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해외에 나와 있는 중국 수련생과의 교류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연속 두 차례 설법에서 해외에 나온 중국 수련생의 행위에 대해 말씀하셨다. 올해 뉴욕법회 설법에서는 “그러므로 대륙에서 양성한 많은 생활습관과 행위방식을 갖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국제사회 중에서 반드시 자신을 개변해야 한다. 내가 이것을 이야기함은, 현재 중국대륙에서 나온 수련생이 갈수록 많아져 원래 국제사회에 있던 대법제자의 인원수를 초과했고, 심지어 이미 주체로 되었기 때문인데, 그럼 당신들은 더욱 마땅히 이런 것을 주의해야 한다.”[1]라고 하셨다.

나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성년이 된 이후 해외로 나와 학교에 다닌 대법제자다. 지금은 미국 회사에서 근무하며 주위 환경 대부분은 미국인이다. 나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써냄으로써 수련생과 교류하고 해외에서의 일부 부적절한 행위와 견해, 해외 일상생활이나 공공장소 활동에 참여할 때 어떻게 더 나은 행동을 하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더 잘 실증할 수 있을 것인지 토론해 보고 싶다.

1. 기본예절

내가 서양인을 접촉하고 그들의 예절 행위를 관찰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중국에서 양성된 일부 부주의한 습관과 행동은 일종 이기심이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비록 어떤 때는 서양인의 예절이 겉치레일 뿐이기도 하지만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사실 더욱 내심에서 우러나와서 할 수 있고 소소한 것을 더욱 중시할 수도 있다. 수련인으로 말하면 이러한 예의범절은 사실 우리가 수련 중에서 ‘위타(爲他)’의 심성을 체현한 것임과 동시에 속인 이 한 층의 법을 원용(圓容)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서양인은 낯선 사람과 몸이 부딪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사실 이것은 매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장소에서 만약 다른 사람 옆을 지날 때 자리가 비교적 좁아 타인을 부딪칠 것 같다면 일반적으로 모두 “실례합니다(Excuse me)”하고 말해서 상대방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이 필요함을 의식하게 한다. 상대방이 들으면 최대한 자리를 비켜줘 당신이 지나갈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이전에 퍼레이드에 참가하려고 준비할 때 행렬 옆에서 바삐 수련생과 문자로 연락하는데 누군가 갑자기 내 몸 뒤에서 두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아 나를 한쪽으로 밀치고는 상대방에게 지나가게 했다. 만약 이곳이 서양사회라면 아무런 조짐 없이 갑자기 낯선 사람의 신체와 부딪치는 것은 매우 예절에서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해되지도 않는다. 가끔 나는 관찰하기도 하는데 어떤 중국인은 행인 옆에 작은 틈이 있음을 보고 몸을 옆으로 해서 지나갈 수 있다 싶으면 곧 몸을 옆으로 하고 허리와 다리를 구부리고 곱사등이처럼 하고는 간신히 밀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사실 매우 보기 흉하다. 고대 중국은 ‘예의지국’이라 했다. 많은 기품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비교적 계층이 높은 사람이었고 보통은 이러한 볼썽사나운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일부 수련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사실 그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서양인은 공공장소에서 소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전에 영국에서 서양인 수련생과 함께 집마다 방문해 션윈 홍보책자를 걸어두었던 일이 있었다. 우리가 일을 다 끝냈을 때 그 서양인 수련생은 길가 맞은편에서 나를 차에 태우려 했다. 그는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줄곧 인내심을 갖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나의 주의를 끌었다. 당시 나는 중국에서 양성된 일부 행위가 얼마나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타인의 느낌을 개의치 않는 것인지 그 순간 단번에 의식할 수 있었다.

일부 중국인은 간혹 전화 받을 때 소리가 매우 크거나 음악을 밖에서도 들리도록 크게 틀기를 좋아한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공공장소에서 서양인이 음악 감상을 하거나 전화를 받을 때 보통은 큰 소리가 나지 않게 하며 모두 이어폰을 꽂아 타인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일부 소소한 일도 말한 김에 언급하겠는데 서양인은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면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며 만약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붙잡고 뒷사람이 따라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사부님께서도 설법 중에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만약 다른 사람 면전에서 문을 ‘꽝’ 소리 나게 닫는다면 매우 예의가 아니다.

