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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24살인 2013년에 법을 얻은 청년 대법제자이다. 5년간의 수련을 돌이켜보면 처음 대법을 얻었을 때의 기쁨이 있고, 수련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으며 시행착오도 하면서 애초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했는데 라는 후회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사부님의 자비는 한 번 또 한 번 나를 속세에서 깨우쳐 주시고 깨끗이 씻어 주셨는데 매번 이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샘솟듯 솟아 나온다.

비바람 쳤던 어린 시절

나는 대법제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부모님이 박해로 멀리 떠나셨고 나는 홀로 증조모와 함께 지냈는데 그때 증조모는 80여 세였고 나는 겨우 6살이었다.

어릴 적부터 가족과의 이별에 적응하였을까, 어린 나는 ‘온갖 고초를 다 겪은 것’ 마냥 우울하고 사색적이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이 어떠한 원인으로 나를 두고 떠났는지를 몰랐지만, 어렴풋이 사람들의 얘기에서 ‘파룬궁(法輪功)’ 이 세 글자를 듣게 되었을 때, 어린 나는 본성(本性)에서 파룬궁을 믿는 아버지는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늘 늦은 밤에 돌아왔고 다음 날 내가 일어나기 전에 그는 또 깊은 밤 속으로 사라졌다. 기억에 나는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고 낮에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너무 부모님이 그리웠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고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지 못했다. 그것은 증조모께서 걱정하실까 봐, 사람들이 원인을 묻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고 나는 늘 즐겁고 근심 걱정이 없는 것처럼 표현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닐 때 부모님은 돌아오셨다. 하지만 나는 담담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경험이 나를 일찍 성숙하게 했는지, 아니면 그들이 나를 떠난 그러한 시간에 익숙해서였는지. 하지만 생활은 이로부터 안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생계 때문에 이사만 5, 6번 했다. 내 성격은 점점 내성적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으려 했다.

처음으로 법을 얻고 속세에서 깨어나다

어릴 적 부모님과의 간격은 내가 커서까지 줄곧 이어졌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분들이 걱정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부모님과 가까이 지내지 못했고 심지어 마음속으로는 증오심이 생겼다. 부모님에 대한 그 원망을 나는 동생에게 화풀이했다. 아버지는 여러 번 나에게 법을 얻도록 권했지만 어릴 적부터의 간격으로 내 반발심을 일으켜 아버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나는 심지어 몇 번이고 우울해졌다. 그때 나는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간파하고 출가할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수련하는 대법이 가까이 있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12살부터 부모님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학교에 다녔으며 고등학교 다닐 때는 집과 더 멀리 떨어졌다. 아버지는 매주 나를 보러오지 못하게 되자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를 수련하는 아주머니에게 보살펴 달라고 맡기셨다.

나는 그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그가 어느 가족보다 더 친절하다고 느꼈다. 초면에 그녀는 밝게 웃었고 눈도 밝게 빛났다. 그는 “어린 수련생이네, 좋네요! 좋아요! 알고 있나…….”라고 하면서 나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고 대법의 아름다음과 사부님의 자비를 얘기해주면서 여러 차례 나를 어린 수련생이라 불렀고, 나를 신의 사자(使者)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마음이 탁 트였지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수련자인가? 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데, 연공은 할 줄 알지만 동작은 정확하지도 않고 다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하지만 그가 나를 어린 수련생이라 하니 나는 꼭 잘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는 그 아주머니 집에서 소중한 ‘전법륜(轉法輪)’을 요청해 가지고 왔다. 그날 나는 ‘전법륜’을 가방에 넣었는데 그날따라 해가 유난히 밝고 빛나며 온몸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홀가분한 느낌이었는데, 마치 큰 손이 나를 들어 올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나는 법을 얻게 되었다.

법을 얻은 다음 사부님께서는 내 몸을 청리해주셨다. 내 눈은 밝아졌고 피부도 아기처럼 섬세하고 하얗게 되었으며 머리카락도 하룻밤 사이에 깨어난 것 같았다. 내 마음은 끝없는 기쁨과 차분함으로 사람은 온화하고 힘이 넘쳤다. 속인 친구는 “너는 예술품과 같아.”, “한 폭의 그림 같다.”라고 나를 표현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높은 층차로 올려 주신 것을 알았고 마음속의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사악한 화보(畫報)를 제거하고 법을 실증하다

2018년 여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찾았는데 두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방을 얻어 살았다. 우리가 거주하는 단지는 이른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해서 보안등급은 최고이며 경비원들은 단지를 오가며 순찰했다.

어느 날 퇴근하면서 나는 갑자기 단지 진열장에 대법을 모독하는 중국공산당의 선전 화보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지고 화가 났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사실 여러분도 아주 똑똑히 알고 있는바, 한 사람이 대법 중에서 이익을 얻었는데, 대법이 박해를 당하게 되었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면, 이 사람이 제도될 수 있겠는가?”[1]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대법제자로서 그들이 사부님을 모독하고 대법을 모독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어느 날 늦은 밤에 그 화보를 없애려고 생각했지만, 계획을 하면 할수록 두려운 마음은 더욱 커졌고 단지 내 곳곳에 다 CCTV가 있는 것 같았다.

