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선위안(深远)
[밍후이왕] 정법수련이 이미 21년이 되었으나 ‘정법수련은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질문해볼만하다. 많은 수련생은 아마 질문이 이상하다고 여길 것이다. 정법수련을 한지 20년인데 어째서 아직도 이런 문제를 묻는지? 질문을 받게 되는 사람도 아무생각 없이 “바로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되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물론 틀리지 않다. 하지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원래 사부님께서는 10년의 정법시간을 배치하셨는데, 왜 20년이 돼도 결속되지 않았을까? 왜 사악이 계속 존재하는가? 왜 박해가 아직도 발생하고 있고 정지되지 않는가?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은 중생이 구도되지 못했는가? 왜 우리는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 마음과 집착을 버리지 못했는가? 일부 사람은 사악이 특별히 대단하다고 여긴다. 사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것들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다. 사악이 아무리 대단해도 대법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진정한 원인은 우리가 법리를 모르고 있으며 무엇이 진정한 정법수련인지, 정법수련에서 심성은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련생과 함께 ‘도법(道法)’ 경문을 공부하고 이 수련생이 왜 장기적으로 마난에 빠져 있는지, 어찌할 수 없어하는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있는지를 깊이 있게 교류했다. 원인은 우리가 진정으로 법을 명백하게 알지 못한데 있음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 ‘도법(道法)’ 경문에서 말씀하신 첫 구절의 법문은 이러하다. “장기간 대법(大法) 중의 중생, 특히 제자는 법에 대해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방면에서 일종 부동한 층차의 오해가 줄곧 존재하였다.”[1] 이런 오해로 우리는 “매번 마난(魔難)이 닥쳐올 때, 본성(本性)의 일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한다. 그럼 사악한 마(邪魔)는 이 점을 이용하여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간 마난 속에 빠지게 한다.”[1]는 상태에 처하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또 명백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사실 이것은 사람의 일면이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빚어진 것이며, 인위적으로 당신들 신(神)의 일면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신들이 이미 수련 성취된 그 부분을 억제하여 신의 일면이 법을 바로잡는 것을 저애하였다.”[1]
그럼 법에 대한 심성제고 방면에서 도대체 어떠한 오해로 인하여 우리가 장기적으로 마난에 처하고 또 본성의 일면이 법을 바로잡는 것을 저애했을까? 우선 우리가 마난에 대한 이해와 태도를 살펴보자. 개인수련 시기에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하지 않을 때 “사람이 예전에 나쁜 일을 하여 생긴 업력(業力) 때문에 병이나 마난(魔難)이 조성된다. 고통을 겪음은 바로 업력의 빚을 갚는 것이다.”[2]라고 인식했으며, 나에게 덕을 주고, 나의 소업을 돕는 것이며, 나의 업력을 전화하고, 나의 심성 제고를 돕고 있으며, 나의 공이 자라게 한다는 …… 등등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했던가? 우리는 참아야 했다. 하지만 정법시기에 구세력이 조종하는 사악의 박해에 마주하여 만약 우리가 여전히 이러한 인식이라면 마난이 많을수록, 클수록 좋다며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해 초기에 많은 사람은 ‘노동교양소, 감옥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련장소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는 곧바로 우리가 법에 대한 심성제고 방면에서 오해가 있는 것이다.
정법수련 초기에 마난이 올 때, 우리는 법의 기점에 서서 법을 수호하고, 법을 실증하며 사악을 제지하여 반박해를 한 것이 아니라, 구세력은 신이라 여겨 그것들의 대법제자에 대한 배치를 받아들여, 그것들이 박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누락이 있기 때문이라 여겼으며, 때문에 박해는 그것으로서의 이치가 있다고 여겼다. 그것의 교란과 박해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부족점을 찾았고, 심지어 내가 붙잡혀간 것은 자신을 잘 수련하라는 뜻으로 여겼다. 다음 하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박해를 대한다. 전반 국가가 박해를 해 그것들이 그렇게 강대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것들이 나를 붙잡고 때리면 자신이 또 그것들을 이길 수 없어서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리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고 있으므로 사악이 무엇을 물으면 무엇을 말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 말하지 말아야 할 것마저 다 말한다. 사악이 어떻게 박해하더라도 반대하고 배척하지 말아야 하며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진선인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인식일 때 우리가 어떻게 마난을 물리치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어찌 마난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어찌 정법(正法)할 수 있겠는가? 단지 사악이 마음대로 박해하도록 놔둘 수밖에 없다.
