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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할 때 든 생각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가부좌할 때 갑자기 작은 이치를 깨달아 글로 적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만약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지난밤 가부좌하기 전에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가부좌할 때 다리가 아픈데 어떻게 입정하지? 왜냐하면 가부좌할 때 나는 늘 다리가 아파 이제까지 입정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을 올렸다. ‘사부님, 가부좌할 때 입정은 어떤 상태인가요, 제자가 체험할 수 있도록 청을 드립니다.’가부좌할 때 수인이 끝나자 일종 상태에 진입했다. 자신의 신체가 매우 크게 변한 것 같았고 왠선(元神)이 축소돼 머릿속에 있었으며 앞이마에 바짝 붙어있었다.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그런 상황과 같았다. “마치 자신이 달걀껍질 속에 앉아있는 것처럼 미묘(美妙)하고 무척 편안한 감각을 느끼며, 자신이 연공(煉功)하고 있음을 알지만, 온몸을 움직일 수 없음을 느낄 것이다.” 비할 바 없이 미묘(美妙)했다.

잠시 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구령에 따라 쭈좡선퉁(柱狀神通) 동작으로 바꿨는데 잠시 앉았던 느낌으로 시간이 정말로 빨리 지났다. 그렇게 깊은 입정까지 들어갔다.

가부좌 음악은 한 단락씩 돼 있으며 보통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특유의 선율이 있다. 매번 ‘이 단락을 들을 때면 끝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견지하자고 다짐하지만 잇따라 시작되는 음악이 반복해 들리면 곧 시간이 너무나 길다고 느껴졌으며 조금 신심을 잃곤 했다.

또 가부좌할 때 시계를 보는 나쁜 버릇이 있어 늘 아직 얼마나 있으면 끝나는지 보고 싶어 했다. 이번에 가부좌할 때 시간을 보려 하는데 사부님께서 ‘2018년 워싱턴DC 설법’에서 말씀하신 법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줄곧 이야기하는데, 나는 수련에서 사실 가장 고달픈 것은 (사부님 웃으심) 바로 기나긴 세월이라고 말하는데, 마련(魔煉) 중의 그 기나긴 세월이다. 끝을 볼 수 없고, 최후의 그 날을 볼 수 없는바, (사부님 웃으심) 사실 이것이 가장 고달프다.”

이에 나는 깨달았다. 최후의 그 날은 볼 수 없다, 가부좌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왜 시간을 보려 했을까? 그건 집착이 아닌가? 그 괴로운 통증은 마치 대법제자가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다. 각종 예언, 외부 정세의 변화는 마치 곧 끝나려는 음악과 같아 늘 사람에게 끝난다는 희망을 주나, 잇따라 목어를 두드리는 음악이 또 이 희망을 깨부쉈다. 시련 중에서 확고한 의지와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내가 그 한 단락을 더 버틸 수 있는지 보며 심지어는 뒤에 아직 몇 단락이 더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 나타났다. 수련인이라면 이 한 단락의 소중한 시간에 어떻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시간이 끝나는 것에 집착할 바가 아니다.

여기까지 깨달아지자 나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음악이 끝나는 그 단락인지 여부에 상관없이 처음 가부좌를 시작할 때의 심태를 항상 유지했다. 뒤에 다음 단락의 음악이 있는지 상관하지 않았으며 끝날 것을 기대하지 않고 오직 정(靜)의 상태를 지켜냈다. 끝나는 그 단락의 음악이 더는 그렇게 특별하게 들리지 않았다. 심태가 평온해졌고 이렇게 또 몇 단락의 음악이 흐르다가 가부좌가 끝나 허스하고 출정했다. 이 심태가 아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여초(修煉如初: 수련을 처음처럼)’가 아닐까.

 

원문발표: 2019년 3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8/3835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