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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어린이 제자가 대법 속에서 성장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을 수련하여 온 가족이 혜택을 받다

저는 7살에 부모님을 따라 함께 법을 얻었습니다.

원래 저의 부모님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중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심한 어지럼증이 있어서 수업시간에 갑자기 쓰러져 집으로 돌려보내지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더 심하셔서 어릴 때부터 심장이 안 좋으셨고, 저를 낳으면서 또 어깨관절 주위염, 추간판 탈출증 등 산후병을 앓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길에 웅덩이가 있으면 다른 어머니들은 아기를 안고 다녔지만, 저의 어머니는 어깨가 약해서 저 스스로 진흙 속을 걸어서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6년 여름 방학을 맞아, 부모님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짧은 몇 개월 동안 몸의 병이 전부 나았습니다.

부모님은 외할머니에게 소개해주어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듣는 9일 학습반에 참가하게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당시 80대셨고, 심장병이 심하여 속효구심환(速效救心丸)을 한 움큼씩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외할머니는 학습반에 갈 때는 차를 탔지만, 비디오 한 강의를 본 결과, 가족들이 데리러 오기 전에, 혼자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날부터 외할머니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법을 얻어 몸과 마음이 혜택을 받는 가운데, 저에게도 역시 조용히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던 저는 더는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잔병에 걸리지 않았고, 어릴 때 홍수로 인해 감기에 걸려 생겼던 심한 비염도 나았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당시 우리 온 가족은 다만 여유롭게 연공을 연마하면서 대법이 가져다준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누리고만 있었을 뿐, 법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병을 제거하여 몸이 건강해지게 되는 신기한 효과’라는 감성적 차원에만 머무르면서, 수련은 결코 정진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일이 바빠서 점차 법공부와 연공을 게을리하셨고, 1998년 가을, 한 차례의 병업관에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다음 해 봄, 보도원은 우리를 찾아왔고, 원래 전 현에서 매주에 한 번씩 단체 연공하던 것을 매일 집 근처에서 단체 아침 연공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이런 형식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대법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을 알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나가서 법을 실증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서 지역사회 학교 교문 앞에서 단체 연공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저는 왜 그런지 잘 몰랐는데 연공만 하면 매우 흥분됐습니다.

감성에서 이성으로의 수련과정

1997년 7·20 이후, 중국공산당은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고, 각종 모욕, 유언비어를 갈수록 격하게 날조하여, 우리 현지의 수많은 대법제자들은 대법을 위해 바른말을 하려고 잇따라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도 가고 싶어 하셨으나, 열 살이 된 제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줄곧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면서 매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걱정하지 않고 안심하고 갈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저는 사부님의 ‘홍음’의 시사를 몇 번 베껴 썼습니다. 어머니는 마침내 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베이징에 들어가서 민원청원을 하기도 전에 납치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민원청원을 하려고 다시 베이징에 갔으나, 이번에도 납치를 당하여 불법적으로 1년 노동교화를 받았습니다.

