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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듣지 않던 남편이 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지지하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남편은 이익을 탐해 잘못된 길을 걸어 징역 10년 형을 받았다. 감형된 후에 2006년 3월, 8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감옥에 갈 때 나는 28세였고 연말에 또 실직을 당했다. 세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갔다. 갑자기 들이닥친 변고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비록 그 당시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지 1년밖에 안 되었지만, 파룬궁의 법리는 이미 나의 생명 중에 깊이 뿌리내렸다.

남편의 몸은 아주 허약하여 기름진 반찬을 먹지 못했고 머리카락이 누렇고 가늘었으며 영양이 부족했다. 나는 매일 저녁 남편에게 두유 가루 두 봉지를 타서 주었고 서서히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서 남편의 머리카락은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피부도 윤기가 났다. 남편은 집에서 휴양하는 반년 동안에 끊임없이 돈을 가지고 가서 석방되는 감옥의 친구들을 마중했다.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돈을 써도 돼요?”라고 물었고 나는 내가 모은 돈이라고 된다고 하면서 남편이 휴양하고 나면 아이가 갈수록 커가기에 원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남편은 머리를 끄덕였다.

남편은 가정과 사회에 적응해야 했다. 여동생과 외조카는 우리와 함께 생활했는데 아들은 아빠를 아주 무서워했다. 나는 산책하는 기회를 빌려 이 몇 년간 우리 다섯 식구가 어떻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생활했는지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 제부가 생전에 우리 아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대해주었고 아이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할까 봐 염려되어 늘 아들을 데리고 나가 놀았으며 먹을 것과 옷을 사주었다고 했다. 현재 우리가 외조카를 우리의 친딸처럼 대해주어야 한다고 했더니 남편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노모는 비록 불만이 있었지만, 이모와 외삼촌이 사전에 엄마와 소통해서 지난 일은 놔두고 남편을 탓하지 말라고 했다. 그 때문에 남편은 감옥에서 나온 후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기쁘게 생활하고 있다. 대법제자는 ‘진선인(眞善忍)’을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기에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한다. 남편은 내가 고생하면서 그를 8년이나 기다렸다고 나를 선량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이것은 한 방면이고 리훙쯔 사부님이야말로 나의 생명의 원천이고 법리에서 나는 부부 사이에 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은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은 언제나 사람의 좋은 점을 봐야 해요, 당신의 마음은 넓어요. 생각해보세요. 나는 아이가 어린데 실직당했고 또 사회의 각종 유혹이 있었지만, 선량한 마음이 있으면 되잖아요? 우리의 사부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는지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당신에게 일이 생겼을 때 당신의 여동생은 나에게 당신과 이혼하라고 했어요. 나는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사람은 현실적이지요, 아가씨는 자기 오빠를 10년이나 기다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 당시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당신의 부모님에게 반드시 당신을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만약 그들이 나를 도와줬다면 나는 아마 고생을 적게 했을 거예요. 당신이 돌아오면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잖아요. 아이도 엄마 아빠가 있고요. 그러나 시댁 식구들은 나를 믿어주지 않았어요. 인력으로나 물력으로나 모두 저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저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나는 그들을 가족으로 대하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나는 세 살 된 아이를 데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어요. 아가씨는 병이 있는데 남편도 없으니 나는 사흘이 멀다 하게 고기와 채소를 사서 보러 갔고, 아버님 어머님께 가서도 빨래하고 밥을 지어드렸으며,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하지 않았어요. 아가씨는 친정에 가도 셋집도 청소하지 않았어요. 나는 퇴근 시간을 이용해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세를 놓았어요. (셋집이 두 달이면 만기가 돼요) 나는 방세와 고물을 판 돈 6백 위안(한화 약 10만 원)을 함께 부쳐드렸어요. 나는 파룬따파의 법리에 따라 엄마의 책임, 아내의 책임, 아이와의 책임을 다했어요. 나 혼자서 이 집을 지탱하면서 대가족을 안정시켰어요. 양가 부모님들은 내가 나날이 좋아지고 기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모두 마음이 편해지고 기뻐하셨어요. 만약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기에 고생하지 않으려 했고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며 당신과 이혼할 가능성이 아주 컸고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겼을 것이고 집을 팔아서 돈을 가지고 소위 말하는 행복을 찾아갔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가정이 어떠했겠어요? 온 가족이 다 헤어졌을 거예요.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몹시 어려운 길을 택했지만, 나의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길을 선택했지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듣고 나서 아주 감동하면서 나에게 “당신은 정말로 보살 같아요.”라고 말했다.

무신론 사상을 제거하다

내가 파룬궁을 배우는 것을 남편은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진상을 알리면 듣지 않았다. 중국공산당 무신론 사악에 세뇌당해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감옥에서 대법제자가 참혹하게 박해당하는 것을 보고 나도 피해를 볼까 두려워했다. 남편은 “감옥에서 보통 수감자가 맞아 죽어도 다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고 하는데 당신들은 아무런 보장도 없고 나라 전체가 당신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잘 수련해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리라 생각했다.

집에서 NTD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는데 남편은 처음에 정말 반대했다. 남편은 P5를 이용해 영화를 봤고 나는 그에 굴하지 않고 늘 남편과 일부 중국에서 발생한 일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남편이 보고 들은 것과 완전히 달랐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내가 말한 사실들을 인정했고 서서히 시사 뉴스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점점 중국의 아주 많은 현상에 대해 혼자서 생각하게 되었다.

