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마난에 직면했을 때 반드시 정념을 유지해야 한다

글/ 중국 산시(陜西)성 바우지(寶雞)시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우리 지역에서 ‘범죄와 폭력을 척결하자’라는 명의로 대법제자 3, 40명을 납치했다. 시(市)에서 현(縣)에 이르기까지 사악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법제자를 납치하여 한동안 숨 막히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람을 납치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잠복근무하며 날뛰었는데 7, 80세 노인도 봐주지 않았다.

이런 형세 아래에서도 많은 수련생이 사악의 가상에 미혹되지 않고 대법제자의 강대한 정념을 유지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 해냈다. 동시에 대법에 대조하여 안으로 찾아 자신 또는 본 지역의 정체(整體)에 법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편차와 누락,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돌아보았다. 그리고 재빨리 법에서 바로 잡고 보완하고 따라잡았다. 법 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하고, 자신을 충실하게 하는 동시에 자신과 주변, 본 지역 정체 공간장을 청리 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동시에 납치된 수련생의 정념을 가지(加持)하고 수련생을 박해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청리하여 구세력을 철저히 해체하고 구세력의 일체 사악한 배치와 기제(機制)를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공산사령(邪靈) 및 그 당문화 마교(魔教)의 장(場)을 해체했다.

그리고 더욱 큰 자비심으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공안, 검찰, 법원, 사법 및 정치법률위원회, 610, 직접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한 기관과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선을 권했다. 수련생들은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할수록 다그쳐 진상을 알려 기만당하고 이용당해 졸개 역할을 하는 가련한 생명을 구했다. 진정으로 그들의 미래를 위해, 그들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미래 ― 비참하고 가련한 그들의 최후를 위해 걱정하고 괴로워했다. 한 통 또 한 통의 진상편지는 대법제자의 무량한 자비와 진심 어린 선의를 담아 박해에 참여한 경찰, 법관, 검찰관, 교도관, 정치법률위원회 및 610 요원에게 날아갔다. 그들이 진상을 알고, 박해를 멈추고 구도되어 아름다운 미래가 있길 바랐다.

동시에 수련생들은 밍후이왕에 게재된 박해당한 수련생 가족에게 새해 위문편지를 만들어 보냈다. 박해당한 수련생 가족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안부를 전하고 실질적인 도움과 관심을 주었다. 수련생 가족은 박해의 불법성과 사악을 똑똑히 인식하고 진상을 알게 되어 마난에 처해있는 수련생을 지지하고 도와서 함께 난관을 넘었다.

절대다수 수련생의 확고한 정념 앞에서 악인 배후의 사악은 견딜 수 없어 무형 중에 사그라졌다. 바야흐로 이 음험한 현상은 사라져 사악은 해체되고 있다. 기세등등했던 박해가 해체의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번 박해는 우리 지역의 수련생 중의 일부 부족한 부분을 중시하며, 지적해내어 그것을 닦아 버리고 대법 속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아래의 몇 가지에서 체현된다.

1. 법에 대한 이해와 바른 믿음에서 견고하지 못하다

비록 매일 법 공부를 하지만 상당히 많은 수련생이 장기간 ‘당문화(黨文化)’의 무신론 영향으로 법을 아직도 감성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대법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진정으로 법리에서, 내심으로부터 대법의 깊은 내포를 인식한다는 것은 표면 문자의 겉 뜻을 안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자신을 신(神)의 사자(使者)로, 한 대법도(大法徒)로 간주하고 대법의 한 입자(粒子)로 간주하여 일사 일념에서 정념정행(正念正行)을 유지하는 것인데 수련생 중에 비교적 한계가 있다.

일부 수련생은 문제를 사고할 때 표현에서 대법의 기점과 정체의 각도가 아니라 개인 수련과 사(私)의 각도에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대조하여 법에 부합되는지, 중생 제도와 정체 제고에 유리한지 생각한다. 하지만 법이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는 매우 높은 것으로서 신에 대한 요구이고 주(主)와 왕에 대한 요구이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이다. 새 우주의 생명의 표준에 따라 요구하고 가늠하는 것이다. 즉 상당수의 수련생이 아직도 대법으로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에 따라 자신을 가늠하고 요구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표준을 낮추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안 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 문제가 나타나는가? 매우 중요한 하나의 원인은 바로 수련을 엄숙하게 대하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사람 중에서 형성한 관념으로 이해하고, 자신이 얼마만큼 인식할 수 있으면 곧 얼마만큼 인식하고, 사람의 관념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인식을 높여 법의 표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하나의 핑계가 있는데 바로 ‘나는 수련을 잘 하지 못했어, 그건 수련을 잘 한 수련생에게 한 말이야. 나는 얼마만큼 수련할 수 있으면 얼마만큼 할 거야!’ 따라서 인위적으로 자신에 대한 표준을 낮추었다. 만약 개별적인 수련생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대세에 영향 줄 수 없지만, 상당히 많은 수련생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곧 문제가 된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이 방면의 법을 말씀하셨다. 신 우주의 표준은 낮추지 않을 것이다. 매 한 층의 표준은 모두 낮추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매우 엄숙한 것으로 조금만 부족해도 안 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모두가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 결과는 말하지 않겠다. 여러분이 스스로 사고하길 바란다! 이건 너무나도 엄숙하다.

