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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법제자 ‘나의 10년 수련의 길’

글/ 러시아 모스크바 대법제자

[밍후이왕] 제 이름은 스베틀라나(Svetlana)로, 모스크바에 사는 러시아인입니다. 저는 10년 가까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습니다.

저는 8년 넘게 밍후이 항목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0년 처음 참여했을 때는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읽고 제고가 아주 빨랐으며 법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체험, 건강이 좋아지고 대법에서 기적이 나타난 일 등에 관한 문장을 번역했습니다. 이런 문장을 통해 신심이 강화되는 혜택이 있었습니다. 수련자의 수련 체험을 통해 저도 무엇이 안으로 찾는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정진하는 수련생들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중에는 전통문화에 관한 문장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문장은 번역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중국 고대도시 이름과 고대 명사가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매 문장을 번역하면서 저는 그 시대에 빠져들었고 고대 중국의 고상한 여인, 남자들에 비하면 지금 인류의 도덕이 얼마나 심각하게 타락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중국 대법제자가 당한 박해의 진상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017년, 저는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 번역팀으로 가게 되었고 지난 2년간 줄곧 이러한 문장을 번역했습니다. 저는 이런 문장이 박해를 폭로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번역할 때면 박해받은 수련생의 운명을 접하게 되는데, 저는 늘 그들을 위해 발정념하거나 그들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공이 다른 공간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는 몰라도 저의 정념이 그들을 도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전에는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을 그다지 읽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누락이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박해의 진상을 똑똑히 말하지 못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그 근원은 사심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게 유용한 것을 좀 얻고, 즐겁지 않은 일에 영향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제게 상처가 되거나 슬픈 일을 접하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박해 폭로 문장을 번역하면서 저는 마음이 넓어졌고 사람들에게 중국공산당의 잔혹한 탄압을 쉽게 알릴 수 있었습니다. 팀원들에게 이런 문장을 읽어보았냐고 물어보았더니 대다수가 읽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이런 문장을 읽으면) 비통하고 마음이 갑갑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소조 사람들과 제 생각을 나눴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의 누락이라고 여겼습니다. 우리가 이런 문장을 읽지 않으면 어떻게 박해를 폭로할 수 있습니까? 대다수가 수련 관련 문장이나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내용만 보고, 박해 관련 문장을 읽지 않는데 그러면 그들은 진상을 분명히 알리기가 어렵습니다. 진상을 똑똑히 말하지 못하면 상대방은 우리가 한 말이 확실하지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번역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저는 계속 영어 공부를 하고 기회가 되면 중국어도 배웠습니다.

머릿속의 공산주의 요소를 제거하다

현재 우리 팀 수련생들은 ‘9평 공산당’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최근 저는 ‘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도 읽었습니다. 이 두 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를 읽을 때 저는 어릴 때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시기 주입받은 모든 것에 대해 똑똑히 알게 해줬습니다. 공산주의를 선전한 모든 영화, 심지어 제가 저명한 모 심리학자를 통해 갖게 된 사상과 관념 등 그런 모든 것의 허위와 그릇됨이 밝혀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당문화(邪黨文化)를 겨냥하는 문제에 있어, 우선 그것을 분별하고 그것을 똑똑히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는데, 오직 진정한 인류 전통문화를 이용해야만 비로소 그것을 똑똑히 볼 수 있다.”[1]

사부님께서는 최근 한 차례 설법에서 우리에게 수련을 첫 자리에 놓으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수련은, 여러분에 대해 말하자면, 매체에 참여하는 매 대법제자에 대해 말하자면, 수련이 제1위이다. 왜냐하면 당신 수련의 좋고 나쁨은 당신의 사람 구하는 힘(力度)을 결정하며, 당신 수련의 좋고 나쁨은 또한 당신의 업무 성과를 결정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틀림없다.”[1]

그래서 저는 제가 공산주의 요소를 어떻게 찾았는지에 관한 교류 원고를 썼습니다. 즉 의심, 공포, 투쟁, 경쟁, 질투, 허위 혹은 기만, 자아보호 등등입니다.