서양인은 노인, 어린이, 환자, 장애인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다. 문을 여닫고, 승강기에서 내리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줄을 설 때 이런 사람들을 보면 특별히 배려한다. 그러나 일부 중국인은 일할 때 매우 조급한데 줄을 서고 문을 여닫는 것도 급하고 바쁘며 옆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당신들이 우연히 만난 사람, 생활 중에서 만난 사람, 일하는 중에서 만나는 사람에 대하여 여러분은 모두 진상을 알려야 한다. 바로 인간세상에서 총총히 한번 지나가는 중에 미처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자비를 상대방에게 남겨주어야 하고, 마땅히 제도 받아야 할 이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며, 인연 있는 이를 더욱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평소 공공장소에서의 이런 사소한 일도 사실 대법제자의 ‘위타’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설령 말하고 진상을 알릴 기회가 없더라도 최소한 이 사회에서 선(善)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남겨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입을 자신의 팔꿈치 안으로 가리면 가장 좋으며 이렇게 하면 침이 튀어 나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서양인은 보통 이런 상황이나 또 트림을 하면 “죄송합니다”하고 말해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표시한다.

2. 감사와 요청하는 말을 배우다

한 번은 나와 동료가 함께 식사하러 갔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올 때 동료는 매우 신사적으로 뒤에서 서두르는 중국인 여성을 위해 문을 받치고 있었다. 그 여성은 바삐 우리 옆을 지나가며 내 동료를 본체만체했는데 전혀 어떤 감사하는 뜻이 없었다. 동료는 당시 좀 화를 내며 “중국인은 감사의 말도 할 수 없나요?”라고 말했다.

사실 서양인은 일상생활 중에 감사를 항상 입에 달고 산다. 남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면 감사의 말을 잘하며 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I really appreciate)”라고 말한다. 서양에 추수감사절이 있듯 우리 회사는 직원에게 감사하는 주간이 있다. 비교적 좋은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우호적이며 서로 도움을 주는 동시에 서로 감사한다. 중국에서처럼 서로 경계하며 남이 자신을 돕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상대가 자신을 속이려 한다고 의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일상생활 가운데 타인이 당신에게 도움을 주면 감사의 뜻을 표현해도 괜찮다.

내가 막 출국했을 때 한 수련생이 상대방의 말에 대답하는 문제에 대해 나에게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당신에게 “물 한 잔 드릴까요?”하고 말하면 필요할 때는 “예, 주십시오(Yes,please)”라고 대답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저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I’m OK,thank you)”하고 말하면 된다고 가르쳐줬다. 사실 이 속에는 한 가지를 나타내고 있는데 서양인이 말할 때 한편으로는 감사의 마음이 넘치는 표현이고, 다른 한편으로 거절할 때 대부분의 경우는 직접 강하게 ‘아니(No)’라고 해서 사람을 천리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완곡하게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좋은 뜻으로 “저는 됐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말하는 것이다.

3. 말할 때의 어투

내가 구어(口語)를 연습하며 서양인과 사귀는 과정 중 느낀 아주 큰 차이점은 중국인의 말투는 비교적 명령조라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강제하는 태도가 좀 숨어 있는 반면 영어는 비교적 좋게 표현되며 통상은 의견을 구하는 식의 어조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이 맨 처음 영어를 배울 때 구어 속에 이렇게 말투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이런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이 요리를 한 접시 주세요. 물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하지만, 서양인의 구어에서는 통상 남이 원하는 것을 물어볼 때 “이걸로 주시겠습니까? 물 좀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며, 게다가 “부탁합니다(please)”라는 말을 붙이는데 이것은 비교적 겸손한 표현이다. 내가 이런 표현방식의 차이를 의식했을 때 자신의 사유 깊은 곳에 공산당 문화의 영향에 의한 ‘자신이 높고 남들과는 다르다’는 태도임을 알아차렸다. 남에게 명령하려는 생각은 어쩌면 일부 중국인들이 감사할 줄 모르고 말투가 딱딱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일하면서 주의하지 않아 동료를 거스르는 일이 있게 되면 동료는 우회적으로 내게 알려주는데 이는 중국인이 말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나 자신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면 직접 당신 어디가 잘못됐고 마땅히 잘해야 하며 고쳐야 한다고 알려주는 쪽인 것 같다. 하지만 동료는 내 문제를 지적할 때 먼저 나의 장점을 칭찬한 다음 어떤 점을 더 주의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지적한다. 이런 완곡한 표현방식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잘하기를 바라는 일종 격려의 마음이지 한두 가지 잘못으로 전체를 매도하는 것이 아니며, 흔히 더 좋은 효과를 일으킨다.

