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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수련의 길을 바로 걷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6년에 정식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나는 수련에서 줄곧 끊임없는 고난을 겪었지만, 미혹 속에 있기에 보지도 못하고 그래서 자신의 수련에 대해 느끼지도 못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대법제자가 겪은 박해의 잔혹함도 진정으로 절실하게 체험하지 못했고 느낌과 들은 것에 그칠 뿐이었다. 얼마 전 뼈저린 시련을 겪었고, 심하게 넘어져서야 많은 일을 철저하게 깨달았고 많은 것을 알게 됐다.

1. 가정 고난

2016년 정식으로 수련한 후 처음으로 부딪힌 것은 갈등이 심한 가정 난관이었다. 예전에 줄곧 나를 괜찮게 대하던 가족이 나를 눈꼴사나워했다. 각종 모순이 몰려왔다. 낡은 것이 지나가면 새것이 또 와 한때 압력이 아주 높았다. 처음에 나는 착실하게 수련할 줄 모르는 모호한 상태에 처해 그저 구세력의 박해를 줄곧 부정할 줄밖에 몰랐다. 모든 교란, 고난을 모두 나에 대한 박해로 여기고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울분에 차서 발정념을 했다. 내심은 평온하지 않았다. 후에 모순이 점점 커졌고 가족과의 관계도 점점 나빠졌다. 일파만파의 모순을 피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스스로를 늘 방에 가두고 바깥의 ‘교란’을 차단했다.

당시 수련 상태는 가정 모순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지만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진정하게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수련의 길에서 줄곧 견지했다.

후에 끊임없이 수련에서 사람 마음이 많이 적어졌고 점차 가정에서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그 지나치게 잘난 체하는 ‘자아’를 보았고 구세력에 대한 부정에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하고 법의 요구대로 닦고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존재를 부정하면 악은 자연히 없어진다.

2. 노 수련생이 세상을 떠나다

가정의 두 노 수련생은 모두 1999년 이전에 수련하기 시작했고 나와 함께 생활했다. 이런 수련환경 아래 나와 함께 했던 것은 가족 수련생의 계속된 병업 박해였고 수련생 세 명 사이의 모순은 마지막까지 간격을 두고 고립되었다.

2016년 내가 갓 돌아와 보니 가족 수련생(외할아버지)이 계단을 내려올 수 없었다. 표면적인 원인은 계단을 내려올 때 발을 삔 것이지만 제때에 박해를 부정하지 않고 정념도 부족하여 결국 나가 법을 실증할 수 없게 됐다. 후에 시력이 점점 흐릿해져 법공부하기도 아주 어려웠다. 나는 꿈에 사망 명단에 외할아버지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꿈을 부정하고 이런 ‘외래 정보’를 쉽게 믿지 않았고, 외할아버지를 도와 박해를 부정하리라 다짐했다.

그때 시간을 내서 가족과 법공부했지만, 방해가 아주 컸다. 당시 나의 법공부도 방해가 아주 커 수련생이 한 구절을 다 읽으면 나는 무슨 뜻인지 반응하지 못했다. 나 혼자 배우면 한 구절 법을 다시 읽을 수 있었기에 괜찮았다. 법공부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가정의 갈등을 피하면서 점차 나를 봉쇄하고 혼자 단독으로 법을 배웠기에 가정 법공부는 줄곧 정체(整體)를 이루지 못했다. 후에 노 수련생이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병원에 가서 수술했다.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어서 며칠 후 시력이 회복되었고 예전보다 시력이 더 좋아졌다. 나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이런 형식으로 외할아버지에게 한번 수련의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이리하여 가족 수련생은 혼자 법을 배울 수 있게 되어 나도 점차 느슨해졌고 무슨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가정에서 작은 일로 서로 눈꼴사나워했고 서로 안으로 찾지 않아 간격이 끊임없이 커졌다. 우리는 가장 익숙한 ‘낯선 사람’으로 되었다. 어떤 땐 심지어 감정이 상했다. 가상을 진짜로 여겨 그 속에 미혹되었다. 나는 그럭저럭 때우는 상태로 집안일을 대했다. 표면으로는 모순이 감춰졌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무사 평온한 것 같았지만 배후의 위험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걸 몰랐다.

