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법(法)을 전하고 공(功)을 전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짐에 따라 거둔 효과가 좋았으며,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도 비교적 좋았다.”이는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제1강 첫 부분에서 하신 말씀이시다. 리(李)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고 또한 그렇게 실천하셨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널리 전해진 곳곳마다 수련생들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심신에 혜택을 받았으며, 인심은 진정으로 선량해지고, 가정의 화목과 사회의 안정을 가져왔다.
파룬따파의 은덕(恩德)은 끝이 없다
마칭하이(馬清海)는 52세이고 네이멍구(內蒙古) 츠펑(赤峰)시 아오한치신후이(敖漢旗新惠)진 하정(下井) 촌 주민이다. 젊었을 때 마칭하이와 그의 아내는 몹시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다. 그의 외아들은 어릴 때 폐렴에 걸렸는데 나중에 폐결핵으로 발전해 매일 리팜피신과 이소니아즈와 같은 항 결핵약, 소염제, 감기약 등 식사 때마다 20여 알을 먹는 일도 있었다. 그때는 해마다 가뭄이 든 데다가 지나치게 잡다한 세금이 많아 집안이 매우 어려웠으므로 보잘것없는 수입으로 아들에게 약을 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다만 설에만 닭고기와 두세 마리의 생선을 살 수 있었는데 가족이 먹는 게 아니라 의사에게 갖다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아들이 늘 그믐날 밤에도 링거를 맞기 때문이다. 노르노마이신이 효과가 없으면 페니실린으로 바꾸고, 페니실린이 효과가 없으면 알보마이신으로 바꾸었으며, 알보마이신이 효과가 없으면 에리트로마이신으로 바꾸었는데 에리트로마이신은 위에 자극이 있어 무엇을 먹든 다 토했고 아몬드 음료를 조금만 마셔도 모두 토했다. 엉덩이, 손, 발에는 모두 링거 주사 바늘 자국이었다. 하루는 의사가 링거를 놓는데 아무리 찔러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는 철이 들었기에 아파서 줄곧 울었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조급해진 의사는 온몸에 땀을 흘렸고, 아들은 아파서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으며 가슴 아픈 아내도 땀투성이가 되었다. 마칭하이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그는 남자로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속담에 ‘자식은 부모의 살붙이’라고 그는 아들을 너무 사랑했지만, 아들은 또 너무 약했는데, 그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아이의 병을 치료하려고 했다.
그 당시 그들의 집에는 알약, 주사약, 한약, 주사기, 체온계 … 등등이 약국처럼 서랍장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칭하이 자신도 거의 절반은 의사였다. 어느 날 저녁, 그와 아내는 바깥에서 일하다가 아들이 몇 번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는데 아들은 호흡 곤란에 처해 있었다. 그는 급히 사람을 찾아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검사를 받아보니 아이는 급성후두염에 걸린 것이었다. 목에 뾰루지가 하나 생겼는데 주사를 놓기엔 이미 너무 늦어서 의사는 주사기로 직접 약을 뿌렸다. 의사는 이런 병은 사람을 질식시켜 죽일 수 있다면서 조금만 늦었다면 생명이 위험할 뻔했다고 말했다. 마칭하이와 아내는 그렇게 매일 아들에 대한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는 몸이 허약해 날씨가 조금 변하거나 독감 같은 것이 있으면 이제껏 피해 간 적이 없었다. 각종 치료방법을 다 사용해 봤지만, 그저 상태를 유지할 뿐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었다. 불쌍한 아이가 오랫동안 병으로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도 부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들은 정말 절망스러웠다. 그때의 심정은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1997년에 그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해 가을, 마칭하이 가족은 운이 좋게도 파룬따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대법의 법리는 그들 인생에서의 모든 곤혹을 풀어주었고 그들은 보물을 얻은 것처럼 그때부터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처세하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들의 모든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들의 완전한 회복으로 마칭하이 부부의 심정은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웠고 아이의 건강 때문에 더 겁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마칭하이 자신의 오랜 허리 통증도 기적적으로 회복됐다. 그것은 1998년의 어느 겨울 아침 일이었다. 마칭하이는 이웃을 도와 석조(石槽)를 들어줬는데 힘을 너무 세게 준 탓에 “삐걱” 소리와 함께 허리를 삐었다. 그는 끝까지 견지하여 석조를 제 위치에 올린 후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그는 한 무리의 양을 산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밥을 먹은 후 산에 올라 양을 방목하러 갔다. 