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사람들은 늘 ‘인생 칠십 고래희(古來稀: 예로부터 몹시 드묾)’라고 했는데, 2018년에 저는 백 살이 됐습니다. 원래 온몸의 병이었던 제가 대법을 수련했기에 사부님께서 제자의 신체를 정화해주셨고 그래서 백 살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혼자 살고 있고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데 간단한 집안일도 할 수 있습니다. 밥은 스스로 하고 반찬은 아들이 만들어서 갖다주며 부족한 것이 있으면 자식들이 사다 줍니다. 이런 것은 모두 제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딸이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청소해주고 평소에 어지간한 일은 가능한 한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저는 2층에 살고 있고 계단을 이용해 다니며, 자주 나가서 인근에서 걸어 다니며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어머니는 남동생만 돌보고 딸인 저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감기에 걸려 기침이 심하고 고열이 났지만, 어머니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나중에 넷째 이모가 오셨는데 제가 불쌍해 저를 안고 우셨습니다. 그녀들은 저를 요람에 넣어 이불을 덮어씌우고는 힘껏 흔들었는데, 목적은 흔들어서 어지럽게 해 땀을 흘리면 낫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잠이 들었고 온몸에 땀이 나서 나았습니다. 그러나 옷이 땀에 흠뻑 젖었지만, 어머니는 저에게 옷을 바꿔주지 않으셨고 그냥 말랐습니다. 이렇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고생을 했고 모성애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결혼 후 시어머니도 굉장히 혹독했는데 걸핏하면 저를 때리거나 남편을 시켜 때렸는데 한 번 때리면 그칠 줄 몰랐습니다. 저는 임신했을 때도 몇 번이나 맞아서 유산했는데 한번은 임신 8개월이었는데도 맞아서 유산됐습니다. 제 딸을 지키기 위해 저는 그들이 때리면 거리로 뛰쳐나갔는데, 그들은 감히 때리지 못했고 그래서 이 아이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중년까지 고통 속에서 보냈고 온몸에 병을 얻었습니다.
가족 중에 부처님을 믿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 영향으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처님의 존재를 믿어왔습니다.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말년에 불교에 입문해 거사가 되어 4년 동안 배웠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승려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돈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1996년 저는 파룬궁에 대한 소문으로 들었고 불가 공법이라고 하기에 바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결과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공장이 있었기에 저는 가서 참여했습니다. 이 대법을 배우자 저는 마음이 매우 흥분됐는데 이것이 바로 제가 찾고자 하던 것이고, 이것이 바로 제 평생 구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는데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있어 온몸의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온몸이 홀가분해 마치 젊음을 되찾은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제 심정이 얼마나 기쁘던지 매일 아이들처럼 즐거워했습니다. 이후에 세 번의 큰 병업관이 있었는데 저는 신사신법(信師信法)과 확고한 신념으로 최후에 모두 돌파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주셨고 저를 무병 상태로 홀가분하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99년 7월 20일, 사당 우두머리 장쩌민이 질투심으로 파룬궁 박해를 발동했는데 우리는 갑자기 법공부와 연공 환경을 잃게 됐고, 수련생들도 모두 잇달아 베이징에 파룬궁 진상을 알리러 갔습니다.
그해 저는 80세였지만 저도 베이징에 가서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으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수련생들이 저를 데리고 갔는데, 우리 지역과 베이징은 멀지 않았고 베이징으로 가는 차가 매우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사들은 모두 제가 나이가 많아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워 저를 태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함께 온종일 걸어서 저녁 6시가 넘어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길에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서 조금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아들이 차를 몰고 저를 태워서 갔습니다. 제가 기어코 청원하려 했기에 아들은 시름이 놓이지 않아 차를 몰고 같이 갔습니다. 그러나 톈안먼(天安門)에 이르자 아들은 계엄령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마음이 내키지 않아 하자 아들은 차를 몰고 톈안먼 주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세 번째는,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갔다가 붙잡히고 맞았다는 것을 듣고 저는 정말로 집에 앉아있을 수 없어 스스로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기억하건대 그날 바람이 아주 강했는데 저는 두렵지 않았고 가슴에 칼이 들어와도 저를 막을 수 없으니 저도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톈안먼에 도착해 제가 성루 근처에 앉자 경찰이 다가와 저를 보더니,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어떻단 말인가요? 파룬궁은 바로 좋은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이렇게 나이가 많은 것을 보고는 상관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거기에 앉아 톈안먼 성루를 향하여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한번 또 한 번 외웠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가는 기차표를 살 때 직원은 시간이 늦었다며 5분만 있으면 차가 역에 들어온다고 했지만 저는 늦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표를 산후 바로 개찰구로 달려갔습니다. 도착해 물어보니 기차가 연착됐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너무 감동했습니다. “이게 바로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게 아닌가?”
제가 돌아와 기차에서 내리자 저를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자청하는 택시기사가 있었지만 저는 필요 없으니 걸어가겠다고 했습니다. 말하면서 저는 얼마 걷지 않았는데 집에 도착한 것 같아 시계를 보니 5분밖에 걷지 않아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이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아니겠습니까? 역에서 우리 집까지 가는 길은 젊은이도 30분은 가야 합니다. 사부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리며 법상 앞에 가서 사부님께 허스(合十)했는데 사부님께서 저를 보고 웃고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평소에 늘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며 스티커를 붙이곤 하는데,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도 신체가 이렇게 건강한 것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립니다. 제가 말하기만 하면 그들은 모두 믿는데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명백히 알고는 TV의 거짓말을 믿지 않습니다.
건강한 신체를 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저 이 백 세 노인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성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고, 진상을 알고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19년 7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8/3897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