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 선롱 기자 인터뷰 보도)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지만 쏜살같이 달려가는 말처럼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져가는 인생 속에 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천센치(陳憲琦)는 겨우 8, 9살 나이에 깊은 밤 홀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가 왜 인간 세상에 왔을까? 우주 밖은 어떤 모습일까? 이 세상엔 도대체 신이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고 아이의 가슴속에 계속 쌓이기만 하며 빙빙 맴돌게 했다. 아이는 도서관에 가서 무협소설을 펼쳐봤고 기공서를 빌려 봤다. 심지어 사전문명(史前文明)과 특이공능(特異功能) 자료도 찾아봤지만, 의혹을 풀지는 못했다.
“1999년, 제가 막 소학교를 졸업할 무렵 마을에 기공이 유행했습니다. 저는 본래 태극(太極)을 배우려고 했지만, 신문에 실린 파룬궁 광고를 보고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곧장 어머니에게 가서 배우고 싶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옆집에 ‘파룬궁 무료 지도’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는데 저는 뜻밖에도 기쁜 일을 만난 듯이 아주 기뻤습니다. 어머니께 가서 배우겠다고 간절히 요청하자 어머니는 마지못해 허락하시며 먼저 우리 집 신명(神明)께 잔을 올리고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연속 3차례 정성스레 잔을 올리자 신명도 동의했고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센치(憲琦)는 아주 기뻐하며 이웃을 따라 다섯 가지 공법을 배웠다. “연공 이외에도 이웃은 설법 녹음테이프를 통째로 제게 빌려줬습니다. 저는 쓰면서 들었는데 첫 번째 들을 땐 듣는 데 적응하지 못했고, 두 번째 들을 때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을 다 듣자 순간 저는 깨달았는데 원래는 이것이 바로 수련이었습니다! 당시 그렇게 갑자기 크게 깨달은 심경은 지금 생각해도 아주 감동적입니다!”
“저는 ‘전법륜(轉法輪)’ 외에 또 각 지역설법이 있음을 알고 이웃에게 다른 서적도 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미국법회 설법’을 읽었을 때로 생각되는데 사부님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법리(法理)가 저의 우주관, 세계관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게 했습니다. 지혜가 열리고, 열리고, 열려 최후엔 온 대뇌가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늘이라, 이 우주는 너무나도 크구나! 그러나 이미 이렇게 크다고 말했는데도 돌아서서 보면 여전히 우주의 티끌에 불과할 뿐이라니! 다음 설법을 봤는데 사부님께서는 더욱 깊고 크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대뇌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먼저 몇 시간 휴식하고서야 계속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법을 배우는 과정은 환골탈태하는 것 같았으며 그 가슴 가득한 행복감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저는 어찌 이렇게 큰 인연이 있어 대법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며 매우 큰 영광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당신은 몇백 년에 인체 하나를 얻지 못하다가 천여 년에 인체 하나를 얻었는데, 인체를 얻고도 소중히 해야 함을 모른다. 만약 당신이 돌로 탁생(托生)한다면 만 년이 되어도 나오지 못하며, 그 돌이 분쇄되지 않고 풍화되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즉, 인체를 하나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만약 진정하게 대법(大法)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사람은 그야말로 행운이다.’[1]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로 자신이 전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생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센치는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련을 대충대충 하지 않았다. “중학교(國中) 3년 내내 새벽 5시에 집 근처 연공장에 나가서 연공하고 끝나면 원기 백배하여 학교에 갔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법학습 장소에 가서 수련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교류했습니다.” 센치는 대법의 환경에서 자신을 씻어내며 ‘진선인(眞善忍)’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했다. 학업성적도 떨어진 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반에서 4등까지는 유지했다.
순정한 심태와 탄탄한 법학습은 센치가 두터운 수련의 기초를 닦을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타이베이 제2사대부고(師大附中)에 합격한 후 와호장룡의 인재를 배출하는 환경 속에서 학습에 노력은 했으나 성적은 반대로 곤두박질쳤다.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문제를 풀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고 좌절 속에 빠져 있었다. 마지막에 센치는 먀오리(苗栗) 연합대학에 커트라인 점수로 간신히 합격했다.
