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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현상을 보지 말고 오로지 자신을 수련해야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당신들이 마주친 일마다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닌데”[1]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리하여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이 일을 통해 폭로된 각종 집착심을 찾아낼 때까지 아울러 법리상에서 인식할 때까지 자각적으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을 배워냈다. 하나하나 파내서 그것을 없애면 표면현상은 바로 해결되고 모든 진상이 드러나게 된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2]를 절실하게 체득했다.

2018년 5월에 91세 조선족 할머니의 생활을 돌봤다. 어느 날 점심때 할머니는 “마늘 소스를 담았던 작은 유리잔 못 봤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봤어요. 유리잔을 깨끗이 씻어서 수납장에 넣었어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못 찾겠는데요? 깨뜨린 줄 알았어요.”라고 했다. 나는 “물건을 깨뜨린 적 없어요. 급해 하시지 마세요, 식사하고 찾아드릴게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불쾌해하며 “어느 날 방에 있는데 아줌마가 설거지할 때 물건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런데 방에 들어와서도 내게 말하지 않았잖아요. 아줌마가 난처할까 봐 물어보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할머니, 설거지하는데 어떻게 소리가 안 나겠어요? 정말 물건을 깬 적이 없어요. 정말 제가 실수로 깼다면 당연히 말씀드렸겠죠.”라고 했다. 그래서 식사를 하다 말고 주방에 가서 찾기 시작했다.

주방, 베란다 등 다 찾아봐도 유리잔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어디 갔지? 평소 집에는 할머니와 나뿐이고 다른 사람이 없는데. 가끔 할머니의 막내딸이 집에 와서 며칠 자고 바로 갔을 뿐인데, 왜 없어졌지?

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자 할머니는 트럼프를 하면서 굳은 얼굴로 “안 깼으면 언젠가 나오겠죠. 깨뜨렸으면 영영 못 볼 테고요. 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아주 아끼는 것인데, 어디 있는지 생각하느라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라고 했다.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사부님 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강변(強辯)에 부딪혀도 다투지 말지니/ 안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수련이라/ 밝히려 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거니/ 마음 비워 집착 없으면 명견(明見)이 나온다네”[3] 그래서 더는 변명하지 않았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실의 표면 현상을 보지 말아야 한다. 내게 없애야 할 사람 마음이 꼭 있을 것이다. 무슨 마음일까?

사부님의 법을 통해, 사람마다 하나의 거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가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고집을 부리면서도 체면 때문에 물어보지 못했고 또 유리잔을 찾지 못했을 때 무작정 내가 깨뜨렸을 거로 추측했다. 유리잔은 비싼 물건이 아니지만, 할머니는 각별히 좋아했고 심지어 이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형식을 중시하지 않는다. 나는 각종 형식을 이용하여 아주 깊이 은폐된 당신들의 마음을 폭로하게 하여 그것을 제거해 버린다.”[4]가 생각났다. 갑자기 할머니 몸에 집중된 각종 사람 마음은 내게 보여주는 것이므로 자신을 잘 대조해 조건 없이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자아를 강조하고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다.

2. ‘들은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다가 마지막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다.

3. ‘추측한 것’은 바로 의심하는 마음이다.

4. ‘체면 때문에 물어보지 못하는 것’은 체면을 차리는 마음, 명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5. ‘비싼 물건이 아니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은 물건이 크고 작고 얼마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심이다.

6. ‘각별히 좋아하고 기뻐하지 않는 것’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 기뻐하고 기뻐하지 않는 것은 모두 사람의 감정에서 나온 것이다.

7. 심지어 ‘이 일로 잠을 이룰 수 없다’라는 것은 폭로된 모든 집착심이 꽤 심하다는 것이다!

억울함을 당했을 때에 관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선의(善意)로 해명할 수 있으며, 사정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모두 관계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너무 집착하면 역시 안 된다.”[2] 그런데 나는 두 번이나 변명했고 자신이 깨뜨리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변명이다. 변명할 것이 무엇인가? 누가 틀렸는지 맞는지 결판내려는 것이 아닌가(투쟁심리). 내가 맞았으면 또 어떻다는 것인가?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빨리 제고해 올라오라는 것이 아닌가. 자신에게 아직 많은 사람 마음이 있으므로 빨리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고 구세력이 우리에게 강요한 것이다. 난 갖지 않겠다. ‘사부님, 제자를 가지해 주십시오!’ 묵묵히 발정념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아이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인터넷에서 똑같은 유리잔이 있으면 좀 사달라고 했다. 아이는 “이것은 돈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사주면 할머니는 더더욱 엄마가 깨뜨렸다고 생각할 거예요.”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그런 것들은 다 중요하지 않아. 할머니가 유리잔 때문에 화가 나셔서 잠까지 못 주무시고 계시잖니.”라고 했다. 그런데 인터넷에 비슷한 물건이 없었다. 나는 언짢아져서 이튿날 현지 백화점, 마트, 시장까지 다 가봤는데 그래도 찾지 못했다. 혹시 사지 말아야 하나? 순리대로 하자.

그래서 좀 일찍 할머니 집에 갔다. 할머니는 어두운 얼굴로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라고 했다. 나는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유리잔을 사주려고 했는데 없네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눈을 부릅뜨고 “깬 것도 아니면서 뭘 사요? 그건 막내딸이 한국에서 사 온 거예요.”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할머니께서 계속 화가 나 있으실까 봐 걱정돼서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얼굴을 돌리고 더는 나와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때부터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나를 괴롭혔다. 채소가 짜지 않으면 심심하다 하고, 간장을 넣어 색이 진해지면 보기 싫다 하고 간장을 넣지 않아 색이 연하면 식욕이 없다 하고, 밥이 질지 않으면 꼬들꼬들하다 했다.…… 할머니가 어떻게 트집을 잡아도 나는 여전히 허허 웃으며 예전과 똑같이 대했다. 할머니가 지적하기만 하면 바로 고쳤고 될수록 할머니의 요구에 따랐다.