매년 새해, 세계 파룬따파의 날 및 사부님의 생신 등의 날이면 국내외 대법제자들과 진상을 안 세인들이 밍후이왕을 통해 앞다투어 사부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드리고 존경과 축하의 마음속의 말을 하는데 남편을 감동하게 하고 있다. 그날 NTD TV에서 방영한 ‘전기시대(傳奇時代)’를 본 후에 남편은 아주 감동하면서 “이것이 바로 신앙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무신론의 완고함이 남편의 마음에서 느슨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한동안 늘 죽은 사람과 함께 있는 꿈을 꾸었는데 그에게 귀신의 성(城)으로 가자고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당신에게 생명의 위험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대법의 호신부를 가지고 있으면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다고 했다. 남편은 대법 호신부를 간직했고 몸에서 절대 꺼내지 않았다.

남편은 철강공장에 출근하는데 한번은 높은 곳의 카메라를 닦고 내려오다가 난간이 부러지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밑에 용광로 아궁이가 있었는데 그가 떨어진 곳은 아궁이와 30센티 떨어진 곳이었다. 허벅지에 손바닥만큼 긁힌 상처를 제외하고 멀쩡했다.

만약에 용광로 안으로 떨어졌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동료도 너무 놀라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들었고 통조림을 사서 남편에게 주면서 살아남은 것을 축하한다고 했다.

남편은 아파트단지 내의 관리일도 겸해서 한다. 관리부의 경리는 남편이 돈을 잘 번다면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이나 식대도 남편에게 계산하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제기했다. 남편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남편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고 하루가 지나 직장에 갔는데 그 경리가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되어 남편은 아파트 관리일도 계속하게 되었는데 모두 생각 밖의 일이었다. 나는 “당신이 어디에 있으나 남을 도와주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아파트 관리일도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서 열심히 잘하고 진정으로 입주자들의 불편함을 해결했기에 평이 아주 좋아요. 선을 향하고 덕을 쌓으니 좋은 복이 있고 신불이 보호하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며 그들이 마음이 바르지 않아 돌로 제 발등을 깬 격이군요.”라고 했다. 남편에게서 일어난 신기한 일들을 통해 남편도 은연중에 배치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인심이 선을 향하니 가정이 화목하다.

남편이 일자리를 찾아 일하고 나서 묘지를 사서 시어머니를 모시자고 나와 상의했다. 시어머니는 2001년에 돌아가셨는데 유골함을 줄곧 보관한 상태다. 나는 “그렇게 해요, 효도해야죠.”라고 했다. 남편이 왜 나와 상의를 하는 걸까? 그것은 그의 두 형님이 베이징에 사는데 집도 있고 차도 있지만, 그들은 돈을 내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원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시아버지는 2010년에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 우리가 돌봐드렸다. 시어머니와 합장한 것도 우리가 돈을 냈고 남편의 처지에서 보면 그런 것들은 모두 잘한 일이고 아들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어떤 때 남편은 형님들을 생각하면 속으로 불평했다. 나는 부모는 당신을 위해 걱정해주었는데 잘 살고 못 살고를 따지지 말고 각자 효도를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한번은 남편이 베이징에 갔는데 셋째 형의 장모도 있었다. 남편이 전화하면서 그들이 우리 장모님을 보러 오지 않았는데 남편도 보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우리는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물건을 사서 노인한테 가 보는 것은 형님과 형수를 존경하는 일이 아니냐고 했더니 남편도 흔쾌히 선물을 사서 노인들을 보러 갔다.

설전에 남편이 길에서 돈 한 묶음을 주웠는데 내가 그에게 들려준 대법의 도리가 생각나서 쫓아가서 주인한테 돌려줬다. 집에 와서 나한테 이야기할 때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금전 이익 앞에서 남편은 변화가 너무 컸다. 그의 도덕성이 향상되고 있다.

남편 형제들의 생활은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는데 병이 있고 이혼하고 아이가 말썽을 부리는 등이었다. 우리 부부는 화목하고 아들도 졸업 후 좋은 직업을 찾았다. 올해는 여자 친구도 데려왔다. 남편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항만처럼 좋은 가정이 있어 매우 행복하다고 감격했다.

2013년 나는 11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에서 간곡하게 만류했지만 나는 좀 쉬운 일을 찾기로 했다. 남편은 그만두어도 자신이 책임질 테니 괜찮다고 했다. 나는 줄곧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남편은 내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큰 결심을 한 듯 그 힘든 시기도 다 지나왔는데 이제는 자기도 일을 하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리하여 내 시간은 더욱 많아졌고 세인들에게 파룬따파가 박해받는 진상과 대법 복음을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아무리 바빠도 대법의 일을 제일 중요시했고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도왔다.

하루는 내가 당신은 사부님께 감사하냐고 물었더니 물론이라고 했다. 마음속 말도 감히 할 수 있냐고 했더니 남편은 할 수 있다고 했다. 설날에 남편은 마음속 말을 했다. “리훙쯔 선생님 설날 즐겁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해마다 많아지고 세계 각 지역에 모두 당신 제자가 있기를 희망하며, 중화민족이 살아가는 이 땅에서 곳곳에 당신의 제자이고 중화민족의 소박하고 선량하며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특별히 고상한 사상이 중화 대지에 전파되기를 기원합니다.”

 

원문발표: 2019년 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26/3757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