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선택은 바로 그 일순간에 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신이 시련에 부딪혔을 때 어떤 때는 수련생에게 말하지만 어떤 수련생과 이야기하는가의 결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저는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신체가 박해당하는 심각한 병업 상태가 나타나 저는 한 수련생 집에 가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이야기 했습니다. 수련생은 듣고 말했습니다. “당신들과 같은 이런 사람(줄곧 확고하게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뜻함)들이 어떻게 박해당해 죽을 수 있겠어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모두 구세력이 소란을 피우는 거예요. 그것을 인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뜻밖에도 그녀가 말한 후 저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에게 정념이 생긴 것을 느꼈고 몸도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또 한 번은 한동안 저는 단것을 먹기만 하면 머리가 아파 가능한 먹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수련생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날이 매우 더워 그는 차가운 음료를 사러 갔습니다. 저는 그에게 나는 단것을 먹으면 머리가 아플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잠시 후에 그가 돌아왔고 사 온 것은 단것이었습니다. 그는 “차가운 음료가 달지 않은 것이 어디 있어요? 수련하는 사람이 단것을 먹고 어떻게 머리가 아플 수 있겠어요? 마시세요.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나서 가져와 마셨고, 결국 머리가 아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은 제가 말했던 “단것을 먹으면 머리가 아플 것”이라는 말을 결코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고, 내심에서도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이 한마디 말은 단번에 사악한 박해를 해체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하여 저는 무슨 시련이 있을 때 수련생과 어떻게 말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과거를 회상해보면, 수련생이 번거로운 일에 부딪혔을 때, 어떤 수련생은 “안으로 찾아봐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다음 수련생에게 한 무더기의 단점을 지적해주고 특히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수련생은 평소에 이 수련생에 대한 견해가 전부 되돌아 나오게 되는데 정념으로 대하는 것이 어디에 더 있겠습니까.

한 수련인이 어떻게 잘못이 없겠습니까? 수련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구세력은 와서 좀 상관하는데 그러면 사부님과 대법을 어디에 놓았습니까? 게다가 구세력은 악한 수단, 사람을 처벌하는 수단만 사용하여 그것 이하의 생명의 부족함을 대할 줄만 알며 다른 것은 그것도 모릅니다. 사부님께서는 정법을 하시려 하며 일체 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으려 하시는데 어떻게 그것들이 함부로 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에 부딪히거나 또는 듣게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내보낸 일념 속에 사람을 처벌하고 사람을 제재하는 잠재적인 사유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번은 속인과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저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교란을 배제하고, 노력하여 안으로 찾았습니다. 저는 자신이 누군가 자신에게 충격을 주는 일에 부딪혔을 때, 특히 상대방이 정말 매우 잘못했을 때, 머릿속에 이 속인이 업보를 받거나 곤두박질치는 것을 바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생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가 생겨났습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문제를 생각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지만, 긍정적인 생각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법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하여 업보를 받거나 곤두박질치는 것은 합리적이고 법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법에서 인식하는 시간을 거쳐 깨닫게 되자 내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켰습니다. 누군가 나쁜 일을 하는 것을 보거나 들었을 때 속인은 모두 대법이 홍전하는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대법의 홍대한 흐름 속에서 변화할 수도 있고, 수련생에 대해서는, 그(그녀)가 법을 배우면서 사부님께서 도와주셔서 어느 날 갑자기 변할지도 모른다. 정념이 올라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되어 시정해 제고하여 올라오게 하려고 상대방이 표현해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념 또한 검증되었습니다.

한 수련생이 교도소에서 여러 해 동안 있다가 나왔지만, 사람을 구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수련생은 매우 화를 내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그를 평가할 자격이 없는 것은 첫째, 저는 그가 걸어 나오는 것을 위해 노력을 한 적이 없고 그를 위해 어떠한 도움도 준 적이 없었다. 둘째, 저는 그에게 그 해에 그렇게 큰일을 했으므로 깊은 기반이 다져져 있다고 느꼈다. 사람의 사상 전환은 전후 한순간의 일이므로 오직 그가 법 공부만 한다면 어느 날 그의 정념이 올라오게 되어 그는 곧 용맹정진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고 나서 며칠 안 되어 그가 갑자기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정말 한 번 바뀌더니 매우 정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구를 질책하기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구우주(舊宇宙) 생명의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일종 표현으로, 잠재의식 속에 자신은 좋고 다른 사람은 자신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에게 좀 성과가 있으면 이 점은 표면상으로 언행 중에 표현됩니다. 사실 부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자비는 사악으로 대체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체를 타인을 위하여 생각하는 정법정각(正法正覺)의 각자입니다.

