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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경지 승화가 느린 노수련생과 교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생명이 시작된 이래 ‘수련’이라는 단어는 신성하고도 신비로웠다. 일반인의 사유에서 볼 때 속세를 벗어나다, 심산수림, 세상과 단절하다, 속세를 달관하다, 불로장생 등이 수련을 의미하고 불교 각도에서 말하면 삭발, 가사, 지계가 표준일 것이다. 우주 진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고 수련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존께서는 한마디 말로 진기(眞機)를 밝히셨다. “무엇이 수련인가? 사실 그것의 진정한 함의를 진정하게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수련이란, 바로 생명을 성취하는 것이다.”[1] 위대하신 사존과 법이 대법제자에게 위대한 사명을 부여하셨고 미래 우주에 새로운 수련 과정을 남겨주셨다. 대법제자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이 미래 생명에 영원한 생명 유형을 창립할 것이다.

정법 노정이 신속하게 돌파됨에 따라 수련생들은 자신의 층차에서 본체와 주위 환경의 변화를 느꼈을 것이고, 대법이 중생을 제도하는 더 깊은 깨달음이 생기고 수련 본질을 더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며, 대법제자의 신사신법에 대한 마음도 더 확고해졌을 것이다.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악마도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많은 노수련생도 이 단계 고난의 교란 방식이 혼란하고 복잡한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어떤 때 단련으로 아주 성숙한 노수련생도 고난이 거듭됨을 느끼고 있다. 평소 연공과 법공부를 착실하게 하지 않은 수련생은 좀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나는 많은 노수련생이 ‘정법 노정이 오늘에 이르렀는데 시험과 고난이 지나간 것 같아 한숨을 돌려도 된다’는 상태에 처한 것을 보았다. 어떤 수련생은 안일한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사존의 설법에서 마지막 정법 과정은 엄숙하고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사람 마음이 나오면 곤두박질치고 층차가 떨어지고 정상적으로 대법제자의 위대한 사명을 완성할 수 없어 정법 최후의 단계에 유감을 남길 수 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최후까지 견지해야만 비로소 진짜 금이다. 누가 최후까지 견지했다면 그것이 비로소 원만을 이루는 것이다.”[2]

노대법제자로서 정법노정 마지막 단계에 사존께서 하시려 하는 일에 우리는 마땅히 작용을 일으켜야 하고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서로 협력하고 적극적으로 사부님을 도와 정법 노정을 추진해 대법제자의 서약을 실천하고 중생을 구해 유감을 줄여야 우주는 더 원융할 수 있다.

다음은 최근 접촉한 몇 가지 일에서 개인적으로 본 대법제자의 승화를 가로막는 일부 요소를 수련생과 교류하고 공동 제고하려 한다.

첫 번째 방면,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다

한 번은 외지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법을 외우는 일을 말할 때 수련생의 언니가 대량으로 ‘전법륜’ 보서를 통독해 이미 물이 흘러 도랑이 생기듯 유창하게 법을 담아 둘 수 있고 평소 본인이 법을 배우지 않으면 사존의 목소리가 줄곧 머리에서 맴돈다고 했다. 나는 듣고 아주 현묘하다고 느껴 즉시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겨 이 수련생 언니를 만나러 외지에 가려 했다. 그중 몇몇 수련생도 이끌려 이튿날 같이 가겠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에 새벽 연공을 하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가부좌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존의 매우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마디 법이 내 머리에 들어왔다. “사람을 배워서는 안 되며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매우 놀랐으며 즉시 내가 사람 마음을 움직인 것을 깨닫고 매우 괴로웠다. 사존의 고심한 제도에 죄송해 즉시 말씀드렸다. “사존,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법의 표준으로 잘 하겠습니다.” 이튿날 한 번 교류한 후 수련생들은 착실하게 수련해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리듬으로 해야 할 일을 해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이번은 나에게는 한 차례 매우 심각한 교훈이었다. 수련생 여러분께서 나를 거울로 삼아 본인의 일사일념에 주의해 정법에 손실을 가져다주지 말길 바란다.

두 번째 방면, 법을 마음에 두지 않고 일을 마음에 두다

나는 일부 협조인 수련생과 접촉하면서 이런 수련생이 처리하는 일이 꽤 많은 것을 발견했다. 평소 교류할 때 일부 병업 혹은 기타 수련생이 관을 넘은 상황을 교류했다. 어떤 수련생은 이런 일 때문에 어리벙벙했고 법에서 문제를 보는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나는 공능의 각도에서 당시 에너지장이 매우 나쁜 것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장기간 이런 상태에 처한다면 수련생의 전체 제고에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수련자는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부딪히든 마음에 법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류할 때 본인이 착실하게 수련한 체험을 말하는 것이 자신을 정화하는 데 유리하고 수련환경을 정화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세 번째 방면,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삼교(三敎) 수련은 무위를 중시하거니 / 마음 잘못 쓰면 곧 유위로다 / 착한 일만 한다 해도 역시 유위이거니 / 집착심을 제거해야 참된 무위로다”[3] 이틀 전 한 노수련생과 만나 안으로 찾는 법에 대해 말했다. 이것은 원래 좋은 일로서 평소 착실한 수련에 주의하는 이 수련생은 어떻게 안으로 찾는 환경을 형성할 것인지 많이 사고한다면서 안으로 잘 찾는 수련생 한 분을 언급했다. 한 번은 이 수련생이 말하고 있는데 나는 무의식중에 공능으로 안으로 아주 잘 찾는다는 그 수련생을 보았는데 내 층차에서 이 수련생 본체에 일부 울퉁불퉁한 상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나는 자세하게 생각하고 수련생에게 아직 사람의 각도에 서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법을 깨닫는 함의에서 이런 것은 쉽게 사람의 관념을 형성할 수 있다. 어떤 때 잘 파악하지 못하면 쇠뿔 끝을 파고들 수 있어 사소한 것에 신경 쓰는 수련 상태가 될 수 있다. 사람의 방법을 법리로 여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집착을 형성할 수 있기에 수련생들이 빨리 승화하고 본체가 정화되는 데 불리하다.