2. 사람 마음으로 일을 하는 ‘일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을 언급하기만 하면 많은 수련생은 일을 너무 많이 하여 법 공부를 잘 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또 다른 한 극단으로 가는데 일을 하지 않거나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온종일 법 공부를 한다. 마지막에 법 공부도 잘하지 못한다. 나는 이 일에 대해 좀 다른 견해가 있다.

나는 ‘일하는 마음’은 주로 일을 많고 적게 하는 문제가 아니라 법 공부와 일을 하는 관계를 바르게 놓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한 점은 일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시시각각 자신을 한 수련인으로 여기고 수련하지 않고, 수련인의 표준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그건 바로 사람이 일하는 것이다. 일에서 모순을 만났을 때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기에 대법의 일을 잘할 수 없고 심성도 제고되지 못했다. 난관에 부딪히면 넘기가 매우 어려운바 높이지 못하면 곧 떨어지고 사악에 빈틈을 내주어 박해당하기도 쉽다.

법 공부와 일하는 관계를 잘 배치하지 못하는 방면에서 현재 내 생각은 법 공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진정으로 법 공부를 잘 하려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리 많은 수련생은 깊은 체험이 있는데 법 공부는 책을 몇 번 읽었고, 법을 얼마 외웠는가, 표면의 법리를 얼마나 알았는가, 등 표면적인 형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시시각각 일마다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가늠하고 스스로 지도하고 요구하여 진정으로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했는가?, 자신의 좋지 않은 심성, 언행, 일사일념을 바꾸어 실질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서서히 진선인(眞善忍) 우주 특성에 동화되어 불(佛), 도(道), 신(神)의 부동한 경지 표준에 도달하여 최후에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 신 우주의 한 입자가 될 수 있는가에서 체현된다. 사부님께서 ‘홍음-實修(착실한 수련)’에서 명시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 법은 우리를 지도하여 수련하는 것이지 속인 중의 이론과 학문이 아니다. 반드시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고 해내어야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정말로 법 공부와 마음 수련을 결합하고 ‘세 가지’를 잘 하는 것과 결합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요구하신 표준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진수(眞修) 제자이다. 일함에 틀림없이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사악이 어찌 감히 박해하겠는가?

즉 우리는 구세력의 위사위아(為私為我)의 낡은 법리에서 탈퇴하여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이 돼야 한다. 우주의 진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사상 경지인가! 사람마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 내가 당신을 위하고 당신이 나를 위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양성순환의 환경이다. 사람마다 일에 부딪히면 자신의 잘못을 찾고 자신을 바꾸면 다투고 싸우는 일은 적어질 것이며 악과를 받는 일은 당연히 더욱 적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조화(和諧)이다!

하지만 업력이 가득하고, 머릿속에 온통 나쁜 관념과 사상으로 가득한 사람에서 이렇게 고상한 생명이 되려면 오로지 우주 대법만이 해낼 수 있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큰 결심을 하고, 매우 큰 지불이 있어야만 해낼 수 있다. 이는 곧 수련인이 반드시 진수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여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만 해낼 수 있다. 즉 법 공부와 일을 하는 것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촉진하고 의존하는 관계인바 양자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다.

아울러 우리는 이 문제에서 법에 대한 이해에 아직도 편차가 존재한다. 사고방식에서 당 문화의 요소가 있는데 이는 바로잡아야 한다. 구체적인 일은 더 말하지 않겠다. 여러분 스스로 법으로 가늠하고 자신이 수련을 어떻게 했는가를 많이 돌아보고 재빨리 바로잡는 것이 좋다.

3. 두려운 마음과 자기보호

이 역시 비교적 보편적인 문제이다. 무엇 때문에 두려운가. 하나는 정념이 부족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이기심이 농간을 부린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심이 없어 두려울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즉 사심이 많으면 이것도 두려워하고 저것도 두려워한다. 자신의 이익이 손해 볼까 두렵고, 세상에서의 명리정(名利情) 등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이기심이 많으면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수련은 곧 세상의 모든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고, 일체 집착과 욕망을 모두 버려야 한다. 여기에는 곧 취하고 버리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사람과 신의 근본적인 구별이다. 물론 버리는 것은 사람 마음이지 본질적인 것은 잃지 않는다.

