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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자로서 서로 소중히 여기고 함께 용광로를 만들어 순금을 연마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박해 중 해외로 전전해온 중국 수련생이 있다. 최근에 당(黨) 문화가 깊다는 지적을 받은 데다 스스로도 현지에 녹아들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어디에 가는지는 개인의 선택으로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여기에서는 수련의 각도에서 수련생들이 함께 지내는 데에 대해 개인의 생각을 말하려 한다.

1. 수련생 사이에 서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성이 나오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한다.”[1] 한 사람이 수련하려고 하면 시방세계를 진동하고 신불(神佛)도 그를 도와준다. 우리는 높은 경지의 표준에 부합돼야 하고 반드시 자비롭게 중생을 대해야 한다. 게다가 주변에서 함께 하는 수련생을 보면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확고하게 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구하고 있는데 이 마음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좋은가. 이 마음을 봐서라도 우리는 서로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야 한다. 가끔갈등이나 생각의 차이가 있는데 우리가 함께 제고하는 요소일 뿐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과거에 이런 말이 있다. ‘중의 얼굴을 보지 않고 부처님의 얼굴을 본다.’ 우리는 그 수련생 역시 사부님의 제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그에게도 무수한 심혈을 기울이셨다. 우리는 반드시 서로 소중히 여기고 부족한 곳은 서로 지적해야 하지만 심리 상태에서 서로 이해하고 원망하지 말고 너그러워야 한다.

2. 진수(眞修) 환경은 우리가 함께 만든용광로

한 지역 내지는 한 법공부 팀, 매 하나의 진수 환경은 모두 용광로다. 이 용광로가 어떠한지는 여러분의 수련이 어떠한지 봐야 한다. 기왕 용광로라면 사람들이 제고될 수 있게 해야 하고 개변시킬 수 있어야 하며 용련(熔煉)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에서 온 어떤 수련생은 아마 당문화 요소가 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법의 용광로라면 일체 좋지 않은 것은 모두 여기에서 용해될 것이다. 만약 용련하지 못한다면 용광로의 온도가 부족함을 설명한다. 사람마다 용광로의 한 분자다. 모두 안으로 찾는다면 반드시 수확과 개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이 부족할 때 우리는 수련생이 많이 오길 바란다. 하지만 수련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신수련생이 오면 우리 이 용광로에게 도움도 되지만 시험도 된다. 마치 난로에 석탄을 넣듯이 난로 불이 새 석탄을 태울 수 있어야 불길이 더욱 맹렬해지고 에너지도 점점 커진다. 태울 수 없는데 석탄이 단번에 많아지면 오히려 불을 짓누르게 된다.

때문에 한 지역에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잘 전개하려면 반드시 좋은 진수 환경과 좋은 용광로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먼저 우리의 용광로에 공을 들여야지 인원을 보태기만 바라서는 안 된다. 사람은 왔는데 우리 여기에서 용련할 수 없어도 안 된다.

좋은 진수 환경은 여러 사람이 함께 착실하게 수련해낸 것이다. 마치 난로 불에 석탄을 넣어야 불이 왕성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수련생이 왔을 때마다 가져온 격차, 심지어 갈등은 바로 모두가 서로 용련하고 함께 제고하는 기회다.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매 사람의 수련 상태와 환경은 모두 난로 불이 될 수 있다. 여러분은 모두 수련인이다. 누가 옳게 하고 잘 했으면 다른 사람이 보고 역시 자신을 돌아보고 법에 대조해 제고할 것이다. 선의로 교류하고 문제를 지적해내고 함께 안으로 찾는다면 새로운 수련생이든 현지 수련생이든 매 한 사람의 개변은 모두 용광로에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매 한 사람은 용광로의 한 분자로서 다른 사람을 용련하는 동시에 자신 역시 그 속에서 용련되고 있다. 이 용광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 용광로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도 도와줄 수 있고 자신도 수련성취 할 수 있다.