주변의 친척과 친구들은 우리 가족에게 손가락질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외할아버지는 대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함과 박해에 대한 공포로 자주 저와 어머니를 욕하여 처음에 어머니를 지지하던 저의 결심도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루는 외할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슬퍼서 집안의 빈방에 숨어서 크게 울다가 곧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하늘이 밝은 주황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고, 장엄하고 신성한 불악(佛樂)을 동반했습니다. 우렁차고 힘찬 목소리가 공중에서 메아리쳤고, 각양각색의 다른 신불의 이름과 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번 한 불의 이름과 호를 부를 때마다 지상에서는 한 송이의 금빛 연화반이 피어올랐습니다. 연화반이 일정한 높이까지 피어오르면 하나의 대응되는 신불이 날아올라 갔습니다. 물론, 연화반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어떤 신불이 타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신수(神獸) 또는 천차(天車)였습니다. 제가 한창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을 무렵, 갑자기 공중에서 어머니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비록 어머니의 지금 이름은 아니었으나 저는 들은 후 그 이름이 바로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연화반이 일정 높이까지 피어올랐을 때, 저는 어머니가 황금빛 가사를 입고 날아올라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몹시 격동되어 지상에 서서 크게 외쳤습니다. 어머니의 주의를 끌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모습은 자상하면서도 정중했으며, 어떠한 의사표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연화반 아래에 하나의 기다란 금빛 쇠사슬이 뻗어져 나왔고, 쇠사슬 뒤에는 또 천차 한 대가 제 앞에 도착하여 저는 뛰어 올라갔습니다. 저는 깨어난 후 몹시 격동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련의 성스러움과 위대함을 깨달았으며, 자신의 동요가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도 평온해졌으며, 한시를 서두르지 않아도 언젠가는 저와 어머니가 진정으로 모일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2001년 4월, 어머니가 노동교화소에서 나온 후,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자료점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수련생들을 안에 묵게 해주고, 진상 자료를 인쇄하여 제작했습니다. 이런 수련생들은 모두 박해를 당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자주 나와서 활동하는 것이 불편하여, 종종 어린 저를 보내어 자료를 운반하게 했습니다. 제가 한 것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인근의 3개 구와 4개 현의 수련생들이 다시 우리 집으로 와서 자료를 가져가 배포할 수 있도록, 방과 후, 그곳에 가서 자전거로 인쇄가 다 된 진상 자료를 집으로 가져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01년 8월, 우리 집은 폭로되었고, 경찰관은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를 붙잡아갈 예정이었지만, 다행히 어머니의 한 친구의 남편이 경찰이어서, 그는 경찰관이 도착하기 전에 알려주어 우리가 떠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집에는 갓 인쇄해놓은 진상 자료가 매우 많았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따로 행동하기로 하여, 어머니는 교외 지역에 있는 자료를 인쇄하는 지방으로 가서 다른 수련생들에게 알리고, 저는 집으로 돌아가 자료와 대법 책을 꺼내온 후, 다시 어머니와 만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제가 집에 도착해서 자료와 대법책을 아직 정리하기도 전에 경적이 들렸고, 제가 창문에 엎드려서 보니 경찰차 두 대가 우리 집 아래층에 도착해 있었으며, 또 한 대는 동네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천지가 울리듯 문을 두드렸고, 그들은 한편으로 문을 두드리면서 한편으로 위협하며 말했습니다. “빨리 문 열어, 안 그러면 문을 부수고 들어갈 거야.” 그러고 나서 쿵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집은 오래된 집이어서 방범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문설주(木門框)가 경찰관들에 의해 채여서 거의 느슨해진 것을 보고 저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다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1] 저는 바로 침대 위에 앉아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아직 발정념을 잘 몰라서 다만 가부좌를 틀고 입장하고, 한 번씩 한 번씩 생각하며,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부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나, 대략 십 분 정도 지났을 것입니다. 경찰관들은 문 두드리던 것을 멈추었고, 아래층에서 귓속말로 뭔가를 상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빨리 가도록 계속하여 사부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또 반 시간 남짓 지난 후, 모든 경찰관이 전부 갔습니다. 저는 한숨을 내쉬면서 울음을 터뜨렸고, 사부님께 공손히 감사드렸습니다.

그날,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저는 안전하게 자료와 대법 책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고, 수련생과 함께 자료점을 외지로 옮겨가야 했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가 외지에서 자료를 배포하다 또 납치당하여 노동교화소에 불법적으로 2년 반 갇혔습니다.

