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을 얻다
1992년 어느 여름날 아침, 내가 다니는 의과대학 도서관 앞에서 노부부가 파룬따파(法輪大法) 제4장 공법 ‘파룬쩌우톈파’를 연마하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당시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 옆을 지나면서 그들의 손이 온몸 위아래를 한 바퀴 도는 것을 보고, ‘이것은 위아래 온몸의 맥락이 한데로 연결되게 하는 매우 분명한 동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1994년 여름방학에 집에 갔을 때 아버지 어머니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걸 보고 그것이 파룬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는 파룬궁을 보고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1995년 졸업하기 전 ‘장래 나에게 신앙이 있을 것’이라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련은 마땅히 닦는 것이 먼저이고, 연마는 그 후’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1995년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가 ‘파룬궁(수정본)’을 읽는 것을 보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파룬궁 책을 읽게 되었고, 읽다가 갑자기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무슨 책이든지 읽게 되면 그 책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되는데, 책 내용 중 자기 생각과 부합하지 않은 부분을 집어내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의서 중의 많은 이론과 가설 같은 것도 내가 찬동하지 않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의대에서 공부했지만, 현대의학이 주장하는 이론과 치료 효과에 대해 그다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파룬궁’ 책을 여러 번 읽었는데도 무슨 문제점이나 의문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 그 후 ‘전법륜(轉法輪)’ 책을 읽었을 때도 일부 명사가 생소하긴 했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법공부와 연공을 하라”고 줄곧 재촉함으로써 파룬궁을 수련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파룬궁을 한 번 선택하면 평생을 동반해야 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파룬궁을 배울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 공법은 사람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좋은 것이니, 마땅히 배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법을 배우고 연공을 배우겠다는 결심을 하자, 버스 차창 밖에 보이는 하늘이 즉시 내 맘처럼 변했고, 마음이 대단히 가뿐해졌습니다.
파룬궁을 배우기로 한 후 매일 부모, 수련생들과 함께 열심히 법공부와 연공을 했는데, 사부님께서 매우 빨리 몸을 정화해주셨습니다. 금요일 저녁마다 온몸에 열이 나다가 일요일 저녁이면 나아져서 정상적인 출근에 지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온몸에 열이 나고 뼈마저 아팠지만 두뇌는 특별히 맑았습니다. 수련하기 전 고열로 의식이 혼미해지는 것과는 달랐으므로, 아무리 열이 나고 온몸이 시큰하도록 아팠어도 침대에 누워 깔깔 웃었습니다. 너무 흥미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한번은 매우 추운 겨울날 밖에서 연공하려고 가는데, 그날따라 마침 생리통이 심해 중간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자마자 아랫배 부위의 통증이 단번에 사라졌으며, 그 후부터 주기적으로 나타났던 생리통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런 말을 어떤 사람은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나는 수련생들과 함께 1999년까지 법공부와 단체 연공을 열심히 했습니다.
