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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捧(봉)’과 ‘送(송)’에 대한 체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법을 외우던 중에 “이렇게 좋은 공법을 우리는 오늘날 당신에게 내놓았고, 나는 이미 당신에게 받쳐 주었으며, 당신의 집 문 앞까지 갖다 주었다.”[1]라는 법을 외웠는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捧(봉, 받들다)’, ‘送(송,보내다)’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확 띄면서 자비, 성실, 소중히 여김, 바라지 않음, 고생을 피하지 않는 것을 나에게 점화해 주었다.

‘捧(봉)’은 두 손으로 받쳐 건네주는 동작이다. 우리는 아주 소중히 여기는 뭔가가 긁히거나 부딪히는 것을 걱정하고, 조금이라도 다치는 것을 꺼릴 때 비로소 조심하며 받든다. 우리가 상대방을 아주 존중할 때, 우리가 상대방에게 뭔가를 아주 정중하게 줄 때 비로소 두 손으로 받들어 상대방에게 준다. 마음을 쓰지 않고, 정성을 쏟지 않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런 동작을 하지 않는다. ‘送(송)’은 길이 아득히 멀고,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을 불사하고 찾아내어갖다 주는 과정이다.

우리가 대법 책을 마음대로 쥐고, 던지고, 방치하고, 누르고, 더러운 곳에 두는 모든 행위에는 ‘捧(봉)’의공경하는 마음이 없다.

우리가 대법의 도움으로 수련생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때, 우리가 법을 따르는 가운데 법의 내포나, 사존께서 직접 우리에게 점화해주신 대법의 깊은 함의를 깨달았을 때는 그에 대해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항상 자비, 성실, 소중히 여김, 바라지 않는 ‘捧(봉)’의 심태로 수련생에게 전해야한다. 만약 자신을 드러내거나,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다른 사람의 심태를 지적하거나, 그것으로 모종의 물질 이익과 교환하려 한다면 이는 모두 ‘捧(봉)’이 아니다. 우리가 수련생의 심득 교류를 들을 때(당연히 바른 깨달음에 대해)는 똑같이 마음에 경의를 품고 ‘捧(봉)’의 심태로 수련생의 ‘送(송)’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대법에 대한 공경이며, 사존에 대한 공경이다.

대법에는 무한한 내포가 있다. 이상은 현재 개인의 수련 경지에서 깨달은 것이며, 수련생과 서로 격려하고자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4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4/25/3855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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