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상의 이치는 도(道)가 될 수 없다’를 학습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세간의 이치는 인간 세상의 이치이고 보통 사람의 도리이며 그것은 고금중외의 여러 이론과 관념을 포함한다. 법을 얻기 전에 역대 경전과 명언, 경구(警句),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삶을 일깨우는 말들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말이 좋다고 생각했다. 법을 얻고 수련하고 나서 법학습이 깊어지고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점차로 세간의 이치, 속인의 도리가 심성제고를 교란한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최근에 이러한 느낌이 더욱 뚜렷하였는데 간혹 인터넷에서 한 단락의 철학이 담긴 글을 보고 나면, 그런 그럴듯한 논법[說法]들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세밀하게 청리해야만 해낼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면, 최근에 본 한 인터넷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너무 잘 대할 필요가 없고 개는 배불리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 즉 적당한 정도가 좋다는 뜻이다. 사람을 너무 잘 대하면 감사할 줄 모르고 개를 너무 배불리 먹이면 집을 지키고 정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맞는가? 속인으로 말하면 일리가 있다. 하지만 수련인에게는 도리어 교란과 함정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은 생명의 승화 과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해 점차적으로 더욱더 좋은 사람, 속인을 초월한 고상한 생명이 되어, 더욱더 높게 되는 것이다.”[1] 대법제자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자비를 품고 보답을 바라지 않아야 한다. 설마 감사할 줄 모른다고 하여 잘 대하지 말아야 하겠는가?
왜 세간의 이치가 심성제고를 교란한다고 하는가? 속인은 속인의 도리를 따르고, 수련인은 초상(超常)적인 이치를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련인은 속인 중에서 왔고,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또한 아직 완전히 속인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예전에 옳다고 생각했던 세간의 이치가 수련인에게 주는 미혹이 매우 심한데 깊이 숨겨져 있어 흔히 세간의 이치에 집착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고층차에서 보면,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2]. 속인이 말하는 도리는 통속적이든 심오한 것이든 간에 다만 사람으로 되기 위한 것이다. 이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수련인은 반드시 세간의 이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속인은 사(私)를 위하고 자신을 위하는 것이지만 대법제자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3], “인간 세상의 이치는 도(道)가 될 수 없다”[4]
많은 세간의 이치는 누락이 있는 것인데 그런 사(私)를 위하고 자신을 위하는 세간의 이치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세간의 이치와 우주의 바른 법리는 대립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반대로 된 이치이다. 그러므로 세간의 이치에 대한 어떠한 집착도 모두 대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수련인은 세간의 이치를 내려놓아야만 대법에 동화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속인들이 세간 이치에 미혹되어 집착함을 비난하지도 않고, 또한 진지하게 논쟁하지도 않는다. 속인들과의 갈등에서 옳고 그름에 얽매이면 속인의 기준에 빠진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5]
전통문화 중, 많은 세간의 이치는 유(儒), 불(佛), 도(道)에서 연화(演化)해온 것이다. 하지만 바른 법문수련(正法門修煉)인 불교 도교, 불가 도가에서 온 세간의 이치라 할지라도 대법제자는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불이법문(不二法門)’의 기본적인 요구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 공부를 제외하고, 어떠한 것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절대로 대법제자 중에서 대법 자체에 속하지 않은 어떠한 것을 유전시켜서는 안 되며, 절대로 대법제자들에게 교란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6]
매 집착심의 배후에는 모두 세간의 이치가 숨겨져 있다. 수련인은 속인 중에 묻혀 있는데 실제로는 세간의 이치에 묻혀 있는 것이다. 대법제자는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는데 비정상적으로 표현해서도 안 되고 속인들과 혼동해서도 안 된다. 수련인은 오직 대법에 용해되어야만 비로소 몸은 그 속에 있지만, 그 위를 능가할 수 있고 신의 표준으로 세간을 걸어갈 수 있다.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신경문: ‘베트남 수련생들에게’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4] 리훙쯔 사부님 신경문: ‘대만법회에 보냄’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10 – 맨해튼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5 – 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8/3809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