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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구하면서 일사일념을 바로잡고 재난을 지나오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8년 8월 2일 저녁, 우리 6명은 세 팀으로 나누어 오토바이를 타고 이웃 현에 대법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주로 ‘공산주의의 최종목적’을 배포했다. 세 팀의 수련생은 각자 어느 정도의 교란을 받았다. 특히 우리 팀은 큰 교란을 받았다. 하지만 나와 수련생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로 생사관을 넘겼다.

이웃 현은 산악지역이라 주거지역이 분산되어 있고 교통이 불편하다. 그곳의 수련생은 적다. 우리 현의 대법제자는 그곳의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지역 간격을 타파하고 1999년부터 지금까지 19년 동안 대량의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며 인연 있는 사람을 구도했다. 그러나 모두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수련생이 그곳에서 심각한 박해를 받는 일이 부단히 발생했다. 처음에는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고 나중에는 불법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법 자원은 큰 손실을 보았다. 우리는 이것 때문에 그곳의 중생을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더욱 노력해야 다른 공간의 사악을 해체할 수 있고 중생 머릿속의 나쁜 사상을 제거할 수 있다. 세인은 진상을 알고 더는 대법에 죄를 범하지 않게 해야 비로소 구도될 수 있다.

‘공산주의의 최종목적’이 나온 후 우리는 이웃 현에 가서 대량으로 배포했다. 한번은 8월 1일에 가기로 했던 것을 날씨 때문에 8월 2일 밤에 가는 것으로 바꿨다. 수련생에게 발정념으로 협력하라고 미처 알리지도 못했다. 함께 간 남자 수련생의 오토바이가 오래된 데다 사람과 많은 자료를 싣다 보니 계속 고장이 났고 소음도 컸다. 오토바이의 전조등도 꺼졌다 켜졌다 했다. 며칠 전 비가 이어져 길도 좋지 않았다. 상황을 잘 모르고 갔더니 길을 수리하고 있었다. 어떤 길은 파이고 끊어져 차량통행이 불가했다. 우리는임시로 노선을 바꾸었다.

수련생과 함께 자료를 배포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련생이 뒤에 오토바이가 있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움찔했다(수련생 몇 명이 이 지역에서 자료를 배포하다가 납치되어 박해받은 적이 있다.) 조심하지 않아 사람과 오토바이가 넘어졌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계속 앞으로 갔다. 그때 나는 정념으로 부정하지 못했다. 오토바이 속도가 빨라 얼마 가지 않아 또 넘어졌다. 나는 넘어져 기절했다.

수련생은 재빨리 일어나 내 몸 위의 오토바이를 일으켰다. 수련생은 머리가 맑고 정념이 강했다. 그녀가 나를 일으키려 할 때 그르렁그르렁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계속 내 이름을 불렀고 사부님께 나를 구해달라고 간청했다. 이때 오토바이를 탄 행인이 내가 넘어진 것을 보고 구급차를 불러 주겠다고 했다. 수련생은 거절하며 괜찮다고 했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두 행인이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수련생은 일일이 거절했다. 그녀는 신사신법의 정념으로 나를 깨웠다.

그때 그녀는 확고한 일념을 보냈다. ‘우리는 중생을 구도하러 왔다. 우리에 대한 구세력의 박해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만 걷는다. 수련생은 괜찮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약 30분이 지난 후 나는 깨어났다. 하지만 정신이 흐릿했다. 수련생은 가족이나 함께 온 수련생에게 전화하여 우리를 데려오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가족과 수련생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고 머릿속은 백지였다. 그러나 나는 대법제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련생은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른다, 그녀도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힘겹게 오토바이를 밀었고 나는 뒤에서 밀었다. 나는 내가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몰랐다. 그때 나는 힘들고 피곤하여 잠깐 쉬고 싶었다. 한 걸음도 걷기 싫었다. 내가 “앉아 쉬고 싶어요”라고 하자 수련생은 “우리 천천히 걸어요. 날이 밝기 전에 집까지 걸어가요. 앉으면 안 돼요. 누워 쉬면 더욱 안 돼요. 앉으면 잠이 들어요”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약 10리 길을 걸었다. 나중에 다른 수련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를 찾았다. 오토바이를 차에 실은 후 우리는 앞바퀴에 바람이 없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10리 넘게 걸은 것은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련생들은 우리 둘을 집에 데려다주었다. 이미 새벽 3시 30분이었다. 남편은 걱정되어 잠을 자지 않았다. 그는 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머리 모양이 흐트러졌으며, 머리부터 발까지 상처가 난 데다 옷도 다 찢어진 것을 보고는 놀랐다. 그는 냉정해진 후 “돌아왔으니 됐어요. 돌아왔으니 됐어요!”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에 며느리는 내 코뼈가 부러졌고 귀에서 피가 났으며, 얼굴 반쪽이 상처투성이이고 왼쪽 무릎에는 큰 상처가 났으며 가는 모래가 박혀있었다고 했다. 두 발에도 상처가 났고 왼쪽 손은 넘어져 멍이 들었고 찐빵처럼 부었다고 했다. 당시 며느리는 나를 보고 놀라면서 울었다. 하지만 나는 정상적으로 가부좌하고 연공했다. 며느리는 내게 연공하지 말라고 하고는 핸드폰으로 내 사진을 찍어 외지의 아들에게 보냈다. 아들은 보고 목 놓아 울었다. 내가 죽는 줄 알고 자기 누나와 함께 와서 내게 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병원에 가면 상처를 치료해 주고 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신사신법(信師信法)했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는데 내가 뭐가 두렵단 말인가?