대법이 제멋대로의 내 성격을 개변시켜주었다
어릴 때부터 나의 성격은 비교적 독립적이었습니다. 부모는 나를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이외, 적게 간섭하면서 내 생각과 방법을 존중해주었으므로, 구속 없는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 성격이 형성되었습니다. 성장해서 유명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후 이름 있는 외국기업에서 일하게 되었고, 성실히 근무해 대단히 빠르게 담당 부서의 책임자와 수석관리자가 되어 10여 년간 근무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커서까지 일상생활은 물론 공부와 직장 일도 열심히 하여 모든 게 순탄했으므로, 나의 자유스러운 성격은 점차 독단적인 제멋대로의 성격으로 성장했습니다. 누구에게 단속받는 것을 참지 못하게 되어, 누구도 나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는데, 특히 내가 싫어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에서 정치과는 과 주임이 주도하면서 학점을 주관했지만, 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으므로 그 수업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직장에서 상사나 총책임자의 말도 내 생각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결혼 후 남편도 참견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랬어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내가 사람을 잘 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생활과 근무에서 개성이 강하긴 해도 사람이 괜찮다.’며 좋게 평가했으므로, 주위환경과 생활은 그런대로 조화로웠습니다. 그런 독단적인 성격 때문에 24세 때인 1999년 대법의 공정함을 주장하기 위해 혼자 몸으로 베이징 민원부서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에는 모두 양면성이 있기 마련입니다. 최근 몇 년간 끊임없는 법공부 중에서 나의 그런 성격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인연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은 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으며,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 정ㆍ남녀 정ㆍ부모 정ㆍ감정ㆍ우정, 매사에 정분(情份)을 중시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1] 나는 일할 때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만 따라서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정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2]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서두에서 “나는 법(法)을 전하고 공(功)을 전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짐에 따라 거둔 효과가 좋았으며,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도 비교적 좋았다.”[1]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배우면서 사부님께서는 모든 생명에 대해 자비로우심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가장 아름다운 모든 것을 매 생명에게 가져다주셨고, 매 생명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이를 깨달은 후 사부님의 자비로움에 깊이 감동되었습니다. 깨닫고 나서, 이전의 자유 분망했던 제멋대로의 성격과 행동을 돌이켜 보면 유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너무 이기적이어서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과 행동은 다른 생명을 생각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에 책임지지 않는 것입니다.
법의 요구를 안 후 자신을 개변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처음 어떤 항목에서 협조가 필요할 때 나의 첫 일념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먼저 이 항목의 필요함을 생각했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도록 노력했습니다. 한동안 그런 방식으로 해나가면서 차츰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이치를 깨달은 것 같았고, 각종 일에서도 진행이 아주 순조로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직장 일에서도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했는데, 나에게 시간이 더 들고, 절차가 더 많아지더라도 먼저 동료를 생각하고, 동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해주었으므로 서로의 관계도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많이 생각하면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다른 사람에게 배려해주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방문했을 때 친언니를 대하듯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성의로 대해주었습니다. 대단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대해주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산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알려주었을 때 그녀가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믿지 않았겠지만, 당신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믿을 수 있어요” 그녀는 즉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후 그녀는 “불면증이 심해 그동안 다른 것을 외웠어도 아무 효험이 없었는데, 어느 날 침대에 누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한 번 외웠는데, 갑자기 자주색 연꽃을 보았고, 신기해서 또 한 번 외우자 또 보였으며, 연속 세 번을 다 보았고, 불면증도 사라졌다. 참으로 신기하다.”고 감동해서 말했습니다. 그녀는, 아는 사람들에게 모두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했습니다.
