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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수련이 방향을 밝혀 나의 청춘이 막막하지 않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속인 사회에서 종종 ‘청춘이 막막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는 말을 듣곤 한다. 예전의 나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다행스럽게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기에 천만년에 만나기 어려운 대법을 얻어 대법 수련에 입문했다. 이때부터 내 삶은 불광(佛光)이 두루 비추고 한없이 밝아졌다.

나약하고 막막하던 이전의 나

우리 집은 세 식구로 행복한 가정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정성 어린 보호 속에 성장했는데 부모님은 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셨다. 나 역시 귀염성이 있고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친척 친우에게는 ‘귀염둥이’ ‘착한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걸어온 길을 보며 좌절을 겪은 적이 없이 순조롭게 명문대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마음은 늘 감상에 젖어있고 나약하며 의존적이고 단순하고 유치하기도 했다. 동년배들처럼 그렇게 사고가 성숙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가 다니는 대학은 유명인사를 많이 배출하고 많은 이가 꿈꾸는 곳이지만, 내게는 대학 안의 세계가 도리어 막막했다. 나는 상아탑에서 내가 상상하던 그런 순수함이란 없었다. 짙은 사회 조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전에 공부만 파고들던 나는 인생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했다. 이상을 꿈꾸던 나는 각종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파란을 겪으면서 심신이 피로해졌다. 마음이 민감하고 나약했다. 문제에 부딪혀 냉정히 사고할 수 없고 자신을 조절하지 못해 남몰래 울적해 하며 쇠뿔 끝을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정말 마음속의 진실과 평화를 찾고 싶었고,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어떤 사소한 일로도 내 기분을 좌우할 수 있을 것 같아, 불안했고 무기력한 기분이었다.

책을 봐도 마음을 조용히 할 수 없었다. 가요를 듣고 드라마 영화를 보고 친구와 거리를 쏘다니며 먹고 마시고 쇼핑을 했다. 그러나 마음은 도리어 더욱 공허한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오락 프로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지만 나는 도리어 마음이 더욱 불안해지고 의미가 없다고 여겨졌으며 진정한 의미는 찾을 수 없었다. 나의 정신은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에 다다랐고, 성적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대학원 진학 시험 전에 부모님이 나를 보러 오셨다. 부모님은 가로변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고 계셨는데 내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펑퍼짐한 검은 옷에 흐트러진 머리, 산만한 눈빛. 부모님 눈앞의 나는 생기라곤 없는 아줌마 같았다. 이게 어디 그분들의 예쁘고 귀여운 딸이란 말인가……!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빛을 갈망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대법을 얻고 내 마음 밝아져

대학 졸업 전해의 겨울이었다. 나는 저녁에 길을 걷다가 북적대는 인파와 번화한 야경을 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황량한 참상 같았다. 전혀 온정 없고 의미도 없는 시끄러움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습실에 앉아 노트에 ‘彌天大謊(터무니없는 거짓말)’ 네 글자를 반복해서 쓰다가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 무자비한 현실에 농락당하는 느낌이 들었고, 나도 이 세계도 가소롭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이후 어느 날 길을 걸을 때 도리어 마음속에 강렬한 느낌이 있었다. 분명 내게 가장 좋은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토록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겪었지만 나를 지탱해줄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꼭 제일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로 그 한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지만 그토록 확실했기에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진상이 담긴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다. 그때는 어떤 사람이 보낸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그것이 틀림없이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선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겉보기에는 평범한 편지 같아도 왜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진정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구도 받았기 때문이다.

대학원 입학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나는 졸업하고 모 그룹 계열사에 입사했다. 처음 진상을 접촉해서부터 진정으로 법을 얻기까지 약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돌이켜보면 참 쉽지 않았다. 입사 2년 차일 때 나는 스물셋이었는데 유선 비대증으로 한밤중에 아파서 잠을 깨곤 했다. 매년 계절성 알레르기도 있어서 눈, 코 목구멍이 너무 가려웠고 예민할 때는 날마다 스프레이 제제와 안약으로 버텼다. 또 대학 때 접질린 다리에 후유증이 있었고 목등뼈가 휘어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쁜 증상이 있었다. 나는 젊은데도 자주 병원에 가서 핵자기공명 촬영을 하고, X선, B형 초음파, 컬러 초음파 촬영을 해야 했고 한약, 양약을 복용했다. 일할 때는 자신에게 매우 엄격했다. 완벽을 추구하고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일하는 것과 쉬는 것을 균형 잡지 못했다. 매일 출근하면 하루가 1년 같았고 조금도 편히 지내지를 못했다.