그날 눈이 특히 많이 왔는데 그는 허리가 아파서 양 떼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인근에 사는 부친은 이런 상황을 보고 몹시 걱정하면서 이번에 큰 화를 초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마칭하이가 양을 방목할 수 없다면 그렇게 많은 양에게 뭘 먹이겠는가? 그러나 마칭하이는 이웃집을 찾아 번거롭게 하지 않고 어려울 때 대법 사부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超常)함을 확고히 믿었다. 그 결과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가부좌할 수 있었고, 다음날에는 연공을 할 수 있었으며 사흘 만에 신기하게도 좋아졌는데 예전에 매일 허리가 아팠던 증상마저 사라졌다. 그 당시 그는 너무 흥분하여 정말 거리에 나가 소리치고 싶었다. 지금까지 20년이 지났지만, 그의 허리 통증은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마칭하이의 아버지는 수년간 폐결핵을 앓았는데, 50여 세 때부터 일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네이멍구(內蒙古) 자루터기(紮魯特旗)는 풍수지리가 좋아 사람의 몸에 이롭다는 말을 듣고는 살기 위해 아내를 데리고 천 리 밖에 있는 자루터기로 이사했지만, 몸이 나아지지 않았다. 나중에 아들 가족의 변화를 보고 그는 자루터기에서 다시 이사와 파룬따파 수련에 합류하였다. 60이 넘은 부친의 10여 년도 더 된 폐결핵이 순식간에 나았다.
대법의 초상함을 몸소 느껴온 가족은 대법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달았다. 그들은 시시각각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행동하고 고향에서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그 몇 해 동안 전국에서는 매년 봄, 여름, 가을 세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산과 물관리 그리고 식수조림(植樹造林) 운동을 벌였는데, 매번 상급검사에서 향, 촌, 조 3급 정부는 공개적으로 마칭하이 것은 ‘검사 면제 제품’이라고 공언하였다. 양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품질도 우수하기에 보통 사람이 해내기는 너무 어려웠다. 상급 정부가 어떤 임무를 배치하든지 그는 모두 앞장서서 완성했다. 그 시기 그는 현지의 부유한 가정에 속했는데 자신이 산양 떼를 키우면서 매년 등산세(登山稅)와 융모세(絨毛稅-어린양은 무료이지만 크기를 혼동하기 쉽다)를 그는 한 마리도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곳곳에 양을 숨기고 숫자를 감추면서 이런 방식으로 탈세했다. 마을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그 사람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다.”였다. 과거에는 이웃과 가족 간에 모순, 충돌이 빈번했는데 수련 후에는 매번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먼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보면서 모든 일에서 남을 선하게 대했다. 이웃의 돈을 주웠을 때 자진해서 그 집까지 보내주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돈을 되찾은 주인은 감사하다고 말한다.
파룬따파가 그의 온 가족에게 건강한 신체를 가져다주었고 그들의 마음을 정화해 주었으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하였다. 그들 온 가족은 대법 사부님이 구원해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진선인(眞善忍)’을 실천하여 수차례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하다
우준더(吴俊德)는 59세로 랴오닝성 선양시 주민이고, 진저우 철도 송전단 신민 전력 공단 직원이었다.
우준더는 1997년 7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패혈증에 걸렸는데 조혈 기능을 상실했고 혈소판이 거의 없었으며 발견했을 때는 이미 말기단계였기에 진저우 철로병원, 따후산 병원, 선양 광후히 병원 등 많은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겨우 30대인 그는 죽음의 신(神)의 배치에 포기하지 않고 기공에 희망을 걸었다. 그는 많은 공법을 시도하였으나 효과는 매우 미미하였다.
하루는 동료의 부친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파룬궁을 수련하게나. 파룬궁은 불가의 수련대법으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데 신비한 효과가 있다네.” 우준더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첫날 연공을 끝내자 그는 매우 편안함을 느꼈는데 전에 다른 기공에서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 ‘전법륜’을 읽었고 보조적 수단인 연공을 했다. 그는 점차 사람은 왜 병이 생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병업(病業)을 없애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주의 특성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덕을 지키고 마음을 닦는 도리를 알게 되었다. 그는 또한 많은 신기한 현상을 경험했다. 일주일 뒤 그의 패혈증 증상이 사라지고 몸은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주위의 사람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고 모두 마음으로부터 파룬따파를 칭찬했다.
