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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중에서 미래 사람이 나아갈 길을 다지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의료계 종사자다. 대법 수련에 들어오기 전에 남들과 개인 이익을 비교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적도 있었고 상사와 갈등이 생겼다. 속인은 모두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한다. 사람마다 물질에 대한 추구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는 속인의 생활 상태다. 하지만 수련인은 그렇지 않다. 시험과 갈등 앞에서 모두 내려놔야 하는데 그 뼛속까지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 마음을 내려놔야 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수호하고 다른 사람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이익을 수호해 당신이 얻으면 나도 얻어야만 공평하다. 과거 평균주의의 주입으로 흔히 사실 앞에서 ‘무슨 까닭으로’라는 심리가 나타난다. 다른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는 무슨 까닭으로 없을까? 수련하기 전에 한동안 이런 사람 마음 때문에 매우 많은 고생을 겪었다. 마음속으로 평형이 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화나고 억울하고 갑갑했다. 심지어 일주일에 체중이 6kg이나 감량된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고 나서야 다투고 빼앗는 것이야말로 진짜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법 속에서 승화되자 속인의 경지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수련은 사다리를 오르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올라 왔다. 그 속에 순조롭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집착심을 내려놓지 않거나 난 속에 미혹되어 깨닫지 못할 때가 매우 고통스럽다. 일단 법 공부를 통해 이 고비를 넘기면 그런 고통은 심성 승화에서 필연적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수련 과정은 자신의 좋지 못한 것들을 좋은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법은 사람의 선천적인 지혜를 계발할 수 있다. 고생을 명명백백하게 겪는 것으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속인이 고난 속에서 헤어 나오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안일한 생활을 위해 피동적으로 고생을 겪는 것이고 이것은 내심의 해탈을 동반한 신성한 느낌이다.

대법이 인간 세상에 널리 전해져 사람들에게 연을 맺는 길을 다져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5천 년 신전(神傳)문화다. 사부님께서 법 속에서 제자들에게 전통문화는 하늘로 통하는 천기(天機)임을 밝혀주셨다. 이 전통의 길을 걸어야만 신을 만날 수 있고 신의 지시어를 들을 수 있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을 수 있다.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사부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을 이끌어 전통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로서의 사명은 자연히 자신의 업무환경을 이용하여 중생이 도와 전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길이다. 예를 들면 병원의 신년 만찬회 때 나는 중국 전통복장 한복(漢服)과 전통적인 예의범절을 공연으로 편성했으며 밍후이왕에서 내려받은 ‘재현휘황(再現輝煌)’을 배경음악으로 삼았다. 음악이 울리자 전반 식장 내에 대법의 자비로운 힘이 충만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공연에 참여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은 음악과 어울려 전통문화의 함의를 재현해 냈다. 우리의 프로그램은 현대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반영한 현대극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공연이 끝난 후 병원의 당서기가 나를 찾아와 새로운 한 해에 병원에서 전통문화를 말하라고 했다. 그 시각 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에서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서 진찰하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환자와 의학 규범을 강조하고 보건의 상식만 강조해서는 진정하게 그들을 도와 고통에서 해탈될 수 없다. 반드시 그들에게 ‘덕(德)을 중시하는’ 중요성을 알게 해야 한다. 이는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환자에게 알려주었다. 사람은 오로지 이 한 점에 순응해야 진정하게 좋은 사람이다. 이 좋다는 것은 다만 신체의 병이 나았다는 것에만 체현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 모든 면에서 체현된다. 즉 옛사람이 말하는 ‘복분(福分)’이다.

