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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냐 신이냐는 일념에 달렸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자의 생각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사람과 신의 경계다. 간단하면서도 관건적이다. 인터넷에 이런 문장이 있다. 한 노수련생의 아내가 죽은 후 아들딸이 부부묘를 샀다. 당시 그는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하지 않으면 인정한 것이니 결국 얼마 되지 않아 노수련생에게 심각한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다행히 이후에 깨닫고 발정념으로 부정해서야 별일 없었다.

어떤 때 생활 속의 일부 평범한 현상은 늘 보아 습관이 되었는데 사실 그 속에는 많은 사람의 생각이 들어있기에 개변해야 한다. 수련인은 홀시해서는 안 된다. 이전에 나는 꽃을 키우기 좋아해 집에 화분 몇 개를 두었다. 그런데 늘 잘 자라지 않았고 잎은 할아버지 수염처럼 드문드문 있었으며 꽃도 시들시들했다. 나는 말했다. “너희들이 우리 집에 온 것도 연분인데 꼭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잘 자라고 무성해지고 꽃을 많이 피워라. 잘 자라는 것도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초는 여전히 그러했고 그 중 하나는 민둥민둥했고 괴로워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버리자니 차마 버릴 수 없었고 키우자니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어디가 잘못됐는지 찾지 못했다. 어느 날 내가 화분에 물을 줄 때 갑자기 이것은 사(私)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초의 꽃이 많이 피고 잎이 무성해지게 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생명은 모두 자기 소원이 있는데 내가 뭘 지휘하는가? 악연으로 온 것이라면 당신과 대립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을 생각한 후 나는 좀 제고된 것 같았고 다시 화분에 물을 줄 때 많은 걸 생각하지 않고 물만 주었다.(화초를 키우지 말 것을 건의한다. 모두 생명이다. 마음이 쓰이는 것은 둘째 치고 쉽게 그것에게 상처 주고 살생할 수 있음.)

친구가 꿀을 몇 병 보냈다. 아내는 말했다. “이걸 매일 먹으면 얼굴 피부에 좋고 노화를 늦춰요. 자양제입니다.” 나는 매일 한 숟가락을 먹었는데 다리와 몸에 온통 뾰루지가 났고 불그레하고 가려웠다.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당신이 삼계의 것이 좋다고 인정했을 때 삼계의 이치가 자동으로 당신을 제약하는 것이다. 얼굴 피부를 관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중히 여기는 것이지 신이 얼굴 피부를 관리할 필요가 있는가? 한 노수련생은 70이 넘는 의사다. 피부가 수정 사과처럼 희고도 빛이 났다. 나는 미용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어디 그럴 새가 있나요? 해야 할 일도 다 하지 못하는데.” 그녀는 매일 아침 3시 50분에 일어나 연공하고 하루에 ‘전법륜(轉法輪)’ 두 강을 배운 다음 사람 구하러 나가 시간을 아주 긴박하게 다그쳤다. 대법의 어떤 층차 표준에 도달했을 때 법의 아름다움이 보여준 것이다. 법에 무엇이나 다 있는데 미용할 필요가 있는가? 좋은 상태는 착실하게 수련해낸 것이다.

하지만 미용, 멋진 헤어스타일, 네일아트를 하는 데 수백, 수천 위안을 들이는 여성 수련생도 있다. 수백 위안을 들여 머리를 염색하는 수련생도 있으며 수백 위안을 들여 무슨 식물성 염색을 하는 수련생도 있고 고급 미용 크림을 쓰는 수련생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얼굴의 주름과 자라나온 백발을 가리지 못했다. 삼계 내 생로병사의 규율이 사람을 제약하기에 수련인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기울면 구세력은 꼬투리를 잡고 한사코 당신을 꼼짝 못하게 하고 생로병사 물질을 당신 몸에 던져 넣어주어 갖지 않아도 안 된다.

또 한 노수련생은 ‘악을 쓸어내고 검은 것을 때리다(掃惡打黑)’는 표어가 곳곳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두려움이다. 그는 파룬궁을 겨냥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경찰을 두려워했으며 보면 긴장했다. 이후에 한 수련생과 교류할 때 수련생은 웃었다. “이것이 모모 씨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긴장할 게 뭐 있습니까?” 노수련생은 단번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우리 집 문 앞에 저녁에 이웃이 계단을 다닐 때 편리하라고 소리를 인식해 자동으로 점멸되는 등을 설치했다. 그러나 아내는 전력이 낭비된다면서 반대했고 늘 꺼버렸다. 나는 소리를 인식해 자동 점멸되기에 오히려 전기를 낭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내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내가 켜면 아내는 껐고 아내가 끄면 내가 또 켜놓았다. 이후에 나는 이것이 무슨 생각인지 생각했다. 신이 이렇게 하겠는가? 좋은 일도 기어이 견지하면 나쁜 일이다. 자비심으로 무위를 체현해야 한다. 고상한 일을 하는데 맞서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그 후 나는 아내와 맞서지 않고 아내가 꺼놓든 켜놓든 신경 쓰지 않았다. 뜻밖에 내가 고집을 부리지 않자 아내는 일정한 사이를 두고 전등을 켰다. 수련인은 모두 자기의 경지가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떠하든지 자기와 관계가 없다. 자기를 잘 수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한 번은 몇몇 수련생이 약속하고 모였다. 수련생들은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이걸 좋아한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저걸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각자 음식 한 가지를 주문했다.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한 수련생은 음식을 주문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그에게 묻자 그는 여러분이 뭘 주문하면 그걸 먹겠다고 말했다. 나는 단번에 그와의 격차를 느꼈다. 무엇이 사(私)인가? 무엇이 입맛에 대한 집착인가? 이런 장소에서 사람 마음이 단번에 다 나왔다. 어떤 때 작은 일에서 적지 않은 사람 마음을 볼 수 있다. 신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신은 편안하고 무사(無私)하며 평온하다. 떠들썩하지 않고 바빠서 두서가 없지 않고 함부로 하지 않으며 이기적이지 않다. ‘사부님의 은혜’에는 이런 한 단락이 있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음식을 주문해주시고 제자들이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기뻐하셨다. 사람과 신은 일념지차이지만 수련하기란 어떤 때 아주 힘들고 머나먼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 한 걸음을 내디디려 하면 역시 순간의 일이다.

약간의 체험을 써서 수련생과 교류한 것이니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3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30/3845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