심신의 기적적인 변화는 우준더로 하여금 파룬따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였고, 그는 더욱 견정하게 파룬궁을 수련하였다. 그는 진선인의 법리대로 자신을 요구하고, 모든 일에서 타인을 배려하며 여러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직장에서 그는 상사의 지시에 따르고 불평 없이 더러운 일, 힘든 일, 위험한 일들을 앞 다투어 하였고, 개인의 이익에서는 결코 다른 사람과 따지지 않았다. 수련 전 그는 직장의 나사를 자주 집에 가져가곤 했는데, 수련 후에는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가져갔던 것도 모두 직장으로 다시 가져왔다.
수련 전, 사회의 불량한 요소의 영향으로 우준더는 늘 의식주를 위해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고 싸움을 걸었으며 그 지역의 폭군이었다. 그때의 그는 성질이 나쁘고 난폭하여 누구도 감히 그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못했다. 수련 후, 그는 성격이 좋아졌고 어디에 있든지 누구에게 어려움이 있든지 스스로 도와주었고 특히 다른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항상 앞장서서 구조했으며 개인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았다.
몇 년간 그는 선양(瀋陽) 산타이지(三台子) 철로 변 부근에서 살았는데, 당시 산타이지 학생들은 학교에 오갈 때 모두 철길을 횡단했다. 철길 위에는 늘 긴 화물열차가 머물러 있었는데 반나절이 지나도 떠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점심때 급히 집에 돌아가 밥을 먹으려면 기차 밑으로 지나가야 했다. 어느 하루, 열한 두 살 되는 아이가 자전거를 밀고 막 기차 밑을 지나는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상황을 보고 주저하지 않고 기차 밑에 기어들어 가 아이에게 자전거는 필요 없다고 말하고는 아이를 잡고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를 따라 앞으로 걷다가 바퀴에서 조금 멀어졌을 때 순식간에 확 잡아당겨 빠져나오게 했다. 그때 그는 매일 이곳을 지날 때면 자세히 관찰하면서 여러 차례 아이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다.
또 한 번은, 60대 노인과 딸이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오다가 철로 변에 이르자 노인은 철길 위로 올라갔다. 그때 기차 한 대가 질주해 왔는데 노인은 이 기차가 역에 들어오면 바로 멈추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역을 통과하는 기차일 줄이야! 역에 들어서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플랫폼에 있는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공포에 질려 노인에게 소리쳤다. 노인은 놀란 나머지 멍해졌다. 플랫폼으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조급해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이때 우준더는 급히 달려가 노인의 옷을 잡아 위로 힘껏 들어 올려 철길 밖으로 들어냈는데, 바로 그 순간 기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정말 위험했다! 한참 뒤 정신이 돌아온 노인은 물었다. “나를 끌어준 사람은 어디 갔나요?” 당시 우준더는 노인의 옆에 서있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역 서쪽 도로 입구에서 산타이 병원의 한 여의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부주의로 도랑 옆에 넘어졌는데, 그 여의사는 오토바이에 깔려 의식을 잃었다. 우준더는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고 구조에 나섰는데 구경꾼 중 아는 사람이 이를 보고 말렸다. “그녀를 건들지 말아요. 그녀의 가족은 돈을 뜯어내기 좋아하는데 당할지도 몰라요.” 오늘날 중국에서 사람을 구하려다 도리어 당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왜 이런 일에 봉착했을 때 본능적인 반응이 ‘차라리 멀리 서 있을망정 구태여 앞으로 나가지 말자.’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준더는 아무 생각 없이 앞에 다가가 여의사를 일으켜 세우고 또 버스 한 대를 가로막고 그녀를 안아 차에 태웠다. 마침 차 주인이 이 의사를 알아서 그녀를 선양으로 데려가 치료하게 하였다. 그 후 여의사의 가족들은 수소문 끝에 우준더의 직장에 찾아와 감사를 표했다.
또 한 번은 산타이 역 승차장에서 40대 남자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는데 주위 사람들은 모두 구경만 할 뿐 누구도 앞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우준더가 그것을 보고 즉시 앞으로 나아가 그 남자의 한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다른 손으로 그의 허리를 껴안은 후 당나귀 수레를 모는 사람을 불러 이 남자를 광후이병원(光輝醫院)에 보내 치료받게 하였다. 나중에 알기로는 이 사람은 마산자(馬三家)에 집이 있고 산타이에 품팔이하러 왔는데 불행히도 병이 재발한 것이었다. 남자는 병이 나은 후 우준더에게 사례하려고 하자 우준더는 진심으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품팔이하면서 쉽지 않아요. 또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요. 나와 아내는 둘 다 출근하는데 조건이 당신보다 좋으니 사례할 필요 없어요.” 이 사람은 감동하여 나중에 우준더를 만날 때마다 ‘은인’이라고 불렀다.
