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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법을 외워 법에 용해되다

글/ 싱가포르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신이 법을 얻어 수련해온 20여 년을 돌이켜보면, 수련생이 법을 외울 수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특히 존경하고 탄복하며 부러워했습니다. 밍후이왕에서 끊임없이 법을 외운 체득을 교류하는 수련생이 있어, 저 역시 결심하고 법을 외워 보았지만, ‘외우기 너무 어렵고, 기억하지 못한다’는 등 관념에 가로막혀, 몇십 페이지까지 외우다가 중단했습니다.

작년 12월, 페이버산(花柏山) 관광지에서 연공하고 진상을 알릴 때, 한 수련생이 그녀 자신이 공산당문화의 독해를 깊이 받아, 법을 외우지 않으면 법공부를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홍음’을 외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수련생들과 함께 외우고, 서로를 다독이며 중단하지 말자고 제안해준 그녀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날부터 시작하여, 저는 집을 나서서 길을 걷고, 차를 기다리며, 지하철을 타는 시간을 이용하여법을 외웠습니다.

저는 아래에 여러분들과 1년 동안 자신이 법을 외운 심득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홍음’ 외우기는 나에게 법을 암기하는 자신감이 생기게 하다

‘홍음’의 첫 번째 시 ‘苦其心志(마음고생)’을 펼치고 “원만은 불과(佛果)를 얻나니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1]에서부터 시작하여, 저는 갑자기한 줄기의 뜨거운 흐름이 온몸에 유입되면서, 단번에 눈물이 온 얼굴에 가득 흘러, 줄곧 마지막 한 수 “나는 웃는다 중생이 깨달으니 나는 웃는다 대법이 전해지니”[2]에 이르기까지,거의 눈물을 흘리면서 외웠습니다. ‘홍음’을 통독하는 것과 외우면서 느끼게 된내재적인 함의가 전혀 다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홍음’은 법이며, 반드시 외워야만 깨달을 수 있는 법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수련에 정진하지 못했던 원인은 바로 법을 외우지 않아, 진정으로 법에 동화하고 법에 용해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법 외우기는 다행히도 수련생과 함께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면서, 매일 쉬지 않고 다섯 수를 외우고, 때로는 열 수를 외웠습니다. 올해 초, 싱가포르에서 뉴욕으로 20여 시간 동안의 비행 중에서, 저도 20수를 외웠고, 뜻밖에도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하는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홍음’ 외우기는 저의 매일의 과제가 되어, 저는 마치 호탕하시고 홍대하신 은혜에 잠긴 듯 더욱 많은 법의 내재적인 함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3개월 후, 저는 ‘홍음’ 4권의 책을 모두 외웠고, 법을 외우는 것에 대해 더욱 자신감이 생겨났으며, 알고 보니 마음을 기울여 열심히 하기만 하면 법 외우기는 결코 어렵지 않았습니다.

2. 법 외우기가 나의 생각을 단순하고 집중력 있게 변화시키다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전법륜’ 속의 매 한 단락을 ‘홍음’의 시 한수로 여기면서 한 단락 한 단락씩 외웠습니다. 법을 외우는 과정 역시 마음을 닦는 과정이었습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빨리 외웠고 별로 틀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잡념이 있으면 느리게 외웠으며 틀리기 쉬웠습니다.

법을 외우는 것과 통독에는 매우 큰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통독은 마치 자신이 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는 소리를 내어 법을 읽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법을 읽어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지 못하도록 조성했습니다. 그러나 법을 외울 때에는 한 눈 팔 수 없었고, 반드시 온 정신을 집중하여 일심불란하게 외워야 했으며, 한 글자라도 틀리면 모두 다시 새롭게 외워야 했습니다.