4. 서양인은 단순하지만 어리석지 않다

올해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말씀하셨다. “국제사회의 사람들을 아주 간단하다고 여기지 말라. 그들은 비록 사상(思想)이 간단하지만, 바로 사상이 간단할수록 더욱 명석하기 때문에 그가 문제를 봄은 더욱 투철하다. 그는 단지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 뿐이고, 단지 그렇게 말하지 않을 뿐인 것이며, 마음속으로는 매우 잘 알고 있다.”[1]

나는 서양인과 사귀면서 이 점을 절감했다. 일부 중국인은 아마 서방사회가 제정한 규칙에 결점이 많고 허점이 많아 빈틈을 파고들 수 있는데 서양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사상이 너무 복잡해 항상 작은 이익을 점유하려 하고 일하면서 허점을 노리기 때문이다.

간혹 물건을 반품할 때 특히 이런 점이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이전에 액체 화장품을 샀다가 나중에 전혀 쓰지 못하는 것임을 알고 마트에 갖고 가 반품했다. 갖고 가면서 이 화장품을 내가 쓰지 않았음을 판매원이 알아보지 못하면 반품하면서 진짜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특별히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판매원은 보지도 않고 직접 내게 환불해줬다. 당시 깨달은 것은 서방사회의 규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빈틈을 노린다면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잃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 작은 이익을 취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이후에 큰 번거로움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내가 일하는 중에 만난 서양인들을 보고 나는 그들이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더더욱 깨달았다. 일부 서양인, 그들의 큰 눈을 보고 있으면 매우 단순한 것 같지만 사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듯 진선인(眞善忍)에 접근할수록 우주 특성과 더욱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관찰한바, 일부 서양인의 직감은 매우 정확한데 어떤 때 당신과 접촉하면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그들은 다 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잡한 사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신이 긴장한 것인지 아닌지, 당신의 정서가 즐거운지 슬픈지, 당신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 당신이 그들을 속이려 하는지 등등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내가 이 점을 의식했을 때 자신은 반드시 수련을 잘해 반본귀진(返本歸眞)하겠으며 중국에서 양성된 그런 복잡한 사상을 버려야 되겠다고 깨달았다.

5. 평온하게 일하며 완성을 서두르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이 대륙에서 나온 후, 국제사회에 와보고는 사람이 어찌 모두 이렇게 간단한가라고 한다.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일을 함에도 모두 매우 평온하다고 한다.”[1]

나는 이전에 한 동료가 이익을 쟁취하려고 이 거래가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야 한다며 눈뜨고 거짓말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이익을 빼앗긴 동료가 이 갈등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화가 났지만 어떻게 이리 못 됐지 하고 격분했다. 욕하지는 않았고 최대한 자신의 성질을 꾹 참았으며 일촉즉발 폭탄과 같지는 않았다. 자신의 정서를 잘 조절한 다음 상대방과 계속 이야기해 볼 것이고 만약 상대방이 반응하지 않으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은 사실 많은 경우 갈등에 부딪히면 불을 갖다 대기만 하면 곧 붙어버리는 것과 같은데, 어떤 때는 자신의 한계에 이르렀다고 느끼며 매우 화를 낸다. 동료와 비교해도 이 점에서 속인보다도 훨씬 부족하다. 또한 공산당 문화의 영향을 받아 갈등이 사상 속에서 확대되고 매우 첨예하게 변하며 간혹 아주 작은 일도 극단적으로 확대한다. 하지만 서양인은 갈등을 처리할 때 되도록 갈등을 약화시키며 어떤 때는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갈등을 풀어나간다.