마침내 나는 누가 보내온 전자판 ‘전법륜(轉法輪)’을 PC로 보게 되었다. 처음 책을 읽는데 내 손은 나도 모르게 안마하는 것처럼 등과 목등뼈를 계속 긁고 있었다. 오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읽을수록 몸이 가벼웠다. 나는 눈이 고도 근시인데 그렇게 오랫동안 컴퓨터를 봤는데도 눈이 전혀 시큰거리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잠시 인터넷을 보기만 해도 허리가 시큰하고 등이 아프고 눈이 어른거렸었다. 알레르기 증상도 없었는데 정말 신기했다! 게다가 전에는 이렇게 장시간 마음을 조용히 하고 책을 본 적이 없었다. 너무 기뻤고 마음이 아주 든든했다.

사부님 책 속의 법리(法理)는 나를 깊이 끌어당겼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처럼 많은 도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깊이 믿으며 의심하지 않았다. 원래 사람은 그렇게 높이 승화할 수 있으며, 원래 이 세계에는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진정한 표준이 있으며, 원래 손해를 보는 것은 정말로 잃는 것이 아니며, 원래 속인의 도덕 표준은 미끄러져 내려온 것이고 세상 기풍이 날로 나빠진 것이기에 물결치는 대로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이며, 원래 나의 선량함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내게 선량함을 굳게 지키며 손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부모, 선생님, 친척 친구 모두가 다 내가 너무 착하다며 이러면 좋지 않다 손해 보기 쉽다고 했다. 자기를 지키는 법을 배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현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좀 영리하고 세게 변해야 한다, 타인에게 너무 유해서는 안 된다고들 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지만 나는 오히려 받아들이기 싫었다. 나는 마음속이 극도로 모순되고 막막했으며 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타인이 인정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성격을 바꾸기 쉽지 않고 마음을 어기기도 싫었다. 변이된 관념에 따라 나는 내가 별 볼 일 없고 나약하고 재능도 없다고 생각했다. 온유하고 착한 것을 단점이라고 여기면서 스스로 열등감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眞(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1] “사람이 반본귀진하려는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다.”[1]

선량과 무사(無私)가 생명이 천성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굳게 믿게 해주신 분은 사부님이시다. 나는 생명의 의의는 반본귀진(返本歸真)이며, 우리의 선량한 본성으로 되돌아가 우주의 ‘진선인(眞善忍)’ 특성에 동화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그 진정한 좋은 표준과 거리가 너무 멀고, 너무나 멀리 떨어졌지만, 승화할 수 있고 더 좋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수련하겠다! 내게도 사부님이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좋고, 얼마나 신성한 일인가!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고 마음속으로 동경하던 정법대도(正法大道)가 아닌가!

이때부터 나는 더 막막한 마음이 아니었고 생명의 방향이 있게 되었다. 대법이야말로 내 마음속 등대이며, 암흑을 밝게 비춰주고, 광명을 피안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수련이 나의 심신을 크게 변화시키다

처음 연공을 배울 때 나는 숙소에 돌아오면 바로 연공을 시작했다.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그전까지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린 적이 없던 나는 연공을 하자 의외로 온몸에서 계속 땀이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는데 곧 가려운 느낌이 있었다. 제1장부터 4장 공법까지 다 하고 발밑을 봤더니 두 줄기 여울을 이뤘고(맨발로 바닥에 서서 연공함) 옷은 축축했다. 여태까지 그렇게 많은 땀을 흘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온몸은 편안하고 가볍고 시원했다. 나중에도 연공할 때 잇달아 여러 번에 걸쳐 아주 많은 땀을 흘렸다. 나는 몸이 가뿐해지고 전신의 피부도 좋게 변했다.

어떤 때는 새벽에 일어나 연공을 다 하고 출근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택단지에서 큰길로 나가 버스를 타는데 길 양쪽에 모두 아침을 파는 노점상이 있다. 나는 힘들어하지 않고 빠르게 걷는데 아주 가뿐한 느낌이다. 노점상에서 소리 없이 나를 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제야 이들이 바람을 타듯 걷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전에 옷을 살 때 자주 대형 몰에 가서 돈을 많이 썼다. 비싸야 좋은 것으로 생각해서 보통 그렇게 입었다. 나중에는 거리에서 30~50위안 정도에 산 옷을 입었어도 사람들이 예쁘다며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수련하기 때문에 사람의 내재적인 상태 전반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므로 옷을 고르지 않고 어떻게 입어도 보기 좋았다. 수련하여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한번은 휴가 때 본가에 갔다. 부모님은 내가 안색이 좋아지고 걸음걸이도 가벼우며 온통 생기발랄한 모습인 것을 보시고 아주 기뻐하셨다. 가족이 공원에 놀러 갔는데 부모님은 계속 내 사진을 찍으시고는 휴대전화를 자꾸 들여다보시면서 아주 잘 나왔다고 하셨다. 기쁨의 정으로 만면에 희색이 가득하셨다. 이번에도 부모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좋게 변해서 그런 것이었다.

