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신수련생
[밍후이왕] 2011년 저는 해외로 유학을 왔습니다. 당시에 저는 아직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반에 한 남학생이 줄곧 저를 따라다녔지만 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를 거절해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꾸준함이 저를 감동시켜 저는 사귀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하루는 날이 매우 추웠고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운전하며 중국영사관 앞을 지나가다가 파룬궁수련생들이 거기에서 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저는 감동해 한 마디 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매우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모두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야.”
당시 말을 마치자 남자친구는 저에게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정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가족들이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저는 겉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대단히 놀랐고 심지어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가족들을 일상생활에서 몰래 관찰했습니다.
저와 남자친구는 아마 모두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푸얼다이(富二代, 재벌 2세)’일 것입니다. 가정조건이 비교적 좋아 고등학교부터 차를 몰고 등교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돈을 쓰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어 물건을 살 때 가격을 보지 않았으며 좋다고 생각하는 물건이면 즉시 샀습니다. 명품 브랜드 신발은 한 켤레에 수만 위안(한화 약 수백만 원)이었고 매일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며 다 먹지 못하면 버렸습니다. 하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제자인 그 남학생의 누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매번 외식하고 남은 요리를 집으로 포장해 와 묵묵히 먹었고 저와 그녀 남동생에게는 나가서 신선한 음식을 먹게 했습니다. 그녀는 명품 브랜드를 사지 않았고 옷차림도 매우 검소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녀가 저에게 일부 사람이 되는 이치를 말해주고 제가 모르는 일을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또 그녀가 사람들에게 매우 잘 대했고,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이 억울함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의 집은 매우 컸고 3층 건물이었습니다. 가정부도 없이 그녀 혼자서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치우고 살았는데 저는 정말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겨우 저보다 세 살이 많았고 당시 대학생이었습니다. 서서히 저는 마음속으로부터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경계를 낮추게 됐습니다.
하루는 언니가 저에게 함께 ‘전법륜’을 공부하지 않겠냐고 물었고 저는 승낙했습니다. 제1강을 배운 후, 저는 설법이 매우 좋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강을 배울 때 저는 또 약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제 마음은 줄곧 반복적으로 동요됐습니다. 줄곧 ‘전법륜’ 제9강을 다 배우고 나서야 저는 불현듯 제 세계관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느꼈습니다. 마음이 매우 홀가분해졌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당시 마침 학교 여름방학이어서 저는 혼자서 그녀 집에서 사부님의 초기 경문과 각 지역 설법을 공부했으며 배울수록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자주 배우다보니 눈물을 흘리게 됐고 자신은 이미 속인들 가운데서 많은 업을 짓게 됐는데 왜 이렇게 늦게 서야 진상을 알게 됐는지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한 번은 그녀 집에 몇 명의 또래 대법제자들이 와서 함께 만두를 빚기 시작했는데 모두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수련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저에게 ‘삼퇴(공산당, 공산주의청년단, 소년선봉대 탈퇴)’를 권해 저는 흔쾌히 승낙했고 실명으로 삼퇴했습니다. 비록 대법이 좋은 것은 알았지만 마음속으로 수련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제가 그 중 한 대법제자에게 물었던 것을 매우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왜 수련해 부처가 되려고 하나요? 사람이 되는 것이 좋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당시에 저는 젊고 예뻤으며 가정조건이 좋았고 몸에 아무런 질병이 없었으며 복잡한 사회를 접촉해본 적이 없어서 사람이 되는 것은 매우 즐겁고 좋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 왜 진심으로 수련해 부처가 되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깨우치지 못하더라도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롭게 저에게 매우 많은 아름답고 초자연적인 일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처음에 발정념을 할 때, 저는 자신이 속도가 매우 빠른 엘리베이터에 앉아서 위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매우 두려워 즉시 눈을 떠보니 자신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날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때는 내 자신이 매우 커다랗게 변해 마치 온 우주처럼 크게 변한 것 같았습니다. 한 번은 발정념을 할 때에 연화장 가운데 무수한 빛깔의 파룬(法輪)이 회전해 나오는 것을 보았고 마지막에 하나의 커다란 만자(卍字) 부호가 제 앞에 멈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저는 남자친구와 함께 중국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운전해 제가 살고 있는 도시로 오셔서 우리 가족에게 진상을 알려주셨습니다. 뜻밖에도 우리 가족은 강하게 배척하며 우리를 강제로 헤어지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은 우리를 헤어지게 했고 해외로 되돌아온 후, 저를 제가 기존에 다니던 학교와 5천km 떨어진 도시로 전학시키셨습니다.
