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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두려워하는 것은 집착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현지 수련생들이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마음속으로 방법이 없었고 또 괴로웠다. 수련과정 중의 사람은 집착이 있는 것이지만 집착에 잡혀 박해로 생명을 잃는 것은 정법 중에서 구도되어야 할 중생에게는 실제적으로 거대한 교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병업 속의 수련생 매 개인은 신체적인 괴로움을 감당하고 심지어 극심한 통증을 감당한다. 사실 이때 많은 사람은 통증을 감당하지 못해 관 넘기를 포기하고 병원에 간 후 또 자책 속에 빠지고 일부 사람들은 또 체면이 없다고 느끼어 다른 집착이 형성된다. 마지막 관에 많은 시간을 지체했고 나중에 신심을 잃고 생명을 잃는다.

나는 전에 전신이 마비된 수련생(이미 사망함)과 교류했는데 그녀가 병원에 간 것은 통증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복부에 종양이 있었던 (이미 사망한) 수련생은 붓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 병원에 갔었고 또 치질을 앓고 있던 수련생은(이미 사망함) 모두 통증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모두 통증을 두려워한 것이고 매번 통증이 올 때 안정하고 발정념하지 못했고 또 자신의 통증은 병업관을 넘는 사람과 다르다고 늘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가운데 있도다”[1] 비록 관을 넘는 표현형식은 다르지만 제거해야 할 마음은 똑같다. 통증을 두려워하는 것도 한 개의 집착이다! 신은 아플 때 미간을 찌푸리고 흔들거리면서 발정념하지 않을 것이고 신도 발정념 구결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오히려 자신의 병 통증이 어찌하여 감소하지 않는가만 주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 어찌 자신을 박해하는 사악 요소를 소멸할 수 있겠는가? 내가 본 이런 관을 넘은 수련생들은 모두 극심한 통증 속에서 태산처럼 끄떡없이 움직이지 않고 발정념하며 넘어왔다.

나도 이런 통증을 겪은 적이 있는데 1초도 쉬지 않는 극심한 통증이었고 자세를 어떻게 해도 통증을 조금도 제거할 수 없었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구세력을 부정해도 효과가 없었다. 안을 향해 찾을 때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2] 나는 발정념할 때 몸을 비틀어댔는데 구세력을 승인한 것이 아닌가? 나는 이 통증을 승인하지 않고 구세력이 나에게 준 느낌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튼 구세력을 부정하겠다! 이렇게 생각한 후 어떻게 아프든지를 막론하고 반듯하게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조용하게 이 통증이 신체 속에서 오가면서 에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이 통증이 감소하지 않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앉아서 극심한 통증 속에서 발정념을 했다. 반 시간 뒤에 나는 아주 피곤함을 느꼈고 사부님께 휴식하고 다시 전투에 임하겠다고 요청했다. 그 결과 깨어났을 때 사부님께서는 이미 나에게 사악을 제거해주셨다. 나는 내가 아직 수련 속의 무슨 사람 마음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단지 통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셨다.

이 일에서 나는 깨달았는데 병업관을 넘을 때 구세력을 부정하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조성한 느낌을 부정하고 통증을 포함해서 부정하며 아픔에 이끌리게 되는 사람 마음마저 안정되면 마땅히 관을 넘을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가로막지 못하리’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

 

원문발표: 2019년 5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13/3870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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