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자신을 찾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버리다

병업 가상을 만난 수련생과의 교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속인일 때 나는 다리를 떠는 나쁜 습관을 양성했다. 법을 얻은 지 아주 오래됐으나 진지하게 그것을 닦아버리지 못했다. 한번은 다리가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는데 나는 손으로 다리를 누르며 “떨지 마라, 나는 이 나쁜 습관을 없애버리겠다.”하고 말했다. 그 순간 갑자기 질식할 것 같은 공포를 느꼈으며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다리를 떨었더니 질식할 것 같은 감각이 사라졌다. 다리를 떨지 않는다고 어떻게 숨을 쉴 수 없단 말인가? 당시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깊이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 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나는 이 과정을 이해하게 됐다. 다리를 떠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의 주왠선(主元神)이 아니며 그것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습관, 집착, 관념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 계속 다리를 떨게 한 것이다. 내가 이 나쁜 습관을 제거하려고 할 때 그것들로 말하자면 정말 죽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나의 이곳에 반영돼왔지만 나는 그 질식할 것 같은 공포를 자신으로 여겼다. 그것을 똑똑히 분간하지 못했고 그것을 억제하지 못했으며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고 그것을 수련해 없애버리지 못했으며 오히려 다리를 떠는 중에 그것에게 에너지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나의 체계 내에서 여러 해 동안 살아남을 수 있게 했다(지금은 이미 없애버렸음).

며칠 전 병업 중의 수련생을 찾아갔다. 그녀가 말하기를 “자신은 죽음이 두려웠으며, 두려움도 집착이라 마땅히 제거해야 함을 알았지만 무서웠고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몰랐다.”라고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사람이 죽는 그 일순간에는 두려운 느낌 없이 도리어 정반대로 갑자기 해탈감이 있고 잠재적인 흥분감이 있음을 느꼈다.”[1]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 일순간’이란 바로 왠선(元神)이 신체를 떠나는 그 순간이며 해탈감, 흥분감은 곧 사람의 주왠선이 내보낸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전의 두려운 감각은 결코 사람의 주왠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며 후천적인 집착과 관념이다.

내 생각에, 수련생이 두려움을 닦아버리기가 이처럼 어려웠던 주된 원인은 두려움을 자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제거해버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두려움의 배후는 집착이며, 내려놓지 못하는 어떤 것과 인간 세상에 대한 미련이다. 만약 정말로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2]를 해낼 수 있다면, 그럼 또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이밖에 두려움의 배후는 또 구세력의 요소가 강화하고 강요하는 것이 있다. 사부님께선 우주를 정법하는 역사상 있어 본 적이 없는 홍대한 천상(天象)으로 우리를 이끌어 들이셨기에, 대법제자는 일찍 가든지 늦게 가든지 간에 생명은 이미 보장받았다. 그러나 세상에서 신의 후광을 놔두고 구도될 희망을 대법에 기탁한 중생은 도리어 정말로 생사존망을 마주하고 있다. 만약 자아를 내려놓고 전력을 다해 그들을 구도한다면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3] 중에 있는 것인데 구우주의 요소가 우리를 제약할 수 있겠는가?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똑똑히 가려내고 그것을 억제하며, 그것을 이겨내고 발정념으로 그것을 멸하며 지나치게 그것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매일 어떻게 사람을 구할 것인가를 생각하자,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해체됐다.

개인 층차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은 수련생들이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무존’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원문발표: 2019년 7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1/38937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