며칠 전 불법적으로 며칠 동안 수감되었다가 돌아온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모함한 사람이 어떠어떠하게 사악하다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즉시 악보를 받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청을 드려보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청을 드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예수와 현장(玄奘)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하루는 현장이 현지의 80여 명의 사람과 무리를 지어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따라 아야목거국(阿耶穆佉國)으로 갔습니다. 도중에 해적선을 만나 재물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또 한 명의 남자를 죽여 제사를 지내려고 그들 중에 현장을 골랐습니다. 현장이 선을 권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동료들이 애걸복걸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해적들은 제단 수리를 끝내고 현장을 제단 위로 압송했습니다. 현장은 해적에게 자신에게 시간을 좀 달라고 부탁하여 앉아서 스스로 입적하도록 했습니다. 해적들은 벌써 현장의 기개와 침착함에 겁을 먹고 스스로 물러갔습니다. 제단 아래에 있던 동료들은 울음을 터뜨렸으나 현장은 성심으로 불(佛)을 읽고 왕생(往生)을 발원하였습니다. 미륵진경을 듣고자 하세한 그는 살해 하려한 해적들을 구도했습니다. 이 염두가 한 번 일어나자 삽시간에 검은 바람이 사방으로 일었고 강의 파도가 하늘로 치솟아 배가 거의 뒤집히려 했습니다. 해적들은 놀라서 무릎을 꿇고 하늘에 절을 하며 뭇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 화상(和尚)은 누구인가? 어떤 내력이 있는가?” 어떤 사람이 해적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동토(東土) 당나라에서 불경을 구하러 온 법사이다. 천신이 노하셨는데 아직도 참회하지 않는구나!” 해적들은 재빨리 현장에게 절을 했습니다. 이때 현장은 단정하게 앉아 입정했고, 자신이 수미산(須彌山)의 삼층천(三層天)을 날아지나가 불계(佛界)의 장엄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장은 출정 후, 그들에게 법을 개시하여 보여주었고 그들에게 일시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무궁한 악과(惡果)를 심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해적들은 전부 오계(五戒)를 받고 바른길로 귀의(歸依)하였습니다.

예수가 박해 당하던 첫날 밤, 하느님 여호와께 못 박혀서 죽지 않으면 안 되는지 간청을 드렸습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위해서 간청을 드린 것이 아니라 유대 민족 및 그들의 자자손손을 위하여 간청을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가 형장으로 가는 길에 한 노부인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자 예수가 말했습니다. “저를 위해 울지 마시고 당신들의 자자손손을 위해 눈물을 흘리세요.”

한 각자, 한 대자비 경지의 사람이 시련 속에서 생각한 것은 절대 자신의 득실이 아닌 타인의 득실이며, 심지어 자신을 박해한 사람의 득실입니다. 박해가 발생했을 때, 수련생이 먼저 생각한 것이 중생이 대법에 대하여 범하게 될 죄이고, 구세력에 조종당한 세인들에 대하여 생겨난 무한한 자비라면 박해는 반드시 해체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지 수련생이 박해가 발생한 것을 들은 후, 첫 일념이 모두 중생에 대한 무한한 자비라면 박해도 반드시 해체될 것입니다. 그러나 박해 발생 후, 수련생이 내보낸 사상은 종종 각양각색입니다.

한 수련생이 진상을 이야기할 때, 통제되어 악을 행하려는 사람을 여러 차례 만나면 수련생은 모두 사부님께 구세력이 이 생명을 이용하여 대법제자에게 죄를 범하지 않게 해달라고 청을 드리며, 사부님께서 그를 구해주실 것을 청을 드리는데 결과는 모두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1]입니다.

어려운 가운데 사부님께 청을 드리지만 내보낸 것이 정념이 아닐 때면 사부님과 바른 신들께서는 조급하여 애를 태울 뿐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부딪힌 일체의 일은 모두 하나의 선택이며 선택이 각자의 자비를 펼쳐 보이는지 아니면 사람의 집착을 강화하는지 사실은 바로 그 일순간에 있습니다.

층차의 한계로 적당하지 않은 곳은 자비롭게 시정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6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22/38902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