내가 해외로 온 후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한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언니는 생명을 맡겨도 될 사람입니다.” 당시 그 말의 진정한 무게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가 짊어진 책임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 후 사부님의 ‘미국동부법회설법’ 중의 한 단락 법을 배웠습니다. “이 문제를 말하게 되어 나는 일찍이 당신들에게 일부 문제를 처리해 줄 때의 한 가지 일이 생각난다. 당신들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일체를 다 청리하고 나서 나는 아직도 맞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당신들 생명을 구성하는 더욱 은폐된 곳에서 나는 그런 기본물질마저도 다 변이되었고 일체 개변할 수 없는 것으로 완고하게 형성된 것을 발견하였다. 이때 다른 신이 본다면 생명의 본질마저도 안 되므로 이 우주를 아예 더 가지고 있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그것을 모두 개변해 주었다.”[3]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또 인류에게 변이가 발생한 것은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무척 높은 물질에 변이가 발생하여 조성된 것임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렇게 변이된 것은 무척 완고했다. 사람 여기에서 그것의 직접적인 표현형식은 지금의 젊은 사람들의 그런 표현행위와 관계가 있다. 무책임하고, 거들먹거리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고함을 지르며, 음악을 틀고 무슨 괴상한 춤을 추고, 무슨 전자오락을 하는 등 어쨌든 온 머리에는 이른바 현대생활의 그러한 것들이다.”[3] 이 대목을 읽을 때 나는 그런 제멋대로 하는 성격은 사실 변이된 것임을 갑자기 깨달았다. 저에게 이런 것을 깨닫게 하시고, 이런 변이된 것을 많이 제거해주신 사부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는 자유롭고 자기 멋대로의 성격을 몇십 년 동안 고치려 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런 나를 개변시킬 수 없었습니다. 정말 사부님과 대법만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무엇이 더 아름다운 생명인지를 알게 해주셨고, 어떻게 타인에게 유익한 더 좋은 생명이 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선 이기적으로 변이된 많은 것을 제거해주셨고, 생명을 더 아름답게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정’을 다시 한번 더 분명하게 인식한 약간의 체험
나는 2년 전 한 수련생과 늘 맘속으로 서로 맞지 않았는데, 그다지 강하지는 않았어도 언제나 그런 감정이 존재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련생 간에 화합도 부족한 것 같고, 단체 법공부와 교류도 형식으로 하는 것 같았으며, 일부 항목에서도 협조인과 구성원 간에 시키는 대로 할 뿐, 함께 더 잘하려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았으며, 법공부로 제고하고 일에 책임지는 데 마음을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좋은 그 일면은 이미 격리되어 볼 수 없다. 당신들이 보는 것은 영원히 수련이 잘 안 된 이 일면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자비심을 품지 않아서는 안 되며 고정적으로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한다.”[4] 이 법리를 감성적으로 이해하며 안으로 찾고 닦으려고 했으므로 간격을 완전히 좁히지 못했습니다.
끊임없이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을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그런 저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한번은 수학 중인 대학원에서 진상 기록영화를 방영하기로 했을 때, 사부님께서 저에게 힘을 보여주셨습니다. 활동을 시작하기 전 어느 부서를 찾아가서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고, 토론토에서 실시하는 방영 활동에 참가하여 홍보자료를 인쇄하고 전시 간판을 만들어야 했는데, 시간이 촉박한 데다가 거처야 할 사소한 일들이 많았으므로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평소 묵묵히 있던 수련생들이 따듯한 협조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나는 그들 대부분 수련생을 알고 있지 못한 사이였는데, 그들은 내가 바쁠 때 나를 찾아와 열심히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품고 있던 그런 간격의 마음을 제거할 수 있었으므로 참으로 감동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사부님께서는 한 대법제자가 쓴 가사 ‘싫어하지 않는다’를 저에게 보여주시며 깨우침을 주셔서,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맘속으로 사부님께 한 번 또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비로소 그동안 내가 줄곧 수련생을 싫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 마음’과 ‘정’으로 수련생을 대했던 것입니다. 늙고 병들어 연약하고 빈곤한 사람을 싫어하지 않고 애써 그들을 도와주면서도, 일부 수련인답지 않게 보이는 한 수련생을 속으로 싫어한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사람의 정으로 대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 그렇다면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한 초상(超常)적인 사람으로서는 이런 이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情) 중에서 파생되어 나온 많은 집착심을 우리는 그것을 담담히 보아야 하며 최후에는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1]
나의 공간장에 강대한 ‘정’이 존재하므로 시시각각 평온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을 더 너그럽게 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마음속으로 나의 잘못을 인식했을 때 매우 기쁘기도 하고 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 가지 일에서 나는 수련인은 ‘정’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한번은 외지에 션윈 표를 팔러 갈 때였는데, 함께 가기로 한 수련생이 ‘매표소에 두 사람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멋대로 혼자 매표소로 들어간 후 문을 잠갔습니다. 그날 세 사람이 3매의 표를 즉석에서 사려고 해서, 내가 매표담당 수련생에게 전화로 알렸지만, 그 수련생은, 표를 우편으로 발송해주겠다면서 고객이 원하는 현장 판매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고객은 나중에 극장에서 표를 사겠다며 그대로 가버렸습니다. 과거 나도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는 했지만, 수련자는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해서는 안 됩니다. 정을 제거해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제거해야 하며, 해야 할 일을 이지적으로 한다면 전체에 더 좋은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오랫동안 나를 속박하던 관념과 물질을 인식하게 해주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상 수련 중의 약간 체험이니 적당하지 않은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 ‘불성무루(佛性無漏)’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동부법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1’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원문발표: 2019년 2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8/3816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