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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속에 있을수록 바른길로 가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후이꾸이(回歸)

[밍후이왕] 20년 가까이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비바람을 겪어왔으며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비마다 자신의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정념에 의거하여 난관을 뚫고 오늘에 이르렀다.

딸이 세 살 되던 때, 시어머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발을 삐었다. 당시 시어머니는 시동생의 집에 거주하셨다. 나는 매번 딸을 데리고 찾아뵈었는데, 나는 이것을 모두 단순히 병문안하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로 간주했다. 여름밤에 사람들은 모두 늦게 잠자리에 든다. 나는 딸을 데리고 가는 길에 자료를 배포하였는데, 복도, 창턱, 자전거 바구니 등 지나가는 곳마다 중생들에게 진상을 남겨주었다.

시아버지는 겨드랑이에 혹이 생겨 입원수술을 받았는데 남편은 맏이라서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다. 나는 마찬가지로 조급해하지 않고 집안일을 잘 안배하고는 법공부를 했으며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여전히 세 가지 일을 했다.

2012년,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받게 되어 나는 매일 딸을 데리고 식사배달을 하였는데, 여전히 이것을 사람을 구할 기회로 간주했다. 나는 의사의 전화번호를 기록하고 동료 환자의 전화번호를 수집했다. 택시를 타고 오가면서 차 안에서 자료를 배포했다.

특히 2014년에 남편은 왼쪽 다리 인대가 끊어져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도시의 병원에 가서 수술 받아야 했다. 그때 집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었고 또 돌봐야 할 80여 세의 노모도 계셨다. 이렇게 보살펴야 하는데, 식사 외에 또 아이의 학습지도, 집의 수도요금, 전기요금을 제시간에 내야 하는 것 외에도, 직장에 많은 일이 있었다. 정말 짓눌려서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곧 자신은 속인이 아니고 내가 가는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길이며 모든 것을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다. 상황이 바뀌게 되었는데 큰언니, 큰형부가 나를 도와 자발적으로 남편을 데리고 수술하러 가도록 하였다. 또한 남편 직장에서 두 명의 동료를 보내 간호하게 하였는데, 이는 나에게 많은 부담을 덜어주었다.

수술 받는 기간 나는 여전히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낮에는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전화번호 수집에 유의하였다. 거리를 걸을 때는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음성 전화로 진상을 알렸으며 남편이 잠들면 휴식 구역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거나 진상을 알리는 전화를 했다. 남편이 퇴원할 즈음에 나는 또 같은 병실의 부부에게 삼퇴(三退)를 권하여 탈퇴시켰다.

지난해 어머니가 병이 위독하여 입원하셨다. 매일 밥을 지어 배달하고 직장업무를 잘해가면서 딸을 돌보는 것 외에 나는 여전히 시간을 짜내어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전하면서 매일 2, 3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장쩌민 고발 후 우리 구역 공안에서는 수색하기 시작하였는데 일부 대법제자들은 납치되어 갔다. 나는 발정념의 강도를 가강하여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으면서 강대한 정념으로 사악의 나에 대한 박해와 교란을 해체했다.

어쨌든, 마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어려움 속에서 근심하지 않았으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고비를 넘겼다.

매번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나는 모두 안을 향해 찾았는데 내가 닦아야 할 많은 집착심과 사람의 마음을 찾아냈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 “수련인은 반대로 문제를 보아야 한다. 당신이 좋지 못한 일에 부딪혔을 때 당신은 좋은 일로 여겨야 하고 당신을 제고시키기 위해 온 것이라고 여겨야 하며, 이 길을 나는 잘 걸어야만 하고, 이것은 또 넘어야 할 관이며 수련하라고 온 것으로 여겨야 한다.”[1]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신사신법의 정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나는 어려움 속일수록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원문발표: 2019년 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10/3825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