한 달 전 아침, 노 수련생이 연공 중에 갑자기 정확하지 않은 상태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문제의 엄중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선량하지 않은 정서가 나왔는데 후에 정공을 연마할 때 외할아버지 손이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발정념을 하려 했지만 아주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외할아버지 상태를 보고 나는 즉시 놀라 깨어났다. 악이 수련생을 박해하고 있다! 즉시 발정념하고 사부님께 가지 해주십사 하고 청했다. 장기간 버티다 결국 나는 눈을 뻔히 뜨고 가족 수련생이 내 앞에서 조금씩 안 되다가 결국 구 세력에게 목숨을 빼앗긴 것을 보았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마지막 고통스러워하는 그 순간을 보고 속으로 외할아버지가 가려 하지 않고 줄곧 견지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악에 끌려가신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다 그렇게 갑작스러웠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아주 큰 타격과 놀라움을 주었다. 법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 줄곧 이지적이지 못했다. 사후 가족과 친구들이 다 평온해졌지만, 나에게는 고통이 몰려왔다. 눈을 감으면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그 순간이 보여 나는 마음이 움직여 크게 울었다. 육친의 정 측면에서가 아니라 노 대법제자가 사부님을 따라 마지막까지 가지 못한 유감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그때 법을 실증할 때의 자비로움과 위대함을 보았고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떠나가는 처량함을 보고 이번 박해의 사악함과 잔혹함을 체험했다. 이 순간 나는 수련생 사이의 연분을 소중히 여기고 수련생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아울러 예전에 내가 했던 여러 가지 잘못을 깊이 반성했다. 2년 반 사이의 가정에서 걸어온 길을 다시 돌이켜 보니 모든 것이 답안을 발표한 것 같았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3. 수련생과의 연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다. 그러나 놓친 것, 잘못한 것을 다시 되돌릴 기회는 없다. 동시에 구세력이 그 속에 배치한 험악함과 자기를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바르게 걷지 못하면 구세력의 안배한 길을 걷는 것임을 보았다.

나는 예전의 나의 수련 기점이 모두 틀린 것을 깊이 체험했다. 기점이 모두 ‘나’에서 출발했고 모두 위사(爲私)였다. 생각한 것은 ‘나는 제고해야 한다.’, ‘나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 ‘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두 ‘나’를 생각했기에 걸어온 길이 바르지 않아 너무 많은 유감을 남겼다.

지금까지 한 나의 모든 행위를 반성하니 무엇이 진정한 선(善)이고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인지? 자기 기점에 서서 상대방에게 요구했다. 상대방이 자기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눈꼴사나워하고 원망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것인가? 특히 병업 중에 있는 수련생을 대할 때 난관 속에 있는 수련생을 더 많이 포용하고 대선대인(大善大忍)으로 대해야 진정으로 수련생을 돕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세력을 도와 밖으로 수련생을 미는 것이다.

나는 2년 넘는 소위 ‘수련생을 돕는’ 중에서 처음에는 설득해도 어떤 변화가 없자 격앙된 어조로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나무랐고 마지막에는 인내심을 잃고 ‘외할아버지는 그렇다.’라고 생각했으며 수련생이 눈꼴사나워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여기에서 나는 나 자신의 교훈을 수련생과 교류하고자 한다. 꼭 신변의 노 수련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수련생이 법에 있지 않고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나 눈꼴사나워해서는 안 된다. 흔히 구세력이 수련생을 박해하는 수단이 바로 수련생의 사람 마음을 가중하여 주위 수련생에게 부정적인 정서를 생기게 하고 수련생을 고립하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는 그저 그렇다고 여기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고 여기게 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절대 가상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도 한 제자를 쉽게 버리지 않는데 우리가 어찌 경솔하게 포기할 수 있는가? 수련생을 돕지 못하더라도 정념으로 대해야 한다. 사실 수련생을 ‘돕는다.’라고 하기 보다는 공동으로 제고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기를 수련하는 것이고 정체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나는 눈을 뻔히 뜨고 가족 수련생이 어쩔 수 없이 과묵해진 후 마지막에 자기 속마음을 봉쇄하고 구세력의 길을 걷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결과는 구세력의 교란 박해를 떠나 신변의 수련생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수련생이 박해받아 사망한 것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사실 정체에 대한 박해이다.