3. 새로운 환경에 녹아드는 가장 큰 장애는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

어떠한 환경이든 녹아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진짜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해낼 수 있다면 “명(名)도 없고 이(利)도 없고 마음에 다툼도 없다네”[2]처럼 녹아들지 못하는 곳이 없다. 흔히는 대법 밖에 있으면서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조성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중국에서는 서로 인지하지 못하고 심지어 습관된 문제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는 모두가 확연히 느낄 수 있기에 잘 처리하지 못하면 간격, 심지어 갈등을 조성할 수 있다. 수련은 가장 엄숙한 것이다. 내려놔야 할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고비를 넘지 못한다. 역시 사부님 말씀에 따라야 한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3] 사실 어디에 가도 모두 조사정법을 위한 것이다. 해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확고하게 조사정법하고 중국 내 수련생을 위해 활동해 박해를 경감시키는데 얼마나 소중한가. 이 한 점을 봐서라도 우리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우리의 감정과 기대에 부합되는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나는 어디에 남아 있는가 그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수련에서 도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집착을 내려놓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뭐가 안 좋은 건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문화 이런 유의 것은 해외 환경 속에서 대비가 있기에 더욱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이 환경을 떠나면 그렇게 쉽게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중국에 돌아가면 모두가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편해진 것 자체가 바로 집착심이 아닌가? 자신의 집착에 따른다면 집착을 제거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어떤 완고한 부분은 진짜로 만년이 된 단단한 석탄처럼 용해되기 어렵지만 방임하거나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현지의 용광로가 우리를 용련시키지 못한다면 더욱 스스로 마음을 다해 힘을 보태고 불을 더해야 한다. 수련은 자신의 일이 아닌가?

4. 당문화가 간격을 조성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당문화에 관해 나는 생각한다. 한 방면으로 같은 대법제자로서 중국 대륙의 어떤 수련생에게 있는 당문화 겉껍데기를 너무 중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 그 껍데기는 사악이 수년간 강제로 씌운 것이지 그가 가지려 한 것이 아니다. 좋지 않은 딱딱한 껍데기 속에 갇힌 것은 금과 같은 마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가 온 것은 아마도 당신이 도와주라고 배치된 것일 수 있다.

다른 한 방면으로 같은 대법제자로서 해외 수련생이 어떤 면에서 자신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걸 탓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당문화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이런 불량한 것을 감싼다면 당문화에게 한 자리를 내어주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진수하는 환경인가? 그리고 조사정법 중에 자신의 몸에 바르지 않은 것들을 상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문화는 사악이 만들어낸 더러운 껍데기다. 강제로 우리 몸에 씌워놓은 것인데 그것을 남겨서 뭘 하겠는가? 스스로 깨버리지 못하는 걸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데 안 될 게 뭔가? 깨뜨리면 고통스럽다. 하지만 당문화 껍데기를 깨버려야 당신이라는 이 금이 반짝일 수 있다! 중국대륙 수련생으로서 지금까지 지나온 곤경과 위험한 상황 속에서 속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단호히 내려놓았다. 지금 사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할 건 또 무엇인가? 내려놓자! 갈등이 있으면 확실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고통스러워야 내려놓을 수 있고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5. 법이 있다면 어디든 모두 집이다

해외에 나간 중국 대륙 제자들은 능동적으로 해외 환경에 녹아들기를 건의한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다. 어디의 용광로든 모두 대법의 진수환경이고 모두 쉽게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디에 가든 그곳 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능동적으로 수련해야 하며 해외의 용광로 온도를 높여야지 낮춰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해외에 있으면서 고향에 대해 너무 많은 정을 품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자신이 환경과 간격을 조성한다. 나는 인연이 없으면 해외 환경에 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법을 얻으러 중국으로 환생했다면 전생으로부터 말하자면 당신이 지금 출국한 것은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아마도 당신이 돌아와서 예전의 가족(어쩌면 당신과 갈등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가족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연이 없으면 갈등도 없기 때문임)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예전에 약속한 것이라면 어려움이 좀 있다고 해서 달아나지 말아야 한다. 환경에 무슨 결함이 있다고 트집을 잡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바로 당신이 와서 원융하게 되도록 배치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법이 있기만 하면 어디든 모두 집이며 잘해야 한다.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찾지 말고 정념으로 자신을 수련하면 무엇이든 다 좋아진다. 사실 인간 세상도 하나의 여관에 지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여기 속인사회에 와서, 마치 여관에 투숙하듯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1] 우리 함께 잘 수련해 사람을 많이 구하고 일찌감치 잘해서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자.

속담에 이르기를 말은 쉬워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문제를 본 사람에게 일깨워주려 한다. 어쩌면 하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몇 가지 일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을 정리한 것으로서 구체적인 수련생과 구체적인 사건을 겨냥하지 않는다. 적절하지 못한 곳은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공손하게 허스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4-행각’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심자명’

 

원문발표: 2019년 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9/3809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