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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버리고 진짜를 남겨 순수한 선을 수련해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진정하게 수련하고 제고하는 과정에서 나는 선(善)을 수련하는 과정도 거짓을 버리고 진짜를 남기는 과정이자 백인성금(百忍成金)의 과정임을 발견했다.

나와 어머니는 이웃으로 살고 있고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나를 좀 책망하고 냉담하셨으며 나도 아주 완강했기에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하고 나는 어머니를 선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줄곧 예의 바르고 상냥한 얼굴로 대했다. 또 늘 어머니에게 무엇을 도와드려야 하는지, 어떤 분부가 있는지 여쭈었다. 그러나 사실상 내가 어머니와 함께 한담하는 것도 비위에 맞춰 좋은 말을 했을 뿐이고 깊이 마음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저 어머니를 도와 일할 뿐이었다.

어머니도 안색이 줄곧 어두웠고 목소리도 줄곧 차가우셨다. 내가 어머니를 선하게 대하고 어머니를 받아들이며 어머니를 위해 대가를 치렀지만, 어머니는 나를 받아주지 않고 늘 적반하장으로 나무라셨다.

나는 어느 날 남편에게 어머니에게 웃는 얼굴로 대해도 어머니는 오히려 나를 보면 얼굴이 굳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남편은 나에게 자신의 웃는 모습을 보라면서 거짓 웃음을 짓는다면서 조금의 진실함도 없다고 지적했다. 나는 내가 어머니에게 늘 웃는 얼굴로 겸손했다고 반박하면서 형제자매들은 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말하고 누구도 어머니를 싫어하지 않는 형제가 없다고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의 말을 생각해보니 사실상 사부님의 점화였다. 나는 줄곧 내심으로 자신을 개변한 것이 아니고 원망과 증오심을 내려놓지 못했으며 어머니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고 성심성의로 헌신하지 않았다. 나는 억지웃음을 지었고 속으로 혐오하고 증오했다. 남편마저 똑똑히 알고 있었으니 어머니도 반드시 아셨을 것으로 당연히 안색이 좋지 않으셨을 것이다. 내심에 연민이 없으니 아무리 화려한 말을 해도 어머니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지 못했고 서먹함을 없애지 못했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한 사람이 달콤한 말을 하고 한 가지 일을 요란하게 했어도 만약 진심이 없고 내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정한 대가를 치른 것이 아니고 허세를 부리고 시늉만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은 허위적인 것이 아닌가? 쇼를 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교활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선을 논할 필요 없이 사람을 기쁘게 하고 연극을 했을 뿐이며 임무를 완성했을 뿐이다.” 당문화 중에서 ‘빈말’로 ‘선’을 표현한 것인데 그것은 절대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닌데 수련해 무엇이 되는가?” 나는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사부님께서는 “정신(正神)의 표현은 물론 저층의 선하지 못한 생명처럼 그렇게 거리낌 없이 악행을 하지 않을 것인바, 그것들은 물론 모두 선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런 선(善)은 변이된 것으로 이 선의 배후에는 집착이 있는데, 바로 그 선의 표현 때문에 만들어낸 장애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기만하고 남도 속일 수 있다. 만약 정법이 아니라면 이런 일들은 정말로 돌파하기가 아주 어렵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안으로 찾았다. 구세력의 배치 하에, 당(黨) 문화 환경에서 나의 ‘선’은 변형되었고 집착이 있으며 누락이 있었는데 구세력과 아주 비슷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했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진정으로 수련하지 못했으며 자신을 기만하고 남도 속이고 있었다. 내가 순정하지 못하고 변이된 선으로 새 우주에 갈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단지 표면상으로만 내려놓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지닌 채, 한 가지 것을 고수하면서, 당신 자신의 그 가장 본질적인 이익을 다른 사람이 해치지 못하도록 고수하고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그것은 가짜 수련이다! 당신 자신의 내심을 움직이지 않으면 당신은 한 발자국도 제고할 수 없는바,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오로지 당신이 진정하게 내심에서 제고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하게 제고된다.”[2]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얼굴에는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3]고 하셨다. 내가 이해한 것은 우선 내심으로 연민이 나온 다음에야 비로소 온화한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며 이런 선이야말로 안으로부터 밖에까지 자연스러우며 거짓됨 없이 진실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랑하는 마음이 깊으면 온화한 분위기가 있고 온화함이 있으면 표정이 밝다”(예기-제의)라고 했다. 오직 내심의 이해, 연민과 선을 수련해야 내면으로부터 겉으로 기쁨이 나타나 거짓이 아니고 허위가 아니며 가장하지 않게 된다. 진심을 수련해내야 허위가 아니기에 자멸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나는 채소를 많이 사고 밥을 짓는 것과 힘든 일을 많이 한다. 어머니가 주방을 치우시지 않으면 내가 더 많이 치우고, 어머니가 고독하고 적적해하시면 이전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친구가 되어 드렸고, 어머니가 아프시면 많이 돌봐드렸다. 나는 나에게 성심성의가 담긴 말을 하도록 요구하고 실제로 어머니를 위해 헌신하도록 요구했다. 서서히 어머니의 안색이 더는 어두워지지 않았고 말투도 더는 딱딱하지 않으셨다. 정말로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 정념은 세상사람을 구하는도다”[4]였다.

우리는 늘 조사정법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오직 내심으로 진실, 자비, 정념을 내보내고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남기며 순수한 선을 수련해내야만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우리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데 만약 진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선도 위선이고 인도 아마 가짜일 것이다. 특히 중국사회의 거짓과 허풍, 빈말이 난무한 당(黨) 문화 속에서, 전반 사회에 가짜가 난무한 상황에서 만약 선을 수련하는데 주의하지 않는다면 아주 쉽게 위선 중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수련 중에서 애써 선량함을 표현해서는 안 되고 진정으로 자비를 수련해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자비는 수련해낸 것이지 표현해내는 것이 아니고,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영원히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6]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위선의 표현은 곳곳에서 표현된다. 예를 들면 일하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실질은 교활한 수단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가정에서 형식상으로 서로 손님을 대하듯 존중하지만, 실질은 원망하고 의심한다. 학우 사이에는 앞에서는 아부하고 뒤에서는 결점을 들춰낸다. 진상을 말하는 중에서는 열정적이지만 속으로는 경멸한다. 사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언행 중에 위선이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전혀 모른다. 그것은 전반 중국사회에 거짓과 가짜가 범람하고 사람들은 시대의 조류에 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허위를 경계하지 않고 가장하는 등 변이된 관념을 수련해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의 심성은 근본적으로 제고해서 올라갈 수 없고 원만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시 수련생들의 교류에 대해 말해보자. 다른 수련생이 심성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 선으로 지적해주어야만 수련생을 진정으로 위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선한 마음이 나오면 바로 선한 것이다. 당연히 말투는 될수록 평온해야 한다. 그러나 겉으로 웃고 말을 하지 않지만, 뒤에서 숙덕거리는 것은 선하지 못한 것이다. 앞과 뒤가 다른 건 허위가 아닌가? 모두 마음을 열고 일을 털어놓았을 때 수련생은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는데 수련생을 도와 심성을 제고하는 것이 아닌가? 상대 앞에서 진심으로 대해야만 진정한 선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3-2003 미국중부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대원만법-2.동작도해’
[4]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2-법정견곤’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4-2003년 워싱턴DC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2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1/3806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