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다른 수련생의 집착심을 지적하는 것’에 관해

글/ 쓰촨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존께서 우리에게 우주의 근본 대법을 전해주셨다. 우리가 사존을 만나지 못할 때 사존께서는 법을 사부로 모시고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라고 요구하셨다. 어떤 강제적인 규정이 없는데 다시 말하면 ‘계율’이 없다.

구세력이 이번 박해를 배치해 중국에서는 사존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단체 법공부’ ‘단체 연공’ ‘법회’라는 수련환경이 파괴됐다. 오늘 짧은 문장으로 법으로 어떻게 ‘다른수련생의 집착심을 지적해주는가’에 대해 법으로 가늠하고 교류하려 한다.

‘다른수련생의 집착심을 지적해주려는’ 생각을 할 때 모두 ‘위타(爲他)’의 기점에 서야 하고 ‘위사(爲私)’의 요소가 없어야 한다. 동시에 말투에 주의해야 한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1]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다.”[1]

만약 ‘말투’를 부드럽게 할 수 없다면 자신을 수련해야 함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수련생의 집착을 지적’해야 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이런 지적하는 습관은 버리기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사실은 자신이 ‘선’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른 수련생의 집착심을 지적’하는 것은 단지 당시 혹은 최근 표현에서 나타나는 집착심 상태를 겨냥한 것이고 선의적으로 일깨워주는 것이다. 선의적으로 일깨워 주는 것은 지나간 일을 모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대법 ‘진·선·인’의 대법 ‘진(眞)’을 위배한 것으로 모든 것은 변화 중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과거는 완전히 같지는 않다. 과거의 어떤 상태로 지금 현상을 말하면 안 된다. 그것은 ‘진(眞)’하지 않는 것으로 완전히 맞지 않다.

법리에서 말하면 참되지 않음[不眞]에는 반드시 선하지 않고[不善] 참지 못하는[不忍] 요소가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럼 진(眞) 역시 眞(쩐)ㆍ善(싼)ㆍ忍(런)으로 구성됐고, 선(善) 역시 眞(쩐)ㆍ善(싼)ㆍ忍(런)으로 구성됐으며, 인(忍)도 마찬가지로 眞(쩐)ㆍ善(싼)ㆍ忍(런)으로 구성된 것이다.”[2] 각도를 바꾸어 보면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낡은 안목으로 사람을 보면 선하지 않은 것이다. 마땅히 자신이 참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하면 참음이 없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청성’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선을 알기 쉽게 해설’

 

원문발표: 2019년 4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26/385565.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