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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철저히 내려놓고 병업관에서 걸어 나오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병업관이 수련생을 사망하게 한 많은 상황을 보았고 지금 아주 많은 수련생들이 병업관에 처해 있는데 이 병업 문제는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데에 끼친 영향이 상당히 크다. 나는 매일 밍후이왕을 보면서 또 계속 이 문제를 사고했는데 아래에 내가 최근 깨달은 것을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완전히 법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데 이는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갖춘 것이 아닌가?”[1] 나의 이해는 만약 한 수련하는 사람이 완전히 법에 있다면 어떠한 관도 모두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법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가? 사상은 법에 부합되고 행위는 법에 부합되는데 정념정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행위는 사상이 지배하는 것이고 사람의 사상염두가 바르기만 하면 행동은 반드시 올바르기 때문에 사상 염두를 바르게 두었다면 정념정행 할 수 있고 관을 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상염두를 바르게 놓았는지 어떻게 판단하는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점검할 수 있고 만약 당신의 행위가 완전히 법에 부합되면 당신의 염두가 법에 부합됐음을 설명한다. 만약 당신의 행위가 법에 부합되지 않은 곳이 있다면 당신의 사상염두에는 확실히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다.

병업 중에 있는 한 수련생의 표현을 보는데, 일부는 이미 심각해 정상적인 생활과 수련을 할 수 없고 자신을 엄중한 환자로 여기고 집에서 쉬고 있다. 다시 말해서 행위에서 볼 수 있는데 그는 이미 자신을 엄중한 환자로 여겨 대하고 있는데 행위는 사상이 지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사상에서는 이미 자신을 엄중한 환자로 여기고 있고 이 한 점을 당사자 자신은 의식했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 나타난 것이다. 사부님의 설법에서 우리는 알게 됐는데 수련인은 병이 없는데 이는 신사신법(信師信法)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병업 현상이 나타났을 때 수련생은 모두 수련인은 병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 정념이 있지만 예전에 형성된 속인관념이 작용을 일으키고 그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병이라고 여기게 하는데 이때 바로 정념과 관념이 겨루는 것이다. 동시에 또 평소 수련의 기초가 체현된다. 만약 정념이 관념보다 강하면 정념이 주가 되어 병으로 여기지 않고 가상으로 여기고 관을 넘을 수 있다. 만약 관념이 정념보다 강하면 관념이 주가 되어 병으로 여기고 관을 넘을 수 없다.

물론 또 이런 정황이 있는데 수련생이 처음에는 정념이 아주 강했고 비록 특별히 단호하지 않지만 병업관을 가상으로 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무엇을 해야 하면 그것을 했고 세 가지 일도 빠짐없이 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안을 향해 찾지 않았고 일부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으며 관을 넘지 못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신심이 동요되기 시작했고 일부는 사부님께서 또 나를 상관하시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법이 효력이 있는가? 이렇게 정념이 단호하지 못함을 조성해 동요가 일어나고 관념이 주도 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며 유의적, 무의적으로 병으로 대하게 된다.

병으로 여긴 후 마음속에 병을 담고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여 또 병에 대한 집착이 생기고 다시 더 나아가 병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사람 마음과 병이 심해질까 봐 두려운 사람 마음이 일어나고 더 나아가 생명이 위급할 때 또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 마음이 일어나고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 마음에 심지어 일부 수련생은 또 사부님께서 자신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사실 마음속에 이 병을 내려놓지 못하면 이 병을 잡고 놓지 않는 것이다. 본래 그것은 병이 아닌데 당신은 오히려 그것을 병으로 여겼다. 당신이 병을 구했고 당신이 그것을 원하는 격이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당신이 그 병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당신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2] 이때 누구도 당신을 도울 수 없고 사부님도 도우실 수 없으며 다른 수련생도 당신을 도울 수 없다. 오로지 당신이 마음속에서 이 병을 내려놓고 당신이 그것을 갖지 않겠다고 택해야 사부님께서 비로소 당신을 도우실 수 있고 수련생도 당신을 도울 수 있다. 허다한 심각한 병업 수련생들에 대해 모두 전력을 다해 그를 돕고 있지만 결국에는 여전히 도움이 안 되고 수련생은 여전히 세상을 떠났다. 주요 원인은 바로 그가 이 병을 내려놓지 못해 조성된 것이다.

