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시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5년부터 아버지를 따라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는데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주 순진한 시절 가장 순정(純正)한 대법을 만났고 그 시기는 가장 행복한 나날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는 즉시 정 속에 잠기며 어린이도 예외가 아니다. 기억에 나는 아주 어릴 때 사촌 여동생을 보기 위해 아주 먼 길을 걸어갔다. 그 아이를 한 번 보기 위해서 그랬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그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또 친구를 기쁘게 해주려고 내 물건을 기꺼이 주었는데, 이런 배려는 자비가 아니라 우정이었다. 어릴 적 내 마음은 내 마음에 들어와 있는 가족, 친구들의 기쁨과 고통에 따라 움직였다. 그때 나는 이미 인간세상의 정(情)의 그물에 얽혀있었다.
1999년 7.20 이후 나는 180도로 변했다. 장쩌민 집단이 미친 듯이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우리 지역에서 자원봉사로 협조 일을 하던 사람 중 하나였고 우리 가족은 긴긴 18년간 집중적으로 박해받았다. 아버지가 납치되고 친구들이 나를 피하고 어머니가 직장을 잃고 주변 사람들의 뒷공론과 조소, 욕설로, 나는 인간세상의 정이 이기적이고 변화무쌍하며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변고에 충격 받아 마음이 폐쇄적으로 됐으면서도 부모에 대한 정, 친구에 대한 정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반대로 갈수록 커졌다. 다만 토로할 상대가 없어서 표현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나는 이런 착오적인 상태에 깊이 빠졌고 겉보기에는 갈수록 주변 사람과 일에 무관심한 것 같지만 마음속은 오히려 갈수록 정이 더 무겁고 두텁게 쌓이고 있었다.
1. 정 속에서 몰락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결국 이 분출구가 찢어졌다. 대법을 수련하는 어머니는 중국공산당의 박해로 사망했는데 아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는 20여 세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꾸렸고, 나는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정, 의지하는 정도가 더는 쌓이지 못할 정도로 쌓였다. 당시 어머니의 시신을 보며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있었는데 아주 평온했고 떨며 울지 않았다. 아주 이상한 느낌이었는데 그 순간은 고통이 없었다. 나중에 인식하게 되었는데 나는 당시 이미 어머니를 따라 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육친정이 나를 통제하고 있는데 조금도 몰랐고 그것을 따라 심연 속으로 떨어져 자기를 훼멸하려 했다.
그때 나는 그다지 정진하며 법을 공부하지 않고 있었다. 늘 독려하던 아버지도 없었고 속인사회의 형형색색 유혹에 이끌려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대법과 사람의 것,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정에 통제당해 어떻게 자살할지 생각하는데 머릿속에 “연공인은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1]라는 한 단락 법리가 떠올랐다. 자살하려는 생각을 포기하자 육친정의 고통이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냈다. 나는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퇴사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고 눈물이 끊이지 않았고 무슨 물건을 봐도 어머니와 함께 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내 심장은 정의 손에 단단히 잡혀 힘껏 쥐어짜졌는데 나는 고통스러워하며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다행히 사존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매번 이때면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떤 사람은 그의 자녀를 내려놓지 못하여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그가 죽었다 하고; 그의 어머니가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역시 죽었다고 그는 그지없이 비통해 하는데, 그야말로 후반생에 마치 그것을 따라가려는 듯하다.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는데, 이것은 당신을 시달리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형식으로 당신을 편안히 지내지 못하게 한다.”[1] 나는 대법책을 들고 이 단락을 읽었다. 끊임없이 울며 끊임없이 보았는데 이런 상태가 반년 넘게 지속되었다.
어느 날 밤 나는 꿈에 ‘어머니’를 만났다. 비록 인간세상의 모습과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육친정은 이미 나의 혼을 뺐다. 울면서 어머니를 잡고 놓지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나와 함께 갈래?” 내가 대답하자 그녀가 곧이어 칼 한 자루를 꺼내 내 몸을 향해 찔러오는데 나는 피하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며 어머니와 생사를 같이 하려고 했다. 누가 알았으랴. 한 가닥 힘이 나를 바닥에 넘어지게 해 그녀는 나를 찌르지 못했다. 이때 ‘아버지’가 들어오더니 내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내가 어째서 아직 죽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그 칼을 받아서 바닥에 쓰러진 나를 향해 찔러왔다. 곧 찔리려는 찰나 한 가닥 강대한 푸른빛이 내 등에서 비춰왔고 그 이른바 ‘부모’를 향해 비추자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깨어난 후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나를 정마(情魔)의 손에서 구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점차 정 속에서 걸어 나왔다.