네 번째 방면, 자식 정

외지에서 한 노년 수련생을 만났는데 수련생 주위 에너지가 어두움을 느꼈다. 교류 후 수련생이 장기간 손자에 대한 정에 집착한 것을 알았다. “손자를 잘 이끄는 것도 법을 실증하는 것”이라는 구실로 집착을 덮어 감추고 본인의 소중한 조사정법 시간을 이용해 아이 시중을 들었다. 본인의 행위로 대법제자가 속인보다 더 잘한다는 것을 실증하려 하면서 인위적으로 많은 기타 조사정법에서 해야 할 일을 지체했다. 교류 후 이 수련생은 손자에 대한 정이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후 나는 공으로 수련생을 따라다니던 한 가닥 검은 기의 기둥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수련생의 공간장이 단번에 많이 밝아졌다.

다섯 번째 방면, 매일 수련을 견지해야 한다

“대법제자가 매일 수련을 견지[保證]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고,”[4]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비로소 대법제자의 사명을 잘 완성할 수 있다.”[5] 사존의 설법은 매번 망치로 치는 것처럼 나를 정진하도록 분발했고 나는 느슨히 하지 않고 사존의 요구에 도달하도록 노력했다.

법은 층차마다 다른 펼쳐 보임이 있다. 수련 초기와 정법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법제자의 경지는 차이가 거대하다. 초기는 초등학교 단계이지만 지금은 대학교를 다녀야 한다. 많은 노수련생은 아직도 어떻게 새벽 연공을 돌파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돌파할 것인가 등 수련 초기에 돌파해야 할 문제를 교류하고 있다.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지금도 돌파하지 못했다. 정법 노정이 오늘에 이르렀는데 왜 이렇게 많은 병업 가상 형식이 나타나고 병업 박해를 받아 세상을 뜨는 정황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일상 수련에서 진정한 의의에서 명리정을 돌파하지 못했고 진정하게 수련에 소양이 없고 수련의 내포와 엄숙함을 진정하게 인식하지 못한 자체가 고도의 정화로 도달하지 못한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일상 수련에서 시시각각 법의 표준으로 대조해야 한다. 어떤 때 한 사람의 경지에 관해 이야기하면 어떤 수련생들은 집착이 있는지 여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부님의 정법이 오늘 노정에 이르렀는데 노대법제자는 안으로 잘 찾아야 하고 본인이 사람에서 신에 이르는 수련 노정에서 정법 노정에 따라갔는지 잘 깨달아야 한다. 본인이 아직 수련하고 있다는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가급적 법의 표준에 대조하고 자비심 방면에 뚜렷한 제고가 있는지? 법의 표준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원망이 없는지 봐야 한다. 위대한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는 신의 영원한 상태”[6]라고 알려주셨다. 본체 연화 정도가 얼마나 변화했는지에 대해 사존은 말씀하셨다. “천목으로 보면 온 신체가 투명한데, 마치 투명한 유리와도 같아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런 상태가 나타날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는 이미 불체(佛體)이다.”[7] 가부좌할 때 진정으로 고요해졌는지 입정한 정도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고요해질 수 있음이 바로 공(功)으로서, 정력(定力)이 얼마나 깊은가는 층차의 체현이다.”[7] 개인적으로 늘 이 몇 가지 방면을 대조하면 집착과 누락을 쉽게 찾고 그것을 잘 닦아 사존께서 우리에게 닦아 올라가라고 하신 표준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맺음말

진정하게 대법에서 수련해 내고 속인 상태에서 걸어 나와 승화해 법의 각도에서 법을 인식하고 이 법을 진수(眞修)해야 본질상에서 대법제자의 기원이 아주 특수하고 우리가 인간 세상에 온 것이 이것을 위해 왔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고, 경사경법(敬師敬法), 신사신법(信師信法)을 줄곧 수련에 관통시킬 수 있다. 생명으로 법을 소중히 여기고 대법제자의 행위로 대법의 초범함을 실증하며 공동 정진해 사존의 요구에 합격된 대법제자가 되자.

개인 경지 중의 깨달음이므로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8년 워싱턴DC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법해-옌지(延吉) 설법 문답풀이’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홍음-무위(無爲)’
[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일깨우다[提醒]’
[5]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남미법회에 보내는 축사’
[6]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3-왜 거절하는가’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8/3809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