새로운 도시에 온 후 저는 한 사람도 알지 못했지만 원래 도시에 있던 젊은 대법제자가 현지 젊은 대법제자를 저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그 수련생에게 저를 잘 이끌어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대법의 환경을 이탈하지 않고 매일 온라인으로 수련생과 함께 법 공부를 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대법을 배운 후,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나 저는 전반적인 상태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학교에서 학우들은,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우 소탈하고 순수하며 다른 여학생처럼 명품 브랜드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주변 모든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어떻게 법을 얻었고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어떻게 진선인(眞善忍)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학우들은 모두 잘 받아들일 수 있었고 삼퇴를 했습니다.
저에게는 각별히 사이좋은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에 속아 대법에 대한 태도가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가 또 사부님을 풍자하는 말을 해 저는 마음속으로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 네가 파룬궁 책 ‘전법륜’을 읽어본 후 다시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는 매일 방과 후 도서관에 가서 함께 ‘전법륜’을 한 강의씩 배우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많은 내용을 그다지 믿지 않았으나 마지막에는 “와, 알고 보니 파룬궁이 이렇게 좋았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그는 중국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자발적으로 그의 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대학에 간 후, 반에서 중국인 학생이 대법에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면 그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를 위해 기뻤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 한 작은 법 공부 팀을 만들어 매일 밤 방과 후면 4~5명의 학우들이 모여 함께 법 공부를 했습니다. 그들 중 어떤 학생은 1999년 7.20 이전에 부모님과 함께 수련을 해오던 어린 제자였으며 진상을 알게 된 후 함께 수련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년여 만에 우리 가족들은 출국해 저를 보러 왔다가 제가 파룬궁 수련을 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 저에게 욕설을 퍼부었으며 또 저를 안고 22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려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사부님 법상 앞에 꿇어 앉아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왜 수련은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가족들은 저를 곁에 묶어 놓아야만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을 마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귀국하게 했으며 저에게 속인을 찾아 결혼시켰습니다. 결혼 전, 저는 남편에게 진상을 알렸고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니 저와 결혼을 할 지 여부를 잘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결혼 후, 비록 남편은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저는 완전히 수련 환경을 잃게 되어 중국 대륙에서 수련생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고 게다가 가족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있어 서서히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한 번 대법을 이탈하니 이미 5년이 지났습니다.
법 공부를 하지 않게 되자 자연히 법의 구속도 사라졌습니다. 행위가 점차 속인과 같아졌고 심지어 어떤 일에서는 하는 것이 속인보다 더 못했습니다. 남편은 소개팅을 해서 만난 사람이고 한 번 보고 결혼하게 되어 결혼 후 많은 생활 습관에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저는 귀국해 속인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다시 명리를 추구하고 욕망이 강한 생활 속으로 빠져들게 됐으며 늘 주변 친구들과 경쟁하며 비교하기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줄곧 제 부모님의 돈을 써왔으므로 저는 남편에 대해 많은 불만이 생겼습니다. 매일 우리 가족과도 다투었고 가족들이 저에게 비싼 집 한 채를 사주었어도 저는 작다고 불평했으며 어머니를 화나게 해 어머니는 도처에서 자기가 배은망덕한 인간을 낳았다고 말하곤 하셨습니다.
5년 동안 명리정(名․利․情)에 잠겨 있다 보니 제 마음은 매우 지쳤습니다. 정말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하고 가련하며 매일 명리정 속에 잠겨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법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여전히 자신이 대법제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일체의 일에는 인연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속인 중의 일에 대해 또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아웃사이더처럼 살았습니다. 속인 일에 저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대법제자의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둘째를 임신해 임신 기간에 해외로 가서 아이를 낳고 싶었고 이렇게 하면 또 수련환경이 생길 수 있어 아이가 2~3개월이 되면 다시 귀국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일 여전히 무지몽매했고 설령 수련환경이 있더라도 저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밍후이왕에 들어가서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보고나면 며칠 동안은 괜찮아졌습니다. 하지만 ‘전법륜’을 들고 공부를 시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논어’마저 저는 알아보지 못하게 됐고 사부님의 최근 설법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션윈이 우리 도시로 공연하러 왔을 때 저는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션윈을 보러 갔습니다.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고 션윈 배우들이 표현한 중국 전통 여성이 그처럼 부드러운 모습인 것을 보고 저는 남편에게 반드시 자신의 거칠고 급한 성격을 고쳐서 진정하게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습니다.