2.몰락에서 깨어나다: 여러 가지 고험을 겪어
나는 사고하기 시작했다. 나의 희로애락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누가 내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는 것일까? 지금 나를 주재하는 것이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정(情)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 그렇다면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한 초상(超常)적인 사람으로서는 이런 이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情) 중에서 파생되어 나온 많은 집착심을 우리는 그것을 담담히 보아야 하며 최후에는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1]
나는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성장한 내가 여기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가늠해보았다. 결국 고달픔인가 아니면 즐거움인가? 회사업무와 생활이 순조롭거나 혹은 어렵고 겹겹이 좌절될 때 도대체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쁜 것인가?
바로 이때 여러 번 박해 당했던 아버지가 또 납치되었다. 빈 집에 나 혼자 남았다. 경찰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집을 수색하러 온다고 했고 나는 친척집에 찾아가 대책을 상의하려 했다. 그러나 친척들은 사악한 공산당의 편에 서서 대법을 반대하는 강한 태도를 보였고 심지어 내 앞에서 사부님을 욕하고 대법을 욕하고 나의 부모님을 욕하면서 나와 관계를 끊겠다는 기세였다. 이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고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들을 보면서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고 그들과 크게 다퉜다.
그리고는 울면서 집으로 달려가 사부님 법상 앞에 꿇어앉아 통곡했다. 날이 저물 때까지 울고 있는데 갑자기 사부님의 시구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 세상 고생 겪을 대로 겪나니 세간 벗어나면 부처로다”[2] 나는 흐느낌을 멈추고 한 번 또 한 번 외웠고 정념이 나올 때까지 계속했다. 나는 비로소 자신이 육친정에 이끌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자신의 친척들이 모두 우리 이 쪽에 서지 않고 이렇게 오랜 세월 악당 그 쪽에 서서 우리를 상관하지도 않은 것을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나고 억울했다. 사실상 여전히 그들을 친척으로 여겼고 구도를 기다리는 중생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악한 표현은 배후에서 영체가 통제한 것이지 그들 자신이 대법에 대해 죄를 지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외부 사람들이 동정의 눈빛으로 나를 볼 때 나는 마음속으로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이 일체의 이른바 인간세상의 고난은 나의 정을 겨냥해 온 것이며 나는 마땅히 사람 속에서 걸어 나와야 했다. 사람 중에서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내가 그런 무소유의 경지에 있을 때 갑자기 인간세상의 일체가 모두 뜬구름 같은 것들임을 깨달았다. 당신이 무엇을 소유했었나? 돈, 명예, 감정?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마치 한 가닥 바람처럼 당신에게 불어온 것이고, 그것이 오고 감은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고 진정으로 사람을 개변하는 것은 오직 수련뿐이다. 마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서방의 많은 큰부자․대부호도 생을 마치고 나면, 그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발견하는데, 물질재부(物質財富)란 태어날 때 가지고 오지 못하며,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으로서, 아주 공허하다. 그런데 공(功)은 왜 이처럼 진귀한가? 왜냐하면 직접 당신의 元神(왠선) 몸에 갖고 있어, 태어날 때 갖고 올 수 있으며, 죽을 때 갖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1]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친척에 대한 원한을 점차 내려놓았고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다. 친척이 병이 들어 봐줄 사람이 필요하면 돌봐주었고 명절이면 가서 인사했다. 비록 친척들이 두려운 마음이 아직 있어서 가끔은 또 쟁론했지만 나는 늘 웃으면서 일체를 마주했고 점차적으로 정이 가져온 평형 되지 않는 심리를 제거했다. 대법의 표준으로 일체를 원용하면서 그들의 태도도 잇따라 변화가 있었다.
3. 법 속에서 승화: 자비로 문제를 보다
“제자: 제자는 어떤 때 정말로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수련 중에서 정말로 정(情)을 놓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게다가 마치 수련의 첫 시작부터 고비마다 모두 정의 관(情關)을 넘는 것 같으며 마치 생명 중의 가장 큰 고비가 정의 관인 것 같습니다.
