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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25년, 잊을 수 없는 사부님 은혜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3년 8월부터 대법(大法)을 수련했으며 사부님 학습반에 아홉 번 참가한 노 대법제자입니다. 25년이 흘렀으나 그해 사존께서 법을 전하시던 모든 장면이 저의 영혼 깊은 곳에 뿌리내려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학습반에 참가했던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사부님의 웅장한 체구와 자비롭게 웃으시는 모습은 아직도 더 보고 싶고 그 목소리를 더 듣고 싶습니다. 학습반이 끝나 장내를 떠날 때마다 늘 아쉬웠습니다.

저는 올해 83살입니다. 대법 수련 전 동서양 의학 모두 저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몸 어느 곳도 좋은 데가 없었습니다. 심장, 간장, 비장, 폐, 신장에 대한 병원 검사로는 전부 비정상이었으며, 가장 심한 것은 소뇌 위축으로 인한 자율신경 이상이었습니다. 두 다리는 X자로 변형되어 길을 전혀 걸을 수 없었습니다. 소뇌에 문제가 생겨 길을 걸을 때 삐뚤게 걸어 늘 넘어졌습니다. 그 고통의 나날은 정말로 죽지 못해 사는 것으로 몇 번이나 집 근처 위위안탄공원의 호수에 뛰어들어 죽고 싶은 충동이 있었습니다.

1992년 남편은 TV 방송국에서 사부님을 취재하는 비디오 촬영 일을 거들었습니다. 남편은 집에 돌아와 제게 그 기공사는 보통이 아니고 특별히 바르며, 파룬궁(法輪功)은 비용은 받지 않으나, 병 치료에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때 저는 기력도 체력도 없고 생명의 희망을 포기한 상태라 학습반에 참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병이 깊어가는 제게 “이 기공사는 정말로 보통이 아닌가 봐요. 비용을 받지 않고 병 치료에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해요. 병을 고치려고 아무 의사에게 치료를 맡겼다 셈 치고 가봅시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이번은 사부님께서 베이징 공안대학교 강당에서 진행하신 제12회 학습반에 마지막 하루만 참가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베이징 제7기계공업부 제2원 강당에서 진행된 제13회 학습반에 참가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웃 아주머니와 함께 강의를 들었습니다. 첫날 강의를 듣고 집에 들어서면서 배설과 구토를 했고 고열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화장실에 한 시간 앉아 배설했는데 모두 푸른 피고름이었습니다. 뜻밖에도 배설 후 매우 편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 기공사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전에 보았던 기공사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다른 기공사는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한다고 말하나, 이 기공사는 아직 병을 치료한다는 말도 없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큰 반응이 나타났는가?

계속하여 제3강의까지 듣고 난 후 다리와 발에 부종이 생겨 통증이 왔기에 강의를 들으러 가고 싶지 않고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때 저의 오성은 높지 않았음). 그때 학습반 스텝을 통해 이는 좋은 현상임을 알고 병원에 가지 않고 다리를 절며 학습반에 갔습니다. 신기하게 이틀 뒤 부종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더욱 신기한 일은 저의 X자 다리가 곧게 펴졌습니다.

6일째부터 9일째까지 학습반에서 매일 사부님께서 앉으시며 “지금부터 강의를 시작하겠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잠이 들어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몸의 변화를 경험했기에 이번 현상은 사부님께서 대뇌를 조절해주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마치시면 저도 깨어났고, 깨어나서는 후회했습니다. 9일 학습반이 끝난 후 저의 심신에는 매우 큰 변화가 생겨 전신이 병 없이 가뿐해졌고 마치 다시 살아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웃 아주머니와 함께 먹을 것을 지니고 샹산(香山)공원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구이잰처우(鬼見愁)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만약 거기까지 오를 수 있다면 우리 둘은 이 공법을 계속 수련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샹산에 도착해 단숨에 산허리까지 올라 잠깐 숨을 돌리며 정말로 구이잰처우에 오를 수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밖에 그런 신체 조건에서도 단숨에 구이잰처우 산 정상에 올랐고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기뻐서 환호했습니다. “우리는 나았습니다. 병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부님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이 공을 수련하겠습니다.”

우리는 집에 돌아와 사부님의 다음 학습반 시간과 장소를 알아봤습니다. 이렇게 저는 계속 사부님을 따라 학습반에 아홉 번 참가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왜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사람에게 왜 생로병사가 있는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학습반을 따라 설법을 들으며 이는 일반적인 기공이 아니라 불법(佛法) 수련이라는 것을 점차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진선인(眞善忍)’ 최고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며 심성을 제고할 것을 엄격하게 요구하셨습니다. 저의 신체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은 업력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건강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 걸음이 나는 듯했고 전신이 병 없이 가뿐해졌습니다. 저는 계속하여 사부님을 따라 정저우(鄭州), 지난(濟南), 스자좡(石家莊), 톈진(天津) 학습반에 참가하면서 사람들이 입장권을 끊고 숙소를 찾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늘 밤에 다른 지역에 도착해 입장권을 끊고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밤 열차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입장권을 나눠주었습니다. 비록 매우 고생스러웠으나,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25년간의 수련에서 적잖은 심성 고비를 넘겼습니다. 어떤 때는 잘 넘겼고 어떤 때는 잘 넘기지 못하며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바로 저의 신변에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늘 수련생과 함께 대법을 위해 곳곳에서 법을 홍보했습니다. 저는 가족의 식사를 위해 물만두를 많이 빚어 냉장고에 얼려놓았습니다. 제가 늦게 돌아올 때 가족이 스스로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느 날 밤 8시경 집에 들어서니 남편이 딸, 외손자와 함께 TV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식사했는지 물으니 아직 먹지 않았다고 해서 “얼른 준비할게요.”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속으로 화가 났습니다. 식사를 준비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다들 어찌 된 일이야? 이렇게 늦었는데 내가 와서 밥 주기를 기다리다니.” 화를 내며 머리를 돌리니 사부님께서 바로 주방 입구에 서 계셨습니다. 두 팔을 가슴에 교차하여 얹고 저를 보시며 웃으셨습니다. 저도 단번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뒤로 제게는 조금의 원망도 없었습니다.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가사를 돌보며 집안의 각종 관계를 평형 잡고 가족을 돌봤습니다.

25년간의 수련에서 아직 버리지 못한 마음이 많고 또 많은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념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꼭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겠습니다.” 이 일념은 중국 당국이 19년 동안 대법을 박해하는 기간에 동요한 적이 없습니다.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무릎 꿇어 사존께 예를 올립니다.

 

원문발표: 2019년 1월 31일
문장분류: 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31/3722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