일부 수련생은 자신이 수련을 잘해 누락이 없으면 사악이 자신을 박해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게 그것들의 표준에 도달하고, 그것들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인가? 그러면 그것들이 우리를 찾아내 박해하지 않는단 말인가? 정말로 이러한가? 그것들이 사부인가? 그것들이 정법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정법에서 깨끗이 제거돼야 할 대상이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다. “사실 이것은 사람의 일면이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빚어진 것이며, 인위적으로 당신들 신(神)의 일면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신들이 이미 수련 성취된 그 부분을 억제하여 신의 일면이 법을 바로잡는 것을 저애하였다. 아직 수련 성취되지 않은 일면이 어찌 주사상(主思想)을 억제하며, 이미 법을 얻은 일면을 억제할 수 있는가?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滋養)하여 그것이 법의 틈을 타게 한 것이다.”[1]
우리는 왜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이며 내가 수련을 잘하든 못하든, 누락이 있든 없든, 나의 사부님이 관장하시며 나는 대법 중에서 제고할 것으로 사악이나 구세력과 무슨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 못할까? 나는 나의 사부님의 인정을 받기를 요구하지, 당신들 사악의 승인을 받지 않겠다! 대법을 박해하는 일체 사악은 모두 정법의 대상이며 혹은 법에 동화돼야 하거나 혹은 법으로 깨끗이 제거돼야 할 대상으로, 무슨 자격으로 대법을 고험하고, 대법제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험하려 한단 말인가?! “천체ㆍ우주ㆍ생명ㆍ만사만물은 우주 대법이 개창(開創)한 것인바,”[3] 작디작은 별에 있는 한 나라의 사악한 당과 사악이 무슨 대수겠는가? 법이 그것들을 깨끗이 제거하려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모두 법을 위해 왔고 중생은 모두 구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오직 대법에 동화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이야말로 생명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세력이 구우주의 이치 중에서 박해의 구실을 찾았다고 말씀하셨는데, 나의 소견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바로잡고, 철저히 구세력의 참여를 타파할지를 가르쳐주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일부 수련생은 구세력이 우리의 수련을 배치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두 번째 사부’와 같다고 하며 심리상에서 그것의 배치에 대해 어찌할 수 없어 하며 받아들이기만 한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주는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바로 대법 각자(覺者)의 일념으로 생성되었다. (박수) 부동한 층차의 대각자(大覺者)의 일념이 부동한 층차의 우주를 형성했다. 그 일념으로 우주가 생성된 후, 안에 있는 그런 생명들이, 당신은 나를 이렇게 생성하지 말라, 당신은 마땅히 나를 저렇게 생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서 그가 말한 대로 되겠는가? 안 된다. 이런 생명들은 일념으로 그를 생성한 그 생명의 신(神)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그의 생명을 생성한 이런 대각자(大覺者), 이런 신(神)들은 반드시 절대적으로 신의 표준에 부합되고, 법의 표준에 부합되는 것으로,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것이기 때문에 만들어 낸 우주는 반드시 아름답고, 그의 사상의 생성도 순정(純淨)하며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반드시 부동한 층차의 우주 생명의 표준에 부합되어야 한다. 이 점을 지극히 중요하게 본다. 그렇다면 즉 다시 말해서, 구세력이 과거에 우리들에 대한 배치에서 그것이 무엇을 했든지 우리는 모두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 역시 구도(救度)해야 할 대상인데, 단지 그것들이 도태를 선택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구도(救度) 받을 자가 어떻게 자기가 어떤 식으로 구도(救度)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물에 빠져서, 사람이 그를 구하려고 하는데, 그가 오히려 당신은 직접 손으로 나를 구해내선 안 된다,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배를 이용해서 나를 구해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게 어떻게 될 수 있겠는가?”[4]
구세력은 정법 중의 일원이 아니며 반대로 대법을 파괴하고 중생을 훼멸하는 구세력은 정법에서 깨끗이 제거돼야 할 대상이다. 때문에 사악이 나쁜 사람을 조종해 대법과 우리를 박해하려 할 때 사람을 조종하는 사악을 철저히 깨끗하게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조종을 당한 사람에 대해 진상을 알려 구도하며 그가 죄 짓는 일을 하는 것을 제지해야 한다. 듣지 않는다면 두려워하거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는 안 된다. 대법은 일체 생명의 위치를 가늠해 배정하며, 사부님 법신과 호법신도 시시각각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 그것들이(사악이) 말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어찌하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신통을 부여하셨고 만약 우리 사람의 일면에서 명백하고, 법리에서 명석하며, 정념이 강하다면 그건 바로 각자(觉者)이다.