과거에 이런 환자를 만났다. 그는 다른 성(省)급 병원 두 곳에 아이를 데려가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아이의 질병을 고치려면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고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성 질환이기에 여러 해 치료해야 하는데 비용이 매우 비싸다. 외지에서 일하러 온 부부는 감당하지 못해 나에게 왔고 약을 먹고 치료할 수 없는지 물었다. 아이에게 치료해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부모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그들에게 알려줬다. “현재 의학의 기준으로 보면 이 검사 결과는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는데 약만 먹는다면 병세를 통제할 수 없지만 좀 높은 차원의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는 기대하고 나에게 물었다. “무슨 방법이죠? 우리는 전부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도덕 처방’을 해 주었다. 덕을 중시해야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돌아가서 약을 먹고 매월 아이를 데리고 좋은 일을 10가지를 하라고 했다. 학부모는 매우 감사해 하며 돌아갔다. 석 달 후 그들은 아이를 데리고 재진을 받으러 왔다. 검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증세가 가벼운 환자보다 더 빨리 호전됐다! 부모는 매우 감격해 하며 진지하게 얘기했다. 그들은 내가 덕을 중시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돌아가서 성격도 바꿨다. 남들과 시시콜콜 따지지 않았고 버스를 타면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양보했으며 의사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했다고 친구에게 알려줬다. 그들은 진짜로 대법의 진리를 증명했다.

나는 이를 계기로 이 가족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 진정으로 대법의 제도를 받게 했다.

이때부터 나는 대법제자의 다양한 업종 중에서 대법이야말로 진정한 우주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더욱 잘 알게 됐다. 이렇게 바꾼 후의 업무 사고방식은 바로 후세 사람에게 길을 다져주는 것으로서 앞으로 의술을 배워도 눈으로 보이는 의학실험 결과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덕에 대한 큰 의의를 인정해야 한다. 사악한 당이 고의로 부각한 부패한 환경하에서는 지식인이 가짜를 만드는 풍조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앞으로 의사의 등급을 평가함에 다만 논문, 저작, 연구 등만이 아니라 마땅히 의덕(醫德)을 첫 번째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심리치료를 하면서 친자관계 문제, 청소년의 정서 문제, 인터넷 중독문제 등에 대해 환자에게 ‘전법륜’ 중의 대법 법리를 외워주면서 발견한 것이 있었다. 생명의 뿌리가 맺어진 그 문을 열고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줄 수 있는데 이는 현대의 어떠한 심리치료도 해낼 수 없다. 나에게 말하는 부모가 종종 있다. “의사 선생님, 오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단번에 열리고 후련해졌습니다.”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매우 듣기 좋습니다. 들으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매우 편안합니다.” 사실 대법제자는 법 공부를 통해 무엇 때문인지 안다. 그 생명은 대법 진상을 들으려고 몇 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법 공부 중에서 지혜가 열려 업무 중에 영감이 매우 많은 데 이 또한 사명이 시킨 것이다. 사부님께서 ‘실증(證實)’ 경문 중에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법을 실증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법을 실증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법(佛法)은 사람을 제도할 수 있지만, 사람을 제도하기 위해 비로소 불법(佛法)이 생긴 것은 아니다. 불법(佛法)은 우주ㆍ생명ㆍ과학의 불가해를 밝혀낼 수 있으며, 인류가 다시 정확한 과학의 길을 걷게 할 수 있지만, 불법(佛法)이 인류 과학을 지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1] “그렇다면 장래에 불법(佛法) 중에서 지혜가 열린 전문가, 학자가 매우 많을 것이며 그들은 새로운 인류의 각 방면 학문의 개척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불법(佛法)은 당신을 개척자로 만들기 위해 당신에게 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수련자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얻게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먼저 수련자이고 그런 다음에야 전문가이다. 그렇다면 수련자로서 일체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대법(大法)을 널리 알리고, 대법(大法)은 바른 것이며 진정한 과학으로서 설교와 유심(唯心)이 아님을 실증하는 것은 매 수련자 자신의 책임이다. 우주의 가장 거시적인 것에서 가장 미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속인 사회의 일체 지식에 이르기까지를 포함하여, 이 홍대(洪大)한 불법(佛法)이 없으면 곧 일체가 없다.”[1]

자신의 업무환경 중에서 어떻게 해야 법을 더욱 잘 실증해 후세 사람에게 길을 다져줄 것인가는 매 대법제자의 책임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 요지–실증(證實)’

 

원문발표: 2019년 2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7/3824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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