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우리 지역에서 10여 명의 대법제자가 연속 납치됐다. 표면적인 원인은 낮에 공개적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거짓말에 속은 사람이 고발해 경찰이 납치한 것이다. 국내에서 일부 수련생은 줄곧 표면적인 기세의 드높음을 좋아하는데 사실 마땅하지 않다.
지금 중국 많은 지역에서 사악(邪惡)은 여전히 아주 창궐하다. 대법제자가 진상을 전하다 납치되고 징역형을 받은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 우리 대법제자가 대법 진상을 전할 때 정념정행하고 안으로 찾는 이외에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전제하에 표면적인 안전에 주의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중국의 사악하고 광적인 탄압 환경 하에 대법 진상을 전하는 것은 고생스럽고 힘들며 풍찬노숙(風餐露宿,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에서 먹고 자고 하다) 문제만이 아니라 시시각각 위험이 존재하므로 사악의 박해를 피해야 한다.
이지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실제적인 효과를 중시하며 가늘고 부드럽게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는 것처럼 하는 것이 좋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이를 뽑는 사례를 들면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우리는 표면의 도구만 볼 수 없으며, 그것의 실제 효과를 보아야 한다.”[1]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어떻게 이지적이고 명석하게 하며 기점을 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깨어 있을 때 이지(理智)의 문을 열라”[2]
나는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일종 자비의 체현이라고깨달았다. 대법제자가 박해 받는 것은 정말로 “대법제자들 마난(魔難)을 겪지만 훼멸되는 것은 중생이라네”[3]이기 때문이다. 대법제자가 박해를 받으면 많은 친척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대법의 대립 면에 설 것이며 일부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담당자도 죄를 짓게 되고 일부 진상을 안 세인의 정념이 지워져버릴 것이다.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세인의 구원을 생각하는 것이고 자비로움의 체현이다. 반대로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건성건성 하는 것은 책임지지 않는 표현이다. 예를 들면 우리 지역에 최근 납치된 대법제자 중에는 협조인이 있고 집에서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도 있다. 납치된 후 집에서 대량의 물품을 수색당했다. 자료, 대법 책, 설비, 메모리 등이 있었고, 또 많은 수련생의 전화번호(암호를 설정하지 않았음)가 있어 손실이 심각했다. 낮에 차를 운전하고 세인 앞에서 차에서 내려 공개적으로 자료를 배포했다. 결국 고발되어 차량은 압수되고 여러 명의 대법제자가 납치됐다. 손실이 심각하고 현지의 법을 실증하는 환경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 현지의 한 수련생은 학교 수업 중에 공개적으로 진상을 알렸는데 학부모가 고발했다. 경찰이 그녀의 집에 붙잡으러 갔을 때 대문, 방문이 모두 열려 있어 경찰은 바로 방에 들어갔는데 그녀가 집에서 진상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사악은 악법(惡法)에 따라 절차를 밟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가족은 징역, 공직에서 해임되는 것 등이 두려워 공검법 담당자를 매수해 20만 위안(한화 약 3500만원)을 들여 ‘정신병자’로 판정받게 하고, 수련생은 몇 달 수감된 후 석방되었다. 부정적인 영향이 아주 커 친척, 친구들의 원망이 컸다. 우리가 중생을 위해 안전에 주의하는 것이 자비의 체현이 아닌가?
중국에서 수련생이 안전에 주의할 것을 늘 제기하면 다른 수련생이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이고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박해를 묵인하는 것이며 정념이 강하지 않다는 등의 말을 늘 한다. 우리가 중생을 자비롭게 대하는 기점에서 안전 문제를 고려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법에 책임지고 중생을 자비롭게 대하는 것이다.
개인의 체험이니 적당하지 않은 점은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3-이지의 문을 열다’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3-세세생생 금생을 위해’
원문발표: 2019년 4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16/3851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