그중 제 몸에서 강렬하게 반영된 공산주의 요소는 쟁투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입받은 것은 ‘우리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전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설이 있습니다. “태양 아래 자기가 있는 곳을 위해 투쟁한다.” “강자는 생존한다.” 또 물질주의 관념인 ‘자연도태’설 등입니다. 지금 저는 이런 개념이 ‘진선인(眞善忍)’의 원칙과 완전히 대립 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점을 주의하지 못했는데 최근 일부 수련생이 제 말 속에 쟁투와 경쟁 따위의 요소가 많이 포함돼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지금은 이 마음이 나타나면 한걸음 물러서서 싸우고 경쟁하는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다투고 싸우면 질투가 쉽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2]

질투심을 제거하다

제가 수련을 시작했을 때 저의 이 집착을 의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최근에는 스스로 늘 그것을 민감하게 느낍니다. 어느 날 한 수련생과 모순이 발생했는데 우리와 이야기할 때의 태도가 매섭고 격렬했습니다. 그녀는 다른 수련생에게 저에 관해 “얼마나 악한지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좀 놀랐습니다. 스스로 악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정말 제게서 이런 마음이 표현되어 나왔을 것입니다. 저는 교류할 때는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체면을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집착이므로 저는 이 마음을 버리기로 다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 여러분은 아마 과거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대업왕생(帶業往生)을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겠지만,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방면에서는 좀 부족하더라도 조그마한 것은 대업왕생하여 다시 수련하는, 그것은 될 수 있지만,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고는 절대 안 된다. 오늘 내가 연공인(煉功人)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렇게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서,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단독으로 내놓고 말한다.”[2]

저는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이 마음을 진정으로 내려놓으려고 결심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질투심과 관련된 고험(考驗)을 늘 넘지 못해 제 주위(직장)에 점점 많은 정황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저와 누구를 비교하면서 저에 대해 비평하는 동시에 그와 그녀의 능력이 높다고 말하며 감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격적으로 저는 고유한 쟁투심과 자아를 긍정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직장에서 선두에 섰고 고객이 많았습니다. 올해는 가격이 바뀌어 예전 고객이 떠나면서 스스로 열정을 잃었지만 다른 직원은 여전히 열정 넘치고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활기찬 한 직원에게 관리 권한이 더 많이 갔습니다. 홀 분배, 코스 배정이 포함됩니다. 그들은 제게 문이 없는 작은 방을 배정했습니다. 학부모도 이렇게 열악한 공간을 배정한 데 대해 분노했습니다. 어떤 고객은 방이 나쁘다고 떠나갔습니다. 저는 욕하지도 다투지도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수련인은 마땅히 더욱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2]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움직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했는데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답답했습니다. 저는 오락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데 다른 한 동료는 잇따라 수업을 했고 저의 이전 고객에게 일대일 교습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강렬한 분노와 질투를 느꼈습니다.

갑자기 등 쪽 좌우 어깨뼈 사이가 극심하게 쿡쿡 쑤셔 거의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아 자기의 질투심을 보았습니다. 또 상실감과 열등감이 들었습니다. 심장이 움츠러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질투’ 관련 부분을 읽고 이 문제를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마음을 잡고 제거하는지 몰라서 사부님께 질투하는 이런 물질을 제거해주십사 청했습니다. 팀에서 법공부를 하면서 저는 울었습니다. 이런 질투심, 자기와 타인을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제가 가치 없고 열등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자신을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팀에서 나와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는 구세력이 제가 자아에 집착하는 것을 빌미로 제 수련을 가로막으려 시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저를 주류사회에 대한 진상 알리기 팀에서 쫓아내려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비교해보고 제가 진상 알리기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이 공포와 두려움에 구애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이런 생각을 제거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쉬는 동안 저는 일부 수련생과 대화하면서 저와 그들 간의 깊은 관계를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더는 어떤 고통이나 냉담함이 없었습니다. 휴식하는 기간 저는 일부 수련생과 나와 그들 사이의 깊은 관련을 교류하고 느꼈습니다. 더는 마음에 어떤 고통이나 차가운 것이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는 거리에 나가서 연공했습니다. 제2장 공법을 연마하는데 파룬이 손에서 강렬하게 도는 것을 느꼈고 감격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눈을 가렸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게 이렇게 소중한 파룬을 주심에 매우 감동하였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입니다. 그릇된 생각이 순간 다 사라지고 대법의 힘을 느꼈습니다. 마음이 아주 평온했고 몸이 에너지에 휩싸였습니다. 밖은 몹시 추웠지만 불안하지 않았고 질투와 열등감도 없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생각 때문에 자기를 가로막지 않았습니다. 다음 며칠간 발정념을 강화해 이런 요소와 질투라는 물질을 없애버렸습니다.

저는 이 ‘원망’과 같은 성질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발정념할 때 이것이 저를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꺼비 한 마리가 정념에 없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제가 질투를 발견한 과정을 교류하면서, 우리가 경험을 나누고 마음을 열 때 이것이 내 것 이외의 것으로 변해서 내 마음에서 나가는 것을 주의해서 보았습니다.

다시 사부님의 관련 설법을 보았을 때는 질투심 부분 구절에서 새로운 인식이 생겼습니다. 질투의 근원은 이기심이고 고립과도 관련 있었습니다. 즉, 마음이 열려있고 성격이 개방적인 사람은 타인과 쉽게 나누고 타인의 행복에 기뻐합니다. 즉 질투를 극복하고 이 집착을 버리려면 숨기지 말아야 하고 공개적으로 마음속의 일을 교류해야 합니다. 일단 표현해내기만 하면, 질투는 다른 집착과 마찬가지인데,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질투가 있으면 사람 간의 관계가 팽팽해지고 냉담해집니다.

