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올해 뉴욕법회에서 설법하실 때 한마디 하신 말씀이 있다. “나는 명확하게 당신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사부의 초기 배치는 바로 금년에 박해를 끝내는 것이었으며, (뭇사람 열렬한 박수) 전후 20년이다.”[1]
현지의 적지 않은 수련생이 본 후 매우 흥분했고 많은 사람이 만나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깨우쳤어요? 올해 종결될 것 같나요?” 또 어떤 수련생은 말했다. “얼른 자신을 잘 수련해요. 이번에는 정말 가게 됐네요.” 모두 추측하고 간절히 바라면서 설맞이 용품을 준비하고 폭죽을 사며 새 옷을 사고 새해가 오기를 기다린다.
개인적으로 이런 마음은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옛사람들의 소도(小道) 수련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큰 사심(私心)인가? 대법제자는 사명이 있는 것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과 법을 수호하려는 큰 염원으로 세상에 오게 됐다. 비록 정법이 최후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생각해보았는가? 그런 구원을 받지 못한 중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가면 모두 사부님께 미룰 것인가? 수련이 이미 끝났고, 자신이 끝까지 참고 견뎌냈다는 이 염두는 바르지 않은 것이다!
이 기간, 현지에서 수련생들에게 매우 영향 주는 한 가지 일이 발생했다. 예전에는 협조인이 이동식 진상 저장디스크를 만들려면 디스크 한 개에 20여 위안(한화 약 3400여 원) 2000개를 만들려면 4만 위안(한화 약 682만 원)이 필요했다. 수련생 사이에 견해차가 컸고 돈을 모으기 어려워 이 일은 미뤄지게 됐다. 이번에 사부님께서 “사부의 초기 배치는 바로 금년에 박해를 끝내는 것”[1]이라고 말씀하시자 협조인은 모두와 교류하면서 “금년에 박해가 끝납니다.”라고 말했고 수련생들도 대부분 호응했다.
협조인이 말했다. “사부님께서 올해 종결된다고 하셨는데(편집자 주: 이는 사부님의 원 말씀이 아니다.) 여러분이 돈을 남겨서 뭐하겠습니까? 지금 안 쓰면 또 기회가 있겠습니까? 장래에 돈은 뭐가 될까요? 폐지입니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세요.” ‘교류’를 통해 어떤 사람들은 아꼈던 돈을 쓰기로 했다. 현장에 있는 수련생들은 수다스러웠고 어떤 수련생이 말했다. “누가 수중에 몇만 위안(한화 약 몇백만 원)의 저축이 없겠습니까? 더는 꺼내지 않으면 정말 폐지가 될 겁니다.” 어떤 수련생은 감개무량하여 말했다. “돈이 쓸모없게 될 테니 서둘러 써버리죠.” 어떤 수련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수련생에게 자극적인 말을 했다. “누가 사람이 되고 싶으면 여기에 남아요.” 마치 돈을 내어 대법 항목을 하지 않으면 속인이 되어 원만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말속에 수련생들의 수련상태와 경지가 반영되어 나왔다.
개인적으로 이동식 저장디스크 제작 항목을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평온한 마음으로 계획적이고 이지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해외에 나간 중국수련생들의 당(黨)문화 표현을 이야기하실 때마다 나는 그것은 다른 사람을 의미하며 현지에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현지 수련생들의 당문화가 여전히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동식 저장디스크 제작에 대해 말하면 모두 ‘하려면 기세 드높게 크게 하고 아니면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어떤 수련생은 말했다. “이동식 저장디스크는 역량이 많으므로 대량으로 해야 합니다. 우선 몇만 개를 만들어서 뿌려봅시다.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 마음속은 ‘종결하게 됐으니 서둘러 돈을 꺼내 써야지 남겨서 뭐 하는가?’였다. 마치 오늘만 살고 내일은 안 살 것 같았다.
또 어떤 수련생은 이전에 협조인이 제기했던 이 항목에 의견이 있었고, 협조하지 않았으며 돈도 내지 않았다. 지금 협조인이 한 번 말하니 태도가 금방 바뀌어 돈을 냈다. 하지만 이런 협조는 법을 스승으로 삼은 협조가 아니고 심성이 제고된 후의 협조가 아니라(단장취의해 말함), 협조인이 곧 종결되고 돈이 쓸모없게 된다고 말하자 서둘러 위덕을 쌓으려고 한 것이다. 수련생들이여, 협조인이 극단적이면 당신도 따라서 극단적으로 될 것인가? 독립적으로 법에서 수련하고 자신의 주견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한 무리가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대륙 사람은 무슨 일을 함에 있어, 무슨 일이든 단번에 가장 극단적으로, 맨 꼭대기까지, 끝까지 해내지 못함을 한스러워하는, 모두 그런 심태이다.”[1], “여러분이 중국에서 양성한 그런 습관은, 글을 쓰든 무슨 일을 하든, 단번에 끝장을 보려고 한다.”[1] 이런 극단적인 방법은 속인이 이해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법도 파괴한다.
사부님께서 2002년 설법하실 때 ‘종결’의 법을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고 이 몇 년간 설법에서도 몇 차례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며, 최근 또 말씀하셨다. 개인적인 옅은 깨달음에 의하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종결’은 한 방면에서는 제자가 시간에 대한 집착 여부를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이 자체가 바로 하나의 관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제자에게 유감을 종결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일깨워주시는 것으로 이 자체가 바로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올해 종결되지 않으면 당신은 상실감이 들 것인가? 앞으로 10년간 종결되지 않으면 당신은 신심이 넘치게 수련해 나아갈 수 있는가? 종결이라는 말이 전혀 없었다면 당신은 이 법이 좋다고 생각하겠는가? 여전히 수련할 것인가? 수련인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사부님의 입장과 대법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해야 하며 언행이 대법에 부합해야만 대법의 한 입자이다.
개인적인 약간의 얕은 견해이며 수련생 여러분들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6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7/3883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