사부님께서 알려주셨다. “제자로서 마난이 올 때, 정말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거나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마음을 둔다면, 충분히 고비를 넘을 수 있다.”[1] 하지만 우리가 심성과 행위에서 문제가 없는데도 왜 마난이 끝없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임(放任)한 틈을 탄 것이 틀림없다.”[1] 바로 우리가 사악한 마의 파괴를 방임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사악의 박해를 허용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원인이다!
무엇 때문에 20년이 넘어도 정법이 결속되지 않는가? 왜 사악이 계속 존재하는가? 왜 박해가 아직도 발생하고 정지되지 않는가?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은 중생이 구도되지 못했는가? 왜 우리가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 마음과 집착을 버리지 못했는가? 근본적 원인은 우리가 그것들이 발생하고 존재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신으로 수련된 일면이 억제돼, 본성의 일면이 저애 받아 정법할 수 없는 원인으로 된다.
우리 사람의 일면을 당승이라면 본성의 일면은 손오공이라 비유할 수 있다. 우리 사람의 일면이 법에 대해 오해가 생겨 나쁜 일을 좋은 일로 여겼을 때 이는 마치 당승이 요귀를 좋은 사람으로 여겼기에 손오공이 요귀를 제거하는 것을 저애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마난 속에서 법리로 자신을 지도하고, 자신의 문제를 찾아 심성을 제고해야 하는 것이지 이를 위해 마난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심성을 제고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고 얼마나 많은 난을 감당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부합되지 않는 그러한 좋지 않은 사상물질을 제거하여, 혹은 법리에서 깨달아 법에서 승화해 올라가야 한다. 정법시기 사람을 구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지 절대로 마난이 당신을 직접 제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고생을 겪고 난을 감당하는 수련은 과거 소도의 방법이다. 마난이 너무 크면 또 당신이 떨어져 수련을 포기하거나 심지어는 반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 때문에 절대로 박해가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고 방임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법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 대해 많은 수련생은 모두 정면적인 체험이 있다.
때문에 정법수련에서 우선 첫걸음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 이러한 일념이 있어야 한다. 좋지 않은 사상염두가 존재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법을 파괴하는 사악이 존재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박해가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을 바로잡고 사람을 바로잡으며 중생을 바로잡고 일체를 바로잡는다! 이미 발생했고 존재한 좋지 않은, 바르지 않은 생각과 사물은 바로잡고 혹은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물론 대법과 중생을 박해하는 사악에 대해서는 더욱 마땅히 철저히 소멸하고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이 일념의 기초에서 세 가지 일을 해야만 진정으로 정법수련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우리가 사악과 박해가 존재하도록 허용하고 방임하는 기초에서라면 어찌 사악을 해체하고 중생을 널리 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발정념할 때 앞 5분에서 자신에게 내재하는 좋지 않은 것을 깨끗이 제거하고 자신을 바로잡는다. 다음 밖의 사악을 깨끗이 제거해 밖의 일체를 바로잡는다. 사악을 철저하게 깨끗이 제거하며, 철저히 박해를 제지하고, 널리 진상을 똑바로 알리며, 일체 바르지 않는 것을 바로잡아 대량의 중생을 구도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정법수련이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다. 표현에서 적절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이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도법(道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논어’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역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3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지적 인식
원문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19/3/4/3834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