나는 진정한 선(善)은 다른 사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변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며 상대방의 표현을 보지 말고 무조건 자기를 닦고 자기를 찾는 것임을 체험했다. 자기 경지에 서서 다른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인가? 내가 이것이 좋다고 여겨 상대방에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각도에 서서 처지를 바꾸어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생각하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하는 것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설법에서 끊임없이 노 수련생에게 나태하지 말고 자기를 소중히 여기라고 일깨워주었다. 최근 본 지역 노년 수련생이 끊임없이 세상을 떠났다. 불법으로 붙잡히고 징역형 판결을 받은 것은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라는 것을 다 알지만 이런 노년 수련생에 대한 박해는 더 명확하지 않고 심지어 너무 갑작스러워 미처 막아낼 수 없다.

나는 지금 신변의 노년 수련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의 일이 바로 나의 일이다. 보고, 접촉한 것은 바로 자신 범위 내의 수련 요소이기에 회피해서는 안 된다. 잘하지 못하고 하지 않는 것은 수련생을 책임지지 않은 것이고 중생을 책임지지 않는 것이며 자기 수련의 길을 잘 걷지 못한 것이다.

4.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다

이번 고난에서 다른 하나의 침통한 교훈은 수련하는 가정에서 정체를 이루지 못하고 단체 법공부를 중시하지 못한 것이다. 단체 법공부는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남겨주신 수련 형식이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바로 구세력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 후 한동안 나는 육친 정에 대한 집착에 빠졌다. 내가 가족 수련생을 돕지 못하고 잘하지 못해 외할아버지를 밀어낸 것이라고 여겼다. 내가 수련생을 해쳤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무형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있어 마음이 어떤 땐 아주 무거웠다.

신변 수련생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법에서 나와 교류하여 나는 점차 소극적인 상태에서 걸어 나왔다. 속으로 이런 소극적인 것은 구세력이 좋아하는 것이고 사부님께서 원하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진정하게 수련생을 해친 것은 구세력이 한 것이고 그들이 사악한 모든 것을 안배했다. 과거에 어떠했던 손실이 얼마나 크던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가늠하신다.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은 내가 감당할 것이지만 지금 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계속 가야하고 중생을 계속 책임져야 한다. 한 번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해서는 안 된다.