4월이 되자 뉴욕법회 신청이 시작됐고 저도 사부님을 너무 만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청하는 일을 떠올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늘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한 젊은 수련생이 저를 격려하며 말했습니다. “시도해보세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는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했어.’ 도시 협조인은 저에게 지난 1년간 도시 법 공부, 큰 팀의 교류, 어떤 항목에 참가한 적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의 대답은 모두 “없어요.”였습니다. 협조인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법회입니다. 대법제자만 참가하는 것입니다.” 저는 망연자실해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더라도 괜찮아. 나는 여전히 뉴욕으로 갈 거야. 퍼레이드나 행사에만 참가한다 해도 좋아.’ 이때 그 젊은 수련생이 저를 격려해주며 특례로 신청해주었습니다. 당시에 제 마음속에는 오직 일념뿐이었습니다. ‘반드시 가야해!’ 저는 자신이 법을 얻어서부터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면서 사실대로 써냈고, 부지불식간에 4~5천 자를 쓰게 됐습니다. 결국 통과돼 저는 법회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수련의 기회를 매우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고 일체는 모두 사존께서 부여해주신 것으로 정말 사부님께서 곁에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존께서 이런 변변치 못한 제자인 저를 포기하지 않으셔서 감사드립니다!
5월 초에 현지에서 법회가 열렸습니다. 협조인은 저에게 제가 쓴 심득체험을 법회에서 발표하라고 했고 저는 즉시 거절했습니다.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저는 귀국도 해야 합니다.” 협조인은 매우 엄숙하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해외 수련생은 귀국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마음이 매우 복잡해 심정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밤에 집으로 돌아와서 저는 남편에게 이 일을 언급했습니다. “협조인이 저에게 발표하도록 했지만 제가 거절했어요. 저는 제가 발표를 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해외에는 중국공산당 스파이가 이렇게 많으니 너무 눈에 띄고 싶지 않아요.”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 스스로 고민해보라고 했습니다.
이날 밤은 정말 고통스러웠고 마음속으로 계속 갈등했습니다. 머릿속에는 갖가지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귀국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내 국내 부동산은? 친구들은?’ 저는 정말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고 싶어 저는 파룬따파 웹사이트에서 귀국 두 글자를 검색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모두 해외 수련생은 귀국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사부님과 법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 속인이 될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는 불현듯 제가 가장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됐습니다! 바로 속인중의 것을 버리지 못했고 한 손으로는 사람을 잡고 한 손으로는 신을 잡고 속인 중의 행복을 추구하려 했고 사부님과 법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때 저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갓 법을 얻었을 무렵, 사부님의 ‘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走向圓滿)’를 배우고 나서 자신에게는 전혀 집착이 없다고 생각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고 나서야 당시에 자신은 정말 대법 수련에 대해 너무 엄숙하지 못했고 무엇이 수련인지 전혀 몰랐으며 자신이 이렇게 법 공부를 하다보면 나중에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망상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밤새 뒤척이며 결론을 내리지 못해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만약 제가 수련 때문에 귀국하지 않고, 적어도 박해가 끝나기 전에는 귀국하지 않으면 당신은 어떨 것 같아요?’ 그는 매우 평온하게 대답했습니다. “귀국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그 다음 저는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대법에 대해 나쁜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또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물어보시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가 말했다. “인연이 있으면 오셔서 알아보라고 하시면 되지.”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저도 조금 마음이 놓였습니다. 적어도 자신의 이 작은 가정이 귀국하지 않는 이 문제에서 만큼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룻밤 거의 밤을 새며 고민해보았지만 저는 여전히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튿날 법회장에 가서 저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즉시 원고팀을 찾아가 발표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원고를 가져왔습니다. 그 다음 자리를 찾아 앉아 수련생들의 발표를 들었습니다.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사부님의 법상을 보고 이처럼 장엄한 법회를 보면서 ‘내가 올라가서 교류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행운인가! 나는 자신의 두려운 마음 때문에 이번 기회를 거절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사회자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저에게 준비하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분명히 발표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즉시 사회자에게 손을 흔들면서 발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사회자는 보지 못한 것 같았고 무대에서 내려갔습니다.
