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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도 자비와 위엄이 함께 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6년 10월, 나는 운 좋게도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얻어 대법 수련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위대하시고 자비하신 사부님의 보호 아래 오늘까지 걸어왔으며 지금까지의 제 작은 체험을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과 교류하고 싶습니다. 법에서 벗어난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후 마을 서기 부자(父子) 등 여러 명이 우리 집 주위에서 나를 감시했다. 특히 밤이 되면 창문과 출입문 등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계속 어른거렸는데 그들은 나를 엄밀하게 감시하며 적색공포를 조성했다. 악마 장쩌민은 3개월 안에 파룬궁을 소멸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악한 형세에서 나는 신체 자유가 침해당했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2008년 새해가 되자 우리 지역은 이상하게도 눈이 많이 내렸으며 날씨가 매우 추워졌다. 그때 나는 불법으로 체포돼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집에서 보낸 돈과 옷가지는 구치소에서 압수했고 또 죄수들이 빼앗아갔다. 감옥 경찰은 내가 이를 발설하지 못하게 했고 다른 경찰에게도 상황을 보고해서는 안 된다고 강제했다. 이것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감방장은 대소변도 보지 못하게 하며 자주 나를 괴롭혔는데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큰 상처를 입었다.

법리(法理)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기에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한다는 것이란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며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참아야 하는 것으로만 여겼다. 그 뒤로도 환경은 갈수록 더 나빠져 생존 조건이 극한 상황에 이르렀다. ‘전향(파룬궁 수련 포기)’하지 않으면 곧 죽임을 당해야 했는데 이는 장쩌민의 지령이었다. 하루는 한 죄수가 두 벌밖에 없는 내 방한복을 갖다가 세면대에 담그고 입지 못하게 했다. 그 뜻은 전향하지 않으면 얼어 죽는다는 뜻이었다. (당시 감옥에서는 잡범들을 교사해 감형 등을 미끼로 파룬궁을 박해하도록 했음). 이때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참음(忍)은 나약한 것이 아니지만, 온갖 수모를 다 참고 견뎌내는 것은 더욱 아니다.”[1] 생존권을 박탈당한 상황에서 나는 옷을 물에 담근 그 죄수에게 다가가 선한 말투로 그러나 위엄 있게 말했다. “나는 올해 이미 60여 세가 되는 사람입니다. 이제 옷도 없고 집에서 보내준 돈과 옷까지 당신들이 모두 빼앗아갔습니다.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겨우 약간의 밥이 전부여서 굶주리고 배가 고픕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게 두 벌뿐인 방한복까지 물속에 담가버렸습니다. 당신은 내 생명줄을 끊어 나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으려 하지만 내 생각에 당신 집안도 곤란해질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처음 하는 짓이기에 나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속인도 참아낼 수 없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나는 최대의 자비심으로 당신을 용서할 테니 다음에는 이러지 마십시오. 악은 정의를 이길 수 없으며 이것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그 죄수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떨궜다.

그렇다고 일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사당(邪黨)의 박해는 끝이 없었다. 감방장이 이 일을 감옥 경찰에게 보고했는데 내가 남을 때렸다고 했다. 감옥 경찰은 나를 사무실로 불러 약점을 잡았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 있죠? 더욱이 60여 세나 되는 사람이 성깔이 그렇게 거칠어요?” 내가 말했다. “같은 실수를 세 번이나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지요. ○○(내 옷을 물에 담갔던 사람)은 네 번이나 나를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고 대소변도 보지 못하게 했으며 두 번은 내 옷을 땅바닥에 팽개치고 발로 짓밟아 더럽혔습니다. 그래도 나는 참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말이 쉽지 누가 참을 수 있는지 당신이 보세요. 오직 파룬궁 수련인만이 이런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생존권을 빼앗겼고 얼어 죽을 뻔했습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의 말 가운데서 파룬궁(제자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좋은 사람이 존경받아야 맞는 것이고 박해 당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여기로 붙잡아 왔는데 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게다가 대소변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법 집행기관이 법을 위반하며 내 돈과 옷을 압수했고 직접 나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구치소는 법 집행기관이고 경찰은 법 집행자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모두 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법, 경찰법 혹은 형법을 갖다가 당신이 한번 보십시오. 당신들은 모두 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감옥 경찰은 내 말에 아무 대꾸도 없다가 마지막에 말하기를 “공산당은 지금까지 착오를 인정한 적이 없지요. 하늘만큼 큰 착오를 범해도 여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현지 구치소 감옥 경찰의 말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공개적으로 감방에서 진상을 말했고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모두가 진상을 알게 됐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으며 감방장까지도 ‘파룬따파하오’를 외웠다. 어떤 사람은 출소하면 나를 따라 파룬궁을 연마하겠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삼퇴(중국공산당 3대 조직에서의 탈퇴)했다. 이처럼 환경이 크게 달라졌고 집에서 보내온 돈과 옷도 받을 수 있었으며 내가 진상을 말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나는 항상 내 옷을 물에 담갔던 그 사람에게 접근해 관심을 기울이며 요리(부식 거리)를 살 때마다 그에게 맛있는 것을 좀 주었다. 내게 옷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을옷 한 벌을 그에게 주자 그는 매우 감동했으며 나를 ‘파룬궁 아버지’라고 몇 번 부르기까지 했다.

나는 일생 중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으며 고향 사람들도 모두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단지 내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사악한 공산당은 불법으로 나에게 8년 형을 선고했으며 내가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하자 또 감옥으로 납치해 박해했다. 어머니는 당시 아흔 여섯이셨는데 어머니가 감당하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 마을 입구까지 지팡이를 짚고 나가 먼 곳을 바라보다 울며 내 이름을 부르셨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셨는데 100세가 다 된 노인이 어떻게 이렇게 심한 충격을 견딜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오래지 않아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가정이 파괴됐으며 가족이 사망하는 박해를 당했다.