4. 자기도 모르게 언행이 일치하지 않다

여러분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구세력 및 그의 일체 사악한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라고 하신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박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법제자가 하는 것은 가장 좋은 일로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으며, 신앙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러한 이치는 모두 똑똑히 알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일에 부딪히면 말하고 행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지가 않다. 예를 들면 모 수련생이 납치되면 수련생은 “모모에게 물건이 많다”라고 말한다. 암시하는 뜻은 재산을 몰수할 때 대법 자료와 컴퓨터, 프린터 등 물건이 많아서 사악한 당의 내부문건과 사법해석 등 법에 따라 형사 구속되고 판결 받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묵인한다. 즉 이론상에서는 법리를 알지만, 사상과 행위에서는 사악의 불법적인 체포, 재산 몰수, 판결에 의한 감금 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예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나 자신도 어느 날 갑자기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말과 마음이 다름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 자신의 사상을 바로잡기 위해 반복적으로 속으로 외웠다.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조사정법하여 신의 일을 하는 것으로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진상 자료와 프린터, 컴퓨터는 사람을 구하는 법기(法器)로서 범죄의 증거가 아니다. 바르지 못한 관념과 사상염두(思想念頭)를 깨끗이 제거한다.” 정확하지 못한 이런 상태를 깨끗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수련생에게도 이 문제에 주의하라고 알려 주었는데 반응은 각기 달랐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실제적으로는 사악한 당의 법에 따라 판결하기에 발정념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런 관념은 또한 비교적 심하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발정념의 위력을 체험했었다. 일사 일념은 진짜로 그렇게 큰 위력이 있다. 이 또한 많은 대법제자가 실천하고 실증한 것이다. 밍후이왕에도 많은 보도와 교류문장이 있지만, 구체적인 문제에 부딪히기만 하면 개인의 사상에는 여전히 사람 속에서 형성한 사악한 당이 주입한 관념과 사람의 인식이 주도적 작용을 일으킨다.

당 문화의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고, 관념이 변하지 않았다면 이 방면에서 아직도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속인 중에서 받아들인 사악한 당이 주입한 그 한 세트의 것을 닦아 버리지 않았고, 자신을 지배하여 정념정행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어 사악의 박해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럼 형식적인 것이 아닌가? 이는 신사신법의 큰 문제이다. 자신에게 ‘믿는가? 믿지 않는가?’를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만약 우리 전체 대법제자가 모두 사상 깊은 곳에서 진지하게 대법의 법력이 끝이 없다는 것을 믿고, 진수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여 순수하고 확고한 정념을 내보낸다면 사악의 박해가 여전히 지속할 수 있겠는가? 납치당하는 수련생이 또 있겠는가? 이번 박해 중에서 맨 마지막에 납치된 수련생이 있다. 하지만 그 수련생은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에 따라 절대 사악에 협력하지 않고 일체 대답을 거절했다. 보름 동안이나 쇠 의자에 앉는 등 고문을 당했지만, 사악은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열흘 앞당겨 석방했다. 이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오로지 법을 잘 배우고 진정으로 대법에 따라 해야 옳다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개인 수련과 가정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고 잘 배치하지 못해 수련에도 영향을 주고 사악이 빈틈을 타게 했다. 이번에 표면적으로는 주요하게 법 공부 팀에 문제가 나타난 것이지만 이 방면의 수련에 문제가 나타났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총체적으로 이번에 일이 터진 것은 표면에서 보면 수련생들이 안전에 그다지 중시하지 않고 비교적 마비되고 해이해져서 사악이 빈틈을 탄 것이다. 문제가 나타난 후 확실하지 않은 말을 마구 전하고, 상황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여 박해 형세를 가중했다. 일부 수련생은 형세가 긴장된다고 생각되어 피했다. 일부 수련생은 법 공부 팀에도 감히 가지 못하고, 진상도 알리지 못했으며 자료도 만들지 못했다. 사람 마음으로 자신을 보호한 것이다. 여러 가지 표현이 모두 있었는데 다양한 사람 마음이 모두 표출되어 나왔다. 사실 다른 한 방면으로 말한다면 역시 좋은 일이다. 문제가 표출되어 나왔으니 안을 향해 찾아 그것을 닦아 버리고 높여 올라오기만 하면 좋은 일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역수항주(逆水行舟)’가 아닌가? 이는 우리가 정체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우리 모두 수련을 높일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안으로 잘 찾아 재빨리 높이 올라오기 바란다.

이상은 현재 우리 지역의 일부 문제에 대한 견해와 인식으로 나 자신에게 있는 숱한 국한성과 편견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제출하여 전체적으로 높이고 승화하고자 한다.

적절하지 못한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2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4/381891.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