법 외우기의 장점은 어떠한 시간과 환경에서도 모두 법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저는 모두 자신이 어느 단락까지 외웠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어떤 때는 한 시간 동안 한 단락밖에 외우지 못했지만 어떤 때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때, 육교 하나를 건너는 동안이면 한 단락을 외울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마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는 순간까지, 일하고, 단체 법공부와 연공을 하거나 또는 진상을 알리는 것을 제외하면,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법 외우기입니다. 법을 외울 때, 한 구절의 말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읽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단순해지고, 아무런 잡념도 모두 떠오르지 않습니다.

법을 외워 법에 용해되기만 하면 저는 한 줄기의 뜨거운 흐름이 온몸에 유입되는 것을 느끼며, 눈물은 저절로 흘러내리고, 귓가에는 마치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함과 신성함이 있습니다.

3. 법 외우기는 모르는 것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하다

법을 통독할 때, 저는 줄곧 ‘현관설위(玄關設位)’가 매우 심오하여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뜻밖에도 제가 한 구절씩 외울 때마다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원영이 투명한 기포 속에 씌워져 천천히 자라면서 천천히 이동하는 것을 보았고, “원영이 금빛 연화반(蓮花盤)에 앉아 있는”[3]것을 보았으며, 비할 바 없이 미묘하였습니다. 제가 ‘현관설위(玄關設位)’ 이 단락의 법을 외우고 난 후, 저는 비밀 하나를 발견한 것처럼, 원래 불체는 눈앞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법을 외울 때, 저는 원영이 떠오를 때, “숨이 막히는 느낌이며, 마치 혈관이 모두 막힌 것처럼 부어서 아주 견디기 어렵”[3]고, 현관설위(玄關設位)할 때, “천목이 부어 매우 아프고 태양혈도 붓고 눈도 안으로 꺼지며”[3], 현관귀위(玄關歸位)할 때, “밀고 나오는 느낌 역시 아주 견디기 어려우며 마치 머리가 갈라지는 듯하다”[3]는 몇 가지 상이한 괴로움을 비교해보았습니다. 원래 인체는 공이 나오거나 또는 수많은 생명체를 수련해 낼 때도 괴로운 느낌을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편할 때, 절대로 그것을 나쁜 일로 보지 말아야 하며,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올해 6월에 워싱턴 DC법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후, 함께 법공부를 하는 할아버지 수련생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전에 몸이 불편할 때, 나는 반드시 참고 병원에 가지 않았어요. 이번에 사부님께서 ‘병원에 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나는 이후부터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네요.” 할아버지의 곤혹스러움을 보고, 저와 언니 수련생은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함께 사부님의 ‘2018년 워싱턴DC 설법’을 함께 읽었습니다. “신 수련생이나 장기간 수련에도 제고해 올라가지 못하는 수련생으로서, 당신에게 병업관이 나타났을 때 당신이 병원에 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 당신이 병원에 가서 치료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그것은 당신 수련과정 중의 일이다.”[4] 저는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병원에 가시면, 할아버지는 이 관을 넘지 못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그것을 병으로 여겼고,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체는 현관설위(玄關設位)를 할 때에도 모두 매우 괴롭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보지 못합니다. 어쩌면 괴로운 것은 좋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당시 저는 순간적으로 단번에 ‘전법륜’의 제6강 속의 법이 떠올랐습니다. “연공인(煉功人)은 장래 수련에서 역시 편안하지 않으며, 신체에 많은 공이 나타나는데, 모두 아주 강렬한 것들이 당신의 신체 내에서 오가며 움직여서 당신을 이렇게 불편하게 하고 저렇게 불편하게 한다. 당신이 불편한 원인은 주로 당신이 늘 자신의 신체가 무슨 병을 얻을까 봐 두려워하는 데 있다. 사실 신체 내에서 모두 그처럼 강렬한 것들이 나왔으며, 나온 것은 다 공이고 다 공능이며 또한 많은 생명체다. 움직이면 당신은 신체가 가렵고, 아프며, 견디기 어려운 등등을 느낄 수 있는데”[3], “단지 당신의 신체가 고에너지물질로 전변(轉變)되기 전이라면 모두 이런 감각이 있는데, 본래 좋은 일이다.”[3] 제가 이 단락의 법을 외웠을 때, 할아버지 수련생은 멍하니 한참 동안 듣다가, 마침내 괴로운 것은 좋은 일이며, 우리는 자신을 속인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4. 법 외우기는 나를 매우 빠르게 입정에 들게한다