나는 이후 서서히 자신의 심태를 조절하면서 수양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성질을 있는 대로 다 부리지 않으며 훨씬 더 많이 자신의 심태를 조절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시에 자신이 흉금을 열면 공산당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흉금이 좁아질 수 없고 일리가 있다고 해서 항상 너무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속인 중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 문화 층차(層次)가 높은 사람들도 함양(涵養)을 말하며 남과 견식을 같이하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 연공인(煉功人)임에랴? 그것이 어찌 나약한 것이겠는가? 그것은 대인지심(大忍之心)의 체현이고, 그것은 견강한 의지의 체현으로서, 오로지 연공인만이 이런 대인지심이 있을 수 있다고 나는 말한다.”[3]

이와 유사한 상황이 내 신변에서 발생했다. 중국 수련생과 대만 수련생이 접촉할 때 대만 수련생이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중국 수련생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가끔 화가 날 때 나는 언제나 하고픈 말을 다 뱉어버려야 시원하고 상대방을 욕해야 분이 풀린다. 하지만 사실 수련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참음을 해내지 못했고 심태가 비교적 극단에 치우쳤다.

이런 평온하지 못한 마음은 나 자신이 깨닫기로는 중국의 고압적이고 조급한 환경에서는 사람 마음이 항상 팽팽하게 긴장돼 느슨하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매일 잠시도 쉬지 않고 정신없이 바쁜 것 같지만 정작 진정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깨달아 수련하면서 생활하지 못하고, 자신과 주위 환경의 느낌도 알지 못한다. 마음이 항상 이런 긴장한 상태에 처해 있을 때 어떤 불순한 상황에 부닥치면 폭발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나 자신의 이해이며 다른 사람은 다른 요소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막 일을 시작할 때 급하게 이루려는 마음이 특별히 두드러졌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라 무슨 기능이든지 다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했기에 머릿속은 온종일 ‘언제 다 배우며, 언제쯤 성적을 좀 낼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기능을 익힐 것인가에 주의력을 집중하는 것 같지 않았고 항상 까닭도 없이 기교를 배워야 한다고 조급해했다. 나중에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서야 나는 천천히 걸음을 늦추기 시작하며 매 하나의 절차를 착실하게 배웠고 주의해야 할 세부 사항을 중시했다. 매번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급하게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일깨웠다.

사실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자신은 착오를 범하기에 모르는 문제를 만나면 풀이 죽었다. 하지만 내 동료는 항상 좋은 생각으로 나를 격려하며 이번엔 배우는 과정이었고 다음번엔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사유를 배우고 나서 자책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고 차츰차츰 성숙의 과정으로 나아가며 성장하고 능숙해졌다. 만약 평온한 마음으로 천천히 쌓아가며 이 과정을 자세하게 알게 된다면 실제로 아주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작업 중에 드디어 결실을 좀 얻게 됐다. 고객 서비스도 갈수록 좋아지고 업무도 갈수록 성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성과는 신경쓰지 않는 사이에 갈수록 잘하게 됐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4]라고 하신 바와 같았다.

6. 근무도 생활의 일부분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중국인은 큰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국제사회의 사람, 그들이 비즈니스 할 때의 심태는 어떤 모습인가? 그가 큰 비즈니스를 하든 작은 비즈니스를 하든 그는 그것을 자신의 생활 일부분으로 생각하며 그는 몸과 마음을 다해 그것을 잘하는데, 아주 멀리 내다보고 한다. 이런 심태는 일하는 태도를 좋게 하고 생산제품의 질을 좋게 한다. 많은 대륙인이 하룻밤 사이에 부자가 되려 하며 일을 함에 멀리 내다보고 계획하지 않는데, 다른 국가의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영하는 것은 일이자 자신의 생활로서 정상적인 보수만을 얻으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그런 생각이다.”[5]