이틀 후 점심에 퇴근하면서 나는 먼 곳에서 그 진열장을 보았다. 나는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사부님의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2]는 법을 반복해서 읽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주변의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고 단지 한 갈래 작은 오솔길이 그 진열장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가까이 가 보니 그 진열장은 바로 경비실 맞은편에 위치했고 경비원은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해달라고 빌었다. 이때 한 아주머니가 오셔서 경비와 얘기를 하면서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때 나는 양산을 쓰고 있었으며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진열장을 열어 그 사악한 화보를 뜯어 배낭에 넣었는데 모든 동작은 한숨에 이뤄졌다. 나는 양쪽을 둘러봤다. 퇴근 시간대라 사람들로 붐볐는데 그들은 나를 보면서 웃어줬고 타당하지 않은 데가 없는 것 같았다. 청소하는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내 옆을 지나면서 줄곧 나를 주시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고 진열장 문을 닫은 후 집으로 갔다. 나는 가슴이 벅차며 사부님의 자비로움을 느꼈다.

룸메이트는 돌아온 후 긴급히 내게 “너 뭘 했니? 나는 단지 경비가 통화하는 것을 들었는데 진열장의 물건을 누가 찢었다는데 네가 했어?”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는 화내면서 큰소리로 “그렇게 하면 그들이 집으로 찾아올 거야. 그리고 찢으면 뭐 해? 다시 붙일 것인데!”라고 말했다. 나는 평온하고 강경한 어투로 그에게 “아니. 그들은 다시 붙이지 않을 거야. 내가 오늘 찢었기에 그들은 다시 붙이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룸메이트는 매우 기뻐하며 나에게 “너 참 신통하구나. 진짜로 붙이지 않았어. 아름다운 집 같은 것을 붙였는데 모든 진열장을 다 바꿨어.”라고 말했다.

그날을 생각하면 나는 모든 것은 사부님의 배치이고 제자가 걸어 나오기만을 사부님께선 기다리신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심성을 제고하고 사람 마음을 버리다

나는 줄곧 어린 시절의 일로 원한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부모님에 대해, 특히 어머니가 나를 홀로 집에 두고 갔기에 외롭게 자랐다는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법을 얻은 다음 어머니는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어머니가 밍후이왕에 나오는 수련생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으며 평소 생활에서 그와 늘 날카롭게 대항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매번 쟁론하고는 매우 후회하는데 수련인은 대인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번번이 어머니와 만나면 원망하는 마음 때문에 서럽고, 불평하는 마음이 나왔기에 몹시 괴로웠다. 제거하기 어려워 나는 이 생각의 뿌리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불평하는 질투심이었고 원망하는 마음이었다. 이를 인식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제거하고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그러나 연공인으로서, 남이 아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 당신에게는 아주 작게, 아주 작게, 아주아주 작게 보인다. 왜냐하면 당신의 그 목표는 참으로 장원(長遠)하고 원대(遠大)한 것으로서, 당신은 우주와 같은 나이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시금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며, 당신이 크게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다 지나칠 수 있다.”[3],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4]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반복해 사부님의 법을 터득하면서 눈물을 금치 못했다. 이때 나는 진정으로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몇 년간 어머니가 이 가정을 위해 한 모든 희생들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원망하는 마음과 질투심은 점점 작아졌고 나중에는 하나의 먼지와 같이 작아졌다. 나는 눈물을 금치 못했는데 슬퍼서가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너는 타인을 위해 생각해야 돼.”를 생각했다. 나는 원망하는 마음과 질투심이내 몸에서 제거되는 것을 느꼈는데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그것을 제거해주셨다. 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어머니를 보는 순간 나는 어머니가 귀엽고 착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평온하게 어머니와 얘기했는데 이때 나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가벼움과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이 5년간 걸어온 수련과정을 돌이켜 보면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으면 나는 이 속인 사회에서 타락하고 미망에 빠져 돌아갈 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감사하며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늘 눈물을 금치 못한다.

이 문장을 쓰기 전 나는 ‘내가 어찌 밍후이왕에 문장을 보낼 수 있는가? 그것은 보통사람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문장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70여 세가 되는 노년 수련생이 쓴 교류문장을 보고 힘을 얻어 나도 밍후이왕에 투고(投稿)하게 되었다. 발표되는지에 집착하지 않고 어떠한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며 나는 주동적으로 밍후이왕, 이 공동체에 원용하고자 생각했다. 오늘 이 문장을 쓴 목적은 수련생들과 함께 수련 길에서 멈추지 말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함께 정진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사도은(師徒恩)’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파룬궁(法輪功)-제3장 心性(씬씽)수련’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원문발표: 2018년 1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19/3785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