수련 후 나는 몸이 좋아졌을뿐더러 약 한 첩 먹지 않고 마음이 정화되고 승화되었다. 전에는 자주 가요를 불렀다. 놀 때는 주로 노래방에 가서 케이팝을 불렀다. 나는 노래를 잘하는 편이어서 스스로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 다른 사람이 듣고 칭찬하면 속으로 뿌듯했다. 그러나 매번 노래를 다 하고 나오면 마음속은 또다시 왠지 모르게 공허했고, 그것은 결코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련을 한 뒤로는 그처럼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 하며 망상에 잠기게 하는 가요를 더는 듣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나는 보도(普度) 제세(濟世)와 다른 대법제자의 창작 음악에 빠져들고 싶었다. 그런 내면의 평화와 안정, 평온한 가운데 생겨난 지혜, 세속을 벗어난 신성하고 깨끗함은 정말이지 그 깊이를 말하기 어렵다.

나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 공부는 잘했어도 학과 공부를 제외하면 일부 잡지나 소설만 봤을 뿐 진지한 책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과생이라서 문화나 역사는 많은 부분을 몰랐다. 수련하고 나서야 나는 중화 전통문화의 박대 정심함을 진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염황(炎黄)의 자손으로서 이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것도 중국공산당이 전통문화를 파괴한 결과이다. 아주 많은 청년, 심지어 중장년 이상도 해를 입었다. 지금의 중국인, 심지어 그런 문화 관련 전문가, 교수, 문인, 작가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정한 중화 문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중화 문화의 진정한 의의는 무엇인가? 문화가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데 중국인이 한탄하며 비통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화 문화는 신전문화(神傳文化)이자 반신문화(半神文化)인데 이 점을 진정으로 알기만 하면 유유한 오천 년 중화 문화의 정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무대는 또 대법을 위주로 펼쳐지고 있다. 대법을 인식해야만 그 번잡하고, 복잡하고, 요동치는 역사의 정세를 꿰뚫어 볼 수 있고, 짙은 안개를 걷어 젖히고 진상(真相)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자신이 대법 중에서 수련할 수 있고, 그 같은 광활한 세계를 탐색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나는 밍후이왕의 신전문화 관련 내용을 모두 저장했는데, 들을수록 듣고 싶어진다. 나는 점차 더 예전처럼 그렇게 무지하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얄팍하지 않다. 내 마음속에는 법(法)이 있고, 진상(真相)이 있으며, 전통문화가 있기에 자연히 갈수록 더 지혜로워지고 있다.

예전에 나는 고시문(古詩文)을 그리 접촉하지 못했고, 잘 이해하지도 못했으며 교과서를 외워도 그 함의를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지금 나는 시를 쓸 수 있고 대련(對聯: 한 쌍의 대비되는 글귀를 종이, 대문 기둥 등에 쓰거나 새긴 글)도 쓸 수 있다. 수련생인 남편은 90년대생으로 신세대이지만 대학 때 한어(漢語) 문학을 전공해 고문(古文)을 쓸 수 있다. 그는 자주 고시(古詩)를 쓰는데 내용은 역사, 수련, 천시지리(天時地利) 등에 관한 것들이고 기풍이 아주 위엄있다. 결혼할 때 우리는 스스로 대련 10여 개를 만들어 대문과 방에 붙였다. 결혼할 때는 예식의 배경음악도 우리가 정성껏 고른 대법제자의 창작 음악이었다. 우리 결혼식은 아주 간소했지만 아주 의의가 있었다.

견정하게 신의 길을 걷다

몇 년 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나를 떠올려 보니 전공, 대학원 시험, 감정, 결혼 등등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며 어쩔 줄 몰라 막막했다. 몇 번이나 교정을 거닐며 낙담하고 허전해서 앞길을 찾지 못했다. 몇 번이나 전화로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하소연해봤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수년간 혼자 밖에서 바삐 뛰어다니며 온갖 삶의 고통을 맛봤다. 밤에 혼자 눈물 흘리기가 수차례였고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위로가 될지 몰랐었다…….

그러나 지금은 불과 짧은 몇 년 만에 그런 막막함과 씁쓸함, 희망 없는 날들이 내게서 이미 멀어졌다. 나는 수년간 알고 지낸 남자 수련생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우리는 함께 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함께 노력해 세상 사람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갖다 주기 바란다. 대법은 나를 성숙해지게 했고 용감하고 굳세게 변하게 해주었다. 나는 법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나의 청춘도 대법으로 인해 영원할 것이고 다시는 시들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신(神)의 길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2] 나는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하고 싶다. 인간의 언어를 다 쓴다 해도 사부님에 대한 제자의 감격을 표현할 길이 없다.

층차의 한계로 부당한 곳은 수련생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새해 문안’

 

원문발표: 2019년 4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연귀대법(緣歸大法)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30/3845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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