2000년 여름의 어느 하루 오후 2시쯤, 우준더는 소형트랙터를 몰고 철길을 따라가다가 다리 밑에 수십 명이 둘러싸고 구경하는 것을 보았다. 내려가 보니, 원래는 원숭이를 시켜 재주를 부리게 하는 사람이 기차에 치여 다리 밑 진흙탕에 떨어졌는데 머리를 다쳐 피가 흘렀고 광대뼈도 부딪혀 부서졌는데 뼛속마저 드러났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오전 9시경 기차에 치였는데 5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구하지 않았다. 우준더는 곧 떨어질 것 같은 그의 허벅지와 몸을 코트로 감싸 안은 뒤 자신의 차에 싣고 인근 광후이 농장병원(光輝農場醫院)에 가서 간단한 처리를 했다.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하라고 하였다. 우준더는 또 기차역을 찾아가 역에서 차를 부르게 하여 버스에 태워 따후산 철로병원(돈은 기차역에서 지불)으로 보내 치료받게 하였다. 그 사람은 다리를 절단 후 반년 넘게 병원에 입원해서야 나았다.
2004년 가을의 어느 오후, 우준더는 주얼툰(朱爾屯)교 근처를 걷고 있었는데 삼륜오토바이 한 대가 질주해 오다가 급커브에서 다리에 오르던 중 갑자기 다리 아래 2m 깊이의 도랑에 떨어졌다. 차바퀴가 위로 향하고 운전사는 머리가 아래로 향한 채 차 안에 틀어박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는데 즉시 쇼크를 일으켰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구경하고 있었으나 아무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우준더는 곧바로 다리 밑으로 내려가 옷소매로 유리 조각을 털어냈다. 그는 차 문이 열리지 않아 창문으로 사람을 끌어냈는데 당시 그의 손도 긁혀서 상처가 났다. 그가 사람을 골짜기 옆에 눕혀 놓고 보니 이 사람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있고 술 냄새가 났다. 우준더는 다시 언덕에 올라 한쪽 발을 큰 돌에 걸고 몸을 골짜기에 들이댔다. 이때 열대여섯 살 되는 남자애가 다가와 우준더를 도와 다리를 잡아줬다. 우준더는 힘껏 그 사람의 양 어깨 옷가지를 잡고 언덕 위로 끌어 올렸다. 5, 6분 뒤 정신을 차린 그 사람은 자신은 ‘노만’이라고 부르며 우준더에게 그의 가족에게 전화해달라고 했다. 그의 가족이 와서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떠날 때 노만이 우준더의 명함을 요구하자 우준더는 “빨리 서둘러 병원에 가세요, 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기억하시면 되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노만은 구조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준더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짱쩌민 집단의 박해를 받고 있다. 현재 고정된 거주지도 없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데, 아무런 경제적 수입이 없어 생활이 매우 곤궁한데도 그는 사람을 구하는 데는 아무런 보답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남을 위해 좋은 일만 한다.
이런 사례는 또한 많고도 많다. 이 모든 것은 모두 파룬따파 사부님의 위대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우준더와 같이 과거에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었던 사람을 개인의 안위도 돌보지 않고 남을 구하는, 일심으로 선을 향하는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파룬궁(法輪功)은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한다.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1992년 5월 전하기 시작한 불가(佛家)의 상승(上乘) 수련대법으로, 우주의 최고특성 ‘진선인(眞善忍)’을 근본지도로 삼는다. 연공은 간단하고 우아한 다섯 가지 공법을 보조로 하는데, 짧은 시간 내에 심신이 정화되고, 도덕성이 향상될 수 있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 중국공산당 정부 통계발표에 의하면, 1억 명이 파룬궁을 수련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이 약 20년 동안 파룬궁을 전면적으로 박해했지만, 파룬궁은 탄압에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전 세계 14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다. 파룬따파의 주요 서적 ‘전법륜(轉法輪)’은 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공개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지금 세계 모든 국가와 지역에는 모두 파룬궁 연공장이 있고, 파룬궁 수련생이 단체로 연공하며, 파룬궁을 널리 알리는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다.
원문발표: 2019년 1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2/3802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