“대학 입학 후 저는 동아리 활동과 여자 친구를 사귀느라 바빴고 생활은 매일 아주 분주했습니다. 하루 이틀 법을 공부하지 않을 땐 그래도 아직 경각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주, 몇 달을 법공부를 하지 않자 착실한 수련과는 거리가 아주 멀게 됐고 점점 반년, 일 년이 지나게 되자 저는 이미 대법으로부터 아주 오래고 멀리 이탈하게 됐습니다. 내심 깊은 곳에선 대법이 좋다고 외치고 있고 책도 옆에 있지만 오히려 집어 들지 못하고 펼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주 괴로웠고 마비됐으며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발을 떼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당시 저는 자신이 진귀한, 지극히 귀중한 보물을 잃어버렸음을 또렷하게 감수했습니다!”
길을 잃었다 돌아오니 전혀 딴 사람 같았다
2001년 국립 타이베이 과기대 토목방재소 석사과정에 들어가게 된 센치는 신체가 심상찮게 허약해졌다. 닭국(鷄湯)과 닭고기 다시다(鷄精)로 보양을 한 후에도 여름철에 오리털 외투를 입어야 했다. 책상에는 4~5개의 약병이 놓여 있었는데 교수는 심지어 그가 약 파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센치는 “자신은 체격도 큰데 왜 여학생보다도 자극을 이겨내지 못할까?”라고 생각해 봤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센치는 이상하게 일찍 일어났다. 이때 중학교(國中)에서 단정하게 앉아 연공하는 모습이 갑자기 뇌리에 떠올랐다.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 “아니요. 저는 가서 5장 공법을 연마하겠습니다!”라고. 이렇게 반시간에서 1시간으로, 정공에서 동공으로, 반가부좌에서 온가부좌를 하게 됐다. 겨우 2주 만에 센치는 환골탈태했으며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당시는 독감이 아주 심했는데 실험실 사람들이 다 감기에 걸렸지만 저만은 원기 왕성했습니다. 모두 저에게 신체가 어떻게 단번에 딴 사람이 됐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만나면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고 동급생과 남녀 후배 학생들을 데리고 아침에 교정에서 함께 연공을 했습니다.”
“저는 다시 중학교 때 살던 집 부근 연공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벽 4시 반에 연공장에 도착하자 낯익은 아주머니가 거기 계셨습니다. 그녀가 제 이름을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저 모르시겠어요? 저 센치입니다! 아주머니가 저를 보더니 알아보셨습니다.약 10년을 헛되이 보냈습니다. 이번에 저는 정말로 되돌아왔습니다.”
인생이 몇십 년이나 있을 수 있겠는가? 이번에 센치는 분초(分秒)를 다투어 용맹정진하며 선두를 따라잡을 것이고 다시는 자신의 인생을 허송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선념을 지키며 ‘진선인(眞善忍)’을 전하다
같은 해 9월 센치는 입대했다. 군 생활 11개월의 경험을 회상하며 센치는 “일체는 모두 다 사부님의 가장 좋은 배치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에 들어가자 직속 선임은 갖은 방법으로 괴롭혔는데 불시에 귀찮게 했으며 제대할 때까지 그랬습니다. 저도 내내 괴롭힘을 당했지만 자신이 수련인임을 자각하고 그를 나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군 생활 중 제 임무는 배수구 작업, 톱질, 나무 자르기 등 자질구레한 일들이었습니다. 그 선임은 일을 여러 번 우리들에게 내팽개쳤으며 아침엔 망설임도 없이 자기만 생각하며 잠을 자거나 문서를 위조해 몰래 휴가를 나갔는데 많은 동기들이 분개하며 그를 고발해야 한다고 떠들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반대했지만 맘속으로는 평정심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밤 잠들기 전, 그 선임이 아주 큰 소리로 계속 통화했습니다. 그때는 몹시 피곤하고, 괴롭고, 억울했는데 그가 나를 괴롭히던 표정, 말 등 사상 속의 모든 좋지 않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곧 붕괴될 것 같았는데 그때가 제가 입대한 이래 가장 분노한 한 차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통제를 잃을 찰나 저는 사부님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신사신법을 해낼 수 있을까?’ 그 병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좋지 않게 대했지만 저는 그를 나쁘게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이 모순을 만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잘못 때문이며, 수련인이 만나는 일은 모두가 좋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이 말씀을 제가 백 퍼센트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든지 간에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원래 제 맘속에 그에 대한 원한과 질투가 많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련인이기에 반드시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그를 위해 생각해야 했습니다. 아마 그의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도 아주 긴장하게 될 것인데 저는 왜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할까? 이 생각을 하자 선(善)의 힘이 나를 에워싸는 감수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는데 이처럼 거대했으며 일체를 포용하고는 원래의 분노를 녹여버리고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했습니다.”
