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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말하지 않다’와 ‘타인에게 말을 듣다’를 말함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 나는 한 차례 심각한 병업 난을 경험했다. 그 기간 많은 수련생이 나를 도와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돕는 것이 반대로 나에게 또 다른 난관을 가져왔다.

내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사람은 다른 지역의 한 협조인인데 그녀는 직접 나에게 말했다. “언니에게 알려줄게요. 우리 모두 상의했어요. 언니 자신의 문제예요.” 말할 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내 원망심은 잠시 억제됐다가 다시 올라왔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그 후부터 나는 그녀와의 왕래를 끊었다.

최근 우리는 법공부하고 교류할 때 한 노년 수련생이 병업 상태가 나타난 것을 알았다. 이때 그들의 말하는 태도는 나를 대할 때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어떤 집착심이 그 언니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하며 모두 안으로 찾아야 하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그때 내 사람 마음이 일어났다. 다른 수련생이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자 나는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딸과 함께 법공부를 할 때 이 일을 언급했다. 딸은 말했다. “엄마, 이 일에서 누가 옳고 틀린지 따지지 마세요. 그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말하는 태도를 보고 엄마도 그런 태도로 말하지 않았는지 봐야 해요. 엄마도 타인을 얕보고 그들이 엄마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단번에 알게 됐다. 확실히 나도 그렇다. 딸은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본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면 안 돼요. 어떻게 타인이 잘 수련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나요? 타인이 잘 수련한 면이 이미 지나갔고 표면에 있지 않아요. 사부님께서 말씀한 적이 있지 않나요?”

이때 나는 쇠뿔 끝에서 나와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많은 집착심을 찾았고 마음도 조용히 할 수 있었다.

얼마 후 나는 이메일을 열고 방금 본 속인의 수구(修口)에 대한 문장을 이메일로 보냈다. 결과 나는 놀랐다. 한 수련생의 답변이 나에게 큰 계발을 주었다. 바로 아래의 문장으로, 이 수련생의 글이다.

‘말하다’, ‘말하지 않다’와 ‘타인에게 말을 듣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1] 이 문장(속인의 수구 문장)을 보고 안으로 자신을 찾았다.

만약 내가‘말하는’ 자라면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불복하고 겉으로만 복종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보지 않을 때는 여전히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2]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원망하지 말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 자신의 어투, 선한 마음, 이치가 대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있는지 봐야 한다. 지적해주고 타인의 집착심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선을 권할 때 타인이 듣지 않아도 어떤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되고 타인을 질책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만약 내가‘말하지 않는’ 자라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 원인은 4가지가 있다. 첫째 질투심이다. 타인의 장점을 보고 말하지 않으면 질투심이고, 단점을 보고 말하지 않아도 질투심인데 이는 얕보고 자신이 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책임지지 않고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타인의 좋고 나쁨을 상관하지 않는다. 셋째는 이기적이고 남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하고 자신이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워하기에 자신을 보호한다. 넷째는 웃음거리로 삼고 남의 불행에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 자신이 상처를 받거나 억울함을 당할 때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지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대법제자가 박해당할 때는 사악을 폭로해야 한다.

만약 내가‘타인에게 말을 듣는’ 자라면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하고 타인이 왜 자신에 대해 말하는지 봐야 한다. 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주의해야 한다. 말하는 자의 태도가 어떤지 보지 말고 문제가 있으면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식하고 고치면 좋다.

설사 억울함을 당했어도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이라, 늘 그런 한마디 말을 하는데, 바로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있으므로 당신의 마음이 비로소 움직이며,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없으면 마치 바람이 불고 지나가듯 당신은 전혀 감각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살인방화를 하려 한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듣고 아주 재미있다고 할 것인데(사부님 웃으심), 이 말이 가당키나 한가? 웃고 지나가 버린다. 전혀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그 마음이 없으므로 이 말이 당신을 움직일 수 없다. 그 마음이 없으므로 당신에게 닿지 못한다. 당신의 마음이 움직였다면 바로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당신의 마음이 확실히 매우 못마땅해하면 이것이 또 작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박수) 그럼 마땅히 수련해야 하지 않겠는가?”[3]

더욱이 덮어 감추려 하지 말아야 하고 반박, 회피, 숨기는 것은 거짓 수련이다. 반박은 밖으로 찾는 것으로 마도(魔道)를 걷는 것이고 회피는 사오(邪悟)할 수 있다.

옅은 인식이고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청성’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17/3828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