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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대법제자,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오다

글/ 중국 대법제자 구이전

[밍후이왕] 1996년 어머니께서 행운으로 법을 얻었을 때 4살밖에 되지 않은 나는 어머니를 따라 함께 설법 녹음을 듣고 연공 동작을 배워 꼬마 대법제자가 되었다.

1999년 장쩌민 집단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어머니는 베이징에 평화적인 청원을 하러 갔다가 불법 노동교화 1년 처분을 받았다. 어머니는 1년 후 경찰의 끊임없는 소란으로 어쩔 수 없이 가정을 떠나 유리걸식했다. 어머니가 없는 몇 년 사이 아버지는 도박에 빠졌으며, 나는 내 공부에 관여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학업성적이 아주 나빴다. 나는 2년 가까이 대법을 접촉하지 않았지만, 어릴 때 법을 얻었기에 대법을 반대하지 않았고 줄곧 무엇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인지를 알았다. 내 생활과 공부에 관여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심각한 악습에 물들지 않았고 큰 병업도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부님께서 그 몇 해 동안 줄곧 이 꼬마 제자를 관장하신 것이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현재 청년 대법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20년 수련의 길에서 수련을 엄숙하게 대한 적이 없었고 생활에서도 점점 법리를 이탈하였기에 아주 큰 누락이 생겨 악과 구세력이 빈틈을 타 가정에 엄중한 경제적인 박해를 받았다. 나는 밍후이왕 교류마당에서 수련생과 교류하여 수련의 길을 바로잡고 사악한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했으며, 대법에 동화되어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왔다.

사부님께서 대학 입학을 도와주시고 고질병을 제거해주시다

5, 6학년 때 어머니가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다시 법 공부하고 연공할 환경이 생겼다. 그러나 한동안 법을 떠난 데다 그 후 중학교 학업이 과중하여 법 공부와 수련은 형식에 그쳤고, 어머니의 위엄에 얽매였을 뿐 수련을 엄숙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원래는 학업 기초가 약해 대학 입학시험을 잘 치지 못하여 대학에 갈 기회가 없었지만, 최종적으로는 합격선보다 몇 점 많이 받아 입학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내가 대학에 입학하도록 도와주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 입학한 후 수련을 정시(正視)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독촉과 당부가 없어 속인과 같았다. 심성 제고에 전혀 주의하지 않아 점차 세상 물정에 밝았고, 술을 마시고 수구(修口)하지 않았으며, 진정으로 자신을 대법제자로 여기지 않았다. 이런 상태가 줄곧 대학교 4학년까지 이어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갑자기 두 다리가 가려웠고 피부가 벗겨졌다. 장기간 잘 수련하지 않아 목에는 줄곧 신경성 피부염과 같은 병업 가상이 나타났음에도 나는 정시하지 않았다. 목의 병업 가상은 있다가 없어지기도 했다. 두 다리에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도 마음에 두지 않고 긁기만 했다. 그러나 긁으면 피부가 벗겨지고 상처가 생겼으며, 또 긁으면 피부가 더 심하게 벗겨졌고 상처 면적이 더 커졌다.

한동안이 지난 후 두 종아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고 피부가 성한 곳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되자 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이 생각나 발정념을 했다. 그러나 안으로 찾지 않았고 심성을 수련하지도 않아 발정념해도 호전되지 않았다. 나는 낫지 않자 이것이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옳지 않다고 여겼으나, 몸에 빨간 점이 나타나자 참지 못하고 휴대전화에서 증상을 검색했다. 증상을 검색한 다음 속으로 병이라고 여겼고 정념이 없어 이튿날 병원에 갔다. 의사는 마른버짐이라며 심각한 피부병인데 잘 낫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약을 처방해주었지만, 이런 약은 아무 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점점 심해져 온몸의 위아래, 심지어 손바닥과 발바닥까지 껍질이 벗겨지고 짓물러 정말 보기 싫었다.

그때는 이미 봄에 접어들고 날씨가 점점 더워져 어떤 사람은 반소매 옷을 입었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여전히 긴 옷과 긴 바지로 몸을 감쌌다. 가장 심했을 때는 길을 걸을 때 두 다리의 상처로 인해 잡아당기는 것처럼 아파 다리를 굽히고 걸어야 했다.

방학 때 집에 돌아갔더니 아버지가 보고는 인터넷에서 피부 병원에 문의했다. 의사는 즉시 입원을 제의하면서 아마 8만여 위안(한화 약 1,340만여 원)을 써도 억제만 할 뿐 완치할 수는 없다고 했다. 나는 그때 졸업이 임박하여 졸업 논문을 완성해야 했기에 급히 학교에 돌아갔다. 어머니가 며칠 후 학교에 와서 나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나는 체면 때문에 어머니가 오는 것을 싫어했고 온 후에도 어머니에게 크게 화를 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사상은 진정한 자신의 사상이 아니라 사악한 구세력이 표현한 공포였다.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는 엄숙하게 나와 교류했다. 내게 병원에 갈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연공할 것인지를 물었다. 당시 나는 연공을 선택하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당시 이 일념이 있었기에 그 후에 기적이 나타난 것이다. 나와 어머니는 기숙사 부근의 개인 주택을 임대하여 매일 법 공부와 연공을 했으며,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발정념으로 내 육신에 대한 악의 박해를 제거했다.