병업 상황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또 안으로 찾는 이 법보로 관을 넘어야 한다. 철저히 안으로 찾고, 관이 오기 전의 사람 마음과 관 이후에 나타난 것을 병으로 여기는 속인관념, 병에 대한 집착심, 병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 병이 심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 살려고 하는 마음, 사부님께서 자신을 상관하는지 의심하는 사람 마음, 대법이 효력이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 마음, 사부님께서 나를 상관하지 않으신다고 원망하는 사람 마음을 전부 종이 한 장에 적어놓는다. 그 다음 가부좌하고 제인하고 종이에 따라서 차례로 제거하고 이런 사람 마음을 전부 깨끗이 청리할 때까지 한다. 나중에 이 일에서 ‘수련인은 병이 없다’ 이 정념만 남아야 한다. 당신은 병업을 가상으로 대할 수 있고 그것을 일로 여기지 않게 되어 무엇을 해야 하면 그것을 할 것이다. 계속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정념정행해야 병업관을 걸어 나올 수 있다.

그 외 수련생들에게 일깨워주는데 관을 넘는 과정 중에서 수시로 안으로 찾는 것을 행해야 한다. 이 관을 단순하게 에워싸고 수련하지 말아야 하고 전면적으로 자신을 수련해야 하고 관을 넘는 것을 집착하고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이 집착이 생기면 전반 수련이 관을 어떻게 넘는지 에워싸고 운행됨을 쉽게 초래할 수 있다. 법공부, 연공, 안으로 찾고, 발정념, 진상을 잘 알리는 것, 이 일체를 잘하려는 목적이 이 한 개 관을 넘기 위한 것이 되며 이런 추구하는 마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수련인으로서 말하면 본질상에서 바로 자신을 승화하고 대법에 동화하는 것이기에 관을 넘는 것이 수련의 목적이 아니다. 관을 넘는 것을 통해 수련 제고를 얻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어떠한 관에 부딪히더라도 모두 소중히 여기고 이용해야하며 오로지 우리가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대법에 대조해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야 하고 그 다음 법에서 자신을 바로 잡고 정념정행 하면 이 한 관을 넘을 수 있다. 이 속에서 또 제고해 결국에는 좋은 일로 된다.

한 수련하는 사람이 법에 서서 정념정행 하면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확실히 막힘이 없고 관이 없다. 오로지 우리가 법에서 이탈할 때 관이 있는 것이다. 정법시기에 일부 관은 확실히 구세력이 설치한 것이고 바로 우리가 법에서 이탈할 때 그것은 기회를 타서 틈을 타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세력을 거들떠보지 말고 우리는 오로지 대법에 대조해 이탈한 부분을 바로 잡고 새롭게 정념정행에 도달하면 구세력은 틈 탈 구실이 없어져 자동적으로 관을 철수시키고 이 한 개의 관은 끝난다.

“공(功)을 수련하는 길은 마음이 지름길이라”[3] 대법 수련에서의 일체 관은 납치, 수감, 병업, 경찰의 소란, 수련생 몸, 세인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 마음에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넘어야 할 관은 바로 심성관이고 모두 자신의 이 마음에서 시작하고 안으로 찾으며 심성을 제고해 관을 넘어야 한다. 심성을 제고하지 않으려 하고 기타 방법을 통해 관을 넘는 것은 모두 밖을 향해 찾고 마도를 걷는 것이고 결국에 관을 넘지 못한다.

개인의 옅은 깨달음이고 적절치 못한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 리훙쯔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사부님 시사: ‘홍음-法輪大法(파룬따파)’

 

원문발표: 2018년 10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22/3760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