저는 상대방과 긴장된 관계이거나 당신이 질투를 느끼게 하는 사람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이 물질은 선량함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우호적이고 열려있으면 이 질투라는 물질을 녹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천적인 본성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질투는 천성이 아니라 사회관계로 만들어진 틀린 관념과 습관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우주공간 중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우주의 眞(쩐)ㆍ善(싼)ㆍ忍(런) 특성에 동화한 것이며, 본성은 본래 선(善)하고 선량한 것이다.”[2]

진(眞)을 닦아서 허위를 버리다

어느 날 저녁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디가 법에 부합되지 않은 것인지 하루 동안의 표현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속으로 이것은 관건이 되는 문제이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허위’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나타나 놀랐습니다. 상태가 즉시 변했습니다. 다년간 숨겨져 있던 것이 갑자기 표면에 뒤집혀 나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심지어 이 단어의 함의도 몰랐지만, 그것이 ‘진(眞)’과 정반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전에는 이것이 진리와 성의의 반대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즉 기만입니다. ‘진’ 속에서 수련하는데 어디에서 거짓이 온 것일까요. 저는 줄곧 직접 누구를 속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 방면에서 일생을 돌이켜봤을 때 이것이 어린 시절 다져진 공산주의 요소 중 하나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것이 표현되었을 때의 정황을 보면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 변이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저는 위장해야 했고 겉과 속이 달랐으며 아부하고 비위를 맞췄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허위라는 이런 비뚤어진 물질이 커지고 확대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왜 사람들이 늘 제게 그들이 저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질책하는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제가 솔직하게 말해도 사람들은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질책했습니다. 사람들이 제 몸에 있는 허위와 거짓의 물질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원인입니다. 저는 그것(허위)이 하나의 실체라는 것을 알고 그것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개선하고 법에 동화할 수 없으면 너는 없어져야 한다. 지금 저는 더 주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를 보면 즉시 그것들을 없애버렸습니다.

심성 제고

어느 날 아침 다섯 세트 공법을 모두 연마하고 발정념을 마치고 좋은 상태였는데 어머니와 대화할 때 어머니가 저를 나무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망하고 불만을 표출하면서 이성을 잃었습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어머니에게 말대꾸하며 어머니를 탓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자신에게 화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높았고 대꾸하면서 어머니를 질책했습니다. 수련이 느슨해져 한동안 TV를 보고 음식을 많이 먹어 체중이 늘었습니다. 내심에서 분노가 일어서 저는 점프하는 것으로 살을 빼려고 해봤습니다. 무릎을 드는데 갑자기 허리에 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그 시작 저는 재빨리 모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집 근처에서 부업을 찾은 것을 기뻐했습니다. 이는 간단했습니다. 이익상에서 즐거움을 누린 느낌이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아울러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있는데 구세력이 저의 누락을 본 것입니다.

거리에 나가서 연공할 준비를 하다가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미 연공을 시작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절뚝거리며 가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왼 다리를 들기가 어려웠고 등도 계속 아팠습니다. 저는 길을 가면서 구세력의 교란과 계획을 제거하는 발정념을 했습니다. 신수련생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연공을 잘 마치고 저는 순조롭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집에 오니까 어머니가 또 저를 나무라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났고 곧이어 잔등에 극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에 들어가자 고통이 사라졌지만, 초조하거나 긴장하고 바쁘면 잔등이 또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험이 3, 4일을 갔습니다. 요즘 저는 법을 베끼고 외우며 연공을 더 많이 했습니다. (1시간 분량의 제2장 공법을 두 차례 연마) 저는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고통이 사라진 것 같았지만 어머니와 또 논쟁하자 고통이 또 한 번 왔습니다. 심지어 눈물범벅이 되었습니다. 등의 통증은 어머니의 꾸지람과 욕하는 소리 때문에 더 참을 수 없을 것 같고 폭발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얼른 대문을 나서 거리로 나가 평온을 되찾은 후 제2장 공법을 1시간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제게 이것저것을 시키기 시작했고 화내고 소리 질렀는데 저는 아주 평온했습니다. 저는 인내심과 힘이 충분해져서 다시는 감정에 이끌려 하지 않고 평온하게 어머니의 요구를 들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재빨리 평온해졌습니다. 우리가 법에 있을 때 수련인은 주위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서 강대한 정념의 장이 발산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법에 있지 않으면 마음속의 것과 주위의 요소가 저를 아주 심하게 교란하지만, 법에 있으면 모든 것이 평온해집니다. 그 밖에 이는 제가 심성을 제고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집에 막 들어서자마자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에게 욕을 한바탕 퍼부을 수 있는데, 당신이 만약 참고 지나갔다면 오늘 당신은 공(功)을 헛되이 연마(煉)하지 않았다.”[2]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바로 당신을 도와 소업(消業)해 주고 있지만 그 자신은 모른다.”[2]