근무 환경에서 나는 비즈니스가 잘 되든 못 되든 비교적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는 마음가짐을 동료에게서 배웠다. 우리에 대해 말하면 물론 전문적인 기능상에서는 갈수록 잘하지만, 회사와 제품상 한계가 좀 있어서 모든 고객의 수요를 만족시켜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일부 비즈니스가 이런 한계로 인해 성사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일부 상가들처럼 감언이설로 온갖 방법을 다해 거래가 이루어지게 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 거래가 성사될 수 없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보통 유감의 말과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우리 회사가 이후 이 방면에서 개선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서비스 조항이 없네요. 만약 이후 회사가 이런 서비스도 제공하게 되면 최대한 빨리 제 때에 알려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한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도 길게 보고 끈기 있게 해나가면 고객에게 우리가 필요할 때 이전의 우리 서비스에 대해 좋은 인상을 주고 있기에 자연히 우리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7. 질투심

허세, 과시, 허영은 지금 대륙에서는 아주 보편적인데 깊게 파헤쳐 보면 배후는 질투심이다. 서방사회는 이 사람이 무슨 차를 몰고, 무슨 명품 옷을 입었으며, 아이가 무슨 대학에 다니고, 가방과 화장품을 사는데 얼마가 들었고 등등을 알아보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서로 간에 자신의 인생 경험과 어디를 갔었으며 무슨 견문이 있고 가족 간에 재미있었던 일 등등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자연적인 사회에서는, 사람이 모두 공통적으로 평온하고 착하며, 마음이 열려 있고, 사람을 경계함이 아주 적은 정상적인 생존상태가 있는데, 이것이 정상이다. 사당이 있기 전 중국인의 과거 역시 이러했다.”[6]

내가 처음 서방사회에서 일을 시작할 때 자신의 언어가 안 되고 능력이 부족한데 영어가 모국어인 동료와 경쟁할 수 있을지 좀 걱정했다. 점점 더 접촉할수록 내 자신감의 많은 부분은 동료의 격려로부터 온 것이었다. 판매는 함께 하더라도 일부 판매 실적은 경쟁인데 내 동료는 조금도 인색하지 않게 자신의 기능을 나에게 전수해줬다. 이것은 나의 관념 속에 ‘항상 하나는 남겨뒀겠지’하는 의식을 깨뜨려 버렸다. 동료가 이렇게 조금도 남김없이 훌륭한 기능을 우리에게 나눠주자 우리의 근무 환경 분위기도 갈수록 좋아졌다. 내 뒤로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나도 동료가 숨긴 것 없이 내게 도움을 준 것처럼 했다. 신입사원이 일부 기능을 습득한 후 적극적으로 내게 피드백을 줬는데 이는 우리 전체 팀의 협력을 더욱 원활하게 했다.

내가 성적을 좀 내자 동료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내가 처음 일할 때 영어로 말하는 것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동료가 나를 바라보는 각도가 중국인처럼 습관적인 사고로 단점, 결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장점을 본다는 점이었다. “여기에는 너만 중국어를 할 수 있어서 이곳 시장에 이처럼 많은 중국인 전부가 너에게는 기회이고, 너는 성격이 좋아서 분명 고객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라고 하는 등등이었다. 서방사회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질투심을 더 의식하게 됐다. 사람을 볼 때 항상 상대방의 결점을 보며 장점을 홀시한다. 한 사람의 결점을 볼 때 단번에 요절을 내버리며 이 사람은 이제 더는 구제할 가치가 없는 것 같다. 문제에 부딪히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하며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깊게 파헤쳐 보니 질투심 뒤에 있는 이기심과 증오가 사람 마음을 좁게 하고 사고를 트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동료는 다른 사람이 그처럼 기량을 갖출 수 있는지 따지지 않고 흉금을 넓게 갖자 오히려 자신이 노력한 것에 비해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수련생과 더 많이 교류할 수 있고, 우리가 서방사회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수련하는 중에 향상하고 주의해야 하는 문제들을 통해 우리의 수련환경을 더 잘 지키고 보호할 수 있으며, 동시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 세계 사람을 더 많이 구하라고 하신 요구에도 도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부적절한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6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심성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3/38818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