할머니는 여전히 트집을 잡았다. 어느 날 갑자기 화를 내며 “우리 집에서 일하면서 참 쉽게 돈 버네요.”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웃으며 계속 자기의 일을 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사부님의 설법을 외고 있었다.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5]

사부님께서 일에 마주치면 곳곳에서 타인을 위해야 한다고 하신 가르침을 명심해야 한다. 할머니는 또 “이 늙은이 돌보기 힘들죠, 관두고 싶으면 언제든 관둬요.”라고 했다. 이는 일종 외부인을 내쫓는 축객령(逐客令)이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우리가 서로 알게 됐다는 것은 아주 큰 인연이에요! 만약 잘못한 곳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고치겠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수련 중에서 실제로 모순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이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전생에 남을 잘 대해 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모순 중에서 업력의 전화 문제가 연관되기 때문에, 실제로 대할 때 우리는 마땅히 높은 자태여야 하며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2] 이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고 나를 도와 심성을 제고되게 한 할머니께 정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서서 보니 할머니의 화난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할머니와 말을 걸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묵묵히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많은 집착심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아울러 노력해서 하나씩 수련해 없애고 있습니다. 할머니께 진상을 알려준 적이 있어 할머니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고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제가 유리잔을 깨뜨렸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제가 억울함을 당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 일 때문에 대법에 오해가 생겨 할머니를 구하는 데 영향이 없기 바랍니다. 제가 유리잔을 깨뜨리지 않은 한 꼭 어디에 있을 것입니다. 유리잔을 깨끗이 씻어서 어디에 놔뒀는지 생각나게 사부님께서 계발을 주십시오.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깁니다.’

이튿날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의 막내딸이 갑자기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한마디 물었다. “혹시 마늘 소스 담았던 유리잔 보셨어요?” 막내딸은 “제가 가져갔는데요. 왜요?”라고 했다. 나는 기뻐서 말했다. “정말 다행이네요! 어머니께서 유리잔이 없어졌는데 제가 깨뜨렸다고 생각하고 계시거든요. 언제 오시면 말씀드려주세요. 할머니께서 화내시지 않게요.” 전화를 내려놓고 격동되어 합장하고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흥분된 마음이 점차 가라앉고 나니 인식이 들었다.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실증하려는 마음을 깨끗이 없애지 못한 것이다. 수구하는 데 주의하지 않았고 심성을 잘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질질 10여 일을 끌었다. 내게 보여주느라 할머니는 정말 힘들었겠다. 할머니의 표면 현상은 끊임없이 나의 용량을 확대해 줬다!

며칠 후 막내딸이 왔다. 유리잔을 꺼내놓자 오해는 풀렸고 할머니는 주동적으로 나와 말했다. 막내딸은 무심결에 큰 언니의 말을 통해 나에 대한 할머니의 태도를 알게 됐다. 할머니는 마음이 심란하면 큰딸에게 전화해 이야기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할머니의 자녀 몇 명이 모여 상의했고 둘째 사위와 막내딸이 할머니와 잘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가정부에게 삿갓을 씌우고 일부러 남을 못살게 굴고 간접적으로 남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가정부는 화를 내지 않았고 우리에게도 한마디 불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열심히 일했고 정성 들여 할머니를 돌봤어요. 이런 좋은 가정부는 지금 찾기 어려워요. 우리 집에서 가정부를 고용한다면 이 분만 쓸 거예요……”

물론 이 말들은 막내딸이 내게 말해준 것이다. 막내딸은 감동해서 “정말 좋은 분이네요! 그렇게 큰 억울함을 당했는데 어찌 한마디도 안 할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 나는 “우리 사부님께서 ‘우리는 정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선(善)으로 대해야 한다.’[6]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사부님의 말씀대로 한 것이에요.”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많은 진상을 알렸고 그녀는 열심히 들었고 많은 질문을 해서 나는 하나하나 해답해줬다. 마지막에 그녀는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정말 다르네요! 저는 늘 이것저것 불평했어요. 고민이 아주 많아요. 책을 빌려볼 수 있을까요? 집에 가서 조용히 한번 보려고 해요. 저도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싶어요.”라고 했다. 나는 웃었다!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한 생명이 구도됐다!

수련에는 사소한 일이 없다. 작은 유리잔이 일으킨 한차례 풍파를 통해 일이 발생했을 때 마음이 움직이면 바로 경각심을 높여야 하고, 일사일념에 따라 덩굴을 더듬어 참외 따듯이 아래로 찾아야 하며, 모든 마음은 고립된 것이 아니고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아주 깊이 숨겨져 있던 마음이라도 마지막에는 하나씩 다 폭로될 것이고 그것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조용히 하여 법공부하고 엄격하게 대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으면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있는 층차에서 응당히 알아야 할 법을 보여주실 것이다.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표면 현상을 봐서는 안 되고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고 스스로 타일렀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호탕한 불은(佛恩)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허스!

이상 약간의 깨달음을 수련생과 교류하고자 한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0년 뉴욕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3-논쟁하지 말라’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挖根)’
[5]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도항(導航)-2001년 캐나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1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2/3802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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