저는 더 돌아갈 집이 없어, 할 수 없이 당분간 외갓집으로 가서 얹혀살았고, 나중에는 또 외지로 전학하여 고모 댁에 얹혀살았습니다. 수련생과 연락이 끊어지고, 자신도 법 공부와 연공을 견지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댁의 사람들이 차가운 시선을 보낼 때마다 저는 늘 심성관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상태는 줄곧 2004년 어머니가 출소하여 제가 다시 새롭게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지속하였고, 그때야 수련이 점차 정상적인 궤도를 회복했습니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어머니는 대면 진상 과정에서 세 번째 납치를 당하여, 저는 또다시 혼자 수련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대학교에 갓 입학을 했고, 매우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많은 동아리에 참가했고, 저는 여러 가지 오락에 빠져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했으며, 법 공부와 연공을 가끔 하는 여가활동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 외할머니와 수련생이 어떻게 저를 이야기하든 저는 듣지 않았습니다.

2009년 여름 방학이었던 어느 날, 한 수련생이 외할머니에게 최신 ‘밍후이주간(明慧週刊)’과 진상 CD를 전달하러 왔다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가야, 이렇게 좋은 법을 잘 배워야 해. 절대 놓치면 안 돼.” 이렇게 간단한 말 한마디가 왠지 모르게 단번에 저를 꿈속에서 깨운 것 같았습니다. 이 수련생이 간 후, 저는 즉시 그녀가 가져다준 ‘우리는 미래에 알린다(我們告訴未來)’ 진상 시리즈 CD를 보았습니다. 그제야 전면적으로 대법이 세계적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된 위대한 역사적 과정과 국내외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진실을 밝히며 기울인 간고한 노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마음속에 가져다준 감동은 형언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일 날 밤, 외할머니와 이모는 모두 잠이 들었고, 저는 아무리 뒤척거려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외할머니가 대법책을 보관하던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당시, 맨 위에 있던 한 권은 사부님의 ‘북미순회설법’이었습니다. 저는 들고 단숨에 모두 읽었습니다. 다 읽은 후, 저는 자신이 사람으로 태어난 의미와 사존께서 말법시기에 정법하시는 것과 무량한 중생을 구원하시는 자비로움과 위대함 그리고 제가 짊어진 조사정법과 중생구도의 신성한 사명을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날에서야 저는 진정하게 입문하였고,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한 명의 수련생에서 대법제자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법 공부와 연공에 대한 교란을 돌파하다