차츰 신체에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 매일 떨어지던 비듬이 점점 적어졌고 그 후에는 가려운 느낌도 없어졌으며, 긁어서 난 상처도 점점 작아졌다. 20일도 되지 않아 상처 자국이 모두 없어졌다. 5월이 되어 나도 정상인처럼 반소매 옷을 입었다. 주위 동급생들도 감탄하며 어머니가 오더니 병이 다 나았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몇 년 후 의사 친구와 얘기를 나눌 때 그가 내게 이 ‘병’을 어디서 어떻게 치료하여 나았는지 물었을 때 나는 정념이 부족하여 대법을 배워 나았다고 말하지 못해 대법을 실증하지 못했다. 진상을 알려 그들을 구할 기회를 놓쳤다. 사실 그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또 한 번 도우신 것이다.

대법을 이탈하여 인터넷 대출에 깊이 빠지다

어릴 때부터 법을 얻었지만, 학교의 무신론 교육이 내게도 영향을 주어 법 속의 일부 신기한 일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늘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통해 대법의 신기함을 인식했고 진심으로 사존께 감사했다! 하지만 그 후 나는 마음속의 집착을 깊이 찾지 않고 대법의 신기함에만 감탄했을 뿐이다. 내가 대법제자이기만 하면 보호 우산이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일자리 찾는 문제에 직면했다. 나의 전공이 현지에서 발전성이 없었기에, 그리고 많은 동급생이 일선 대도시에서 아주 멋지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일선 도시에 가서 발전할 생각만 했다. 입으로는 일선 도시에 가서 선진 기술과 이념을 배우겠다고 말했지만, 실은 허영심이 난동을 부린 것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악당의 박해를 받고 아버지가 도박에 물들어 나는 줄곧 열등감이 있고 동질감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전문적 기술을 비롯한 각 방면에서 나보다 못한 동급생이 모두 아주 잘 발전한 것을 보고 이 기회를 빌려 대도시에서 포부를 실현할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내가 일선 도시에 간 후 법을 이탈할까 봐 동의하지 않았으나, 내가 집착심 때문에 기어이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일선 도시에 간 후 어머니와 떨어졌기에 독촉과 당부가 적은 데다, 사회의 각종 변이된 사상과 나날이 타락하는 도덕적 관념을 따라 나의 사상도 점점 대법을 이탈하여 말과 행동이 속인과 같았다. 사상 속의 누락도 점점 많아졌다.

일선 도시에 도착한 후 직업의 압력이 아주 높았고 생활비도 많이 들었으며, 성격도 조급하게 변했고 일에 부딪히면 법리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해 고생해도 돈 한 푼 저축하지 못했다. 삶이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내려놓지 못한 체면 때문에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원래 첫 직장의 수입으로도 기본 생활을 유지하기에 문제없었으나, 이 회사는 창업한 작은 회사였기에 1년 뒤 월급 오름폭이 아주 적어 주위 동료들이 대기업으로 간 것을 보고 나도 대기업으로 갈 생각을 했다. 강대한 이익과 허영심 때문에 회사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다른 성숙한 기업으로 갔다.

내가 일자리를 바꾼 그해 전체적인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나의 수입은 업적에 따라 나오기에 당시 수입이 아주 적었다. 한때는 기본 생활도 보장하기 어려워 신용카드 할부를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일선 도시에 남아 있으려고 했다. 그해 부모님은 고향에 새집을 사고 계약금을 치렀다. 내게 매달 주택담보 대출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지 물었을 때 나는 체면 때문에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 경제적으로 상당히 곤궁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법에서 깨닫지 못해 이런 처지에 몰렸다. 이리하여 나는 대법과 점점 멀리 떨어졌다. 그 후 나는 또 다른 회사로 갔지만, 수입은 여전히 올라가지 않았다. 이 기업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기업이 부도났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워 신용카드 할부와 친구에게서 빌린 돈으로 생활했다. 그 후 일선 도시에서의 상황이 아주 좋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경제 상황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쪽 회사 수입도 높지 않아 매달 주택담보 대출도 갚아야 하고 신용카드에 빚진 돈도 갚아야 했기에 경제적인 압력이 아주 높았다. 반년 후 경제적인 압력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휴대전화기로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런 인터넷 대출은 이자가 매우 높아 고리대와 유사했다. 돈을 빌릴 때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지 않았고, 대법제자가 고리대를 빌려 빚져야 하는지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 법리에 따라 고려하지 않았으며, 가족을 위해 고려하지 않았다. 갚지 못하면 가족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먼저 돈을 빌려 이 돈을 갚고, 돈이 있으면 얼른 갚으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돈 갚을 날이 왔을 때 갚을 능력이 없어 또 유사한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서 돈을 빌려 먼저 빌렸던 돈을 갚았다. 이렇게 하니 생활할 돈이 없어 첫 번째 돈을 빌린 사이트에서 또 빌렸는데, 갚을 날이 왔을 때 이 두 사이트에서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이 없었다. 그 후 또 다른 사이트에서 돈을 빌렸다. 반년도 되지 않은 사이에 십여 곳에서 돈을 빌려 수천 위안에서 6만 위안(한화 약 1,005만 원)에 가까운 빚을 지게 되었다.

