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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길을 지나 아침 햇살을 맞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8년 6월에 법을 얻어, 환상으로 가득한 청년 대법제자에서 지금의 저로 성장했습니다. 20년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지만, 생활은 마치 200년처럼 풍부합니다. 육친정, 사랑, 납치, 협박…, 매 경험은 모두 성장이고 매 일보의 성장은 사부님의 보호 안에 있었습니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대지는 각별히 조용하고 난(難)도 수련하는 사람을 더 견정하게 할 뿐입니다.

저는 세 가지 방면에서 여러분과 수련 중의 일부 심득체험을 교류하려 합니다.

1. 사부님과 법을 의심하지 않는다

예전에 이야기를 하나 보았는데 한 사람이 배 사고에서 요행히 살아남았습니다. 파도가 그를 외진 섬으로 밀고 갔는데, 그는 섬에서, 멀리서 지나가는 배들에 구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거나 그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거의 절망에 빠졌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그는 바닷가에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며칠 동안 그는 고기를 잡아먹으며 허기를 달랬습니다. 돌아가려고 하는데 섬에서 연기가 나는 곳이 있어 자세히 보니, 유일하게 그가 머물 수 있는 나무집이 영문 모를 불에 한창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늘이시여! 저의 목숨을 살린 것은 제가 추위와 기아, 고독 속에서 죽어가라는 것이었습니까?” 배고프고 목마르며 고단하던 그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점심때 그는 뱃고동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습니다. 배 한 척이 섬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구원을 받은 그는 구원하러 온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다고 누가 알려주었습니까?” “선생님 아니신가요? 우리는 선생님이 낸 연기신호를 보고 왔습니다.” 이 이야기의 제목은 ‘당신은 하늘이 무슨 배치를 했는지 모른다’입니다.

불공정을 불평하지 않고, 대법을 의심하지 않으며 대법에 따라, 정법에 따라 가서 하면 넘어가지 못하는 고비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 수련 중의 가장 깊은 체험입니다. 현실 수련에서 초래한 많은 난(難)은 모두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엄격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장쩌민 고소’, ‘위챗 제거’ 등입니다.

‘장쩌민 고소’ 통지를 봤을 때 저도 무서웠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처럼, 이렇게 하는 것은 불나방이 불 속으로 날아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또 사람의 측면에서 한 유명 인권변호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변호사도 이런 행위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의심과 우려를 마주하여 하나만은 굳게 믿었습니다.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은 반드시 옳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구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 그것이 빈틈을 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1] 저는 다음과 같은 사부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의 선택 중에서, 모든 생명들이 모두 내가 선택한 대로 그것을 원용(圓容)하고, 당신들의 가장 좋은 방법을 내놓으며,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을 고치려 하지 말고 내가 한 말에 따라 그것을 원용하는, 이것이 바로 우주 중 생명의 가장 큰 선념(善念)이다.”[2] 그래서 저는 장쩌민 고소를 저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도와주었는데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한 후의 작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여행을 갔는데, 사촌 남동생이 운전하며 오고 가는 길에 과속을 많이 했습니다. 며칠 후에, 우리 차가 고속도로에서 과속하여 사진이 찍혔으니 자세한 내용은 클릭해서 보라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저는 문자를 남편에게 얼른 보여주었습니다. 남편이 저보다 조급해하며 연결된 사이트를 클릭해보니 그것은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였습니다. 상대는 계속 인증번호를 발급하여 저의 결재 앱들을 등록했습니다. 전자제품을 잘 다룰 줄 모르던 저는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인터넷을 끊느라 바빴습니다. 저는 남편이 오히려 일을 망친다고 원망했습니다. 다행히 손실은 없었지만, 상대방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스팸 메시지를 계속 보냈습니다. 어쩔 수 없어 휴대폰 번호와 휴대폰을 바꾸고 은행 결제 카드를 전부 다 해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안으로 찾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 귀찮은 마음, 이익을 구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찾아냈습니다.

이 일이 지나간 후 오래지 않아 우리 지역의 장쩌민 고소 서류가 모두 현지로 돌려보내져, 현지 경찰이 전화하거나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제가 남긴 전화번호는 위에서 언급한 일 때문에 이미 바꾸었기에 경찰의 소란을 피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위챗을 삭제하라는 통지를 받고 비록 저는 천목으로 볼 수 없지만, 또 한 번의 사람 껍질을 이탈하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은 본래 사람 중의 일이 아닌데 사람 마음으로 무엇 때문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다른 수련생이 제게 위챗을 삭제하면 이것은 어떻게 하고 저것은 어떻게 하는지 물었을 때, 저는 우리는 어떻게 할지 선택할 몫만 있을 뿐, 다음의 일은 사부님의 배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것은 사람이 신으로 성취되는 길이 아닙니까? 우리는 해석할 필요도 없고 탐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위챗을 삭제하고 나서 눈이 마르지 않고 머리가 어지럽지 않으며 공간장도 조용해졌습니다. 평소 밖에서 일하며 줄을 서거나 차를 기다릴 때 예전에는 휴대폰을 보았지만, 지금은 법을 외우거나 발정념 하거나 진상을 알리는 일로 회복되었습니다.

