데 여기에서 나누지 않겠다. 그 문장에서 나는 문장을 쓰는 것도 그림 그리는 붓 터치와 마찬가지로 자기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런 자극적인 부정적인 단어는 사실 그림을 그릴 때 눈을 자극하는 색깔이나 눈에 띄는 붓 터치와 같다. 한 사람의 문장이 다른 사람을 훈계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그 문장이 공산주의를 욕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의 행위는 공산주의 악한 일부분이다. 이런 문장은 사람에게 불편함을 준다. 자아 개성을 극히 표현한 그런 현대파 그림의 작용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그 자신의 업력을 발산하고 있고 보는 사람의 건강에 해롭다. 사실 이성적이고 선량하게 사실을 설명하면 더 많은 독자의 존중을 받고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평소 말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릴 때 주의하지 않으면 자기 개성을 표현하게 된다. 수련인으로서 이런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을 해치는 예리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만약 불법에서 수련하지 않는다면, 한 속인으로서 평생 자기의 후천적 관념을 집착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문장을 쓸 텐데, 자기 집착의 테두리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 아닌가? 법을 얻어 행운이다. 따라서 스스로 나에게도 위에서 언급한 그런 개성을 표현하는 문제가 있지 않나 많이 반성한다. 한 사람이 후천적 관념이나 자아의 틀을 내려놓아야 선천적인 본성이 점차 나타난다. 사람의 것을 내려놓아야 신의 것이 있을 수 있다.이것은 내가 수련에서 혜택 본 부분이다.

르네상스 삼걸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및 그 후의 부게로는 화면을 정교하고 정확하게 그리기에 노력했다. 부게로가 그림을 배울 때 자기 개성 붓 터치 표현을 억제하기에 노력했고 전통 회화 기법을 배우기에 노력한 경과를 보았다. 그 시기에 이미 아카데미즘(學院派)설이 있었다. 그는 사회 조류를 따라가지 않고 여전히 전통 회화 이념을 답습했다. 대량의 세심한 그림 작품을 그려 사진기술이 촬영할 수 없는 신의 세계를 그려냈다. 그는 걸출한 회화로 사진기술이 아카데미즘의 전통 회화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图2:《抱银貂的女子》(意大利语:Dama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이탈리어어: Dama con l’ermellino, 영어: Lady with an Ermine) 작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이 그림은 1489~1490년 밀라노에서 창작하고 완성했다. 지금은 폴란드 크라쿠프의 차르토리스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图3:《百合圣母像》(法语:La
‘백합의 동정녀’(프랑스어: La Vierge aux Lys) 1899년 作. 작가 윌리엄 부게로(william Adolphe bouguereau 1825-1905) 프랑스 19세기 전반기에서 19세기 말의 프랑스 학원예술 회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

다빈치나 부게로 및 기타 서방 대사의 회화 작품을 보면 그들 개인의 뚜렷한 붓 터치가 보이지 않는다. 역으로 화면의 세심하고 미세하며 곳곳마다 빈틈이 없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세심한 기법으로 공간감, 공기감, 생동감, 입체감, 확실한 신의 세계를 표현했다. 이런 그림을 보면 아주 편안하여 초조하던 마음을 조용해지게 할 수 있다. 그들의 그림 작품에서 이 사람의 지혜가 열린 것을 보아낼 수 있다. 그는 신계(神界)와 소통하고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신의 세계를 또렷하고 진실하게 표현했다.

다빈치는 아주 겸손하고 평화적이고 총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런 대사의 그림전시를 보면 나는 쓰러지는 현상이 없다. 반대로 그들의 그림 앞에서 나는 지혜가 열리는 것 같았고 신계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들의 그림은 인류에게 아름다운 계발을 주며 사람의 건강에도 해롭지 않다. 좋은 그림 작품은 신이 보호하신다고 한다. 이 역시 현대파 회화 앞에서 오래 서 있으면 사람이 쓰러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은 ‘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爲誰而存在)’ 경문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한 생명이 진정으로 중대한 문제에 관련하여 어떠한 관념을 갖지 않고 문제를 가늠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정말로 자신이 자신을 주재(主宰)할 수 있다. 이런 청성(淸醒)은 지혜이며 일반인의 이른바 총명(聰明)과는 다르다. 만약 이럴 수 없다면 이 사람은 곧 후천적인 관념 또는 외래 사상에 의해 지배당하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그것을 위해 한평생 분투하며 늘그막에 와서도 자신이 일생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비록 일생에 얻는 것이 없으나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의 지배하에 잘못된 일을 무수히 한다. 자신이 한 잘못한 일에 따라 내세에 자신으로 하여금 업력을 갚게 한다.”

여기까지 배우고 나는 작가로서 자아를 내려놓아야만 아무런 후천 관념도 갖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붓 터치를 표현하고 자아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이때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 자신이다. 그는 후천적인 관념과 외래 사상의 지배를 받지 않고 그림을 그릴 것이기에 그려낸 정보는 순수하고 사람에게 유익하며 신이 그의 지혜를 열어주고 그의 기능을 제고시켜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후천적인 사상 업력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 자기를 저애하고 사람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여기에서 이것은 내 개인이 지금 이 단계에서의 일부 체험임을 설명하겠다. 구체적이고 심오한 불법은 독자 스스로 체험해야 한다. 찬성하지 않는 독자가 있는 것은 정상이고 이해할 수 있다. 틀린 곳이 있으면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19년 6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23/3890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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