제가 제대로 수련하고 법 공부를 많이 하며, 누락되었던 것을 서둘러 보완하려고 할 때,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때때로 저는 거기에 앉아서 한참을 보았지만, 정신을 다른 곳에 팔았고, 몇 강의를 읽었어도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한 것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틀이 지났고, 저는 이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반드시 그것을 돌파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매번 법공부를 할 때 자신이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은 것을 발견할 때마다, 재빠르게 되돌아와 다시 새롭게 읽었고, 한 번씩 또 한 번씩 읽었습니다. 시작할 때에는 생각을 집중할 수 없었고, 단락마다 열 번 이상은 읽어야만 했으므로, ‘전법륜’ 한 페이지를 보통 반 시간 이상 읽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반복하여 읽고 또 읽으면서 대략 이틀이 지난 후, 어떤 물질이 서서히 흩어지는 것을 느꼈고, 사상의식이 갈수록 맑고 또렷해졌으며, 글자마다 모두 저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글의 이면에 있는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 역시 끊임없이 저의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에 저는 모두 책을 보고 있었으며, ‘전법륜’을 읽는 것 외에, 저는 또 사존의 각지설법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연속해서 한 번 보았습니다. 정법의 노정에 빨리 따라갈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법공부의 교란 외에, 새로이 연공하는 저를 겹겹이 방해했습니다. 법공부는 비록 생각을 집중하면 효율이 매우 높을 수 있었지만, 연공할 때가 되면 곧 허튼 생각을 하게 되어, 무슨 자질구레한 일들이 한데 뒤섞여 무엇이든 다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모르게 따라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연공할 때의 그 생각은 드라마처럼 끊임없이 변하며, 변할수록 사람에게 고요해질 수 없게 하여, 기분도 따라서 기복이 심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고, 법에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마치 용기와 같아서 무엇을 담으면 바로 그것이다. 당신이 담아둔 법은 바로 법에 동화된 것이며, 당신이 흙을 담으면 바로 흙이다.”[2] 저는 그동안 개인의 취향과 집착으로 인하여,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속에는 명리색정의 각종 나쁜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서, 보고 나면 저의 머릿속에 담길 뿐만 아니라, 저는 또 내려놓지 못하여 보물처럼 자신의 머릿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확실히 저를 교란하며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저장해 놓았던 모든 음악과 드라마 파일을 모두 삭제했습니다. 그다음 발정념으로 이전에 이런 것을 보고 생겨난 나쁜 물질을 깨끗이 제거했습니다. 그 후, 저의 마음은 아주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잡념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고, 저는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사부님께서 법에서 하신 말씀과 대조해보았습니다. “사람이 고요해지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무슨 수법(手法)상의 문제가 아니며, 무슨 절묘한 수(絶招)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사상과 당신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3] 사부님께서 저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조정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상, 저는 저의 사상 속에서 튀어나온 그런 내용이 무엇이고, 본 것이 도대체 어떤 마음인지 분석하여, 무엇이면 곧 무엇을 제거하여 없애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잘 눈치채지 못하거나 갈등에 자극받지 않았던 집착심을 단번에 많이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이것은 제가 자신을 수련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고, 자신의 사유에서 뛰쳐나와 그것을 관찰하며, 자신의 어떤 생각의 출처가 무엇이고, 법에 부합하는지를 보며, 부합하지 않는 것은 정념으로 그것을 배척하고 깨끗이 제거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집착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저는 역시 내려놓는 것이 매우 어려워,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종종 초조해했으며, 나중에 사부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정말로 당신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후천적으로 일하면서 형성한 각종 관념이고 진일보로 형성된 업력, 바로 이런 것들이다.”[4] 저는 갑자기 확 트이며, 법에 따라 자신의 행위와 생각을 가늠할 때, 어떤 것이 법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면, 곧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고, 관념이 이렇게 바뀌기만 하면 매우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상을 알리면서 마음을 닦고 자신을 승화하다

어느 날 법공부를 하기 전까지, 이상의 법공부와 연공할 때의 장애물을 돌파한 후, 저는 득의양양하여 법 속에서 승화되는 아름다움과 미묘함에 잠겨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말씀에 저촉되었습니다. “살인 방화하는 것을 보고도 당신이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心性(씬씽)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사람을 체현해 낼 수 있겠는가?”[3] 이 부분에서 ‘내 곁에 그렇게 많은 생명이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에 독해를 받았고, 그들의 머릿속에 우주 대법에 대한 불경스러운 생각이 담겨 있어서 훼멸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을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떻게 마음도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수련만 고려하면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의사가 생겨났습니다. 이튿날부터 저는 수련생과 함께 나가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가 생각한 것은 쉬웠지만, 하고 보니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거리에 가서 형형색색의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니, 저는 도저히 어떻게 입을 열고 그들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으며, 며칠 동안 저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되돌아왔습니다.