예전에 저의 중생들은 진상을 들을 기회를 휴대폰 때문에 많이 잃었습니다. 대다수 속인은 자신의 휴대폰 세계에 빠져 주변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마치 딴 세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친척과 이웃끼리도 가상의 세계에서 서로 배려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농담하지만, 현실에서 만나면 오히려 냉담하거나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보아하니 전자제품은 정말 사람을 냉담한 비인류(非人類)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2. 수련생을 의심하지 않는다

수련생 간의 협조에 참여해보니 가장 큰 문제는 서로 의심해 협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수련생들은 모두 수련하고 법을 위해 봉사하려는 진심이 있습니다. 단지 서로 솔직하게 소통하지 않고, 성장 환경과 일하는 특징이 달라 서로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또 다른 공간의 사령(邪靈)과 난귀(爛鬼)가 농간을 부려 서로 잘 협조하지 못하게 해, 끝내 자신의 수련을 지체하고 구도중생을 지체하게 합니다.

저도 아주 큰 모순의 소용돌이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억울함, 불공평하다는 생각, 원망하는 마음으로 소극적인 도피 방법을 선택해, 더는 사건 중의 수련생과 만나지 않았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없다는 것을 사부님께서 아시면 되니 자신이나 잘 단속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끝내 자아를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로 아주 잘 협조하던 우리 팀은 해체되었습니다. 몇 년 사이, 팀원이었던 수련생들은 심각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우리 현지에서도 이 일로 사분오열되었고, 몇 년 사이 노 협조인들은 모두 갖가지 형식으로 박해 당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교훈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고 괴롭습니다.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면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며 전체를 해칩니다. 진심으로 수련생 여러분께 건의하는바 정기적으로 사부님의 호주설법 비디오를 보시기 바라며, 특히 협조인 수련생들은 만나서 같이 보시기 바랍니다.

3. 대법제자는 모두 우주에 세워져 있는 대법 진상 책자다

일상생활에서 제일 진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로 주변에 잘 하지 못한 대법제자 친척과 친구, 이웃, 학우, 동료들입니다.

우리 대법제자는 모두 공개된 신분이 있습니다. 적어도 가족 중에서는 그렇습니다. 특히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그들이 주시하는 것은 당신의 평소 언행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잘하면 대법이 좋다고 하고, 잘하지 못하면 대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또한 겉으로는 논쟁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반감을 가집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이 다시 진상을 알리려면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누구는 병에 걸렸는데 치료받지 않아 죽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누구누구는 파룬궁(法輪功)을 배우면서 일을 어떠어떠하게 한다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진상을 알릴 때 발정념도 함께 하며,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합니다. “학생이 시험을 보면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가 있는데,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지 시험 문제를 탓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파룬궁은 약을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병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의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양의를 좋아하는데, 어느 병원에서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의사도 병에 걸리고 죽습니다. 그래도 병원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매듭이 풀리고, 어떤 사람은 이치는 맞지만,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체가 바로 진상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모두 대법제자의 표준에 따라 해야 진정하게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깨달은 바로는 매 대법제자는 우주 사이에 서 있습니다. 속인 측면에서 말하면 외형, 옷, 표정이 바로 진상 책자의 표지이고, 언어, 행위,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와 방식은 진상 책자의 내용이며, 사람들은 이로써 당신에 대한 인상과 소감을 뒤표지로 남겨놓습니다. 다른 공간에서 보면 더 자세한데 당신의 일사일념은 모두 주시되고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개인 사업을 합니다. 우리는 제품을 가장 잘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제품에 좋은 서비스를 더하면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서입니다. 그러나 한동안 제품에 계속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쪽에서 고객에게 막 진상을 알리고 나면 저쪽에서 제품의 질에 문제가 생겨 난처했습니다. 우리는 곤경에 빠져 끊임없이 제품 공급 업체를 바꾸고 상황을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리하는, 전국에서 가장 좋고 가장 유명한 브랜드도 품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산자가 눈앞의 성공과 이익에만 급급해 우리가 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사람 중에서 모든 방법을 다 써보고 나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수련인입니다. 다른 사람의 길과 같지 않습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표면 현상만 논하지 말고 수련인의 사유를 써야 합니다.

저는 법 공부하며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공이 있는 사람,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당신이 일부러 내보낼 필요가 없이 당신이 만졌던 것은 모두 에너지를 남겨 놓을 수 있기 때문에, 모두 반짝반짝 빛난다.”[3] 그런데 제가 온 힘을 다해 고른 물건에 어떻게 문제가 생길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품이 좋으면 법을 실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마음, 제품에 문제가 생겨 법에 영향을 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명을 구하는 마음,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마음, 쟁투심, 질투심 등이 제게 있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대법제자는 각 업종에서 모두 잘해야 합니다. 제품을 잘 만들고 서비스를 잘해주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방식과 태도가 좋아야 합니다. 전체를 잘해야 진정으로 잘한 것이 됩니다. 제가 제품을 잘 만들면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이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제가 일을 담당하고 처리하는 태도도 법 실증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속인처럼 책임을 밀어내거나 떠넘기거나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의 수련을 통해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마음에 법이 있기에 합작 공장을 찾거나 고객과의 갈등을 처리할 때 기뻐하거나 놀라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의 법이 끊임없이 저를 점오해주고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공장을 찾았을 때 우리의 표준을 말하니 공장 측에서는 “어는 때든지 좋지 않은 제품은 좋은 제품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동의했고, 우리가 고객과 거래를 마치고 나니 고객은 진심으로 “이 집의 장사가 잘되지 않는 것은 하늘이 허용하지 않네요.”라고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몰라 생각나는 대로 적었습니다. 여러분께 참고가 되길 바라며 우리가 공동 정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5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7/3860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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