감옥 안에서 사당(邪黨)은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100%의 완전한 ‘전향’를 요구했으나 나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하루는 저녁 식사 후, 전체 죄수들은 감방 안에 갇힌 채로 있었고 바오자(包夾: 감옥의 사주로 파룬궁 수련인을 밀착 감시·박해하는 죄수)가 나를 6층 계단 있는 곳으로 끌고 가 ‘전향’하지 않으면 때려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말이 끝나자 주먹을 휘둘렀고 빙빙 돌아가며 때렸다. 그들은 때리면서 말하기를 “때려죽여도 아무도 알지 못하고 또 보는 사람도 없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사부님께서 그들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해주시는 것으로 들었다. 그렇다. 폭로해야 한다. 나는 큰소리를 질러댔고 이렇게 궁여지책으로 사악의 살인 행각을 저지했다. 그곳에서 복역 중인 고향 사람 모두 내 비명을 들었고 심지어 12감구 죄수들도 모두 나의 비명을 들었다. 이때 신규 범죄자 팀장이 다가왔는데 그는 퇴역군인으로 신규 범죄자 군사훈련을 맡고 있었다. 그는 나 같은 노인이 죄수들에게 얻어맞는 것을 봤는데 반항할 힘이라곤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깔깔거리며 크게 웃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크게 웃는 소리와 비명이 한데 섞여 공포를 자아냈다.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등골이 오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꿈적도 하지 않았고 나의 믿음을 확고히 하며 ‘전향’하지 않았다.

사악은 인성이라곤 없기에 수단을 가리지 않고 박해한다. ‘610(파룬궁 박해 전문기관)’의 지휘로 사악은 한바탕 박해를 시작하려고 했다. 어느 날 오전 9시경 전체 죄수들은 다 밖으로 나갔고 바오자가 화장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화장실로 끌고 가 똥물을 먹이려는 것으로 의심했다. 그들은 흉측한 눈을 부릅뜨고 단번에 나를 포위하고는 화장실로 끌고 가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다. 신의 길을 걷는 수련인이다. 어찌 이 같은 모욕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이때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참음(忍)은 나약한 것이 아니지만, 온갖 수모를 다 참고 견뎌내는 것은 더욱 아니다.”[1] 똥을 먹어야 할 사람은 바로 악마 장쩌민의 무리이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대법제자가 아니다. 나는 분연히 반항했고 그들과 한 덩이로 뒤엉켜 격렬하게 저항했다. 감옥 안팎은 모두 CCTV, 감청기가 있으며 감옥 경찰이 1분 1초도 놓치지 않고 내 일거일동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도리어 못 본 체했다. 그들은 선(善)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나를 쉽사리 화장실로 잡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들은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 하에 있으며 천병천장(天兵天將)이 보호해주시고 온몸은 모두가 바른 에너지로서 그 힘의 크기가 무궁하기에 나 혼자서도 그들 몇 사람을 당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2] 이 생각이 나오자 이들 몇 명의 경범죄자들은 마치 바보가 된 것 같았는데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갑자기 손이 느슨해지고 숨을 헐떡이며 얼굴색이 창백해지고 기력이 크게 상한 듯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일도 없었으며 자연스레 거기에 서서 그들의 실패한 끝장을 보고 있었다.

이때 나는 위엄 있게 한 바오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은 ○○촌진(村鎭: 읍 정도의 소도시) 사람이다. 우리 집과 아주 가까운데 이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바오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또 당신은 ○○진(鎭) ○○마을 사람이다. 우리 집과 역시 아주 가깝다. 당신 두 사람은 이웃집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어찌 이런 짓을 하는가? 감옥에서 나간 후 우리가 마주 대할 수 있겠는가? 당신들이 나를 쳐다볼 수 있겠는가? 내게는 4명의 자식이 있는데 그들이 당신들을 용서하겠는가?” 나는 선하게 말하면서도 위엄 있게 그 둘을 설득하자 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도 여러 차례 내게 고문이 가해졌지만, 그 두 사람은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으며 뜨지 못할 때도 힘을 쓰지는 않았다.

이번 같은 고난을 겪고 나서 나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신체는 박해당해 변형됐고 집안은 온통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노모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큰누나(수련생임)도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심지어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말 그대로 가정은 파괴되고 식구들은 죽고 없었다.

내가 납치된 후 내 대법 서적은 조카가 보관하다가 두려워한 나머지 나중에는 책을 촌장에게 갖다 바쳤다. 대법 서적은 내 생명이다. 반드시 찾아와야 한다. 나는 촌장을 향해 발정념을 하며 다른 공간에서 촌장을 조종하며 대법을 박해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해체했다. 촌장은 반드시 내 대법 서적을 돌려줘야 한다. 사부님의 가지(加持) 하에 나는 순조롭게 책 전부를 되찾아왔는데 이것은 대법의 위력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위대하시고 자비하신 사부님께 지극한 감사를 올린다!

이상은 개인적인 작은 수련체험이다.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이다. 정법(正法)이 최후에 이른 관건이 되는 시각에 나는 꼭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잘 배워야겠다. 그래야만 사악이 빈틈을 파고들지 못하게 할 수 있고, 난을 감소할 수 있으며, 세 가지 일을 더 잘할 수 있고 사부님을 도울 수 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2(精進要旨2)-더는 참을 수 없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4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정념으로 박해 해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7/384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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