사부: 당신들 여러분은 잘 알아들었는가? 당신은 이 정(情)을 고비로 간주하고 있다. 당신이 내려놓지 못했기에 당신은 늘 지나치기만 했다.(뭇사람 웃음) 그러나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억지로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분명하게 지적해 줄 뿐이다. 당신들이 단시간에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이런 영문이라고 알려줄 적에 당신들은 법 공부를 많이 하도록 하라. 정념이 갈수록 강해질 때, 당신이 정말로 중생에게 자비(慈悲)할 때, 더는 정이 당신을 곤혹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정에 관련된 가족도 더는 당신이 그들에 대해 무정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더는 감정문제로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제고해야 할 문제이다.”[3]
이 한 단락 법에서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명확하게 법리를 지적해주셨다. 최근 몇 가지 일이 발생하면서 나는 비로소 대법의 위력을 체험하게 되었다.
전에 우리 지역에 일어나던 ‘노크행동’을 겪었다. 내가 문을 열어 경찰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일종 자비가 올라왔다. 이후 나는 모든 것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납치된 후 나는 홀로 공․검․법․사 관계자들을 대면하기 시작했는데 그 속에서 가장 큰 저애가 바로 나의 어린 시절 형성된 그들에 대한 원한이었다. 근래 몇 년간 법을 공부하면서 나는 제고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고 나서 모두 내 안을 향해 어떤 부족한 점과 집착이 있는지 찾았다. 원한, 쟁투심, 두려운 마음을 발정념해 제거하고 다음번에는 더욱 잘하고자 했다. 그러나 매번 모두 중생에 대해 자비로워야 하는 법의 표준에는 진정으로 도달하지 못했다.
이번에 6명이 나 한 명을 상대할 때 그들은 여전히 흉악했다. 그러나 나는 이 분쟁 밖으로 뛰쳐나온 것 같았고 그들이 너무 가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그쳐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이 깨어나게 했다. 나는 그 경찰들 중 하나가 내 눈빛을 보고 놀라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런 상태가 법에 동화한 후 승화된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는 대법의 위대함과 자비의 또 한 차례 견증(見證)이었다.
두 번째 일은, 경찰이 우리 집에 소란을 피우러 온 것을 안 삼촌이 갑자기 우리 집에 들이닥친 것이다. 삼촌은 큰소리로 소란을 피웠다. 내 코를 가리키며 고함지르고 나에게 형세를 알라고 했다. 예전이었다면 싸우지는 않더라도 억울해서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연신 웃었다. 마치 이 일 밖에 있는 것 같았다. 삼촌이 어떻게 자극적인 말을 해도 모두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일은 내 어느 마음을 향해 온 것일까? 구세력이 삼촌을 조종해 대법에 죄를 짓게 해선 안 된다. 동시에 발정념을 해서 삼촌을 조종하는 모든 사령과 썩은 귀신들을 제거했다. 내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자 갑자기 삼촌은 태도가 많이 변해 온화해졌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삼촌에게 실제 정세와 함께 진상을 알려 오해를 없앴다. 한참 후 삼촌은 태도가 선해져서 돌아갔다. 삼촌이 간 후 나는 즉시 앉아 30분간 발정념을 하고 안을 향해 찾았다. 삼촌에 대한 정이 의지하는 마음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 나 혼자인데, 무엇만 망가졌다 하면 나는 바로 삼촌에게 전화해 고쳐달라고 했고 평소에는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면 전화도 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삼촌에 대해 정이 무겁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한 번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막 납치되었을 때 나는 늘 아버지가 안에서 배불리 드시는지 따뜻하게 입으시는지 혹형을 당하지는 않으셨는지를 걱정했다. 자꾸 생각하니 정마(情魔)에 시달려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심신이 불안정했다. 법공부를 하면서 서서히 정을 내려놓았고 이 일 자체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집착해서 정의 이끌림에 갈수록 깊이 빠지게 되는데, 아울러 아버지는 수련생이라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모든 걱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할 일은 아버지를 도와 발정념하고 박해를 폭로하며 적극 구출하고 일체 인연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근 몇 년간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정의 집착을 제거한 뒤, 구체적으로 일이 발생했을 때는 냉정해져서 그것에 이끌리지 않고 정념으로 문제를 사고할 수 있고 안을 향해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하면 모순은 항상 사라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모든 기회를 이용하시어 내가 제고하게 하신다는 것을 깊이 안다. 수차례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점차 대법에 동화되었고 인간세상의 정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에 빠진 것의 고통을 알 수 있다. 원래 인간세상의 이른바 행복과 즐거움을 다시 생각해보면 모두 정에 이끌려 생겨난 일종의 감지(感知) 가상이다. 오직 끊임없이 법을 공부하면서 하나하나 자기를 바로잡아야 벗어날 수 있고 비로소 정이 없는 경지의 미묘함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비로소 대법의 위대함과 수승함을 체험할 수 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고생’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18/3561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