연말 행사에서 파룬궁을 시연하다
연말 행사에 사병들이 공연을 해야 했는데 동기들이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알기에 파룬궁 공법 시연을 건의했다. 나는 듣고 뜻밖의 일이라 몹시 기뻤다. 당시 7명이 이 제안에 대해 투표를 해야 하는데 3명은 찬성이고 3명은 반대했다. 최후 중요한 한 표는 그 선임에게 달려 있었다.
“그 직속 선임은 저에 대해 계속 편견을 갖고 있었기에 은근히 마음에 걸렸는데 예상외로 그가 찬성표를 던질 줄은 몰랐습니다! 결국 우리는 연말행사에 300명 가까운 사람 앞에서 무대에 올라 다섯 가지 공법을 시연했습니다. 연공음악에서 들려오는 사부님의 우렁찬 음성이 극장 안에 울려 퍼지자 제 마음은 감동을 금할 수 없었고 눈물이 났습니다. 행사가 끝나자 많은 지휘관들이 파룬궁이 뭐냐고 계속 물었고 어떤 이는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홍법(洪法)효과는 제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그 선임은 제게 그가 휴가 때 집에 가서 관광지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을 봤는데 매우 선량했으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선임의 파룬궁에 대한 태도를 보니 반대하던 데서 정면적인 지지로 돌아섰는데 저는 무척 감격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잘하지 못하고 선념(善念)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가 가장 중요한 한 표를 찬성에 던졌겠습니까?”
이번의 성공이 있었기에 센치는 퇴직 전 부대의 웅변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대기원시보의 제1면 기사를 소개 자료로 사용했는데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서적을 반복적으로 자세히 읽었었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아홉 가지 유전인자 즉 “邪(사악), 骗(기편), 煽(선동), 痞(건달), 間(이간질), 搶(약탈), 鬪(투쟁), 滅(살인), 控(통제)”에 대해 말했고 또 중공이 어떻게 파룬궁을 박해하고 중상하는지, 어떻게 국가에 전면적으로 침투하는지의 진상을 흥미진진하게 말했다. 무대 아래 100명에 가까운 지휘관들은 흥미진진하게 들었으며 마지막에 고위 지휘관은 “우리 도서관에도 응당 ‘9평 공산당’이 몇 권 있어야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2012년 8월, 센치는 제대 후 격일제로 해외 최대의 중문 매체인 ‘대기원’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그는 매체의 힘이 더 커져 진상을 광범위하게 빨리 전파할 수 있고 아울러 인성(人性)의 선량(善良)과 아름다움, 중화 5천 년 문화와 도덕을 전 세계에 널리 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전에 허송세월하고 실의에 빠졌던 데서 안정되게 반본귀진의 길로 되돌아오기까지 센치는 사부님의 제자에 대한 끝없는 자비와 보호를 깊이깊이 감수했다. 그는 진지하게 의견을 말했다. “저는 매 사람이 모두 마음을 조용히 하고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이 책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관념을 내려놓고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것이 바로 사람마다 생생세세 기다린 것이요 되돌아가는 것(歸屬)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4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대법 인연으로 되돌아오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3/3846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