수련을 시작했을 때, 제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가부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리를 틀기만 하면 아프고도 저리며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는데, 소란스럽기가 대단하다.”[3], “어떤 사람들은 다리를 틀지만 아픈 것이 두려워서 내려놓으며 견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다리를 튼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견뎌내지 못한다. 일단 다리를 내려놓으면 연마(煉)는 헛된다.”[3]

이 단락의 법을 외울 때,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어쩌면 그리도 맞으신지요, 애당초 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울면서 한편으로 외웠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괴로움을 겪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게 층차를 제고하는 관건이다.”[3] 그래서 가부좌를 시작할 때, 저는 줄곧 심성을 제고하는 것으로 가부좌의 시간을 늘렸습니다. 다리가 몹시 아파 견지할 수 없게 되면, 저는 자신의 심성이 낮다는 것을 알고, 다시 법공부를 하여 심성을 제고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부좌는 고생을 별로 겪지 않고도 고비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던 입정의 그러한 미묘한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가부좌를 할 때에 항상 마음속으로 시간을 계산하곤 했습니다.

원래 법을 외우는 것은 마땅히 외워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외워야 하며,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진도도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가부좌를 할 때에 저는 매우 빠르게 입정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정말이었습니다. “거기에 앉아있을 때에 마치 자신이 달걀껍질 속에 앉아있는 것처럼 미묘(美妙)하고 무척 편안한 감각을 느끼며, 자신이 연공(煉功)하고 있음을 알지만 온몸을 움직일 수 없음을 느낄 것이다.”[3] 지금 가부좌를 할 때마다 이 단락의 법은 곧 바로 저의 머릿속에 나타나 매우 미묘하고 편안합니다.

5. 법 외우기는 욕망을 억제할 수 있다

법을 외운 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에 나는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다(佛光普照, 禮義圓明)고 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신체가 발산하는 에너지는 일체 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면 이 장의 작용 하에서 당신이 이런 일을 생각하지 않을 때, 모르는 가운데 당신의 배우자도 제약하게 된다. 당신이 생각이 없으면, 당신은 역시 이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도 역시 생각나지 않는다.”[3] 뜻밖에도 이 일체가 모두 저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법을 외우는 이 시간 동안 번거로운 일에 부딪히기만 하면, 자발적으로 대법은 어떻게 이야기했고, 자신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원망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을 서서히 내려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전에는 남편이 집안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자주 불평하고 불만을 품었으며, 자신이 집안일을 많이 하게 되어 몹시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을 외운 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자신의 문제를 찾아, 마음의 태도가 부드럽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제가 수구(修口)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할 무렵, 저는 갑자기 표현하고자 했던 생각들이 그리 많지 않게 된 것을 느꼈습니다. 다만, 묵묵히 자신을 잘 수련하고, 묵묵히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싶다고 느껴졌습니다.

6. 법 외우기는 진정한 수련의 시작이며, 여전히 법을 계속 외우려 한다

제가 처음으로 ‘전법륜’을 한 번 외우면서 거의 1년 동안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밍후이왕에서 어떤 수련생이 그 자신이 30번을 외우자, ‘전법륜’의 전체가 모두 눈앞에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교류하였습니다. 수련생과 비학비수하면서 저는 지금 계속 두 번째로 ‘전법륜’을 외우고 있습니다. 법 외우기는 저의 생각을 전일하고 집중력 있게 변화시켰고, 법속에 용해된 상태는 매우 신성하여,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저의 수련의 시작인 듯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苦其心志(마음고생)’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笑(웃음)’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원문발표: 2018년 1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26/3788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