하루는 저의 외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저와 수련생이 잇따라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보고 자신도 나가서 알리고 싶다고 저에게 함께 데리고 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다고 생각되어, 외할머니를 모시고 근처 공원으로 갔습니다. 결국, 우리 두 사람은 여전히 답답해 보였고, 나온 지 한나절이 지나 공원에 갈수록 사람이 적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이때, 어떤 남자가 다가와 우리 외할머니에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니, 정말 기운이 넘쳐 보이세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외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아흔이 다 되어 가지요.” 상대방이 몹시 놀라며 말했습니다. “연세가 이렇게 많으신데 몸이 이렇게 민첩하세요.” 외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이어서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은 듣고 매우 놀랐고, 나중에 저와 외할머니는 경위를 설명하면서, 어머니가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여 박해를 당한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수련을 견지하는 것에 많은 이해와 공감을 표했으며, 마지막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삼퇴(중국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 탈퇴)를 했습니다. 저와 외할머니는 이것은 반드시 사부님께서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 이렇게 좋은 중생을 보내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저에게 진상 알리기의 얼음을 깨는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제가 몸소 겪은 경험 자체가 바로 대법에서 받은 혜택과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박해를 당한 실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이야기하면서 진실하게 표출되는 정서는 상대방을 매우 쉽게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상대방이 경계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므로, 전체적인 박해 상황과 데이터를 소개하여 상대방이 알게 합니다. 상대방에게 저의 경험은 개별적이거나 특수한 안건이 아니며, 중국에서 아직 더 많은 사람이 저처럼 수련을 견지하는 것으로 인하여 가정이 깨지고, 잔혹한 박해를 당하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여기서 다시 상대방에게 파룬궁은 중국공산당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유일한 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중국공산당은 역사적으로 범한 범죄 행위로 그것의 사악한 본질을 폭로하여, 상대방에게 그것을 똑똑히 알게 하여 중국공산당을 탈퇴하게 합니다.