돈을 갚기 위해 친척과 친구들에게서 또 돈을 빌려 총 8만여 위안을 빚지고도 부모에게 돈을 빚진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중간에 급하게 돈을 갚으려다 한 인터넷 대출 사이트에서 7천 위안(한화 약 117만 원)을 사기 당했다. 매일 돈 갚으라는 전화와 메시지가 와 직장 일과 생활에 큰 영향이 있었고 압력을 받았다.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한 후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법 공부와 연공을 하면서, 이것은 내가 한 것이 바르지 않고 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아 구세력의 박해를 받은 것임을 의식하고는 끊임없이 발정념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내가 장기간 자신을 진정한 대법제자로 보지 않은 것과 관련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한 후 부모에게 돈을 빌린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와 집착심을 파내고 착실하게 수련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법 공부하여 자연스럽게 꼬마 대법제자가 되었는데, 커서 진정하게 수련하는 것과 수련하지 않는 것 중에서 선택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이런 선택을 피해 형식적인 대법제자로 변해버렸기에, 대법의 은혜를 입고 사부님의 보호만 받았을 뿐 실제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이것은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극심한 불경이다! 박해를 받을 때만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이 생각나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대법을 이용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사존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또 한 번 나를 도와주셨다. 그런데도 후에 안으로 찾지 않고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고 심성을 제고하지 못했다. 속인 사회 중의 허황한 명리와 허영심을 위해 자기 고집대로만 하고 제멋대로 하면서 이 만고의 기연을 낭비했다. 수련할 시간과 세인을 구할 기회를 낭비하고 더욱이 사존과의 조사정법 서약을 어겼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부가 문으로 이끌어 들이나 수행은 자신에게 달렸다. 당신을 강박하고 핍박하여 수련하게 할 사람은 없으며, 수련하고 안 하고는 당신 자신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어느 길로 가려하고, 당신이 무엇을 가지려 하며, 당신이 무엇을 얻으려 하든지 누구도 당신을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단지 선(善)을 권할 뿐이다.”[1]

사람이 무엇을 가지려 하는지는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자비로우신 사존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정법 수련법을 무조건 우리에게 주셨다. 내가 무슨 이유로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전 수련의 길에서 정진하지 못한 나는 소중한 줄 모르고 한 번 또 한 번 착실하게 수련하여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놓쳤지만, 이번에는 무조건 수련을 선택하여 진정한 대법제자가 될 것이다.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일마다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착실하게 수련하고 조사정법(助師正法)하여 자신의 역사적인 사명을 완성할 것이다!

나는 열심히 법 공부하여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각종 집착을 파내고 법리에 대조하여 하나하나 제거해야 하며, 빠진 부분을 보완하고 사악한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경과를 통해 나는 각종 집착심을 찾아냈다. 허영심, 명리를 구하는 마음,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 이익을 구하는 마음, 뽐내는 마음을 여기서 드러내며 자신을 바로잡고 대법에 동화할 것이다. 나는 어디서 일하든 수입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았다. 자신의 항목에서도 노무비를 고려해서 주면 된다고 했고 적으면 적은 대로 받았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이익을 구하는 마음을 담담히 본 것 같지만, 법에 부합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 이 우주에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으면 곧 잃어야 한다는 이치가 있다. 속인 중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많이 일하면 많이 얻으며, 적게 일하면 적게 얻고, 대가를 많이 치르면 마땅히 많이 얻어야 한다고 한다.”[1] 그런데 나는 이 방면에 늘 정념이 없어 악이 빈틈을 탔다. 내가 일선 도시에서 생활이 어려워졌을 때 집에 돌아와 나의 실제 능력에 따라 생각해야 했는데도 강렬한 허영심과 명리를 구하는 마음 때문에 일선 도시에 남았다. 주위 친구들이 나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대도시에서 일하다니, 정말 능력이 있다.”라고 말하길 바라다가 결국 가정에 무거운 경제적인 압력을 주게 되었다.

나는 자신이 전체에 어울려 문제가 나타나면 제때 수련생과 교류하고 심성을 높이고 부족한 점을 찾아 제때 바로잡는 것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체면을 중히 여겨 수련생과 교류하려 하지 않고, 일과 생활에서 체면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여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법 공부와 연공 시간을 점유했다. 이런 집착심을 깊이 파내야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바꾸어야 진정으로 자신을 높일 수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내가 이렇게 부족한데도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는 나를 포기하신 적이 없다. 나는 이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착실하게 수련하여 합격한 대법제자가 될 것이다!

주:
[1]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2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12/3826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