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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가족과 친척·친구를 대하자

정법 수련에 대한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지금껏 정법 수련에서 일부 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잘 해결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수련생은 매번 진상자료 배포가 끝나면 재빨리 집에 돌아가 손자 손녀에게 식사 준비를 해주고,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남편에 대해 말끝마다 멍청이라고 하고, 어떤 수련생은 누구든 자비롭게 대할 수 있지만 유독 남편에게는 그러지 못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많은 경우에 수련생 간에 상대방의 집착에 대해 조급해하는 마음이 있어서 대화할 때 예의 없이 말하는 것이다. 다들 오랜 시간 동수(同修)로 지내면서 못하는 말이 없고 그다지 주의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상대방이 어서 집착을 버렸으면 하지만 서로 간에 크고 작은 간격이 좀 생기거나 심지어 모순이 발생한다.

우리는 매일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는데 어째서 일부 사람이나 일에 대해 이렇게도 괴로워하는 것일까. 상대방의 집착에 집착하지 말고 남의 문제를 봤으면 자기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쟁투심, 질투심, 환희심, 자아에 대한 집착심 등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직도 깨끗이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도 어떤 때 수련생인 아내와 대화할 때 예의가 없고 심지어 어떤 때는 아주 거칠다. 비록 끊임없이 그런 좋지 못한 것을 억제하고, 집착 배후의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를 발정념으로 제거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월 초삼일에 고향집에서 있었던 일인데, 이웃집 누님이 어머니와 수다를 떨다가 동네 젊은이들의 혼사 이야기가 나왔다. 누님은 손녀가 너무 까다로워서 혼처를 찾지 못한다며, 또 어느 집은 아들 둘이 다 이혼했다는 등의 말을 했다. 곁에서 무심코 이런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누님의 이 말을 듣고는 갑자기 머릿속이 울리면서 화면이 나타났다.

일반인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모르다가 아빠 엄마 또는 가족 품에 안겨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말을 들으며 자란다. “귀염둥이, 귀염둥이…… ‘아빠’ ‘엄마’ 해봐, 이쪽은 할아버지 할머니야……” 점차 크면 어른들이 말한다. “귀염둥이, 고모가 맛있는 거 사 왔다. 작은고모는 장난감을 사 오셨구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너 보러 오셨다……” 이렇게 크면서 학교에 들어간다. 결혼적령기가 되면 남자는 좋은 아내를 찾고 싶어 하고 여자는 좋은 집에 시집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아들딸,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들이 생긴다. 한 대 한 대 이렇게 이어 내려간다. 세상 사람은 대부분 이렇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 오셨다. 우리는 대법이 전해지는 그 날을 기다려오다가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우주 대법을 잇달아 얻었다. 우리는 속인에서 법을 얻어 대법 수련자로 됐다. 우리는 지금까지 속인의 관념과 이념 속에서 생활했고 또 속인이라는 이 환경 속에서 수련하고 있다. 속인 사회에서 벗어나지 않았기에 우리 주변의 친인척, 친구는 여전히 우리와 정상적으로 오가며, 우리는 속인 때의 생각 및 이 사회에 대한 인식과 견해를 갖고 있다. 심성을 제고해야 하고, 타인에 대해 잘하고 일마다 곳곳에서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을 처리할 때 아직 사람 속에 사상의 뿌리가 있다. 이 때문에 손자, 손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자기 남편이나 아내와 대화할 때 비교적 마음대로 하는 등등 표현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관계나 친인을 자기 소유의 것 또는 자원으로 여기고 있고, 게다가 타인을 좌우지하려는 등 기타의 관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속인 사회 환경에서 수련하고 있고, 정상적인 의식주를 행하는 표현에서는 속인과 다르지 않다. 단지 심성과 경지를 제고해야 한다. 현실 속 표현에서 제고하는 가운데, 우리의 제고를 저애하는 끈적끈적한 물질이 늘 수련인에게 들러붙어 있는데, 바로 각종 정의 표현이다. 이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평정을 잃게 하고 평온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마음 깊은 데서부터 대법에 부합하는 고요함과 상화(詳和)로움, 자비가 없게 된다. 우리는 사상 속에서, 사람의 세상에 대한 인식에서 형성된 그런 완고한 관념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수련을 하므로 마땅히 점차 사람의 틀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사람의 성장 과정, 태어나서 부모님과 웃어른 품에 있던 그 순간부터 말해보자. 이렇게 볼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잠시 이렇게 말하자) 매우 큰 인연이 있는 두 사람과 만났다. 인간 세상의 언어로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다. 또 기타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이 있는데, 사람의 말로 하면 가족과 친척이다. 자라서 결혼할 때면 또 나와 인연이 더욱 큰 사람과 만나서 자녀가 있게 되고 잇달아 후손들이 태어나는데 그들은 모두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단지 인간 세상의 호칭이 아들, 딸,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이다. 사람이 사회에 존재하는 방식은 신이 사람에게 정해준 일종 생활 상태이다. 모든 친척 친구가 포함된다. 왜냐하면 인간 세상은 가정이라는 방식으로 이 사회의 존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명리정과 업력윤보는 모두 그 속에 녹아있다. 만약 그들 중 누군가 법을 얻어 수련했다면 동수이다. 수련하지 않는다면 기타 속인과 마찬가지로 그도 우리가 마땅히 구도(救度)해야 할 생명이다.

법공부를 통해 알고 있다. 현재 인간 세상의 대다수 속인은 모두 하늘의 신이 전생한 것이고, 인간 세상에 머문 시간도 오래되었다. 신이 사람에게 정해준 사람의 존재와 왕래하는 방식은 이 사회에 있어서는 정상적이나, 세상의 명리정에서 벗어나 초상적인 사람으로 나아가는 대법제자에게 있어서는 사람에게 작용하는 그런 요소가 제고 및 승화에 저애력이 된다. 만약 우리가 이런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근본에서 세상의 명리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끊임없이 법에 대조해 제고하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이런 상태라면 더는 가족, 수련생, 그리고 자기가 거슬리는 사람과 일에 대해 괴롭지 않을 것이다.

정법(正法)하는 가운데 사부님께서 일체를 관장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반드시 대법에 비춰서 자기가 대법을 실증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사람마다 수련이 승화하는 데서 각자 길이 다르지만 모두 사부님의 배치 속에 있다. 반대로 가족, 속인, 수련생에 대해 품는 소위 걱정은 각자가 마땅히 버려야 할 집착으로 되었다. (물론 전혀 관심도 없고, 상관하지도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 평화롭고 자비로운 마음가짐에서 인간 세상의 그러한 칠정육욕은 아주 작게 변하고 사라진다. 우리는 원래 하늘에서 세상에 내려온 신(神)이지 않았던가! 어째서 인간 세상의 명리정에 휘감겨 곤혹스러워하고 심지어 헤어나오지 못하는가? 대법을 얻었다면 첫째가 수련이다. 인간 세상의 집착을 내려놓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니 삽시에 자기가 사람과 매우 큰 거리로 떨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더는 이전의 그러한 걱정과 괴로운 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심의 그 고요함이 더욱 충실해졌고 강대해졌다. 그것은 법리에서 명백해진 후의 내적인 승화일 것이다. 원래 단지 사람의 관념으로 한층 가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진아(眞我)가 인식할 때라야만 진정하게 승화할 수 있다. 한편 사람의 관념을 제거하고 모조리 제거하는 것은 수련인마다 잘해야 한다.

 

원문발표: 2019년 4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 수련교류>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25/3854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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