발표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제 사상 갈등은 갈수록 격렬해졌습니다. 최후에는 ‘오늘 나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설사 스파이에게 사진이 찍히더라도 나는 어차피 귀국하지 않을 테니 내 집과 자동차가 전부 없어지더라도 또 어떤가? 나는 수련하러 온 것이다. 와서 속인 생활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 집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와서 나를 욕하고 때리며 내 경제를 끊어버리더라도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이렇게 두려움의 물질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준비를 마치고 발표하러 가려고 할 때 사회자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약간의 변동이 있었습니다. 다음 분 ○○씨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이름을 건너뛴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사회자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발표하겠습니다.”
전반 교류의 과정에서 저는 긴장해서 온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가족이 제 수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하고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강단 아래의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류를 마친 후 많은 수련생들이 다가와 저를 격려해주었고 제가 교류를 잘했다며 그녀들도 모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몸이 매우 홀가분해진 것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이 기회에 저로 하여금 이 일을 통해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게 해주셨고 저를 돌파하게 해주셨으며 또 저에게 이처럼 신성한 법회에서 교류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밀레르빠 부처님의 수련 이야기를 찾기 위해 밍후이 라디오를 찾았습니다. 밍후이 라디오는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매일 아이를 태우고 차를 운전해 데려오고 데려갈 때, 또는 남편과 함께 외출할 때 모두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만 듣다가 나중에는 정정당당하게 남편과 아이에게 듣도록 틀어주었습니다. 그 중 저는 밀레르빠 부처님의 수련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의 매번 모두 많은 눈물을 흘렸고 마음속이 열린 것 같았습니다. 또한 대법 수련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밀레르빠 부처님은 즉시 성불할 수 있는 법을 찾기 위해 이렇게 경건하고 정성스러우며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하게 됐지만 이렇게 위대하고 성스러운 우주 대법이 저의 앞에 놓여 있어도 오히려 소중히 여길 줄 몰랐습니다! 인간세상에서 불과 몇십 년밖에 안 되는 짧은 수련으로 이렇게 고층차까지 수련할 수 있는 법을 제가 얻게 됐습니다.
뉴욕 법회에 참석하는데 일주일도 채 안 남기고 저는 소업을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법을 얻고부터 지금까지 저는 정말 소업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전에는 전혀 대법제자가 아니었구나!’ 이제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깨닫게 됐습니다. “또 일부분 사람들은 나중에야 내가 강의한 내용을 알아듣고, 그가 내려놓아 신체가 정화됐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온몸이 가뿐해졌으나, 그는 이제야 병을 제거하기 시작해, 이제야 괴롭기 시작한다. 매번 학습반에 모두 이렇게 뒤떨어지고 오성이 좀 차(差)한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정황과 마주치더라도 모두 정상이다.”[1]
처음에는 목이 아팠고 저녁때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콧물을 흘렸으며 독감 증상처럼 몹시 괴로웠습니다. 이때 집에 있던 산후 도우미가 다음 사람의 아이가 일찍 태어나 먼저 가게 됐고 제가 새로 초빙한 가정부는 비자를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갑자기 저 혼자서 해야만 했습니다. 매일 밤 열이 나고 잠이 오지 않다가 낮이 되면 열이 내렸습니다. 혼자서 아이 둘을 돌보고 밥을 하며 빨래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아직 이런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제가 느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뉴욕으로 가는 그날이 왔습니다. 저는 남편과 두 아이를 데리고 5시간 걸리는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갔습니다. 비행기에 탄 순간부터 시작해 남편은 줄곧 저에게 불평했고 호텔에 도착해서까지 불평했습니다. 저는 병업 소업 중인 몸을 이끌고 이미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으나 남편은 저를 놔주지 않고 계속 제게 잔소리를 했습니다. 당시 법공부에 있어서 정진했기 때문에 남편이 저를 도와서 소업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입으로 반박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여전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고 이튿날이 되어서 법회에 가서 사부님을 뵐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기분이 매우 기뻤고 대단히 격동됐습니다!