물론, 이것은 단지 제가 개인적으로 모색해서 나온 하나의 아이디어입니다. 실제로 진상을 알릴 때, 또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상황과 반응에 따라 임기응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뀐다 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람을 구하는 그 마음이라는 것을 저는 발견했습니다. 한 가지 일을 많이 하게 되면, 일종의 관성이 형성되어 습관이 되면, 일종의 기계적인 반복으로 바뀌어 사람을 구하는 초심을 잊기 쉬우며, 제가 때때로 알리기 위해 이야기하러 갈 때면, 상대방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고 제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진상을 알릴 때는 늘 사람을 골랐습니다. 잘 생기고, 선한 인상이면 곧 가서 이야기했고, 여성에게 알리는 것을 선호했으며, 남성에게 알리는 것을 꺼렸고, 노인에게 알리는 것을 원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마도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해주셔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효과가 꽤 괜찮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이런 분별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점차 어느 날, 주말에 나가서 반나절이나 진상을 알렸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이튿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보기에 선한 사람들도 모두 저를 거절했습니다. 저는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까다롭게 사람을 골라서 진상을 알린 것은 자신이 거절당하여, 상처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아보호의 사적인 마음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저의 사심은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게 해쳤습니다. 이것은 죄이므로, 저는 대비하는 마음을 열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렇게 하니, 역시 어려웠던 국면이 열려 다시 새롭게 삼퇴를 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사나워 보이는 많은 사람은 오히려 매우 시원스럽게 진상을 받아들였으며, 자유분방해 보이는 많은 젊은 사람들은 사실 중국공산당 전제에 대해 매우 식견이 있었습니다. 이는 제가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을 선택하는 관념을 타파하게 했고, 제가 더 많이 다가가서 진상을 알리도록 격려했습니다. 평소 나가서 쇼핑하고, 장을 보고, 버스를 타고 놀러 갈 때면, 사람을 만나면 모두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것은, 진상을 알린 사람이 많아지자, 받게 되는 타격도 많았습니다. 종종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비웃음을 당하다 보면, 처음 시작할 때에는 듣고 난 후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고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그들이 이처럼 남의 호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듣는 것도 익숙해집니다. 마음속으로 ‘나는 수련인이니 그들과 견식을 같이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저는 이것은 참음이고 높은 자태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수련생과 법공부를 한 후, 그녀가 가정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녀의 속인인 남편은 자주 그녀에게 욕을 해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마찬가지로 참고 양보하면 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의 남편은 갈수록 심해져 그녀만 욕하는 것이 아니라 사부님과 대법까지 욕했습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매번 자신이 소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포용하는 것은 사실 이 생명에 대한 냉담함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녀는 지금까지 남편이 말하지 말았어야 할 많은 말을 하게 되어 그렇게 많은 업력을 빚게 되어 이 순간 그녀의 자비심이 나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후부터 절대로 더는 이렇게 말하지 말아요. 당신한테 안 좋아요. 당신이 저를 욕하는 것은 저는 문제 삼지 않아요. 그러나 당신이 이렇게 좋은 대법을 욕하는 것은 죄가 돼요. 나는 이 때문에 당신에게 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아요.” 남편은 그녀의 말을 듣고 넋을 잃었으며, 이후부터 정말로 더는 그녀와 대법을 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교류에서 저에게 자신의 경험을 연상하게 했고, 저는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던 그런 사람들에 대해 아무 말 없이 양보했는데, 역시 냉담함과 자비심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후 진상을 알릴 때는, 욕하는 사람을 보면 저는 더는 바로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위하는 처지에서 출발하여 그들에게 자신을 해치지 말라고 권유했고, 그들 중 일부 사람들은 제가 자신들을 위해 생각하는 진심을 느낀 후,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삼퇴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완고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보류하겠다는 의견을 남겼고, 가서 이지적으로 판단하겠다고 의사를 표했습니다. 천천히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저를 욕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적어지고, 진상을 받아들여 삼퇴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그 해, 여름 방학이 지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교도소에서 심한 병업관을 겪게 되어, 목과 겨드랑이 림프에 여러 개의 종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곳에 진상을 알릴 필요가 있다.”[5] 저는 교도소에 찾아가 교도관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에게 가능한 어머니를 빨리 석방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교도소를 자주 다녔고, 그곳은 외진 곳이어서 버스로 두 시간 걸렸을 뿐만 아니라, 바로 가는 차가 없어, 많은 사람이 버스를 탄 다음 다시 택시를 불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버스에서 내린 후, 20~30분 정도 걸어서 갔습니다. 결국, 어느 날 제가 버스에서 내리자, 한 택시 기사가 자발적으로 저를 불러 택시를 타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웃으면서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 번 더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에게는 싸게 해드릴게요.” 저는 마음속으로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참고 돈을 좀 쓰기로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가는 길에 마침 그에게 진상을 알리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저에 대해 먼저 물어왔습니다. “아가씨, 왜 혼자서 이런 곳에 와요?” 저는 어머니가 교도소에서 당하고 있는 잔혹한 시달림과 제가 교도소에 와서 어머니를 요구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그에게 대법은 모함을 받은 것이라는 것과 중국공산당이 잔혹하게 박해하는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듣고 난 후 몹시 감동하여 즉시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그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을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이날 교도소에서 제가 찾으려고 했던 몇 명의 교도소 관리자들은 모두 없었고, 한참 동안 기다려도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 북방지역의 겨울은 날이 빨리 저물어, 저는 마음속으로 기다리다가 버스를 탈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습니다. 결국, 교도소 대문을 나오자마자 불빛 하나가 저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가까이 다가 가보니 조금 전에 저를 데려다준 그 기사 아저씨였습니다. 그는 저를 보고 매우 기뻐하면서 조금 전에 다른 사람을 데려다주고, 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몰라서 좀 더 기다려 보려고 가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날이 춥고 길이 미끄러워 제가 차를 타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듣고 몹시 감동하여 연거푸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헤어질 때, 저는 그에게 택시비를 주었지만, 그는 오히려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늘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박해를 당하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파룬궁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정념과 선택에 기뻐했습니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저는 진상을 알리면서 종종 이렇게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진상을 들은 후 눈물을 흘렸고, 시장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아주머니는 진상을 들은 후 저에게 먹을 것을 주려 했으며, 권세 있는 사람은 진상을 들은 후, 저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려 했고, 어떤 이는 심지어 직접 대법항목에 돈을 기부하려 했습니다. 중생이 진상을 알게 된 후의 기쁨과 싹터 나온 선의를 보면서 저는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자신감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초, 저는 해외로 와서 새로운 수련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상은 저의 수련체득입니다. 잘못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싱가포르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서부법회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4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1/3845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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