가족 수련생이 세상 뜬 후 수련 중의 많은 문제를 더 깊이 인식했다. 나의 수련에 일부 변화가 일어났고 아울러 가정환경도 상응하게 아주 크게 변했다. 많은 일은 다시 조정한 것처럼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우선 우리 집 법공부팀이 해산되었다. 원인은 아래층에 CCTV를 두 개 설치하여 팀 수련생들이 안전을 우려해 팀이 해산되었다. 이 문제를 나는 처음에는 구세력의 새로운 박해라고 이해했다. 가족 수련생이 세상 떠난 후 지금 집에는 노 수련생 한 분만 남았다. 어떤 때 할머니의 고독한 모습을 보면 사람의 정이 올라와 처량하게 느껴졌다. 우리 집의 팀이 해산된 것은 틀림없이 노년 수련생을 더욱 고립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사유 때문에 나에게는 부정적인 정서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났다.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수련생의 말에서 나는 문뜩 깨어났고 갑자기 깨닫고 내려놓았다. 자신 사유의 부정적인 요소와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았다. 사실 그전에 사부님께서 여러 번 수련생을 빌려 나의 부정적인 사유를 점화해주셨지만 나는 모두 막연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의 팀 해산에서 나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박해라고 여겼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몰라 어쩔 수 없어 했지만 이것은 정념이 아니다! 왜 이런 변화가 나쁜 것이라고 여겼을까? 왜 문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박해라고 여길까? 왜 구세력을 그렇게 크게 본 걸까? 사부님과 법을 어디에 놓았는가? 사부님께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배치하시고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결정하신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순서 있게 배치하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은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이다. 내가 불안해할 것이 뭐 있는가? 이것 역시 신사신법 문제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어려움을 크게 볼수록, 일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으로,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그 일은 더욱 번거롭게 될 것이다. 상유심생은 또 이런 한 층의 뜻이 있는데, 당신이 그것을 높게 놓고, 자신을 작게 놓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보고, 사람을 구도하는 이처럼 큰일을, 당신들이 해야 할 바를 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좀 착실히 하고, 무슨 그다지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과 그다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마주치거나 듣게 되더라도 마음에 두지 말며, 정정당당하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라. 사악의 교란을 받지 말고 그것에 이끌리지 말라. 그런 좋지 못한 요소가 자신에게서 생기지 않으면 사악은 보잘것없어지고, 당신들 자신은 높고 크며, 정념이 족해질 것이다. 정말로 모두 이러하다.”[1] “전 세계의 대법제자들은 전반 세간을 포용하고 있으며, 사람마다 하나의 범위가 있다. 당신이 마주친 것과 접촉한 것은 모두 당신 이 범위 중의 요소이다. 당신이 정념이 족할 수 있다면, 당신은 곧 당신의 범위 중에서 높고 크게 될 수 있고, 당신의 범위 중에서 좋지 못한 그런 것들을 내리누를 수 있을 것이다.”[1]

오늘 한 가지 문제를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불교에 이런 말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고향 도시가 홍수에 잠겨 온 도시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다. 나중에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한 제자가 그의 신통을 펼쳐 온 도시 사람들을 모두 손에 잡아 쥐었다. 저녁이 되어 잠을 잘 때 이 사람들은 모두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손에 있으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큰물은 역시 발생했고 도시는 모두 잠겼다. 이튿날 아침, 그는 이제는 문제가 없겠구나, 도시는 비록 물에 잠겼으나 사람은 문제가 없겠다고 말했다. 이때 그가 손을 펴보니 온 도시 사람들이 모두 재가 되어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수련 층차가 제한되어 있어, 그보다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방대한 신의 존재를 그로서는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말한 그 분자와 대분자, 소분자 사이의 관계처럼 그는 다만 그의 이 경지 중에서만 신통을 펼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그의 경지를 초월한 신이 무엇을 하는지 그는 여전히 모르고 있다.”[2] 나는 깨달았다. 구세력이 정법에서 일으킨 작용처럼 그것들은 그것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고 여기고 아주 세밀하고 완벽하게 배치했다고 여기지만 사부님의 능력은 이 모든 것을 훨씬 초과한다. 불법(佛法)은 끝이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장계취계라, 바로 장계취계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그것들이 움직일 수 없기에, 대법제자로 말하자면, 당신은 곧 당신의 정념을 견정히 하고, 당신의 일을 잘해야 하는데, 당신이 이 세 방면을 정말로 아주 잘한다면 누구도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3] 나의 지금 층차에서 이해한 것은 근본적으로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장악하시고 구세력의 안배는 표상이고 환상이다. 사부님의 배치, 사부님의 법이 진정한 ‘진짜’이다. 우리는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의 법의 바른 이치대로 하면 된다. 구세력이 안배한 인간 세상의 가상을 진짜로 여기지 않는 것이 바로 구세력을 부정하는 것이고 끊임없이 수련의 길을 바로 걷는 것이다.

5. 직장에서 법을 실증한 길

이 2년 넘는 시간에 줄곧 업무가 정체 상태에 처해 진정하게 속인 사회에 들어가지 못했다. 법을 실증함에 나는 거창한 것을 잠재적으로 추구했다. 시간에 대한 집착, 원만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나는 두드러진 일을 하려 했고 사람들에게 성적을 보여주려 했다.