뉴욕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집이 어질러져 있고 바닥도 매우 더러운 것을 보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괜찮아, 더 참아보자. 가정부의 비자는 곧 나올 거야. 그녀가 깨끗하게 치워줄 거야. 나는 지금 시간을 아껴 법 공부를 하고 연공을 해야 해!’ 결국 또 며칠 기다려 보았지만 비자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몸의 병업 증세는 경감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심해졌습니다. 온 몸이 추워지기 시작했고 관자놀이가 쑤셨으며 안면신경통이 치통으로 이어졌으며, 또 이어서 턱과 인후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통증은 저를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했고 매일 침대에 누워서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이때 남편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소업중이잖아? 아직도 자신을 환자처럼 요양하고 있어? 서둘러 일어나 연공해!” 저는 그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파서 저는 전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저는 수련생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자신도 법회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소업 했으며 한 시간 연공 후 나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듣고 곧바로 기어 일어나 연공했습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지난번 1시간 정공을 연마해본 것은 제가 법을 갓 얻었을 때뿐이었고, 지금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비로소 1시간 연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연공을 마친 후 조금 좋아진 것 같았으나 여전히 아팠습니다. 남편은 또 저에게 동공을 했는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또 서둘러 가서 동공을 했지만 2장 공법만 연마하지 않았습니다. 머리, 얼굴, 치아는 여전히 격렬히 아팠습니다. 한밤중에 저는 아파서 깨어나 생각했습니다. ‘아, 어쨌든 잠이 오지 않으니 포륜(抱輪)을 연마해보자!’ 신기한 것은 포륜을 연마하고 나서 통증은 정말 즉시 많이 줄어들었고 저는 편안하게 하룻밤을 잤습니다.
이튿날이 되어서 또 아프기 시작했고 극심한 통증을 참으면서 저는 매우 지저분한 집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득 빨래도 하고 밥도 해야 했으며 아기도 돌봐야 했습니다. 남편도 뉴욕에서 돌아온 후 병이 나서 아무 일도 돕지 못한데다가 끊임없이 저를 나무랐습니다. 이때 정말 너무 고통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반복하며 격렬하게 2주간 아팠습니다.
이 2주 동안 저는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안정적이지 못했으나 나중에는 진정하게 제가 사람들 속에서 이렇게 많은 업을 지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조금만 감당하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향후에 큰 병을 얻었거나 또는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업력의 두려움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고 반드시 잘 수련해 일체의 집착을 제거해 없애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이번 생에 이 법을 위해 온 것입니다!
한 달 동안의 병업을 감당하고 또 집안일에 아이를 돌보는 일까지 더해져 저의 몸과 마음이 지쳐 심지어 너무 슬픈 나머지 죽고 싶을 정도였지만, 이 일을 겪고 난 후 저는 사람 전체가 환골탈태한 것 같았습니다. 문제를 생각하는 출발점, 일에 부딪힌 것에 대한 이해가 마침내 대법에서 출발해 생각할 수 있었고 마음의 용량도 확장되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지금 돌아와 다시 새롭게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공부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이미 이렇게 높게 이야기하셨던 것입니다! 이치와 언어가 명백했습니다!
이전에 시간이 많을 때는 오히려 수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수련을 하고 싶어도 시간을 내야 합니다. 집안 가정부의 비자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아 저는 온 종일 스케줄이 꽉 차 있어,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싶어도 시간을 짜내야 합니다. 이 역시 저의 돌파가 필요한 부분으로, 안일한 마음을 제거해 잠을 덜 자고 시간을 짜내야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새롭게 대법을 얻어 진심으로 수련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원고가 완성된 날부터 갑자기 한 젊은 신수련생이 저에게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함께 법 공부를 하고 싶지 않은지 연락이 왔습니다. 다시 한번 사부님의 자비로움과 사부님께서 곁에서 시시각각 제자를 돌봐주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절을 올려 감사드립니다!
위대하신 사존의 자비로우시고 고생스러우신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6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연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24/3891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