며느리가 내게 밥을 먹여준다고 했으나, 나는 거절하고 스스로 먹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밥 먹기가 힘들었다. 씹지를 못하고 볼의 근육에 상처가 생겨 입을 벌릴 수 없었다. 목구멍으로 음식을 삼키기 어려웠다. 나는 음식을 조금씩 입에 넣고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코로 숨을 쉬지 못해 입으로 쉬었다. 화장실에도 스스로 갔고 누가 부축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허리를 굽히지 못하여 실수하기도 했다. 밥을 먹어도 밥상에서 먹고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보고 법을 실증했다.

머릿속에서 부단히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다. “현재 과학은, 시간에는 장(場)이 존재하고, 시간장의 범위 내에 있지 않으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인식한다. 다른 공간, 그것의 시공개념은 우리 이쪽과 모두 같지 않은데, 그것이 어떻게 다른 공간의 물질을 제약할 수 있겠는가? 전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때 당신은 오행 중에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당신은 아직도 속인의 신체인가? 전혀 아니다.”[1]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당신 자신이 넘으려 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지, 넘으려 하면 넘을 수 있다.”[1]

수련생들은 이 소식을 듣고 잇따라 우리 집에 와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훗날 수련생들은 이 일을 언급하며, 첫날에는 내 오른쪽 얼굴이 엉망인 채 계속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으며, 코로 숨 쉬지 못하고 입이 삐뚤어지고 왼쪽 무릎에 상처가 난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튿날에는 얼굴이 멍이 들고 부었으며, 눈도 부어 틈새로만 보이고 입도 벌리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셋째 날에는 얼굴 전체 붓기가 사라지고 얼굴도 점차 호전되고 눈도 뜰 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하신 것이다. 나는 똑바로 앉을 수 없고 때론 머리도 흐릿하여 좀 누워 있고 싶었다. 하지만 누워 있으면 사부님에 대한 불경이라 생각하여 앉아 있었다. 손이 찐빵처럼 부어도 법공부할 때 두 손으로 책을 받들었다.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했고 일사일념에서 부정적 사유를 배척했다.

7일째 되는 날 아이들은 내 상처에 고름이 있는 것을 보고 과산화수소수로 씻었다. 나는 분명히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8일째 되는 날 아침 3시 50분에 일어나 연공할 때 다리를 굽히지 못하고 상처가 터져 고통스러웠다. 무릎관절을 구부리지 못하고 머리가 혼란스러웠으며, 연공할 때 무릎에 피고름이 발까지 흘렀다. 나는 그래도 상관하지 않았다. 정공을 할 때 다리를 틀지 못하여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나중에 수련생이 일깨워주어 잘못을 알았다. 과산화수소수를 사용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수련생이 감옥에서 구타당해 분쇄성 골절이 되었으나, 석고로 고정하지도 않았다. 나는 후회했다.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이후에는 신사신법했다.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다. 나는 20일도 되지 않아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수련생들의 협조로 이번 시련을 지나왔다.

맺음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수련생들의 친절한 도움으로 이 관을 넘겼다. 하지만 교훈은 심각했다. 그날을 회상해보면 협조인이 내게 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말할 때 나는 집의 풀을 제거한 다음 간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일이 풀을 제거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나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두 번째에 놓았고 자기 일을 첫 번째에 놓았다. 가기 전에 수련생은 20위안(약 3400원)을 챙기면서 다른 수련생처럼 도로에서 바퀴가 펑크 났을 때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했다! 그때 법에 있지 않은 부정적인 생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정말로 일이 발생했다.

나는 20여 일간 대량으로 법공부하여 빠르게 제고했다. 많은 법리를 알게 되었다. 일사일념에서 법으로 가늠하고 자신을 잘 닦아야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나니, 부처의 은혜 천지를 녹이네”[2]를 실증했다.

이번 시련을 경험하며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 곁에 계신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빨리 완전하게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언어로도 사부님에 대한 감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 ‘홍음2-사도은’

 

원문발표: 2019년 3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5/3834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