법을 실증하는 것을 더 인식한 후 나는 젊은 대법제자는 직장 일이 있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속인 상태에 부합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련의 길을 더 잘 걸을 수 있고 속인 환경에 들어가 수련하는 길을 반드시 걸어야 한다. 대법 수련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정법시기 수련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단계이기에 피하고 더욱이 가까이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며 속인이 나와 왕래하는 것을 좋아하게 해야 한다.

이 길을 나는 이제야 걷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 하지 못한 일, 잘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고 내가 수련에서 제고해야 할 점이 너무 많았다. 지금 수련의 리듬이 아주 빨라진 것 같고 요구도 아주 높다. 매 작은 일도 모두 아주 중요하기에 끊임없이 주이스(主意識)를 강화해야 한다. 사람에게 직접 진상을 알리는 일에서 한 계단 지난 후 또 입을 열지 못하고 많은 것을 고려하는 상태에 들어가 끊임없이 정념을 강화하고 더욱 제고해야 따라갈 수 있었다.

최근 직장 환경에 들어선 후 어떻게 환경을 열고 자유롭게 진상을 알리고 동료들을 어떻게 구하며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지를 모색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고 끊임없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밀었다. 나는 더 잘해야 한다. ‘중생 구도’ 나에게 줄곧 이 소원이 있었는데 어떤 때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여 쉽게 집착이 형성되어, 인위적인 마음이 생겨 인위적으로 일부 일을 했다. 속인 중에서 양성된 습관적인 사유 방식으로 모든 일을 계획하고 안배했는데 사실 자아의 표현이다. 수련에서 이런 표현의 본질은 신을 배척하는 것이고 사부님의 배치에 저촉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자아를 내려놓고 인위적인 마음을 내려놓으면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배치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법에 동화되는 것이고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끊임없이 자기 경지를 제고하며 강대한 정념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려는 소원이 있으면 된다. 중생이 구도 되는 방식과 기연을 포함하여 진정하게 사람을 구하시는 분은 사부님이시다.

나는 나의 많은 부족한 점을 보았고 과거 나의 오만함에 놀랐다. 줄곧 내가 얼마나 수련을 잘했고 다른 사람보다 강하며 그 가증스러운 질투심이 어떻게 자기를 지휘하는지? 부분적인 것에 미혹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낫다는 것을 승인하려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강하면 안 되는 이 모든 것이 그 신을 배척하는 ‘자아’에서 나온 것이고 근본적인 사심(私心)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때 사부님 법상 앞에 서도 사부님과 멀리 있는 것 같고, 경사경법(敬師敬法)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았지만 왜 그런지 몰랐다. 후에 나는 이것은 아마 구 우주 중의 사에서 근원 된 것으로 생각했다. 구세력의 득의양양한 신처럼 자기가 제일 크다고 생각하고 감히 정법을 좌우지 하려 하고 정법을 이용하여 그들의 위사의 목적에 도달하려고 시도했다. 나의 이런 상태가 그것들과 같은 것이 아닌가? 잠재의식 중에 대법을 이용하여 자기 마음속의 사(私)에 도달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근본 상에서 진정하게 사부님을 나의 사부님으로 여겼는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놀랍고 두려웠다. 문제가 너무 큰 것 같았다. 부끄러웠고 자기 경지가 너무 낮고 격차가 아주 큰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잘할 것이고 계속 앞으로 갈 것이며 자기를 잘 닦을 것이다.

맺는말

짧은 몇 달 사이에 아주 많은 일이 발생한 것 같았고 모든 것이 변화가 아주 큰 것 같았다. 그때는 아무 걱정 없었지만 지금 이런 일을 겪은 후 마음이 좀 무거웠다. 나는 부정적인 것을 쌓아두지 말고 긍정적인 교훈을 받아들이도록 나를 일깨워 줄 것이다.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는”[4] 순정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니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에게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유럽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원문발표: 2019년 5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19/3875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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