안으로 찾아보니 요즘 제가 살림살이에 대해 걱정하며 이익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줄곧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가서 일하지? 부업으로 수입이 있을 때 불만스러워하고 화내고 원망하는 정서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뚜렷한 누락이 있는 것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저는 그 가운데서 제고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수련생, 가족 및 주변 사람과 지낼 것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사람의 정(情)을 내려놓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자비(慈悲)이다. 정(情)은 속인 중의 것으로서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2]

지금은 모순이나 문제가 나타나면 저는 될 수 있으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저의 정서를 제거하고 이해하며 선의적으로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구도 받길 기다리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거센 홍류 중에서 당신들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런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전체 우주가 모두 도태되는 중이고, 모두 패괴 중에 있는데, 당신들은 이런 것을 무릅쓰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3]

제1회 파룬궁 9일 학습반을 연 뒤는 국가 공휴일이었습니다. 모스크바 대부분 사람이 붉은 완장을 달고 띠를 두르고 깃발을 들고 공산주의 부호가 있는 옛 군모를 썼는데 저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이 적혀 있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관광지에 가 행인에게 전단을 배포했습니다.

한 낯선 사람이 길을 따라가며 외쳤습니다. “오늘은 붉은색을 입어야 합니다.” 제가 미처 그에게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아주 빨리 지나갔습니다. 저의 마음에 대법이 있기에 공산 악령이 머물 곳이 없습니다. 저는 몸에 공산주의 부호를 단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좀 안타까워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을 구할 수 있을까?’

제가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제 어깨를 살짝 쳤습니다. 몸을 돌려보니 한 청년이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파룬궁? 계속 찾고 있었어요. 어디에서 하세요? 좀 알려주세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했습니다. 이미 10년 가까이 수련했는데 제가 사는 지역(다른 수련생과 멀리 떨어짐)에 다른 수련생이 나타나지 않아서 저는 10년 가까이 늘 호수공원에 있는 공지에서 혼자 연공했습니다.

또 한 가지, 저는 법회에서 돌아왔을 때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 여학생이 제게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저는 모스크바에 연공장이 세 곳 정도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여학생은 모스크바가 이렇게 큰데 너무 수가 적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공지사항을 인쇄해 우리 지역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첫 번째 토요일에 다섯 명이 공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저는 한 명에게 ‘파룬궁’ 책과 파룬궁 관련 자료를 주었습니다.

반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 부근에는 신규 연공장이 생겼고 약 3~4명이 줄곧 안정적으로 연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더욱 자율적으로 책임을 맡아야 합니다. 저는 또 우리 집 건물 우편함에 관련 정보를 비치했습니다. 직장과 집 부근에 새해 달력을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대형 워터파크 어린이센터에서 일하며 많은 사람을 접촉하게 됩니다. 기회만 되면 그들에게 종이 연꽃, 달력, 파룬궁 전단을 주고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제가 수혜를 입은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 번째로 파룬궁 9일 학습반을 열려 합니다. SNS, 왓츠앱에서 대다수 사람에게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저는 수련 환경은 우리 자신이 열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주변의 사람을 구도해야 합니다. 동료, 친구, 이웃, 주거단지와 시내에서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모스크바에서 세 번째로 파룬궁 9일 학습반을 연다는 소식을 내보낸 후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그는 SNS에서 우연히 9일 학습반 소식을 봤다면서, 교공 동영상을 다 본 후 날이 밝기를 기다리느라 한밤중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전화로 학습반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저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대법을 찾고 대법의 구도(救度)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향해 걸어왔는데 얼굴에는 행복이 넘쳤고 손에는 파룬궁 전단과 파룬궁 소책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입장권이나 통행증을 든 것처럼, 이런 것이 있으면 그들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이 꿈을 꾼 후 저는 열정적으로 9일 학습반 전단과 파룬따파 전단을 배포했습니다. 제가 아주 중요한 것을 배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하늘로 가는 입장권 내지는 새로운 우주로 가는 통행증을 배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사람이 진상을 알고 선택을 하면 그럼 그는 이 입장권을 얻어 구도 받는 것입니다.

이상은 제가 이번에 여러분과 교류하려는 내용입니다. 옳지 않은 점은 지적해주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8 씬탕런과 따지웬 법회’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원문발표: 2019년 5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13/386842.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9/5/26/1777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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